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란 얼마나 가증스런 것이냐.
우리가 쓰는 말, 문자는 솔직한 심경의 표현에 쓰여지기보다는 자기 생각을 은폐하고 왜곡시키는데 유용하게 동원되기 일쑤이다.
대화에 있어선 얼마든지 공전되는 일이 있어도 성만큼은 가식이 없으므로, 두 개의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듯 결코 헛돌아 당사자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다.
그래, 우리가 서로 인간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섹스 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가 고독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서로 가까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섹스밖에 없지 않는가.
남녀간의 관계란 언제나 섹스로 귀결된다.
제아무리 플라토닉한 사랑으로 출발했다손 치더라도 어디 에드워드 8세가 심프슨 부인의 손 한 번 잡아보기 위해 왕위를 버렸겠으며, 레이니에 공이 단지 할리우드의 유명 여배우 얼굴을 가까이서 감상하기위해 그레이스 켈리를 그토록 불철주야 쫓아다녔겠는가.
만지면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고, 끌어안으면 헐떡대고, 진하게 애무하면 정성을 들인 만큼 황홀해지는 섹스.
서로의 애무에 뜨겁게 달아올라, 비등하는 서로의 체온 속에서 비로소 인간의 실존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면 지나치게 음탕한 얘기가 될는지...
호텔방에 들어서자 승민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수희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그녀의 긴 목에 이빨을 박았다. 수희만의 내음이 코끝에 스쳤다. 그것은 아마도 샴푸와 비누, 그리고 향수 냄새가 한 데 어우러진 것이리라.
하지만 수희에게선 그런 인위적인 냄새 말고도 지국히 원초적인 체취가 늘 배어 있었다. 그것은 뭐랄까, 어린애 입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젖비린내 같기도 했고 달착지근한 포도원액에서 풍기는 냄새 같기도 한 그녀만의 독특한 체취였다.
적당한 길이의 숱 많은 퍼머 머리채를 헤치고, 승민은 사슴처럼 긴 수희의 목덜미를 입술로 훑으며 두 손으로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술기운 탓인지 수희는 이미 입술을 반쯤 벌린 채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잠시 여자의 목줄기를 입술과 혀로 핥던 승민은 한 손으로 그녀가 입고 있던 투피스 상의 단추를 끌러내리면서, 다른 손으로는 하반신을 타이트하게 감싼 스커트를 말아 올리고 과감하게 팬티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아아.
수희는 허리를 비틀었다. 하지만 승민은 집요하게 그녀의 약점을 추궁했다. 여자가 달아오르자 그의 손은 금세 촉촉이 젖어버리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수희로선 얼마만에 접해보는 남성의 육신이었던가. 이혼하기 전 그녀의 전 남편이 바람을 피워 집을 멀리한 이래, 그는 거의 처음 가까이하는 남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너무 오랫만에 멋진 수컷의 몸뚱이를 접하게 됐기 때문이었을까. 단순히 애무를 받는데 그치지 않고 수희는 놀랍게도 두 손을 뒤로 돌려 그의 심볼을 자극했다. 지퍼를 익숙하게 잡아내리고는, 탐욕스럽게 그의 남성을 도발했다.
승민은 뜨거워지는 몸을 그녀의 둔부에 밀착시킨 채 성급하게 그녀의 상의를 벗기고 브래지어를 뜯었다. 미처 벗겨낼 틈이 없었던 스커트를 허리께로 말아 올린 채 그는 수희를 침대 옆 카페트 위에 그대로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서둘러 벨트를 풀어 바지를 벗어내리고는 수희의 몸을 뒤에서 감싸안았다.
수희는 신고 있던 하이힐을 바닥에 떨구고는 상체를 카페트 위에 깔고 둔부를 높이 쳐들었다. 이윽고 승민은 무방비 상태로 드러난 그녀의 분홍빛 중심에 분노한 자신의 살점을 천천히 삽입한 뒤 힘차게 운동을 시작하였다.
몇 차례인가 수희는 자지러질 듯 요동을 쳤고 거의 애원에 가까운 신음을 토해내며 할딱거렸다. 승민은 자세를 바꿔가며 수희를 학대하였고, 그녀는 다소곳하면서도 적극적으로 그의 요구에 순응했다.
두 남녀의 육신은 한데 뒤엉긴 채 흥건히 땀에 젖어갔다. 성난 사내에게 끌려다니느라 여자가 신고 있던 스타킹은 올이 풀리고 여기저기 찢겨진 모양으로 엉망이 돼 있었다. 승민은 굳이 그것을 벗겨내려 하지 않았으며, 수희 역시 그냥 방치했다. 두 사람은 다만 열심히 서로의 몸뚱이를 탐할 따름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승민은 정욕을 앓는 육신으로부터 고름을 토해내고 말았다. 그 고름은 그녀의 배꼽을 지나 가슴을 덮었고, 몇 방울은 초콜릿색 루즈를 바른 그녀의 입술에까지 튀었다. 수희는 입가를 적신 고름방울들을 자신의 손으로 쓸어 풍만한 젖가슴에 부드럽게 문질러 닦았다.
[왜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거죠?]
승민이 카페트 위 자기 옆에 풀썩 쓰러지자 수희가 물었다. 그는 다만 거친 호흡을 드놓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쉬운 여자로 보였나요?]
[.....]
어디선가 아카시아향 같은 꽃냄새가 났다. 수희는 자기도 모르게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당신이 요즘 우리 가게에 꽃 주문을 많이 넣도록 했죠?]
[.....]
[왜 그랬나요?]
잠시 숨을 고르다가 승민은 나직이 말했다.
[이제 우린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소. 당신이 그놈을 데리고 크레이지 호스를 찾던 날, 그때 이미 우린 질긴 인연으로 묶여버린 거야.]
그의 얘기는, 수희가 배용묵을 동반하고 크레이지 호스를 찾았기 때문에 자기가 어쩔 수 없이 두 사람 사이에 휘말려들게 되었다는 뜻 같았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
[그 사람, 배용묵씨는 어디로 갔죠?]
[글쎄, 어디로 갔을까. 땅 속으로 들어갔을까, 하늘로 올라갔을까. 아니, 어쩌면 무거운 돌을 껴안고 바닷속으로 기어들어갔을 지도 모르지. 이제껏 자기가 저지른 죄를 참회하고 속죄하는 뜻에서 말이요.]
승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아주 차갑고 잔인한 웃음이었다.
그래, 바로 이 사람이다. 막강한 배철묵 형제를 내쫓고 그들의 철옹성을 새롭게 차지한 사람은 바로 이 사내가 분명하다. 그가 얼마 전 뒷골목 세계를 평정했기 때문에 그의 영향권 안에 있는 많은 접객업소들이 지금 앞다퉈 로즈 가든에 꽃을 주문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
수희는 비스듬히 모로 누운 채 승민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관찰했다. 다시 보아도, 전혀 조직폭력배 같지 않은 용모였다. 시스터 보이같은 이 사내가 어떻게 거친 뒷골목 세계에서 보스가 될 수 있었을까.
[저기요,]
승민의 호흡이 잔잔해졌을 때 수희는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침대에 올라가서 자도록 하세요. 여기서 이렇게 자다간 감기 든다구요.]
[.....]
이미 잠이 든 것일까. 승민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수희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침대로 갔다. 그리고 침대 시트를 벗겨내 승민의 몸 위에 살며시 덮어주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밤 아홉 시를 넘기고 있었다. 여전히 취기가 남아 있었지만 수희는 욕실로 들어가 대충 몸을 씻었다. 그리고 카페트 위에 흩어진 자기 옷들을 주섬주섬 챙겨입고는 곧장 호텔방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