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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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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팔았다.


BY 정자 2006-10-19

순대 천원어치 주세요...

여기서 먹고 갈 거지?

 

얕은막한 구르마에 솥하나 턱 걸쳐놓고 순대만 이십년 판 아줌마를 난 잘안다.

천원어치만 달라고 해도 나 혼자 먹어도 남게 주고, 남으면 남았다고 또 비닐팩에 싸준다.

그것도 덤으로 금방 찐 순대를 댕겅 잘라 김밥길이 보다 더욱 길게 준다.

나는 별 말없이 받아들고 눈빛으로 눈 인사를 한다.

 

그렇게 돌아온 방에 나와 아이들은 순대를 놓은 도마에 둘러 앉아서 숭덩 숭덩 순대파는 아줌마처럼 썰어 본다. 입으로 쏙쏙 들어가게 크기도 알맞게 작다.

 

엄마! 이 순대는 누가 만든거야?

아줌마가?

디게 맛있다.!

 

네살배기 아들은 나에게 말 걸며 오물조물 애기도 잘한다.

엊그제 할머니집에서 느닷없이 쫒겨난 손자다. 아니 종손이다.

아이는 모른다. 지금은 오로지 엄마와 함께 순대를 먹고 있는 것이 전부다.

딸이 아직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엄마라고 하지도 않는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슬쩍 눈 빛이 흐려지는 아이.

 

첫 남편과 나는 긴 장기전의 전쟁이 시작 될 무렵의 애기다.

그러니까 나는 이혼이냐, 아니냐? 가 아닌 나 자신과의 지루한 싸움을 시작한 계절에

혼자 겪은 일들 중에 하나는 또 다른 중요한 성분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나는 딸아이의 분유를 사기 위해서 결혼 반지를 팔았다.

당분간은 아이의 입에 들어가 생명의 에너지를 위해서 나의 굴레였던 결혼을 판것처럼

생각 되었다. 그리곤 한달 사글세를 밀리고 또 밀려 또 결혼 목걸이를 팔았다.

물론 그 때는 이젠 남편이던 누구던 나 사는데 도움이 된다면 뭐든지 팔 수가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도 나는 첫남편에게 구걸이라든가, 당당하게 생활비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런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젠 팔려고 해도 오히려 쓰레기 같은 변변찮은 허접스런 도구들만 나의 주위에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어디에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른다. 단지 아빠는 아직 이사를 오지 않았고, 온다면 내일이나 아마 모레쯤 올거냐고 아침마다 물었다.

 

나는 대답대신 또 한 번 고개를 위 아래로 흔들며 대답을 했다. 그게 가로로 흔들거나 손으로 그게 아니고 이렇게 저렇게 그래서 늦게 올 수도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종의 침묵같은 대화였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그런 걸 알아 들었다.

 

 꿈 같은 길로 첫남편은 나의 모든짐을 일톤 트럭에 싣고 나의 사글세방으로 이사를 왔다.

별 말도 없다. 단지 수척해진 얼굴이고, 그동안 아이들을 못 본 댓가로 한참 딸아이를 안고 내리지 못했다.

 

 첫남편이 이사온 날   첫날밤처럼 여겨졌다. 남편은 나의손에도 목에도 반지와 목걸이가 없는 것을 보고 얼굴을 떨궜다.나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이후로 나는 어떤 장식용 악쎄사리이던 금붙이던 모든 것을 내 몸에 지니지 않았다. 괜히 거추장 스러웠고, 만일 그런 것이 생기면 또 다시 팔아먹을 것 같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있었다.

 

 그래선가 두번째 남편에게도 결혼의 표시라든가. 증거일 수도 있는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누구의 여자라든가, 누구의 아내자리를 표시하는 건데. 나는 이상하게 첫 남편이던 둘째 남편이던 그들의 여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없었다.

 

 혼자는 가능했다. 생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모두 나에게 덮쳐오는 벽이었다.

무너지는 벽 옆에서 서있는 나는 늘 불안함에 시달려야 했다. 튼튼하게 기댈 수 있는 벽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겐 차거운 말로 돌아오는 것을 이겨 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책감이었는지 모른다.

 

 허구헌날 난 집근처 가까운 새벽시장에 새벽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처럼 돌아 다녔다.

물씬 거리는 바다내음을 금방 실어서 얼린 동태를 한 마리 사고, 그 옆에 배추를 밤 새 다듬어 상차를 하고 난 후 내보내는 푸른 배춧잎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곳을 헤집어 가장 싱싱하고 어린 배춧잎을 골랐다. 야채상회에선 뭐든지 잘생기고 싱싱한 것은 잘 팔려 나갔지만.

때가 되어도 팔려나가지 않은 시들시들한 것들은 떨이를 해도 사가는 이가 없었다. 나는 그들이 그런 걸 버리는  것을 기다렸다. 버리는 때가 바로 어슴푸레한 새벽이 곧 열리기 전이다. 그 때를 잽싸게 틈을 내서 나는 웬만한 야채를 골랐다. 그러니 나도 못생기거나 신선도가

떨어진 것은 그들이 버리는 것 처럼 선택하지 않았다. 나의 생각도 이와 같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떨이를 하는 생각들을 주워모으러 돌아다니다가 맘에 맞는 거나, 아니면 쓸만하다면 당장은 필요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언젠가  긴히 소용 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어찌보면 합리적으로 생각 될 것이지만, 솔직히 지극히 이중적인 것이다.

 

 그러니 나의 남편이 하나이니 조금은 불안한 미래인 것 같고, 둘이라면 제대로 관리가 안되서 개갈이 안 날 것도 염두해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매달려서 얻은 남자들은 아니다.  

 

 비교는 할 수 있다. 꼭 일부다처제처럼.

첫번째 부인은 무슨 요리를 잘하고, 둘째 부인은 옷을 잘 만드는 솜씨를 뽐내는 거를 자랑스럽게 펼쳐보이는 남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나는 비교하고 싶지 않다. 남자라서 그런 게 아니다. 문제는 나를 대하는 태도였다. 아내를 대하는 남자의 태도들은 얼마든지 비교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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