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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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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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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과 혀


BY 한상군 2006-01-23

                                                      
  

 

 

 

 


   [사장님, 크레이지 호스의 강승민씨가 배용묵의 친형인 배철묵 회장에게 찾아가서 자기 손가락을 잘라 용서를 빌었다고 합니다.]

   오후 6시쯤이었다. 강남지역의 영업을 맡고 있던 정주임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약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사무실 안에 있던 수희와 경리 여직원, 그리고 강북 지역을 책임지고 있던 문과장은 일제히 정주임을 돌아보았다. 자기 책상에 앉아 장부 정리를 하고 있던 문과장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강승민씨가 손가락을? 아니, 왜? 정작 크레이지 호스에서 난동을 부려서 크게 손해를 입힌 쪽은 배회장 동생 배용묵이잖아.]
   [그러게 말이죠. 떠도는 소문으로는, 크레이지 호스의 노병태 회장이 배철묵 회장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정주임의 얘기를 듣고 문과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 잘못하면 양 조직간에 큰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니까 노회장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도 무리는 아니지.]
   [하지만 먼저 잘못한 것은 배용묵이었잖아요. 배철묵 회장도 남의 구역에서 그렇게 난동을 부린 자기 동생의 소행에 대해서 어떤 형식으로든 사과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모르는 얘기. 조직의 연조나 규모 면에서 볼 때 노회장파는 배회장파에게 상대도 안돼. 게다가 건달세계에서 후배가 선배를 몰라보고 폭행했다는 것은 그냥 우물딱주물딱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지.]

   문과장은 폭력조직의 동태와 그 생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수희는 잠자코 남자 직원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강승민씨는 왜 배용묵을 몰라봤을까요?]

   정주임이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들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과장을 돌아보았다.
 
   [그거야 배용묵이 살인죄로 10년 정도 교도소에서 살다가 출감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배용묵이 사람을 죽였어요?]
   [어디 살인 뿐인가. 언젠가 신문에 난 걸 본 적이 있는데, 배용묵의 전과기록을 보면 완전히 조직폭력 종합선물세트던데 뭘. 살인에 폭력, 살인교사, 마약거래, 매춘 등등.]
   [무서운 사람이로군요.]
   [잔인하기로 말하자면 친형인 배철묵과 쌍벽이지. 그러니까 노병태 회장이 일단 숙이고 들어가는 거야.]
  
   그때까지 듣고만 있던 미스 조가 한 마디 물었다.

   [하지만 사과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 있을텐데 왜 하필 손가락을 잘라서 바쳐요? 그건 너무 끔찍하잖아요.]

   다시 문과장이 설명했다.
  
   [조직에 누를 끼친 똘마니가 손가락을 잘라 자기네 보스에게 바치는 것은 원래 일본의 야쿠자 풍습이야. 우리나라 건달 세계에선 옛날부터 그런 게 없었다구.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풍습이 이 나라 건달 세계에까지 들어와 유행하고 있어.  앞가슴이나 등판에 용 문신을 하고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야. 그런 건 다 일본 풍습이라구. 적어도 항일주먹으로 유명한 김두한씨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그런 풍습이 전혀 없었다구.]

   수희는 문과장의 얘기를 들으며 무심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세상에, 멀쩡한 손가락을 시퍼런 칼로 잘라내다니! 제 손으로 자기 손가락을 잘라내는 순간, 그 사람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 것인가.
   아마 그날 수희가 용묵과 함께 크레이지 호스를 찾지만 않았어도 그런 불상사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배용묵의 면전에서 크레이지 호스를 입에 떠올렸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아서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평소 꽃을 납품하면 결제를 잘 해주고, 관리과장을 비롯해 여러 종업원들의 매너가 하도 좋아서 자기도 모르게 그만 입에 올린 게 그런 결과를 빚고만 것이었다. 

   [그럼, 우리가 그 사람에게 병원 치료비라도 전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수희가 입을 열자 문과장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한다면야 좋겠지만, 지금 분위기가 워낙 살벌해서.....]

   문과장이나 정주임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이쪽에서 병원 치료비를 전해주는 것은 좋지만,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런지 자못 걱정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미스 조가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까지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시던 모습과는 영 딴판이네요. 두 분 모두 그 사람이 무서운 모양이시죠?]
   [무섭기보단, 그냥 시기적으로 접촉하기가 껄끄러우니까 그렇지, 뭐.]

   문과장이 얼버무리자 정주임이 솔직하게 말했다.

   [그 강승민이란 사람, 보통이 아니라던데요. 누가 봤다는데요, 혼자서 아무런 무기 없이 맨주먹으로 일본도와 사시미칼 쥐고 덤비는 놈들을 열 명이나 해치운 적이 있대요. 사실 누가 칼 쥐고 덤비면 제 아무리 무술 실력이 뛰어나도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강승민씨는 그 놈들을 간단하게 제압해버렸다는 거에요. 그런 실력이니까 그날 밤 크레이지 호스에서 배용묵이의 턱을 발차기 한 방에 부숴버렸던 거겠죠. 전 지금까지 그 사람을 멀찍이서 몇 번 본 적이 있는데요, 솔직히 말해 가까이 하기가 겁나더라구요.]

   결국 모두 승민을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승민을 찾아갈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수희밖에 없었다.
  
   

   이틑날 병원에 입원해 있으리라 생각했던 그 사람은 뜻밖에도 나이트클럽에 있었다. 수희가 오전 10시경 크레이지 호스로 찾아가자 그는 룸에 혼자 처박혀 있다가 그녀를 맞았다.

   [무슨 일입니까?]
   [지난 번에 절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알몸에 흰 와이셔츠 한 장을 입고 있던 승민은 전해 듣던 대로 왼손 약지에 흰 붕대를 두툼하게 감고 있었다. 룸 안에 들어선 그녀를 훑어보는 눈빛이 자못 예리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상처 입은 채 우리에 갇혀 있는 사나운 맹수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희는 그의 맞은편 자리에 살포시 앉아 종이 쇼핑백 하나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쇼핑백 안에는 잘 손질된 그의 검정색 가죽점퍼가 넣어져 있었다. 승민은 힐끗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한 번 여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때 홀에서 봉변 당하던 여자가 바로 당신입니까?]
   [네.]

   승민은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있다가 부시시 상체를 일으키더니 담배를 한 대 피워물었다. 수희는 핸드백에서 흰 봉투를 하나 꺼내선 그의 앞에 조심스럽게 밀어놓았다. 봉투 안에는 백만 원 짜리 수표가 두 장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용물을 확인하지도 않고 물었다.

   [그게 뭡니까?]
   [약소하지만, 치료비에 보태셨으면 해서요.]

   때 마침 웨이터가 룸 안을 들여다보자 승민은 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술 좀 가져와.]

   그리고 남자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물었다.

   [왜 이런 걸 내게 주는 겁니까? 당신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는 거로군요.]
   [네. 그날 제가 크레이지 호스를 찾지만 않았어도 그런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을 텐데.....]

   그는 흰 붕대가 감겨진 자기 왼손을 한 번 보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수희는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수술은 잘 됐나요?]
   [수술?]
   [지난 번 배용묵씨를 때린 벌로 그들 형제에게 손가락을 잘라 사죄했다면서요? 병원에서 손가락 봉합수술을 받지 않으셨나요?]
 
   갑자기 승민은 큰 소리로 껄껄껄 웃었다. 그는 재떨이에 담뱃재를 톡톡 털더니 말했다.

   [지금쯤 내 잘린 손가락은 알콜 병에 담겨진 채 배철묵 회장의 사무실 한쪽에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들과 함께 나란히 진열돼 있을 겁니다.]
 
   위스키 한 병과 간단한 안주가 룸으로 들어왔다. 승민이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끄자 수희는 얼른 술병을 들어 가느다란 술잔 두 개에 위스키를 채웠다. 승민은 싱긋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한 잔 합시다. 건배.]

   잔을 부딪자마자 그는 단숨에 독주를 들이켰다. 수희가 재차 빈 술잔에 위스키를 채우려 할 때 그가 수표 봉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돈은 받은 걸로 하지요. 그러니까 핸드백에 도로 넣으세요, 어서.]

   수희는 자기 생각을 얘기하려다가 승민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얌전히 수표를 핸드백 속에 집어넣었다. 그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잘려나간 손가락 하나 때문에 이제부터 병신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두고두고 겪어야 할 이런 정신적인 피해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할 겁니까?]
   [.....]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얘기라 수희는 난감해졌다. 그러나 능력이 닿는 한, 그녀는 사내의 고통에 대해 충분히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보상해줄 의향은 있는 모양이로군요. 좋습니다. 그럼 일단 이리 가까이 오세요. 어서.]

   이리 앉으라는 듯 왼손으로 자기 옆자리를 툭툭 치다가 사내는 문득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관절 하나가 잘려나간 새끼손가락에 극심한 통증이 엄습한 모양이었다. 수희는 조심스럽게 그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승민은 서둘러 위스키 잔을 비우더니 여자를 돌아보았다. 

   [정신적인 피해에 대해 보상해준다고 했습니까?]
   [.....]
  
   승민이 상체를 기울이자 수희는 뒤로 몸을 뺐다. 그러나 사내가 한 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 위로 소파 등받이를 짚고 있어 더 이상 물러설 구석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수희의 망막 가득히 승민의 얼굴이 확대되었다. 적당히 쌍꺼풀이 진 두눈과 일 자로 뻗은 콧날이 흡사 스크린 속 영화배우의 모습 같았다. 
   사내가 강렬한 눈빛으로 자신의 입술을 내려다보자 수희는 이내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하지만 서로의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여서 그녀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 순간 사내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위에 부드럽게 포개어졌다. 여자는 사내의 입술을 피해 도리질을 했지만 곧 붙잡히고 말았다. 여자는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여자는 숨을 토해내기 위해 입술을 열었다가 얼결에 사내의 혀까지 받아들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