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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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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날들


BY 애니 2005-08-09

일상의 날들




엄마, 서울서 아빠 전화야.”

정아와 저녁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던 은하에게 정아가 수화기를 건내 주었다.? 아빠와 한참이나 통화 하던 정아를 보며 전화 받을 준비를 하느라 손에 묻은 물기를 닦고 있던 은하에게.? 정훈은 정아에게 자상해서 번씩 전화하면 이것 저것 물어 보고 아이에게 격려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 자기야?”

그래. 나야.”

지내고 있는 거지?”

하고 있었어?”

으응, 설거지.? 근데 지금 사무실이야?”

아니.? 잠깐 밖에 나와 있어. 국장님 모시고 내일 일본 출장 간다.? 일주일 뒤에 돌아 올꺼야.”

으응…”

목소리가 갑자기 그래?”

으응하며 기운 없이 심드렁해진 은하의 목소리를 들은 정훈이 물었다. ?

몰라. 그냥 이상해.? 우리 어떤 때는 하늘 아래 국제 이산 가족 같아.? 자기가 어디 멀리 간다고 하면 그렇더라 .” ?

내가 말했지. 바쁘게 지내라고.? 사람이 한가하면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 드는 거야.”

알았어.?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어 .? 그럼 됐지?”

그래…”

근데 보고 싶지 않아?”

이런 질문에 말로 대답해야 되냐?”? 정훈은 불평하는 하면서 은근히 좋아하는 말투로 얘기하고 있었다.? 그는 평소의 그답게 친구 누구의 와이프는 미국에 있는 동안 무슨 학위를 해서 어떻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다 들어가 보아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

정훈은 상당히 자기 중심적인데다 자존심이 강한 남자였다. 탄탄한 집안 배경과 학벌이 그런 성격의 그를 더욱 받쳐 주고 있었고. ?

은하는 어려서 부터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같이 따스한 사람을 만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사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 같은 것을.?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닳는 데는 결혼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었다.? 결혼 생활도 서로가 가진 것을 주고 받으며 나누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그녀는 너무나 쓸쓸한 생각이 들어서 소리 없이 울었었다.


??

작은 책상 앞에 앉아 매달 은행에서 보내 오는 잔고 서류와 체크(개인용 은행 수표) 번호를 확인하고 있는 동안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TV에서는 샌프란시스코 한국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어느 기혼 인기 여배우의 열애설에 관한 보도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녀에 관해 취재한 기자의 설명을 곁들인 인터뷰 장면을 보다 은하는 딸아이 정아의 방을 기웃거렸다.? 정아는 방에서 친구와 전화 하고 있는 같았다.? 은하는 어느새 사춘기로 접어들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제법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게된 정아를? 되도록 이해하고 감싸주려고 노력했다.? 은하에게는 이런저런 잔소리가 많은 정훈도 정아에게 만은 관대해서 정아가 하는 이야기는 거의 들어 주는 아빠였다.? 헤어져 지내다 보니 보며 함께 지낼 보다 그립고 애틋한 마음이 든다고 그가 말했었다. ?

정아야, 은하는 정아의 방문을 노크한 문을 열었다. ?

간식 줄까?”

엄만, 다이어트 하는거 몰라?”

정아는 통화하던 수화기에다 잠깐만 하더니 수화기를 손으로 막으며 말했다.

, 그렇댔지.? 얼른 자라. 내일 학교 가야지.”

.”

자라.”

은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아는미안, 미안, 엄마야.” 하며 다시 친구에게 통화를 시작했다.

은하에게도 친구 없이 같던 나이가 있었기에 그런 정아를 잠깐 바라 보다 그녀는 살며시 방문을 닫아 주었다. ?

욕실로 들어간 은하는 이제 화장을 지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 닦은 알록달록한 물방울 무늬가 들어간 비닐?을 머리에 쓰고 작은 알갱이가 세안용 튜브를 짜내 얼굴을 씻어냈다.?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파우더 룸에서 유년 화장수와 로션을 얼굴에 두드려 바른 화이트닝 앤타이 에이징 크림을 눈가와 입가에 정성들여 발라 주었다.? 캘리포니아 계절 내내 어찌나 했빛이 강렬한지 피부에 잡티가 많이 생겨 특별히 신경을 써야하는 부분이었다.? 특히 골프를 시작한 뒤에는 했다.? ? ?

후후, 세안도 하고 이도 닦아 두었으니 이젠 언제 잠들어도 .” 귀찮은 걱정 꺼리가 하나 없어진 셈이였다.? 그녀는 어깨 끈이 좁다랗게 달린 짧은 잠옷으로 갈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반짝이는 보석 알갱이가 촘촘한 커다란 헤어 집게로 모아 고정시켜 놓았던 머리를 내리고… ? 거울 속에는 20대의 멋모르는 풋풋함은 넘어 부드러운 완숙미가 느껴지는 그러나 아직 고운 여자의 티가 완연히 묻어 나는그런 여인이 있었다. ? ? ? ?

은하는 옅은 회색이 나는 침대 시트를 제치고 들어가 누웠다.? 버클리대에서 청강하고 있는 영작 클래스에서 읽어야 하는 필독서를 하나 들고. ? 년이 넘도록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던 정훈이 먼저 한국으로 들어간 처음에는 그의 자리 때문에 마음이 헛헛할 때가 많았었지만 여러 달이 지난 지금은 그가 없는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가 떠나고 나서 얼마 동안에는 날아 가는 비행기만 보아도 한국으로 가고 싶은 적도 있었었는데…? 그럴 때면오랫동안 살았던 곳에 대한 향수란 대단한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

태식이 건네 , 스윙 폼에 대한 그림도 함께 나와 있는 책을 보다 침대 머리맡 협탁 스탠드의 스위치를 끄자 맞은편 정아의 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방문 틈새로 어렴풋이 비쳐 들어왔다.? 아직도 전화를 하고 있는지 정아의 방에서는 간간이 웃음 소리가 들려 왔고. ?

내일은 비가 오락가락 한다고 했지우기인 겨울도 아닌데…”? 은하는 낮에 들었던 일기예보를 기억해 내다주님, 이제 잘께요.” 시작하는 그녀만의 기도를 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