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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그녀를 만나 건 숙명(宿命)이었을까?...3


BY 盧哥而 2006-01-11

 

그녀를 만나다 (3)


 


아이들 말대로 정말 '쪽팔리게' 부실한 섹스를 치룬 후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출근준비를 했다.

시간은 아직 7시 반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모텔에서 사무실까지 택시로 십여 분이면 충분할 것이고 사무실 근처 단골 식당에서 해장국 한 그릇 천천히 사 먹고 들어가도 직원들 출근시간보다 30분 이상은 앞설 것 같았다.

사실, 모텔에 더 누워 늑장 좀 부리다 간다한들 사장인 내가 좀 늦는다고 누가 뭐랄 사람도 없겠지만 어쩐지 그녀에게 쑥스러워 빨리 그 자리를 뜨고 싶었던 게 솔직한 그때의 내 심정이었다.


그녀는 섹스를 끝내자마자 머리에 두르고 있던 약간 젖어있던 수건을 풀어 내 뒤처리를 해주곤 나를 벽을 향해 돌려 눕혀 자신의 나신을 보지 못하게 하고는, 아까처럼 어정쩡하게 몸을 가린 채 속옷까지 챙겨 욕실로 급히 들어갔다.

그녀의 그런 행동들이 내 판단을 자꾸 흐리고 있었다. 처음 본 남자 손님과 스스럼없이 모텔에까지 왔으면서도 또 다른 행동들에선 마치 어린 처녀가 처음 남자를 대하는 듯 부끄러워하고 겸연쩍어하는 그녀를 도대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지...


그녀가 욕실에서 나올 때 쯤 벌써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브래지어와 팬티를 챙겨 입고도 들어난 복부 부근을 수건을 내려뜨려 가린 채 그녀가 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게 거울로 보였다.

'벌써 가시려구요?'

그녀가 욕실 앞에 선 채 물었다.

'아, 오늘 좀 일찍 나가야 돼서. 거긴 한잠 더 자고 나가요. 어제 과음한 것 같던데...'

하고 난 넥타이를 바짝 조였다.

'같이 나가요. 저도 집에 빨리 들어가야 돼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겉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우리가 막상 헤어진 건 그녀의 가게 근처 해장국집에서 해장국에다 소주를 두 병이나 비운, 이미 내 출근 시간에서 한 시간이나 지난 늦은 아침이었다.

모텔에서 서둘러 나와 바로 택시를 잡고 그녀를 먼저 태워 보내려고 했는데

'아침 드시고 출근하셔야죠. 저희 가게 근처에 해장국 잘하는 집 있어요.'

하고 그녀가 택시 뒷문을 연 채 서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어딘지 조심스러운 그 말투나,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다소곳한 표정에 나는 그만 거절할 용기를 잃고 말았다.

거절한다면 왠지 내가 그녀에게 나쁜 짓을 해놓고는 한시라도 빨리 꽁무니를 빼려고 한다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결국 나는 그녀의 가게 앞까지 택시를 같이 타고 갔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그 골목 안의 한 허름한 해장국 집, 귀 틀린 나무 탁자 앞에 앉고 말았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안돼 푹 삶아 잘 끓여낸 우거지에 선지 덩어리가 푸짐하게 들어 간 해장국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탁자 위에 날라져 왔다.

'소주도 한 병 주세요.'

그녀는 해장국을 날라 온 아줌마에게 소주를 시켰다. 내게 묻지도 않고...

나는 그녀가 과음을 해서 해장술이라도 한잔 해 속을 달래려니 하고 생각했다.

나는 해장술은 거의 안한다. 술을 자주, 그것도 상당히 폭음을 하는 스타일이면서도 나는 이상하게 그 다음 날 해장술은 하지 않는 버릇이 들어있었다. 단 한잔이라도...

아마 체질 탓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술을 마시면 내가 잠이 들 때까지 마셔야 한다. 어설프게 몇 잔 마시다 말면 머리도 아프고 몸이 노곤하게 깔아 앉아 다른 아무 일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술은 모든 일과가 끝난 후 마음 편하게, 속된 말로 ‘완전히 꼭지가 돌 때까지’ 마시고 바로 자버리는 그런 버릇이 들어 있었고 해장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내가 해장국 국물을 둬 서너 숟갈 후후 불며 떠마셨을 때 쯤 그녀가 자신의 소주잔을 들어 내밀며 내게 같이 들자는 시늉을 했다.

그녀에 대한 배려랍시고 한잔 받아 놓고는 마실 생각은 전혀 없었던 나였지만 결국 그녀의 제의대로 한 잔을 죽 들이키고 말았다.

쓰디 쓴 소주가 식도에서부터 위장 저 깊숙한 데까지 내려가며 주는 짜르르한 느낌이 결코 싫지는 않았다.

술꾼들이 아침 해장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느낌이겠지. 밤새 알콜에 시달린 위장에 이런 짜릿한 쇼크를 줘 다시 일깨우는...그런 생각도 잠깐 하면서.

그녀가 나의 빈 잔에 또 한잔을 따랐다.

나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쳐 든 그녀의 빈 잔에 소주를 찰랑찰랑 넘치게 따라주었다.

그렇게 해장국 한 그릇씩을 다 먹는 사이에 그녀와 나는 소주를 두 병이나 비우고 말았다.

어젯밤 그녀의 가게에서 단 둘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맥주를 마실 때, 이 여자가 생긴 모습과는 다르게 술을 잘 마시는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만 했었는데 아침에 해장국을 먹으면서 가볍게 소주 한 병(계속 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으니 결국 각기 한 병씩)을 비우는 것을 보고 나는 그녀에 대한 생각에 다시 혼돈이 왔다. 그녀가 전혀 화류계 여자 같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실은 화류계에 오래 몸담았던, 어쩌면 닳고 닳은 그런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결국 소주 두병을 다 비우고서야 그녀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 해장국집을 나와 골목 밖에서 헤어졌다.

평소 마시지 않던 해장술로 소주 한 병은 알딸딸하니, 내게 적당히 기분 좋은 상태를 만들어 줬고 그녀의 약간 홍조 띈 얼굴이 훨씬 더 아름다워 보인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가 잡아 준 택시를 탔다.

그녀는 집이 그 근처라고 했고 내가 탄 택시가 멀어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내 쪽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