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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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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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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쓰메


BY 한상군 2006-01-15

                                                          

 

 

 

 

 

   그날은 승민에게 있어 악몽과 같은 하루였다. 야간업소 생활로 으레 아침 잠이 많아진 그가 숙소에서 동생들과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을 때 이른 새벽부터 노회장이 호출한 것이었다.
   연락은 바로 위 중간보스 전현구로부터 왔다. 그는 한때 같은 체육관에서 운동을 했었던 복싱계 선배로, 승민은 그와의 인연으로 처음 뒷골목에 발을 들여놓게 됐었다.

   [야, 승민아. 어제 업소에서 무슨 일 있었냐?] 
   [.....]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승민이 잠깐 수화기를 든 채 눈을 감고 있자 현구가 급히 재촉했다.

   [지금 난리가 났으니까 너 지금 옷 갈아입고 사무실로 좀 와.]
   [형님. 대체 무슨 일입니까?]
   [자세한 얘긴 만나서 하기로 하고 지금 빨리 사무실로 와.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전화는 곧 끊겼다. 그때까지 누워있던 승민은 퍼뜩 눈을 떴다. 직감적으로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전날 크레이지 호스에서 일이 있었다면 난동을 부리던 취한 하나를 간단히 제압한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취객이 업소에서 행패를 부리는 일은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었으며, 그를 제압하고 다스리는 것도 늘상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일까.

   [이 씨팔새끼들이 선배 알기를 뭣같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양복을 꺼내 입던 승민의 뇌리에 전날 저녁 취한이 내뱉었던 말이 문득 스치고 지나갔다.
   어제 그 자가 주먹 선배였던 것일까? 승민은 하지만 그를 본 적이 없었다. 약 십년 전 현구의 소개로 뒷골목 세계에 데뷔한 이래 그같은 인물을 누구에게 소개받은 적도, 직접 필드에서 부딪쳐본 적도 없었던 것이다.
   노회장의 사무실은 크레이지 호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들은 오 층 짜리 건물의 삼 층을 통째로 쓰고 있었는데, 그것은 오래 전에 노회장이 모종의 채권에 개입해 건물주를 온갖 협박과 공갈로 몰아내고 자기 명의로 등기를 올린 알짜배기 노른자 건물이었다.
   승민은 숙소인 오피스텔에서 나와 곧장 사무실로 갔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사무실엔 이미 고참 중간보스인 전현구와 신희섭이 대기하고 있었다. 승민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희섭이 벌레 씹은 얼굴로 말했다.

   [어제 업소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봐.]
   [네.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제 저녁 9시경 크레이지 호스에서 술 취한 손님 한 명이 깨진 맥주병을 들고 난동을 부려서, 업소 내 기물이 다수 부숴지고 종업원들이 많이 다쳤습니다. 그래서, 그냥 놔두었다간 하루 매상이 다 날아갈 것 같아서 제가 약간 손을 봐주었습니다. 이상입니다.]
   [뭐. 약간 손을 봐주었어? 그 친구 턱이 빠지고 금이 갔다는데 그게 약간 손을 본 거야?] 

   희섭이 아주 못마땅한 시선으로 승민을 쏘아보았다. 현구가 나섰다.

   [좋아. 다 좋은데, 어제 그 술 취한 친구가 단순한 술손님이 아니었다는데 문제가 있어. 승민아, 너 그 친구가 정말 누군지 모르고 있었냐?]
   [네. 처음 보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래, 그럴 거야. 넌 연조도 길지 않고 더구나 그 친군 빵에서 출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현구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희섭이 쏘아붙였다.

   [임마, 너 때문에 전쟁 나게 생겼어. 그 친구가 누군 줄 알아? 저 옆 동네 배회장의 친동생인 배용묵이란 말야.]

   그때 유세혁이 들어왔다. 그는 간밤에 술을 얼마나 퍼마셨는지 아직도 술 냄새가 진동했다.

   [뭐꼬? 뭔 일인데 이 꼭두새벽부터 회의를 소집하고 난리고?]
   [난리 났어. 저놈 때문에 배회장과 한 판 붙게 생겼어.] 
   [뭐라꼬? 그기 참말이가? 와? 와 그리 됐는데?]
   [승민이가 어젯밤 크레이지 호스에서 술 취해 행패부리는 배용묵이를 묵사발로 만들어놨다는 거야.]

   세혁은 토끼눈을 하고 승민을 바라보았다. 자기들과 동렬에 서는, 한때 배회장파에서 용맹을 떨쳤던 친구를 자기들의 부하가 간단히 제압했다는 얘기를 듣고 세혁은 기가 막힌 듯 입을 딱 벌렸다.  그의 두 눈에는 두려운 빛마저 스치고 지나갔다. 

   [이를 우얄꼬. 참말로 예삿 일이 아니고마. 그런데 행님은 아직 안오셨나?]
   [곧 오시겠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과연 노회장이 바로 들이닥쳤다. 보통 키에 유도로 다져진 거구의 몸을 끌고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노회장은 소파 상석에 앉아 담배부터 찾았다. 쉰 살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혈색이 대단히 좋아 보였고, 청년 못지 않은 활기가 전신에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희섭이 지난 밤 크레이지 호스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 간단히 브리핑을 했다. 그는 같은 시간 업소에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으면서 마치 모든 것을 목격한 것처럼 언변이 청산유수였다.

   [이거 골치 아프게 생겼군.]

   노회장의 소감이었다. 그 역시 짜증스런 시선으로 말썽을 일으킨 부하를 바라보았다. 희섭도 그랬고 세혁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현구만이 고개를 떨군 채 잠자코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넌 잠깐 나가 있어.]

   희섭이 승민에게 명령했다. 승민은 허리를 90도로 꺽어 노회장에게 예의를 표시한 뒤 복도로 나왔다.
   노회장과 고참 중간보스들은 사후대책을 협의하려는 것 같았다. 사건의 옳고 그름을 따져본다면 먼저 남의 구역에 들어와 행패를 부린 게 배용묵이었기 때문에 승민에겐 전혀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용묵의 과실을 트집 잡아 사건을 얼버무리려 든다면 드센 배회장파와의 충돌은 불가피해진다.
   아마 노회장은 배회장과의 대립구도를 피하려 들 게 분명했다. 희섭과 세혁도 그에 동조할 것이다. 그들은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의 태평세월을 지키려 할 것이다. 배회장파가 무리를 지어 이쪽으로 쳐들어온 것도 아닌데 굳이 칼날을 세워 하나 뿐인 목숨을 담보로 전쟁을 벌이려 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잠시 후 희섭과 세혁이 복도로 나왔다. 현구도 뒤따라 나왔다. 현구가 한쪽 손으로 승민의 어깨를 잡더니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잘못한 건 없다. 하지만 일보 양보하기로 하자.]

   희섭이 복도 중간의 엘리베이터 쪽으로 앞장서서 걸으며 덧붙였다.
 
   [그래. 한 번 고개 숙이면 그만이야. 져주는 게 이기는 거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 회장님 지시다. 나와 함께 지금 그쪽으로 가서 사과하자.]

   현구와 세혁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민은 희섭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건물 현관 앞엔 이미 검정색 캐딜락 리무진이 한 대 준비돼 있었다. 노회장의 전용 세단이었다. 승민은 선배인 희섭과 함께 그 리무진을 타고 곧장 배회장파 구역으로 갔다. 
   캐딜락이 H호텔 앞에 다다를 즈음 희섭은 품에서 단검을 하나 꺼내더니 승민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나무를 깍아 손잡이와 칼집을 만든, 심플한 디자인의 수제품이었다. 
   유비쓰메. 원래 형벌로서 손가락을 자르는 관습은 현대 일본 야쿠자들의 전신이랄 수 있는 도쿠가와 막부 시대의 노름꾼들이 자기 동료들 중에서 과오가 있는 자에게 내린 것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노름꾼의 목숨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칼자루를 꽉 움켜쥘 수 없게 한다는 취지에서 전래되어온 것이었다.
   단지는 가장 먼저 새끼 손가락의 첫관절에서 시작해 다음 관절, 또 과오가 되풀이 될 때엔 다른 손가락의 첫관절 순으로 절단해나가는 약간 잔혹한 풍습이었는데, 일테면 노회장은 별 잘못도 없는 자기 부하를 배회장에게 보내 손가락 하나를 바쳐 사죄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희섭은 후배에게 단검을 건네준 뒤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론 아주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승민의 다이나마이트 같은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가 배회장 앞에서 사과하기는 커녕 치솟는 울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할 경우 이제껏 유지되어 온 태평세월은 하루 아침에 끝장 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승민은 다소곳한 태도로 묵묵히 단검을 받아 품에 넣었다. 그리고 캐딜락이 H호텔 앞에 멈춰서자, 선배인 희섭의 뒤를 따라 차에서 내려 조용히 배회장의 사무실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