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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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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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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곁으로


BY 애니 2005-10-17

커피로 마무리한 점심을 마치고 아파트로 돌아 오는 길은 오후의 해가 뜨거운 기운을 푹푹 내품고 있을 때였다.  땡볕 아래 파킹되어 있던 차 안은 건사우나장 같이 마른 열기를 가득 채우고 있기에 은하와 혜리는 차문을 열고 들어 가자 차 창문부터 내렸다. 

통닭 되겠다, 얘.

은하가 운전석에 앉아 무엇을 찾는지 숄더백을 뒤지고 나서 차 안의 서랍들과 여기저기를 뒤적뒤적 하는 동안 혜리는 걸치고 있던 파란색 운동 자켓을 벗어 무릎 위에 얹고 하늘색 림레스 선글라스를 꺼내 쓰더니 은하에게 물었다.

뭐 찾니 너?       

, 내 선글라스.  없네  어디다 두었지?

그 녹색 디오르 선글라스?

.

언제부터 없어졌는데?

, 최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쓰고 다녔는데…”

은하는 주섬주섬 선글라스를 찾으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아마 집에다 뒀나봐.

, 얘, 빨리 차나 빼.  막고 있지 말고.  네가 나가야 조 교수님네 하고 윤 교수님이 나가시지.

혜리가 운전석에 앉아  태식의 볼보와 조 교수의 캠리 자동차를 가리켰다.

어머, 맞아. 나 좀 봐.

은하는 급히 기여를 넣고 차를 움직여 텔레그라프 길로 나섰다.  백뮤러로 태식의 차를 가끔 찾아 보며.

작고 오래된 건물들이 늘어선 텔레그라프 길을 통과해서 버클리 대학 캠퍼스 부근을 지나 월넛크릭으로 가는, 작은 산을 넘는 터널을 지날 때 까지 혜리와 은하는 여기 가니 뭐가 싸더라, 요즘 유행은 레이스 달린 복고풍 이라더라,  젊은 애들 화장은 한 듯 안한 듯 한 내츄럴 룩이 좋더라, 서울엔 바캉스 시즌 이라더라  등의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터널을 지나자 혜리는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은하를 향해 천천히 물었다.

  혹시  윤 태식 교수  좋아하니?

은하는 갑자기 뜬금 없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혜리를 한 번 쳐다 보았다. 

“…아니  그냥 관심있냐구.

“…”

아니면 그 사람이 널 좋아하니?

“…  왜?  그렇게 보였어?

.  그 사람이 말은 안해도 널 보는 시선이 보통은 아닌 것 같아서.

정말?…”

, 맞지 내 말?  내 직감이야.

, 아니.

은하가 엉겁결에 일단 부정부터 했다.

, 나 속일 생각 하지마.  다 알고 하는 얘기야.

“…?

네가 그랬잖아.  나도 준이 아빠 말고 다른 남자를 생각해 본적 있냐구.  너 그 사람 좋아하지?  그래서 해 본 말이지?

혜리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얼굴을 앞만 보며 운전 중인 은하에게 바짝 들이대며 물었다. 
   
얘는 드라마를 써라  써.

은하는 그런 혜리를 살짝 흘겨 보다 실은 하고 운을 떼었다.

사실은 좀 그런 마음이었어.

그래서 너 예뻐진 거구나?  이렇게 얘기할 걸 왜 감추니?

혜리의 얼굴은 진작 얘기 할 것이지 하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 무슨 로맨스 소설 같지 않니?  플라토닉 러브에 빠진 유부녀와 유부남 대학 교수.

혜리가 깔깔대며 웃더니 장난스럽게 말했다.

근데, 눈가 누굴 더 좋아하는 거야?  네가 그 사람을 아니면 그 사람이 너를?

. 내가.  그냥 따뜻하고 좋은 사람인 것 같아서.

어쩜, 그래서 남의 부부관계하고 남녀관계는 모른다니까.  너 세희 지도 교수가 그 사람 와이프인 것 알지?

혜리가 갑자기 그의 와이프 송 경희 얘기를 꺼내자 은하는 오히려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 

, 네가 일전에 얘기 했잖아. 

세희가 여기 오기 전에 함께 찍은 사진도 한 장 있던데 가져 와서 보여줄까?

얜 내가 그 여자를 뭐하러 보니?

그 여자?  얜 적을 알아야 작전 코드가 서지않니.

작전 들어가서 뭐 하게?

얜 뭐하긴.  이왕 찜쪘는데 김 올려서 푹 쪄 먹어야지.  후후.

뭐어?

은하가 웃으며 혜리를 보자 그녀는 어느새 우리도 걸쭉한 아줌마 다 됐나봐.  안면 몰수에 입담 실력만 늘고. 하더니 짧은 한숨을 쉬어 보였다.

혜리는 그런 스캔들은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 단정했는지 아니면 은하 같이 갖출 것을 거의 다 갖춘 여자가 무엇 때문에 잃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그런 맹목적인 사랑에 목숨 걸 일이 있느냐는 것인지 은하의 말에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잠시 해 본 얘기려니 하는 정도 같아 보였다.

새로 단장한 주택 단지 입구에 들어와 혜리의 집이 가까웠을 때 혜리는 은하가 찾고 있던 선글라스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너 아까 선글라스 찾았지?

.  왜? 그거 어디있는지 알아?

.  그거 윤 교수 그 사람 차 안에 있더라.

정말?

은하가 반문했다.

, 아까 봤어.  자장면 집에서 차 세웠을 때.  그 차 뒤에 더블 파킹 하고 내렸잖아.  그 사람 차 옆을 지나가는데 그냥 무심코 차 창 안을 보다가 어디서 많이 본 선글라스가 있잖아.  다시 봤더니 네 꺼 같은 거야.  아마 맞을거야.  나 눈썰미 있잖니.

혜리는 이 말을 해 놓고 나 간다. 하며 그녀의 집 앞에서 자동차 문을 열고 내려 섰다.  응 들어가. 하는 은하에게 혜리가 잠깐 손을 흔들어 보이고 뒤돌아서자 은하는 혜리기 왜 선글라스가 태식의 차 안에 있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묻질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혜리는 화통한 성격이었지만 상당히 미국식이어서 상대방이 정말 곤란해 지는 질문이나 사생활의 세세한 부분 까지는 알려고 하지 않는 아쌀하고 깨끗한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면 돈은 얼마나 언제 송금 받느냐, 아이의 성적은 몇 점이냐, 정훈과의 잠자리는 어떠냐, 오늘 생리 중이다 등의 여자들이 흔히 할 수 있는 개인적인 얘기들이었다.

은하 역시 혜리와 허물 없이 친하게 지내는 오랜 친구 사이였지만 그녀에 대해 속속들이 다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관계라기 보다는 산뜻하고 심플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였다. 

기집애,  봤으면 진작 봤다고 할 일이지 한참 돌려서 물어보긴…”

 

혜리를 내려 주고 나서 은하는 아파트로 돌아와 파킹랏 앞에 있는 메일 박스를 열어 메일을 체크한 뒤 집으로 들어왔다.  서향의 지는 태양을 받아 후끈한 열기가 찬 아파트 안에 들어 서자 그녀는 베란다로 난 큰 창을 열어 바람을 소통 시킨 후 전화기를 들었다. 

510-335-5099

몇 번의 신호음 후 메시지를 남기라는 안내가 나왔다.

 

저 은하예요.

제 선글라스 그쪽 차 안에 있는 것 맞죠?

연락줘요.

 

간단한 메시지를 남긴 후 은하는 다음주 섬머 영작 강의에 내야 할 리포트에 대해 쓰인 실러버스를 책상 위 서류 더미에서 찾아내 보고 난 후 5 페이지 페이퍼 작성을 위해 컴퓨터에서 자료들을 검색하고 워드를 열어 전체 아웃라인을 잡았다.

서너 시간이 가도록 태식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그녀는 가끔 벽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돼 갈 때 헛헛한 것이 뭔가 습관적으로 먹어야 할 것 같아 은하는 쓰고 있던 페에퍼를 세이브 해 놓고 냉장고 문을 였었다.  낮엔 자장면으로 배가 불렀었지만.

시금치, 당근, 노란무…”

김밥이야.

은하는 하얀 쌀밥을 전기 밥솟에 먼저 얹고 김밥에 들어갈 속 재료들을 다듬고 볶아냈다.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밥 위에 색색가지 재료를 얹어 김밥을 꼭꼭 말아냈다.  대학 때 학교 앞에 있는 분식집에서 김밥을 먹을 때면 꼭 남근 같이 생긴 것이라며 친구들이 킥킥거리곤 하던 것이었다.  그땐 다른 친구들은 알았었는지 몰라도 그녀는 남근이 어떻게 생긴 줄도 잘 모르던 때였다.                        

냉장고 안에서 시들거리며 잠 자고 있던 야채를 꺼내 김밥을 만들자 마치 집안 청소 해 놓은 것 처럼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칼날을 잘 갈아 김밥을 얄팍하게 썰다 꽁지 부분을 몇 개 집어 먹고 있을 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  급히 손에 끼고 있던 비닐 장갑을 벗어 놓고 전화기를 펴자  태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윤 태식 입니다.

그는 성을 이름 앞에 붙이는 습관이 있었다.

저예요.

은하는 목으로 채 넘어가지 않은 김밥을 물고 목 메는 소리를 냈다.

목소리가 왜 그래요?

, 네.  뭐 먹고 있는 중이었어요.

바쁘지 않으면 지금 나오시죠.  픽업 갈께요.

흐흐 가지 말라는 말은 잘 못해도 나오라는 말은 언제나 자신있게 하는 것 같아요.

허허 그랬나요?

좋아요.  선글라스 가지러 나갈께요.  한 시간 후에 그럼 제 아파트 앞으로 오세요.

그때 봅시다.

전화를 접은 은하는 마침 썰고 있던 김밥을 재빠른 손놀림으로 썰어 플라스틱 통에 돌려 담고 또 한 통도 만들었다. 

두 사람이 먹기에 딱 좋은 양이야.  과일도 썰어 가야지.   허니듀 멜론과 수박이면 충분할거야.

  나무 젓가락, 냅킨, 생수병 2개도 챙겨 노란 리본 장식이 달린 피크닉 바구니에 넣었다. 

태식이 좋아 할거야.  함께 피크닉을 나가면.

은하는 이를 다시 닦고 분홍 립스틱을 다시 바르고 난 후 화장도 고치고 머리 매무새도 핀을 꼽아 정돈했다.  그를 만면 더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는 깨끗한 흰색 스커트에 연 하늘색 얇은 니트 탑을 받쳐 입었다.   니트 탑은 퍼프 칠부 소매와 허리단에 고무줄 처리를 해 몽실한 것이 귀여운 여성적 이미지를 풍겨냈다.  둥근 네크라인 아래에 살짝 달린 가벼운 리본이 상큼한. 

어머 벌써 한 시간이 다 되었네.

 베란다로 난 창 밖에 그의 볼보는 이미 와 있었다.  제일 끝 부분에 차를 댄 그는 아까 연습장에서 입고 있었던 흰색 운동 셔츠 대신에 노란색 나는 드레스 셔츠를 입고 있는듯 했다. 

언제 왔어요?

은하가 들고 온 피크닉 바구니를 무릎 위에 놓고 태식 옆에 앉으며 물었다.  메고 있던 끈이 긴 토드백도 발 아래 내려 놓았다.               

오래 되었는데 어쩌죠?

그가 어쩌죠를 자주 쓰는 은하의 흉내를 냈다.

어쩌긴요.  가요 우리.

들고 있던 피크닉 바구니를 뒷자석으로 보내고 나서 안전 벨트를 메던 은하가 바구니를 뒤로 치우느라 조금 당겨 올라간 흰 스커트의 치마 자락을 얌전히 아래로 끌어 내리며 말했다.

태식이 차의 시동을 걸고 출발하며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요?

했을 때 은하는 

소풍가야 하니까  기사 마음 대로 데려가 줘요.  김밥도 싸왔거든요.

하며 즐거운 마음이었다.  

저거 김밥이에요?

태식이 뒷자석에 보내 놓은 손잡이 달린 피크닉 바구니를 백뮤러로 넘겨다 보았다.

.  함께 먹어요 우리.

그럼 소풍인가요?

, 그런 셈이에요.  삶은 달걀도 할까 하다 참았어요.

은하는 한껏 들뜬 표정으로 태식을 보다 말을 이었다.

핸드폰이 안되던데 어디 있었어요?

자장면 먹고 나서 옷 갈아 입고 학교 연구실에 갔었어요.  만날 사람이 있어서.  한국에서 아는 분이 방문 오셨는데 학교 랩 투어(실험실 방문)를 부탁해서.

이제 가셨어요 그 분?

, 바로 스탠포드로 내려 가야 한다고.  거기서도 랩 투어 약속이 있다고.

나도 숙제 했는데.

착한 학생이에요, 그 쪽.

680 프리웨이에서 버클리로 넘어 가는 터널로 진입하는 지점은 차선이 줄어드는 바람에 늘 정체현상이 있곤했다.  특히 지금 같은 러시아워에는.  밀리는 자동차들 틈에서 서햏하다 터널로 진입하자 소통은 곧 원활해졌다. 

터널 안에 들어 오니까 밖으로 나가면 꼭 서울일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동호대교 가기전에 터널 하나 지나잖아요.  알죠?

서울에 가고 싶어요?

.  가끔씩 그리워요.  이렇게 눈 감으면 어떤 때에는 내가 서울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은하가 잠시 두 눈을 감았다. 

그 쪽하고 난 서울에서 있었는데 왜 여기 까지 와서 만났는지 모르겠어요.

터널을 빠져 나갈 때 즈음 은하가 감았던 눈을 뜨며 말했다.

사실 전 보스턴 쪽으로 세베티칼을 나가려고 알아보고 있던 중에 조 교수님이 이쪽을 소개시켜 주셨어요.  샌프란시스코 부근이 나노 테크날로지(소형화 기술)로 유명하다고.

그 쪽이 동부로 갔다면 우린 만나지 않았겠죠?  서로 모르고 지내다 그냥 늙어 죽었을까요?

그러길 바래요?

태식이 잔잔한 얼굴로 은하를 한 번 보았다.

“…그건 아니고요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적은 있어요.

“…”

그런데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워 할 수 있으니까요 아마 철 없이 어릴 때 만나서 함께 살았다면 지금쯤 싸우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죠?  후후

하하 지금은 철들었어요?

어머 그럼 내가 철없어 보여요?  싫다 정말.  나이 들어서 좋은 점은 세상 보는 눈이 생기는 거예요.

전망이 좋은 버클리 언덕에 접어들자 길가에 조르르 핀 노랑꽃들을 보며 은하가 말했다.

우리 이 근방에서 도시락 먹어 치우고 가요.  저기 비스타 포인트 있네요.

은하가 앞쪽 도로 가에 난 간이 전망대를 가리켰다.  

그럴까요?

경치를 관망하는 비스타 포인트라 쓰인 길 가 한켠에 차를 세운 두 사람은 언덕 아래

막힘 없이 펼쳐진 것들을 한동안 말없이 내려다 보다  김밥을 먹었다.  언덕 아래로 조금 내려가 나지막한 바위 돌에 나란히 앉아

얄팍한 김밥이 족 둘러 담긴 파란색 뚜껑의 플라스틱 통을 열자 태식은 맛있겠다고 했

고 은하가 나무 젓가락을 하나 넘겨주자 소풍기분 나는 데요. 했다. 

맛있죠?

태식이 젓가락으로 집어 든 김밥 하나를 채 입 속에 가져 가기도 전에 은하가 그의 얼

굴을 보며 채근하듯 물었다.

아직 안먹었어요 나.

태식이 웃었다.

그게 내 특기거든요.  아직 먹어 보기도 전에 맛있죠 하는거.

그런 것 같아요.  음--  맛있어요.

정말?

“’정말도 그쪽 특기인 것 알아요?

정말 그래요, 그죠?

하하하

 

웃으며 김밥 먹으며 하는 사이 몇 겹으로 돌려 담은 김밥을 다 먹어 가자 은하가 생수

병을 한 개 돌려 열어 태식에게 건냈고 그는 물을 마셨다.

과일도 있는 것 알아요?

은하가 은근히 신이나 속삭이듯 말했다. 

풀코스네요.

, 그런 셈이에요.

만들어온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태식이 보기 좋아 흐뭇하던 그녀는 과일을 담아온 통

을 마저 열고 그에게 권했다.  연두색 멜론에 섞인 빨간 수박이 여름이라는 계절에 어울려 시원해 보이는.  태식은 몇 개 집어 먹다 배 부르다며 사양했다.

나 예전에 어떤 남자 배우를 좋아한 적 있었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알아요?

태식이 몰라요 하는 얼굴로 보았다.

영화 속에서 여자가 먹다 남긴 라면을 남자가 국물까지 먹어 치워 버렸거든요.  호호. 

그래서 반했다는 것 아니에요.

그런 것도 매력이 될 수 있는 겁니까?

그땐 보기 좋았어요.  비위생적이란 생각은 못하고.

남은 과일을 혼자서 다 집어 먹다 은하가 배부르다. 하며 한 번 일어 났다 앉은 후 끈이 제법 긴 바께트 같이 약간 길게 생긴 토드백에서 콤팩트 처럼 압축된 가루분과 립스틱을 꺼내  습관 처럼 얼굴을 매만져 주었다.  립글로스를 살짝 덧발라 윤기나는 입술로 만들어 주고. 

거울 보실래요?  밥 먹은 후니까.

은하는 네 라는 대답도 듣기 전 태식에게 거울 달린 콤팩트를  건네 주고 나서 빈 그릇들과 버릴 것 등을 정리해 다시 피크닉 바구니에 넣고 언덕 아래 멀리 바다 건너 샌프란시스코와 금문교를 바라 보며 섰다.

우리 일주일 전에 저기 갔다 왔죠?  금문교에서도 이쪽 버클리 하고 이스트 베이가 보이는 것 알아요?

그래요.

태식이 들고 있던 콤팩트를 건내 주었다.  

먹을 것도 다 먹었는데 이제 가시죠.

태식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럴까요?

은하가 태식이 평소에 잘 쓰는 그럴까요 라는 말을 따라 하자 둘이 바라 보며 웃다 차에 올랐다.  멀리 언덕 아래 오른편으로는 전철 두 대가 서로 반대편에서 오다 한 지점에서 짧게 만났다  이내 어긋나고 있는 것이 보였고.

 

버클리 언덕을 돌아 돌아 내려 오고 있는 태식에게 은하가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왜요?  겁나요?

대답 대신 시간 있으면 따라 와 봐 보시죠.  하던 태식을 따라간 곳은 산호세 쪽에 위치한 한 공연장이었다.  그쪽에겐  여기가 좋을 것 같아서요. 하며 그는 지갑 안에서 공연 티켓 두 장을 꺼내 보였다. 

신문에서 봤을 거예요.  여성 음악제…”

맞아.  오늘이 그랬어요.  혜리랑 오려고 했는데 걔가 집에 일이 있다고 해서요…”

그쪽 드레스 입고 무대에 서려면 봐 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태식이 빙글빙글 웃음 띠고 있었다.

아이 놀리지 말아요.  나 그럼 집에 갈 거예요.

은하가 공연장 입구로 태식과 함께 걸어가다 걸음을 멈추고 제법 샐쭉해진 얼굴로 그를 보았다.

걸어서요?

태식이 반문했다.

어머, 맞아. 나 차 없는 거예요? 지금?

그러니까 집에 가려면 얌전히 따라 다녀요.  여차하면 여기 놓아 두고 가는 수가 있어요.

하며 태식이 눈에 미소를 담고 가시죠. 시작할 시간 됐어요. 했다.

 

아직도 입장 중인 몇 사람을 따라 들어간 공연장은 마침 주최측의 짧은 인사말이 끝나고 난 뒤 객석의 불이 꺼지고 있었고 둘은 어둠 속에서 좌석을 찾느라 조금 헤매다 1층 중간 열 즈음에 있는 지정 좌석을 찾아 나란히 앉았다.  근처의 한국 사람은 다 온 것 같아요. 은하의 귓속말에 그가 네 라고 했을 때  공연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조명과 어우러진 예쁜 드레스를 보는 것은 은하에겐 작은 일탈의 기쁨이었다.  음악이 전해주는 가슴 진한 감동도.  은하는 태식이 졸고 있지 않을까 가끔씩 그를 처다 보며 점검해 보았다.  은하를 위해 온 것이지 그가 관심 있어서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관심사는 그 나이의 여느 남자들과 같아서 스포츠 외에는 별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조 교수님과 야구 보러 갔었다는 말을 샌프란시스코의 팩벨 야구장 앞을 지날 때 들었었다.  오클랜드 농구장에도 NBA(전국농구협회) 게임을 보기 위해 갔었고.  남자들끼리 네 명씩 조를 짜 나가는 필드도 정기적으로 나가고 있는 그였다.  옆에서 본 태식은 다행히 남이 박수 칠 때 같이 박수 치고 남이 일어날 때 일어나 주었다.

성악, 기악, 국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 중인 한인 여성들의 무대로 꾸며진 공연의 피날레가 끝나고 밀려 나오는 인파에 섞여 줄지어 선 화장실에 들렀다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어두운 밤은 와 있었다.  흔히 두 시간 짜리 영화가 끝나 불이 켜지고 길거리로 밀려 나왔을 때 잠시 느끼는 당혹감 같은 것이 전해져 왔다.  서늘한 밤 공기가 피부에 닿자 갑자기 낯선 곳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란. 

은하가 밖으로 나와 사람들 사이에서 태식을 찾자 먼저 나와 있던 그는 건물 앞 나무 밑에 서 있었다.  순간 그가 왜 그렇게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지는지  낯선 곳에서 그것도 밤에 단 둘이 대하는 남자이기 때문일거야…”  은하가 그의 곁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갈까요? 하며.

그의 차에 올랐을 때 은하는 옆에 앉은 태식의 얼굴을 확인하듯 가끔 보았다.  태식 그 사람 맞지? 하듯.  어둠 속에서 마치 낯선 남자를 따라 어디로 인가 가고 있는 듯한 여자의 본능적 불안감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고 있을 때 그제 까지 별 말 없던 태식이 은하에게 물었다.

집으로 가실 거죠?

“….

밤이 주는 어색함을 깨듯 대답을 끝낸 은하가 말을 이었다.

어두워서 운전하기 피곤하시죠?

그 쪽은 피곤해요?

아뇨, 전 옆에 타고만 있었는걸요.

공연은 재미 있었어요?

, 만족이에요.  그 쪽은요?

, 같아요.

물 하실래요?

.

은하가 몸을 틀어 뒷자석에 올려 둔 피크닉 바구니에서 낮에 마시다 남은 생수병을 꺼내 그에게 건냈다.  자요. 하며. 

그녀의 흰 스커트가 무릎 위로 당겨 올라 간 것이 어둠 속에서도 태식의 눈에 들어 왔다. 

태식이 880번 프리웨이를 한참 달려 오른쪽 차선으로 바꾼 뒤 은하의 아파트가 있는 월넛크릭으로 향하는 980번 프리웨이로 진입 했을 때 은하는 이제 집에 다 왔어. 하는 생각을 했다. 

은하가 말없이 운전하고 있는 태식을 보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문득 그에게 안기고 싶은 욕망이 몸 안에서 솟아 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오늘 밤 그와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를 알고 싶어  난 태식에게 말했잖아. 내 감정에 충실하고 싶다고…”  마음 한 구석에서 고개를 드는 그에 대한 너무나도 원초적인 욕구를 눌러 보려고 그녀는 불빛이 지나가는 창 밖을 내다 보았다.  머리를 시트에 기댄 채.

널 안고 싶어  오늘 밤 허락해줘  태식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 남자는 목석이라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것 일까.  그러기에 날 아파트로 데려다 주는 것 아닐까  은하는 얼마 전 거침없이 그녀의 몸을 파고 들던 태식을 떠올렸다.  그것은 꿈이었지만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사이 차는 어느새 은하의 아파트 단지 입구에 들어 서고 있었다.  밤이라 아파트 주차장은 퇴근해 들어 온 차들로 꽉 차 있었다.  태식이 은하의 아파트 앞에서 차를 멈추었다.  여기 맞죠? 하며.  오렌지색을 내는 가로등이 하나 서 있고 잎 넓은 큰 야자수가 한 그루 서 있는 곳이었다.  은하는 잠깐 들어 왔다 가실래요? 하려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트에 앉은 채 나 갈께요. 하고 말았다.  그를 만나면 솔직해 지고 싶었지만 

가지 말아요. 날 안아줘요.  당신도 날 원하고 있죠?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 무엇이 그와 나 사이를 막고 있는지

 

나 갈께요. 라는 말에 잠시 앞만 보며 침묵하던 태식은 태연한 말투로 잘 자요. 라고 말했을 뿐 다른 말은 없었다.

그도 나 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채 해도 마음 속은 안그럴거야. 

솟구쳐 오르는 욕정을 애써 억누르고 있을거야…”

 

은하가 몸을 틀어 뒷자석에 놓아둔 피크닉 바구니를 집어 들어 무릎 위로 다시 가져 왔다.  그 바람에 은하의 팔꿈치 부분이 태식의 어깨쪽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흰색 스커트가 다시 무릎 위로 당겨 올라간 것이 보였고  어두움이 주는 유혹이란 묘해서 그것을 해소하기 전 까지는 떨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쫓아 다니는 것 같았다. 

태식이 . 하고 큰 숨을 한 번 쉴 때 은하가 자동차 문을 열고 내려섰다.  내려서 문을 닫은 그녀에게 손을 한 번 들어 보이던 태식은 곧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은하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는 자동차의 빨간 라이트를 보다 그녀는 재빨리 바구니를 땅에 떨어뜨린 채 아니야. 하며 뛰기 시작했다.  그를 이대로 보내고 싶지 않아…”

아파트 G동을 가로 질러

작은 분수대가 있는 E동 앞으로

리징 오피스의 잔디밭을 지나

큰 길로 나서는 C동 앞의 스탑 사인 까지.

 

단숨에 건물 사이로 난 샛길을 달려 C동 앞의 큰 길가 까지 왔을 때 태식의 차는 막 C동을 지나 도로로 진입하려고 스탑 사인 앞에 막 정지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왼쪽 깜빡이 등 신호를 켜 놓고.  간신히 차 쪽으로 뛰어간 은하가 출발하려는 차의 트렁크 제일 끝 부분을 손으로 탕탕 두번 두드렸다.  좌회전 하려다 말고 그는 차를 멈추었다.  그리고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달려 오느라 숨이 턱에 찬 은하가 내려진 창문을 붙잡고 한참을 헉헉대다 이내 말했다.

안가면 안돼요!

“…”

가지 말아요.

이 말을 하며 숨이 차 괴로운 표정을 짓는 은하를 약간은 놀란 얼굴로 보던 그가 이어 말했다.

타세요.

그는 조수석 쪽으로 몸을 당겨 차 문을 열어 주려 하고 있었다.  은하가 밖에서 차 문을 열고 그의 옆에 앉았다.  옆좌석에 올라 앉아 가슴에 한 손을 대고 헉헉대는 숨을 고르던 은하를 보고 있던 태식이 빙긋이 웃으며 농담부터 했다.

뭐가 그리 급했어요?

말 시키지 말아요.  지금 숨차 죽겠어요.  100m 달리기 했단 말이에요.

은하가 아직도 진정되지 않은 듯 가쁜 숨소리를 냈다. 

픽 웃으며 잠시 기다리던 그가 장난기를 가득 섞어 또 농담을 했다.

나 안가면 은하씨가 책임 질 겁니까?

?

은하씨 라는 말에 그녀가 숨을 고르다 태식을 보았다.  그 쪽이라고 호칭하던 그였었기에

잠시 후 태식이 몸을 은하 쪽으로 돌려 다가와 부드러운 입맞춤을 해왔다.  볼에서 입술로  천천히  아주 부드러운  그리고는 말했다.

후회하지 않겠어요?

“…”

대답 대신 멍해진 눈길로 그를 보며 살며시 고개부터 젓던 은하는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그러나 단호함이 느껴지는 소리로 말했다.

아뇨.

서로를 바라 보는 턱 하고 숨막힐 것 같은 순간에 태식이 차를 백업으로 돌려 은하의 아파트 앞으로 다시 돌아가 세웠다.  다시 그 자리로.  키 큰 야자수 아래 차를 멈춘 후 잠시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내리시죠.

은하가 앉은 채로 태식을 보았다.

내일 만나요.

은하를 향해 부드러운 음성으로 달래듯 말하던 그는 차문을 열고 먼저 내려 은하가 있는 반대편으로 성큼성큼 걸어 오더니 밖에서 문을 열어 주었다.  앞만 보고 있던 은하가 열린 문 밖으로 조용히 내려서자 들어가요 하며 그는 아침에 전화 할께요. 했다. 

차에서 내려 서 고개를 숙인 채 눈길을 밑으로 두고 있던 은하는 말없이 잠시 그의 앞에 서 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갈께요. 하며.  연주가 몇 발자국 옮겼을까.  태식이 돌아서 말없이 가는 은하의 왼쪽 팔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와락 자신의 품에 안아 버렸다. 

“…은하 이대로 보내고 싶진 않아

절규하듯 은하를 껴안는 그의 포옹에 눈을 감고 있던 은하는

알아요.  그 쪽 마음  나 갈께요.

하며 힘 주어 꼭 안은 태식의 팔을 풀어내고 아파트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 뒤 돌아 가는 은하를 잡지 못하고 바라만 보던 그가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집으로 들어간 은하의 아파트에 불이 들어온 후 몇 분을 더 서 있다 그는 차에 올랐다.  운전석에 앉아 차문을 닫기 무섭게 휑하니 가버리는 그의 차를 은하는 블라인드가 조금 젖혀진 창을 통해 보고 있었다.  빨간 테일 라이트를 선명하게 켠 그의 볼보는 이내 은하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얼마나 그리운 사람인지

창 가 벽에 기대선 은하는 한 동안 움직일 줄 모르고 멍하니 허공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에게로 당신을 끌어들이고 싶어요.

그러나 나와 당신의 지난날을 하얗게 지울 수는 없겠죠.

그대 나를 감쌀 때 느껴진 기분

별빛 총총한 밤

나는 비틀거리고 있어요.

오늘 밤 당신도 내가 그리운가요?

 

세월이 금새 찾아와 나에게서 당신을 앗아갈까 두려워요.

그땐 언덕의 초록빛 나무도 예쁜 꽃들도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거예요.

그대 날 사랑한다 말해줘요.

금지된 사랑이라 해도

허락되지 않은 만남이라 해도.

나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게요.

 

잠시 이렇게 그댈 볼 수 있다면.

아무도 모르게 사랑할 수 있다면

그대의 가슴에 살짝 기대볼 수 있다면.

바람 처럼 스치는 인연이라 해도

나 많이 힘들다 해도

당신 숨소리만으로

이대로 너무 행복해요.

사랑은 이런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