서로의 육체에 대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 좋고 그녀를 따라 연극을 볼 수 있어 좋고, 누나들과 다른 은경의 날카로운 성격을 경험할 수 있어 좋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늘 아래서 하나의 가정을 꾸려 대접 받을 수 있어 좋다.
스물여덟이지만, 대학 교수인 아버지에게서 배운 삶은 인간이면 누구나 자유로워야 한다는 그 점이다.
아버지는 내 자유를 위해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나이키 운동화를 처음으로 사 주셨다.
아마 운동화와 나는 그렇게 연을 맺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눈을 피해 아버지는 쓰기만 한 커피를 손수 내려 내게 주셨다.
"준호야 인생은 이 커피처럼 쓰기도 하지만 인생은 이 커피츼 향처럼 기차기도 하단다. 열 살인 네게 아버지가 커피를 내려 주는 건 아버지처럼 준호도 커피를 사랑 했으면 해서야. 커피 한 잔을 나는 꼭 아들과 함께 마시고 싶었다. 나는 그러므로 지금 행복하고 내 아들의 부드러운 턱 선을 사랑한다. 우리 준호. 늘 현재에 만족하면 살길. 자. 건배!"
어린 내가 뭘 알았을까마는 누나들에게도 내게도 아버지는 커피를 내겨 주셨고 삶을 사랑하라며 많은 조언을 삼가는 대신에 어떤 일이든 경험하게 해 주셨다.
아버지의 가난한 바지가 떨어져 엉덩이가 가로로 세로로 누벼져 있었어도, 단 하나 뿐인 버버리가 오래 되어 낡았어도, 통계학 숫자인 시그마에 대해 설명해 주는 누나를 앞에 앉히고서도 아버지는 내게 하나의 꿈이었다.
아버지가 아버지의 자유를 사랑했지만 전세금 500만원이 없어 어머니를 외가로 보내야했을 때조차도, 나는 아버지가 강의료를 아껴 사들도 들어 온 원두커피 향과 함께 아버지를 사랑했다.
아버지는 내게 많은 일을 꿈꾸게 했다.
그 일만 생각하면 나는 많은 손님을 참는다.
은경이 블루마운틴 한 잔을 마시고, 나는 그 옆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블루마운틴의 텁텁한 맛을 마시고, 우리의 인생이 뭐 별 게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 은경의 긴 머리카락에서 맡아지는 메닠큐어 향이 그녀의 꿈인 것처럼 나는 또 새 운동화 특유의 냄새를 맡으면 매일 오전9시면 샵에 출근 할 것이다.
은경이 내 옆에서 잠이 들면 나는 내 운동화 곁으로 건너와 그 속에서 일기를 쓰고, 하루에 대한 글을 쓰고, 시를 쓰기도 한다.
운동화와 시가 어울리긴 한가?
빵과 꿈이 어울리나?
아버지의 쥐꼬리 만했던 월급과 2만원이 훌쩍 넘어버리는 원두커피가 같은 선상인ㄴ가 다른 선상인가?
어린 내게 아버지가 진실을 알리신 걸까?
된장찌게를 끓여 먹은 후에 그 냄새가 섞여 원두커피 향이 우리 집 안을 매웠던 어린 시절에 좁은 현관을 들어서면서 내가 늘 맡았던 뭔가 알 수 없는 묘한 냄새를 내가 알았을까?
어머니의 서글픔과 아버지의 허허하는 웃음을 나는 깨닫기는 한 건가?
모르겠다.
지금 비전이 없어 보이는 내 삶의 방향과 여전히 좁은 아버지의 낡은 서재가 내 현실이라고 하면 나는 많은 내 꿈을 포기해야 할까?
언제가 내 샵을 열고, 내 운동화를 다시 팔고, 멋진 운동화를 디자인하고 싶은 게 내 꿈인데, 그것이 이루어지기나 할까?
모르겠다.
많은 일들이 꿈꿀 때 행복하지 않을까?
내가 쓰고 있는 일기만이 또 내 것임을 안다.
내 것은?
은경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일하는 샵도 내 것이 아니다.
내 소유였지만 은경의 킹크랩을 위해 팔아 버린 운동화도 이제 내 것이 아니다.
배 속에 들어 간 수 없이 많이 내려 준 아버지의 원두커피 향만이 내 것인가?
아니 어쩌면 그것도 내 것이 아니다.
그럼 죽음만이 내 것인가? 그것도 아닐 것이다.
나의 현재 나의 사랑, 바로 방 문 너머의 은경이 내 것이 아니듯 그 무엇도 내 것이 될 수 없다.
감히 내 것이라고 표현하는 그 일이 유치어린 내 공정된 생각의 틀이 아닐까?
그 무엇도 내 것이 아니고, 내 것이 아니라면 집착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가 어린 나를 아버지의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처럼 자기 몫의 삶은 온전히 자기가 책임이지만, 또 실은 자기 것이 아닐 것이다.
뭐야?
어떻게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군!
음 역시 아직은 고수의 단계에 접어 들려면 나 신준호는 세월이 더 싸이고 내공이 부족해.
내공을 탑처럼 만들려면 또 자야 되겠군.
"내 일은 내 부친인 신교수께 전화를 드려야겠군." <3편 끝>
* 고등학교 때 처음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에 글을 올렸죠. 뭐 진실이 아니고 거짓으로 말입니다. 소설은 자신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꿈은 정말 작가가 되는 것이고 아마추어든 프로든 이렇게 쓰고 있으니 제가 지금 작가가 아니겠습니까?
제 꿈을 이룬 다 한들 또 행복하다고 꼭 말할 수 없겠죠.
인간은 늘 시지프의 신화에서처럼 돌 한덩이를 위로 올리고 다시 떨어지는 돌을 다시 올리다가 인생 종치겠죠. 하지만 저 도전합니다.
나이 마흔에 글을 쓰겠다는 일념하에 열심히 올립니다. 그러나 이것도 부질없는 짓일 수 있겠죠? 내가 바라는게 명예인지 돈인지 저 자신도 알 수 없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나이키 운동화와 트레인닝 복 너무 좋아하죠. 저는 제 자유만 간섭받지 않으면 서울에서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하루도 행복하세요, 영선.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