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9.20.화.닥터k와 두번 째 만남
추석연휴가 빨리 지나가길 바라면서 나는 닥터k가 가져 오라고 한 퇴원 후 일지 15편과 대학 1학년 때 쓴 소설 (위대한 바보)를 가지고 그의 진료실로 들어 섰다.
위대한 바보
어자영(국문1)
우리 두 사람의 공동생활-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 서양댁과의 한 울타리 속의 벽은 비록 현실이라는 상황을 가설한다 치더라도 좀 처럼 무너지기 힘든-예컨대 연리지(蓮理枝)와 같은 상태로 묶여 있었다.
-쉬는 입에 염불 하는 셈 치고 입에 먹을 것 좀 넣으셔요.
하루에도 몇 번 씩이고 서양댁은 쉬는 입에 염불하는 등의 말로 나의 식욕을 강요한다.하지만 죽지 못해 사는 시늉을 하는 형벌 속에 나 스스로가 갇혀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조금도 눈치 채지 못할 턱이 없었다. 단지 그녀는 항상 그러했던 것 처럼 내 운명의 방관자 인 척 행동할 따름 이었다. 그 뿐이었다. 정말이지 우린 스스로의 운명을 거슬러 올라 일종의 획기적인 삶을 살려는 -말하자면 원하는 세상을 향해 힘껏 싸워 볼려는 의지조차 없는-생각 조차 품어 본 적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짜라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쓴 니체는 당신이 원하는 세상을 향해 힘껏 싸워 보라. 대박이 터지지 않으면, 아니, 터졌다 해도 이렇게 말하라. "한 번 더"중요한 것은 용기를 내는 것.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고 주사위를 던져야 한다.들이밀며 겁준다 해도 과감하게 던져라. 주사위 놀이를 할수록 건강해지는 것은 던지는 그 자신이다. 타자를 위한 생산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생산이다,고 외쳤다. 옳은 주장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서를 보고 난 후, 나의 삶은 더욱 웅크려 들어 가기만 했다.
-부탁이오. 서양댁! 나의 마지막 발길에 채인 단 하난의 생명체를 길이 기억해 주길 바라오. 우린 서로가 인간 본능의 자체에서 어그러지지 않은 선량한 남녀들 이었다는 사실도 잊지 말길 바라오.그 밖에 저지른 죄의 대가는 나의 아들 석을 돌보면서 깨끗이 씻어 주길 바라오.
1969.6.25.PM6;00 김철 씀
훨씬 뒷 날, 서양댁이 보여 준 아버지의 유서는 나를 끝을 알 수없는 전쟁에 내몰린 병사처럼 몰아 가고 있었다.왜 서양댁은 나에게 유서를 보여 주었을까? 그녀도 비밀을 지니고 있기에는 너무나 약한 인간 존재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을까?
죽은 지 오래된 냉동 시체에서나 나올 수 있는 싸늘한 냉기는 으례 한 겨울을 지배하기 마련이다.이런 대자연의 법칙에 따라 계절이면 어김없이 찾아 오는 독감으로 서양댁은 며칠 씩이나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석이 도련님! 제가 죽을 죄를 졌어요.
-서양 아줌마. 무슨 소리 세요. 제발 살려 달라니.... ....
-아, 가련한 도련님!
참 어처구니 없게도 거의 한 달 동안 서양댁은 나에게 자기의 죄를 호소해 왔다.살려 달라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하지만 난 가을을 알려 주는 크나 큰 크낙새 울음소리와도 같은 그녀의 절규를 단지 헛소리로 받아 들이고 있었다.정말이지 난 극도로 신경 과앙잉상태에 놓여 있는 또 다른 나 자신에게서 훨훨 놓여 나고 싶었다. 얼굴의 반 토막이 날라 간 것 같은 극심한 병마에 시달린 탓인지 서양댁에 대한 배불떼기 의사의 지시는 까다로왔다.
-당분간 먹을 것은 미음으로만 국한 시켜야겠소. 환자와는 어떤 관계인지요?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아! 제 이몸니다.
-이모님 이시라고요? 왜 그런데 환자분이 도련님 이라고 부르나요?
-네,제 어렸을 때 부터 저의 아버지께 의지하며 살아 오셔서 저를 그렇게 부른답니다.
-참 !그럼 조카 분한테 일러 두겠는데 환자가 병원도 오시지 않을려고 해서 내가 이렇게 집까지 왕진 할 형편은 앞으로도 없을거요.나는 뛰어 다녀도 시간이 모자란 의사요.이모와 거동을 함께 해야겠소. 환자는 매일 수면제로 잠을 지탱해 왔소.언제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할 지 예측할 수가 없는 상태요.
나는 서양댁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몇 달은 우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 묵묵히 판단해 왔다. 아무래도 환자의 거동을 예의 주시 해야 겠다고 나는 생각 했다.겨울의 짧은 햇볕이 안방으로 스며 들었을때 서양댁은 눈을 떴다.
-석이 도련님! 제 남편은 젊었을 적에 죽은 시체를 주무르며 염을 외는 염쟁이 였어요. 하지만 그는 버는 대로 도박과 술에다가 투자했죠.전 줄곧 배를 쫄쫄 굶고 살았고 자연유산만 몇차례인 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저도 아버지께 대충 들어 알고 있습니다.서양 아줌마의 이름이 서양댁 이라고 불러진 것도 미국 선교사 집을 돌아 다니며 가정부로 일하면서 얻은 이름 이라는 것도요.
-나이가 들자 저 보다 20년이나 연상인 영감은 제가 선교사 집에서 얻어 온 빵만 넙죽넙죽 받아 먹고 먼 산만 바라 보는 먼산 바래기 영감 이었는걸요.
제법 낮기운 겨울의 햇볕을 얼굴에 받으면서 그녀는 최상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와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무대에 모노로그 독백 처럼 그녀는 자신을 연출해 나가는 것 처럼 보였다.나와 산 20년의 역사 중에서 가장 긴 대화라고나 할까.
-얼마 전에 도련님께 보여 드렸던 아버님의 유서는 사실 아버님이 도련님께 보여 주지 말라고 유언으로 하신 마지막 말씀이셨죠.처음엔 아버님의 유언을 지킬려고 도련님을 돌보면서 줄곧 제가 지닌 죄를 씼으려고 했어요. 도련님은 단신으로 남하한 아버님과 저와의 관계 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끝내는 제가 도련님의 침묵에 굴복 당해서 아버님이 혈서로 쓴 유서를 보여 주고 말았으니까요.
난 그 순간 재빨리 머리로 상상했다.
<먼산바래기 영감만을 의지 하고 살다 끝내는 배만 쫄쫄 굶고 앉았던 서양댁에게 아버지가 베풀어준 최대의 호의는 무엇 이었기에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 가신 지금도 나의 곁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내가 보건대, 아버지와 그녀는 20년 동안 한 방에서도 잔 적이 결코 없었다. 완벽한 주종관계 였다.그녀도 아버지가 남기고 간 유산을 탐내는 돈벌레의 특성에서 결코 예외일 수는 없어서일까?>
그러난 난 예전에도 늘상 그래 왔지만 결코 서양댁에게 긴 의문점을 풀어 달라고 호소 하기를 꺼려 했다.난 이제 까지 20년의 생활 속에서 나와 또 다른 존재들에게 거의 무관심할 정도로 냉담해 있었다. 엄마가 나를 낳고 산후 후유증으로 돌아 가셨다는 말은, 즉 나는 어머니를 죽이고 나온 살인자라는 강박관념에서 나를 벗어나게는 절대 해 줄 수가 없었다 죽을 때 까지 끈덕지게 그 강박관념은 나를 괴롭힐 것이다.휑 하게 큰 커다란 울타리안 의 집에서 그녀 스스로가 말하듯 죄인 인지도 모를 40대 여인과 20대 대학생인 나와의 현실 생활은 우릴 어처구니 없게도 공범자로 몰아 놓고 있었다. 우린 아버지가 남겨 준 커다란 유산 속에서 한 발자욱도 움직일 수 없는 외부와는 단절된 인간 원형의 모범적인 주민 이었다.그러나 이런 외부와는 단절된 고요로움 속에서 우리 두 사람의 공동생활의 종말을 고하는 한 마녀 같은 존재가 우리를 향해 질주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린 전혀 알 턱이 없었다.
기나긴 병마에서 서양댁도 풀려 나왔고 나 역시 모범생 다운 대학생으로 돌아 왔다. 저녁을 먹은 뒤 한가롭게 후유증을 만끽 하고 있을 무렵, 서양댁이 웬 편지를 들고 내 방에 들어 왔다.
-어디서 편지가 왔구만요.
-제 책상에 놓고 아줌만 가서 주무세요. 그리고 수면제 따윌 다량으로 복용할 생각은 마세요.
-알겠어요. 말만 이라도 고맙네요.... ....
언제나 그랬다. 내가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관심을 보여 주면 그녀의 말꼬리는 예외없이 떨려 온다. 편지는 발신인의 이름 조차 없기에 난 조금은 초초해 가며 읽었다.
-제 생활의 전부를 알려 드리죠. 제 하숙방의 구공탄불은 매일 꺼지기만 해요. 전 영하의 추위 때 마다 차디찬 골방에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렇다고 학생인 제가 시골집에서 올라 오는 쥐꼬리만한 향토 장학금을 가지곤 좋은 하숙집으로 옮길 수도 없는 처지여서 1주일 동안 궁리한 결과 좋은 묘안을 생각해 냈죠. 얼마 전 가정교사 아르바이트에서 짤려서 더더욱 난감한 처지랍니다.그건 적어도 학교를 안 가는 공휴일만은 동시 상영을 하는 변두리 3류 극장을 하루 왼종일 이용 하자는 것이었답니다.입장료 50원이면 하루 종일 예의 매표구 팻말 처럼 '난방장치완비'인 극장 안에 있을 수 있었고 그러한 방법은 50원 짜리 커피를 마시며 다방 레지의 눈치를 살피는 것 보다 훨씬 수월한 방법이니까요.대부분 일요일엔 아침 일찌기 하숙집에서 주는 금이 가고 이 빠진 황토빛 뚝사발에 가득 담긴 김이 무럭무럭 나는 깡보리 밥을 깨끗이 해치은 뒤 부랴부랴 예의 3류 극장 휴게실 스팀 옆으로 달려 가는 것이죠. 영화는 으례 동시 상영으로 하루에 두 영화를 반은 빼어 가면서 4회 상영 되는데 대부분 저는 1회의 경우는 후끈후끈한 스팀 옆에서 전 날 저녁 냉방에서 채 못잔 잠을 보충키 위해 깡보리밥으로 포만감에 가득한 배를 느긋이 스팀네 대고 소화를 겸한 아침잠을 늘어지게 자죠. 2회 상영시 에는 .... ....
-에익! 이게 뭐람 사람 약을 올리나?
난 편지를 뭉쳐 방 한 구석에 던져 버렸다. 생활고를 비난해서<그랬죠? 저랬죠.>로 끝나는 글발은 나를 피곤케 했다. 그러나 호기심의 발동이랄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쓴 가련한 생활상이 나로 하여금 일종의 텔레파시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 코드는 <고독>이다.
그래 난 얼떨결에,
-아 참! 그리고 2회 상영시에는 어떻게 됐을까?
하며 다시금 희죽희죽 갈겨 쓴 여자의 글발을 읽기 시작했다.
<2회 상영시에는 비로소 눈을 반은 감은 채 영화감상을 하며 3회 상영시에는 집에서 갖고 나온 소설이나 교육도서를 읽곤 하죠. 그래봐도 전 페스탈로찌 후예를 닮아 학구적이며 문학도랍니다.>
-쿡! 페스탈로찌의 후예라. 점점.더 장황해 지는데
<4회때가 되면 극장 안도 부근 공장에서 몰려 나오는 공순이, 공돌이와 설거지를 마치고 주인 몰래 피해 나온 부엌때기들로 초만원을 이루게 되죠. 어쩔수 없이 전 극장내의 청소부 눈도 있고 해서 잔뜩 짓물린 채 영화관 안으로 다시 들어 가게 됩니다. 그 때는 화면에 눈을 두는 것이 아니라 슬픈 장면이 나올 때 마다 훌쩍훌쩍 따라 우는 순정파 처녀들의 옆모습, 러브 신이 나올 때마다 입을 넙죽법죽 벌리고 넋을 잃는 총각 녀석들의 인물감상을 하는 것이 본 영화 보다 한층 제 흥미를 돋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랍니다. 그즈음 겨울 방학이 되자 제 인생의 테두리 안에서 3류 극장의 출입을 더 잦아졌고 어느새 거의 비슷한 스토리를 가지고 울고 짜는 영화 장면과 무에 그리 안타까운지 흐느껴 우는 관객들의 판에 박은 듯한 실루엣을 매일 감상 한다는 것은 사법고시에 8번 실패한 제 오빠 말대로 퍽으나 역겨운 일기도 했죠.<숙아! 내가 고시에 영거푸 퇴짜를 맞는 따윈 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 보다도 더욱고통스러운 일은 지금도 내 안경 속에 훤히 비쳐 오는 똑같은 법조문들을 다시금 되풀이 하는 사실이란다. 그 빨갛게 밑줄 치어진 판에 박은 글자들이 자꾸만 나를 비웃는것 같아서 정말 난.... ....>저도 오빠와 똑같은 심정이기에 3류 극자의 출입 대신에 또 다른 모험을 시작 했답니다.
편지 한 장을 채 봉투에서 꺼내지 않았기 때문에 난 방 한 모퉁이에 한껏 쳐 박혀 있는 봉투 속에서 핑크색 편지지를 꺼내 와야 했다.
<그건 제가 사는 동네에서 가장 을씬년스런 고옥,즉 석이씨 집에서 울려 나오는 죽음의 냄새를 음미하는 모험 이랍니다.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숱한 모험은 인간을 카오스적인 존재로 만들지만 그러나 아주 가끔 모험 속에 말려 든다는 것은 나에게는 참 상쾌한 일이랍니다.전 결코 인정을 베풀만한 여유있는 여자는 아니지만 곧잘 어쩌다가 한 인간을 구해야겠다는 제나름의 나약성에 쉽게 도취 된답니다. 정녕 석이씨에게 온갖 것을 이야기 하자니 석이씨의 온갖 모습이 나를 향해서 밀려 오는 것 같고 마음 속에서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과 전율이 나를 흔들어 움직여 놓기 시작 하는군요.>
편지지의 글발은 끝나 있었다. 그리고 이내 나도 긴 잠에 빠져 버렸다.
우리네 모든 사람은 아름답다는 개념에 온통 무지막지할 정도로 무식한 것 같다. 환각의 일편으로 삼는 미적 개념에 조금만 벗어 날 수 있다면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인간들이 아직도 세상에는 과다하게 많다는 상상에 몰두 하고 있으면서 나는 어판 노가리꾼 한테 사정사정 깎아 세우는 상투꾼들과 아낙네들의 빛바랜 소음을 귓가에 의식한 채 생선 시장가를 지나고 있었다.
-오늘은 일요일 이래도
누군가 문명의 잔재인 쓰레기더미를 치우며 비릿비릿한 시장가 한 복판에서 큰 소리를 지껄여댔다.
-체! 일요일이면 뭐해.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터져 나온 나의 언어의 비앙거림.
마치 어항 속의 금붕어 처럼 무위의 행동만을 되풀이 해 온 나에게 일요일이라고 해서 특별한 날도 아니었다.그러나 적어도 오늘은 최상의 부드러움을 지닌 채 걷고 있다는 편이 옳겠다.분명 어제 저녁 서양댁이 책상위에 놓아준 또 다른 연서를 받고 난 지금 약속 장소로 가는 길이니까. 약속 장소인 K다방에 도착한 시각은 장미빛 황혼이 막 튀어 나올 무렵이었다.
< 그 빛이 사라지기 전에 당신의 마음 속에 나를 하나의 빛으로 설정해 주세요.>
이런 강렬한 문귀를 보낸 여자를 찾기에 나는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이 쪽이예요. 대단히 근시안적인 눈을 가지고 계신가 보죠.
이 여자의 말투는 편지글과 일맥상통하다. 오른쪽 팔꿈치를 쿡 찌르며 거침없이 내뱉는 여자를 난 묵묵히 바라 볼 뿐이었다.확실히 그녀는 속된 말로 나사가 빠진 부류같다.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를 낯선 곳에서 어떻게 금방 찾을 수 있단 말인가?난 혐오감에서 그녀를 꾸짖고 싶었다.
-편지 잘 받았습니다.첫번 째 생활 넋두리 편지나 두 번 째의 연가류의 글발들 모두 말입니다.아주 여유가 만만해 보이십니다 그려.
-아직도 자신의 위치를 모르고 있군요. 제가 보낸 편지가 넋두리 였나 연가 였나를 곧 아시게끔 해 드릴 테니까요.
너구리 연기가 넘나드는 다방 한 가운데서 그녀가 벌떡 일어섰다. 그녀가 나를 이끌고 간 곳은 중세풍의 샨데리아가 높이 번쩍이는 맥주홀이었다.생맥주 1000CC 두 잔을 시키고 난 뒤, 여자는 게슴치레 두 눈을 치켜뜬 채 나를 바라 본다.
-제가 석이씨 집의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는 건 실상 제 스스로 맡은 게 아니예요.타인의 입이 나로 하여금 그런 강요를 요구한 것이랍니다.
-타인의 입이라뇨? 누구를 말하는 건가요?
-석이씨와 약 20년 가까이 당신을 길러 주고 살아 온 바로 그 서양댁 아줌마가 또 다른 죽음을 공모하기 위해 나를 끌어 들이 것 분이래두요.
1000cc시킨 두번 째의 맥주가 나왔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잠시 그쳤다.난 담배는 펴도 별로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술기운 찻인지 난 내가 조금 전 시장 한 복판에서 생각해 냈던 미적 개념중 하나인 환락의 대상으로 앞에 앉은 여자를 유도해 내고 있었다.
-석이씬 스스로가 가장 위대한 척 모든 일에 방관해 왔지만 실상 가장 어리석은 바보였어요.말하자면 자기 아버지와 먼산바래기 영감을 죽인 죄를 공모한 여인과 함께 살아 왔으니까요.그 여인이 죄를 호소해 올라치면 가장 너그러운 성격의 소유자인양 속수무책이었으니까요.석이씨는 자신이 초인이라고 생각했나요?
-나는 댁 같은 여자하고 니체를 토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도대체 당신이 뭐길래 서양아줌마를 비판 하는거요.아버진 돌아 가셨고 살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요.
맥주 글라스의 굴곡에 의해 여자의 코가 넙적해 보인다.
-천만에요. 석이씬 가장 안이한 판단으로 이 세상을 살아 나가고 있는 거예요. 물론 예수는 발에 기름을 부어준 막달라 마리아를 용서해 주었지만 당신은 서양댁의 호소를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어요.우리는 누구나 죄를 그 누구에게 호소치 않고서는 죄를 풀 길이 없어요. 카토릭의 고해 성사가 그 좋은 예죠.그런 면에서 볼 때 당신이 서양댁 한테 한 태도는 위선적 이다, 라고 볼 수 밖에 없어요.
난 횡설수설한 여자의 넋두리에 묘하게 빨려 들어 갔다.그리고 이내 내가 이제까지 생각해 왔던 긴 의문점을 그여자에게 호소하리라 마음 먹었다.
-도대체 당신과 서양 아줌마와는 무슨 관계에 놓여 있는거요.왜 당신은 악녀 처럼 둔갑하여 나는 괴롭히냔 말이요?
여자의 얼굴에 순간 환한 미소가 번졌다.
-맞았어요. 석이씨는 진작 그런 의문을 풀었어야 했어요. 단지 억지로 산다는 시늉을 한다는 건 어리석은 인생이예요. 우린 각자 내부에 도사려 있는 생에 대한 끈질긴 집념을 버릴 수는 없거든요.
난 그 여자에게 인생 운운을 듣자는 건 결코 아니었다.
-듣기 싫소. 서양댁과 당신의 관계나 말하시오. 내가 듣고 싶은 건 그 뿐이니
술기운에 위해서 나의 음성은 매우 거세졌다.서서히 몰려 오는 의식 속에서 난 그 여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말초신경 까지 돋우고 있었다.
-서양댁과 저는 여자예요.서양댁과 석이씬 같은 울타리 안에서 살죠.어느 날 서양댁이 제가 편지 속에 썼던 예의 3류 극장 휴게실에서 실신 상태로 쓰러져 있더군요.집 울타리 밖에서 시장 갈 때 빼놓고는 움직이지도 않던 그 아줌마가 말입니다.
-그게 언제 쯤이죠? 쓰러져 있던 그 날이?
-지난 2월달 께였어요. 거의 시체실레 운반해 갈려는 걸 제가 우겨서 응급 환자실로 옮겼죠. 기적적으로 회생했고 나에게 절대로 사실을 같은 울타리안의 석이씨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 하더군요.
2월 달이라니.그 때 서양댁은 독감이라고 몸져 누워서 내과 의사에게 왕진을 부탁했었는데.서양댁은 결코 제 발로는 병원을 찾아갈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모든 혼돈과 광기 속에서 석이씨를 애타게 찾고 있더군요. 저 보고 마녀가 돼 달라고 부탁 하더군요.당신 아버지와 서양댁은 죄지은 양들 이었답니다. 먼산바래기 영감을 20년 전에 죽이고 끝내 자살의 길을 선택한 아버진 선량한 사람일 수 있지만 자기 죄는 끝내 버려지지 않는다고 호소 하더군요.그 날 집까지 데려다 주는 택시 안에서 아줌마가 말하더군요.석이씨 손에서 죽고 싶다고 .그게 평생의 소원이라고 고백 했어요.
숨막히듯 질주하는 거리의 차를 피해 다니면서 어떻해 내가 집까지 도착했는지 나도 모르겠다.그 여자가 먼저 대문 문지방에 앉아 있다가 다가오며 말했다.
-서양댁 아줌만 자살했어요. 당신의 무능 하리 만큼 이기적인 속수무책이 빚어진 결과예요.그 아줌만 당신의 충실한 노예이고 싶어 했고 20년 동안의 질긴 인연 속에서 2대에 걸친 부자의 사랑을 점령하고 싶어 했으니까 결국은 지나친 욕심이 죽음으로 보답했다고 할까요.
또 하나의 유서가 내 손에 날라 들어 왔다.
<도련님! 20년의 역사 안에서 보다 더 성숙한 인간이 되려는 도련님과 저와의 생활은 고통이면서 즐거움이었슴을 고백합니다.한 마리의 개는 주인을 위해 물과 불을 가리지 않고 주인을 돌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 도련님의 충실한 하녀이고 싶었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숙이라는 여자한테 토해 내고 갑니다.3류 극장얘기,연가등 모든 편지는 제가 숙이라는 여자한테 부탁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여인의 사랑으로 도련님을 돌보고자 한 것은 저의 씻을 수 없는 두 번째 죄입니다. 전 단지 죽기 전에 그 여자에게 저의 죄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 길만이 제가 편히 이 세상을 하직할 것 같아서 입니다. 아버님 곁으로 갑니다. 부디 앞서 간 두 영혼을 위해서도 도련님의 인생을 당당하게 사시길 기원합니다.
1971.1.13.눈 오는 날 오후. 도련님을 생각 하며 몇자 적고 떠나는 서양댁이 씀
나에게 서양댁의 고뇌를 알려 주었던 여자도 가 버렸다.그 여자는 마녀가 아니었다. 실상 이세상에서 마녀와 천사란 존재는 생각 하기 나름이다.그 여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한 두 사람의 현실을 부서뜨리기에 성공한 천사라고 내게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코발트색 푸른 하늘에 심겨진 구름조각을 보며 난 스스로 외치고 있었다.
<그래! 체념은 할 지 언정 절망은 하지 말자.절망은 결코 구럴텅이에서 소생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지만 체념 이라는 병은 건강한 자만이 갖는 병이니까 스스로를 체념함으로써 얻어 질 수 있는 또 다를 삶을 얻어 보자꾸나.>
그 여자의 말 대로 난 어쩌면 위대한 척도 했고 바보인 척도 했는 지 모른다.아버지가 남겨 놓고 간 크나큰 유산을 정리 하면서 난 이 을씬년스런 부동산을 팔아 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적어도 난 먹는다는 것,입는다는 것에 대해서만은 자유인이고 싶어 했으니까.인생 초년병의 긴 하품을 연방 토해 내면서 난 너무 일찍 굴레 벗은 말이 되어 버린 걸 약간은 시답지 않은 기분으로 만끽하고 있었다.
1971.2.1.(국문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