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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2/ 그녀가 드러나다 (2)


BY 盧哥而 2005-09-25

 


그녀가 드러나다 (2)



아, 아내의 입에서 민주의 이름이 튀어나오다니!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마, 내 생애 받은 가장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나는 뇌 속의 피가 한 순간에 증발을 하는 듯 머리 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느낌을 받으며 멍하니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때, 나를 냉소하며 쏘아보는 아내의 그 차가운 표정은 내 생전에는 커녕 꿈속에서도 한번 그려보지 못한 생소하기 이를 데 없는 낯선 표정이었고... 그 얼굴은 내가 20년 넘게 살을 맞대고 살아 온 아내의 얼굴이 아닌 완전한 남, 차라리 전혀 모르는 사람의 얼굴과 같았다.

아내는 어깨에 걸고 있던 숄더백에서 누런 서류 봉투를 하나 꺼내 내 앞에 툭 던져 밀었다.

‘한번 꺼내 봐.’

하고 아내는 여전히 싸늘한 어투로 내게 말했다.

앞면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서류봉투는 꽤나 두툼해 보였다.

나는 순간 그것이 이혼을 준비하기 위한 서류가 아닌가 하는 짐작에 섬뜩하기도 했었으나 그 두께로 보아 이혼 서류는 아닌 것 같았다.

‘꺼내보라니까!’

서류봉투에 시선을 묶어 둔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내게 아내는 명령조로 다시 말했다.

나는 겨우 손을 뻗어 그 서류봉투를 집어 들었다. 그 무게가 상당히 묵직하게 느껴져 왔다. 나는 내 손가락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다는 걸 의식하며 그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2, 30페이지 정도는 충분히 됨직한 A4 용지로 된 서류 한 묶음과 따로 반투명 비닐 봉투에 담긴 사진 한 뭉텅이가 들어 있었다.

그것들을 꺼내면서 동시에 서류 묶음의 표지에 적힌 몇 글자 안 되는 타이틀을 나는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박은수님의 의뢰 건(件)에 대한 조사 보고서’ ...

아, 1초도 안되는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사태의 전말이 어느 정도 판단되었다.

‘박은수’는 아내의 이름이었다. 그러니까 아내의 의뢰에 의해 무언가를 조사해 그 내용을 보고한다는 서류였을 터였다.

지난 주 예정에 없던 베이커리 본사의 연수교육을 참가하고 오겠다는 그 시점부터 어딘지 냉냉하게 바뀌어져 있었던 아내의 태도와 며칠 전 갑자기 행방을 감추어버린 민주의 알 수 없는 행동,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그 두 가지 현상에 그제야 확실한 연관이 지어졌다.

그 보고서는 흔히 ‘심부름센터’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며 남의 뒷조사, 거개가 바람피우는 남편이나 아내들의 수상한 행동거지들을 미행하여 그들의 불륜 현장의 사진이나 도청 녹음을 하여 의뢰인에게 알려주고 수백만 원씩의 대가를 받는 그런 조직들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결국 그 보고서가 내게 아무 연관 없이 별개의 사건으로 보여 진 상황을 분명히 연관이 있는 하나의 사건으로 묶어 준 것이다.

‘사진 좀 꺼내 보시지.’

아내의 차가운 말투는 이제 날카로운 가시까지 돋쳐 있었다.

나는 이제 후들후들, 눈에 완연히 보이게 까지 떨리는 손으로 그 비닐 봉투 속의 사진들을 꺼냈다.

아, 그 사진들 속에는 민주의 환하게 웃는 얼굴들이 있었다!

그리고 민주 못지않게 행복에 겨워하는 내 얼굴들도 그 곁에 다정히 같이 찍혀 있었다. 그건 누가 보아도 다정한 부부나 연인의 모습에 틀림이 없었다.

사진의 배경은 민주가 살던 그 연립의 반 지하방의 현관에서부터 큰길까지 나오는 골목 안 풍경이 주로 나왔고, 그리고 민주의 배웅을 받으며 택시를 타는 내 모습이 찍힌 ‘칸타타’가 있는 주변 거리의 풍경도 몇 장 보였다.

멀찌막하게 숨어 망원렌즈를 사용해 찍은 듯한 그 사진들은 화면 중앙에 인물을 분명하게 부각시키려다 보니 배경이 좀 흐릿하게 표현된 마치 영화의 스틸사진과 같았다.

그리고 사진마다에는 년, 월, 일, 시, 분에 초 단위까지의 촬영시점이 같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그 촬영일시를 보니 민주에게 양품점 가게 인수 계약을 해준 그 며칠 뒤부터 아내가 연수 교육차 경기도 어느 산의 콘도로 간다고 했던 날짜 그 얼마 전의 날까지 약 일주일 사이에 집중적으로 찍힌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매일 민주네 집으로 가 점심을 먹고 질펀한 섹스를 즐긴 다음, 나는 다시 사무실로 가고 민주는 양품점으로 장사요령을 배우기 위해 같이 집을 나서 큰길에서 헤어지는 상황이 그대로 찍혀있는 것이었다.

물론 집안에서의 상황은 찍힐 수가 없었지만 내가 민주의 집으로 찾아들어가는 상황, 같이 집을 나와 팔짱을 끼고 행복한 모습으로 그 골목을 나오는 상황, 그리고 내가 먼저 택시를 타고 떠나는 며칠간의 연속된 상황이 시간대 별로 찍혀 있으니 내가 민주의 집 안에 있었던 두 시간 여의 공백은 보지 않아도 그 상황이 충분히 설명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당연한 의문이 일었다. 아내가 민주의 존재를 최초에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그러나 그 시점에서 그런 의문을 아내에게 드러내 놓을 수는 없었다. 나는 그저 처분을 기다리는, 도살장에 끌려져 가 자신에게 내려쳐질 칼날의 차례를 기다리는 소나 돼지의 처량한 신세나 전혀 다를 게 없는 처지였을 뿐이니까...

아내는 눈앞에 놓여진 꼼짝 할 수 없는 증거, 그 앞에서 천만 뜻밖의 상황에 놀라고 당황해 마지않는 나를 더 압박해 들어 왔다.

‘보고서도 한번 읽어 보시지. 김민주라는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아마 그 여자에 대해서 그 정도까지는 몰랐을 것 같던데...’

나는 내가 더 놀랄 일이 또 있나 하는, 새롭고 막연한 두려움에 가슴을 다시 조이며 테이블 위의 보고서를 차마 손에 들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두고 표지를 조심스레 넘겼다.

첫 페이지에 그 보고서의 목차가 들어 있었다.

그 목차엔 조사 의뢰를 받고 조사에 들어간 첫 날부터 조사가 끝난 날까지의 일자별 경과와

특이사항이라고, 흔히 당구장 표시라고 하는 ‘※’ 기호가 붙은 몇 개의 소제목이 보였고 맨 마지막에 ‘조사결론과 의뢰인에 대한 당 조사소의 조언’이라는, 아마도 조사 결과에 다른 처리에 대한 그들 나름의 대처방안의 제시로 끝을 맺고 있었는데 내 시선을 끈 부분, 그리고 아내가 내게 강조하며 보라고 한 곳이었을 그 부분은 결론의 바로 전에 있는 ‘상대 여성의 신상’이라는 제목 붙여진 항목이었다.

나는 앞 페이지부터 대강 넘기며 바로 그 ‘상대 여성의 신상’ 항목의 페이지에 금세 다다랐다.

그 페이지의 뒷면까지 두 페이지를 그들은 민주에 관한 신상조사에 관한 내용으로 빼곡히 채워놓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싸늘한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그 페이지의 내용들을 꼼꼼히 읽지 않을 수없었다.

먼저 민주의 출생지와 생년월일...부모와 그 남동생의 이름과 나이 그들의 그동안 변동된 주소들과 현주소 그리고 민주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다닌 학교명과 입학 및 졸업년도 등의 기본적인 내용이 맨 앞에 있었다. 아버지 난에는 민주의 말대로 그녀가 스물다섯 무렵의 연도에 사망한 것도 정확히 표시되어 있었다.

그 다음은 아마도 민주의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추적했을 민주 자신의 주소지 변동사항이 죽 이어져 있었는데 강릉을 떠나 온 이후 서울에서 평균 1년에 한번 정도 주소지가 계속 바뀌어져 있는 것으로 돼 있었다.

서울로 옮겨온 첫 2년여 간은 영등포 주변의 주소지였다가 그녀가 술집으로 빠졌다는 그 이후의 주소지는 거의 강남 주변의 동네인 것도 내가 민주에게 들은 이야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중간에 일본에서 체류했던 기간이 1년 씩 두 번에 걸쳐 있었던 것은 내가 모르는 사실이었다.

처음 일본 체류는 6, 7년 전에, 마지막 일본 체류는 2, 3년 전에 1년 여 간씩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특이 한 것은 처음 일본 체류 이후인 6, 7년 전부터 짧은 것은 일주일, 긴 것은 한달 가까이 몇 번의 해외여행을 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짧은 기간의 여행지로는 중국, 홍콩, 싱가폴, 동남아, 한달 정도 긴 여행지로는 딱 한번 뿐이었지만 유럽 일주여행이 들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또 다시 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앞에 아내가 앉아 있는 것도 의식 못하면서...

나로서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민주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었으므로...

그런데 내게 더 놀라운 사실들이 그 뒤에 이어졌다.

그건 민주의 남자관계에 대한 대략의 조사(민주와 유흥가에서 같이 일했던 여자들의 입을 통해 전해들은 바라고 문서에서 밝히고 있긴 했지만)였는데 그건 내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었다.

또한 내가 마지막으로 기절할 듯이 놀란 것은 아직 민주의 현주소로 되어 있는 서울 근교의 신도시인 P시 주소의 아파트는 그녀가 70이 다 된 한 일본 노인의 현지처로 있었던, 불과 6개월 전까지 살았던 곳이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