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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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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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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반


BY 한상군 2006-01-29

 

 

 

 

 

   깊은 밤이었지만 L호텔의 현관 앞은 계속 들이닥치는 고급 세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호텔 도어맨들은 두터운 외투에 영국식의 근사한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들은 고급 세단들이 줄지어 도착할 때마다 깍듯한 태도로 문을 열어주곤 했다.
   도어맨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검정색 푸조 한 대가 VIP 전용주차장으로 슬그머니 무단 진입했다. 그러자 도어맨들은 아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건 뭐야?]

   고참 도어맨이 묻자 후임자 두명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가서, 우리가 모르는 차면 빨리 빼라구 해.]

   선배의 지시가 떨어지자 젊은 도어맨 중 한 명이 푸조 쪽으로 다가갔다. 원래 최고급 호텔의 현관 앞 VIP 전용주차장엔 아무 차나 세워둘 수가 없었다.
   어두운 허공으로부터 가늘게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푸조의 바디 위엔 그래서 입으로 훅 불면 날아갈 듯한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도어맨은 푸조 곁으로 다가가 검게 선팅이 된 운전석 유리문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차를 빼라고 손짓을 했다.
   그때 운전석 유리문이 스르르 열리며 검정 장갑을 낀 손 하나가 나왔다. 그 손엔 푸른 색 지폐가 한 장 쥐어져 있었다. 도어맨은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보곤 슬그머니 팔을 뻗어 그 지폐를 받아쥐었다. 그리고 약간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차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운전석엔 새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역시 같은 색의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사내가 점잖게 앉아 있었다. 
   흰 눈발이 차츰 진눈깨비로 변해갈 무렵 노병태 회장이 늘씬한 미모의 변혜리를 동반한 채 호텔 로비를 가로질러 현관에 나타났다. 그러자 일 분의 오차도 없이 검정색 캐딜락 리무진 한 대가 별 소음도 없이 호텔 현관 앞에 미끄러지듯 멈춰섰다. 고참 도어맨은 재빨리 캐딜락의 뒷문을 열어주었고, 병태는 지갑을 꺼내 그에게 팁을 건네준 뒤 여자와 함께 차에 올랐다.
   노회장을 태운 캐딜락이 출발하자 그 뒤를 검정색 에쿠스 한 대가 바짝 따라붙었다. 에쿠스엔 노회장의 경호원이 세 명 타고 있었다. 그들이 호텔 앞을 빠져나간 뒤 도어맨들은 문득 VIP 전용주차장을 돌아보았다. 푸조는 어느 틈엔가 사라지고 없었다.

   한남대교를 건넌 뒤 캐딜락은 잠실 방향 올림픽대로로 접어들었다. 환한 대낮 같으면 수많은 차량들로 정체가 극심했을텐데 깊은 밤이라 그런지 택시와 자가용들이 드문드문 질주할 뿐 양 방향 모두 시원스럽게 뚫려 있었다. 캐딜락이 속력을 내자 에쿠스도 그 뒤를 바짝 따랐고, 약 일 백 미터 거리를 둔 채 검정색 푸조 역시 그들의 뒤를 여유있게 쫓아갔다.
   캐딜락이 잠실대교 남단을 지날 무렵 노병태는 차 안 뒷자리에서 룸싸롱 마담 변혜리를 제 품에 끌어안았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치 빠른 운전자는 룸미러를 꺽고 라디오를 얼른 음악프로에 맞춘 뒤 볼륨을 높였다.
   병태는 혜리의 몸에서 밍크 코우트를 벗겨낸 뒤 촛농으로 빚은 듯 뽀얀 그녀의 목줄기며 가슴을 입으로 애무하다가 이윽고 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캐딜락 운전자는 뒷좌석에서 벌어지는 보스의 취미에 익숙한 듯 조금도 동요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진눈깨비는 계속 쏟아졌다. 캐딜락은 어느새 덕소 부근을 지나 양수리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가로등 불빛이 주마등처럼 휙휙 지나갔다. 노회장은 뒷좌석 등받이에 상체를 깊숙이 묻은 채 두 눈을 감았다. 혜리의 입술과 혀가 그를 나른한 열락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혜리의 애무는 때로 격하고 때로는 달래듯 부드러웠는데, 병태는 이따금씩 앓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머리채를 쥐어뜯곤 했다.
   드넓은 도로가 끝나자 캐딜락은 노폭이 좁은 국도로 접어들었다. 잠시 후엔 차창 우측으로 긴 강줄기가 이어졌다. 주변에 불빛이 적어 강 수면은 흡사 무엇이라도 집어삼킬 둣 시커멓게 보였다.
   푸조는 꾸준히 캐딜락의 뒤를 쫓아갔다. 앞에 낯 선 차량 몇 대를 두고, 경호차량인 에쿠스가 눈치 채지 못하게 푸조는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차창 밖으로 소읍이 보였다. 마을은 너무도 작아 불과 일 분도 안되는 사이에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어 왼쪽에 암벽을 두고, 우측으로 강줄기를 둔 꾸불꾸불한 협로가 계속되었다. 앞에 가던 지프 한 대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자 푸조는 앞에 선 트럭 한 대마저 간단히 추월해버렸다. 그리고 갑자기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시야에 제법 긴 직선도로가 나타났을 때 에쿠스를 몰던 운전자는 사이드미러를 통해 검정색의 낯선 푸조 한대가 무서운 속력으로 질주해오는 것을 목격했다. 그 푸조는 곧장 중앙선을 침범하더니 성급하게 추월을 감행했다. 그때 공교롭게도 맞은편에서 대형 화물트럭이 한 대 나타나 하이빔을 켜 경고했다. 그러나 푸조는 전혀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 추월을 시도하기엔 너무 짧은 거리였다.
   화물트럭의 클랙슨이 요란하게 울리는 가운데 그러나 푸조는 아슬아슬하게 추월에 성공하였고, 에쿠스를 앞지르자마자 급브레이크를 밟아버렸다. 에쿠스는 뜻하지 않은 사태에 놀라 앞차와의 충돌을 피하느라 급하게 핸들을 꺽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형 트럭이 급정거를 했지만 에쿠스는 도저히 정면충돌을 피할 수가 없었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에쿠스의 본네트는 휴지처럼 구겨지면서 트럭 밑으로 엔진룸이 통째로 기어들어갔다. 그 바람에 트럭의 범퍼가 에쿠스의 앞 유리창을 박살내버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곧 에쿠스의 뒷좌석 문이 열리며 엄청난 체격의 사내 두 명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화물트럭 운전자는 차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잔뜩 겁먹은 얼굴로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그는 사내들이 득달같이 달겨들어 금방이라도 자신을 차에서 끌어낼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구둣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오던 그 소리는 웬일인지 다시 멀어져가고 있었다. 화물차 운전자는 빼꼼이 고개를 들어 사이드미러를 보았다. 과연 사내 두 명이 화물차 뒤의 푸조 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확인됐다.
   그때 푸조 안에서 검정 양복을 입은 사내 한 명이 나타났다. 그는 얼굴에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 차 바디 위에 올려놓고는 사내 둘을 맞았다. 노회장의 경호원들은 손에 뭔가 예리한 것을 한 자루씩 쥐고 불문곡직 마구 휘둘렀으나 그 공격으로 검은 신사를 쓰러뜨리진 못했다. 오히려 검은 신사가 공중으로 몸을 띄운 채 발길질을 두 번 하자 경호원들은 거의 동시에 차례로 나가떨어졌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검은 신사는 지체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 에쿠스와 화물차의 충돌사고로 인해 양 방향으로 차량들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지만 검은 신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휭하니 차를 몰고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캐딜락의 운전자는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시간은 불과 수 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거리로 따지면 일 킬로가 훨씬 넘게 그는 혼자 주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웬일일까. 무슨 사고라도 난 것일까.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줄곳 뒤따르던 에쿠스가 보이질 않는 게 확실했다. 그는 경호차량의 부재를 보스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뒷좌석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생각하고는 차마 입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때 사이드미러를 통해 라이트도 켜지 않은 한 대의 세단이 보였다. 캐딜락 운전자가 의아한 얼굴로 계속 눈여겨 볼 즈음 그 정체 불명의 세단은 순식간에 그를 추월, 눈바람을 일으키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확실히 에쿠스는 아니었다. 잠깐 확인한 바로는, 프랑스산 푸조 같았다.
   경호차량은 계속 나타나지 않았다. 속력을 약간 줄이면서 연신 사이드미러를 들여다보았지만 후방은 다만 칠흙같은 어둠 뿐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전방에서 세단 한 대가 하이빔을 켜고 달겨들었다. 눈이 부셨다. 그 불빛은 너무도 강렬해서, 벌거벗은 채 뒷좌석에서 알몸으로 뒤엉킨 남녀의 모습까지 확연하게 드러날 정도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노병태가 외쳤다. 혜리는 두 팔로 터질 듯 풍만한 가슴을 감싸안았다. 

   [저, 저 새끼가 미쳤나!]

   피할 틈이 없었다. 정체 불명의 세단은 도로의 중앙선을 깊숙이 침범해 곧장 돌진해왔다. 캐딜락의 운전자는 반사적으로 조수대 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본능적인 그 동작으로 캐딜락은 가까스로 낯선 차와의 정면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바람에 캐딜락은 도로 옆 난간을 부수며 공중으로 붕 떠오르고 말았다.
   캐딜락 안에서 벌거벗은 남녀가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무겁게 추락하는 자신들의 운명을 도저히 되돌릴 수는 없었다. 캐딜락은 벼랑의 거친 표면에 몇 번 충돌하고는 이내 자갈밭으로 곤두박질쳤다.
   길 한 쪽에 푸조가 멈춰섰다. 검은 신사가 그 운전석에서 내려 벼랑 끝으로 다가갈 즈음 자갈밭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검은 신사의 선글라스에 타오르는 불길이 시뻘겋게 이글거렸다.
   잠시 후 검은 신사는 경사가 완만한 곳을 찾아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아직도 캐딜락은 붙타고 있었지만 검은 신사는 반쯤 열려진 뒷문 사이로 한 사내의 검게 그을린 육신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가 있었다. 바로 노병태 회장이었다.
   다른 시신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검은 신사는 한쪽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 주목하고 있던 시신의 손목을 한 번 가만히 잡았다가 놓아주었다. 노회장의 손은 맥없이 축 늘어져 시계추마냥 흔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