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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 후 일지 15


BY 47521 2005-09-16

2005.9.16.금.pm7;30  추석연휴 전 날

남들은 추석이라 떠들썩 하지만 난 추석이나 설날 돌아 오는 것이 정말 싫다. 이혼녀가 제사 지낼 일도 없고 마땅하게 갈 곳도 없다.

오후2시에 나는 동사무소 2층에 마련 된 탁구장에 가서 역시 갈 곳이 없는 60대 노인과 탁구를 쳤다.작년 어느 날 동사무소에 주민등록 등본을 떼러 갔는데 2층에서 탁구공 치는 소리가 났다.알고 보니 동사무소 자치위원회에서 탁구,스포츠 댄스,한국무용,컴퓨터,요가,파워 스트레칭,일본어등 주민들을 위한 강습을 열고 있었다.

나는1996년 가을, 정신병동 거실 한 가운데 마련된 탁구대를 떠올렸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올드 미스가 탁구를 치고 있었는데 폼이 일정하고 볼 치는 것이 강했다.그녀는 키가 150센티 겨우 넘은 듯 단신에 얼굴이 까마잡잡하고 핏기가 없었다. 마침 회진 온 한 주치의가 그녀에게 탁를 치자고 했다.

-탁구를 잘 치시네요? 저도 한 수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그녀의 얼굴이 금방 빨갛게 달아 올랐다.

-예전에는 잘 쳤었는데.... ....요즈음은  통 연습을 안 해서 잘 못쳐요. 초등학교 때 탁구 선수였어요.

나는 그녀의 수줍어 하는 모습이 웬지 좋아서 틈만 나면 그녀에게 탁구를 배웠다. 그녀는 자신이 계속 탁구 선수 생활을 했으면 이 병동에 들어올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예의 수줍은 웃음을 입가에 띄었다. 그녀는 침대에 엎드려서 자위행위를 하는 버릇이 있었고 회진 온 담당 주치의에게 묻곤 했다.

-선생님 ! 제가 결혼을 못 해서 자위 행위를 해요.자위를 하면 정신적으로 죄악 인가요?

-아닙니다. 남자들의 경우 한창 성적으로 왕성할 시기에 대입 준비로 발산을 못할 경우 오히려 자위가 남학생들 한테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학계에서는 인정 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경우도 결혼 생활을 통해 정상적으로 성생활을 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자위는 성적 스트레스를 풀어 주는데 도움이 됩니다. 단 환자 분 처럼 대낮에 다른 사람들 보는 앞에서 하면 곤란 합니다.제 말 이해하십니까?

그녀는 주치의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면 알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대낮에 침대에 엎드려 자위를 하곤 했다. 그녀의 핏기 없는 얼굴이 오르가즘에 도달 하면 빨갛게 달아 오르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민망했다.

불쌍한 그녀는 결혼을 늦게나마라도 했을까? 섹스가 아름다운 것은 자식이라는 열매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신이 인간에게 쾌락을 주지 않았으면 인간은 자식을 낳았을까?

나는 다음 날부터 일주일에 세 번 탁구 레슨을 받았다.탁구를 치면 온 몸에 땀이 나면서 스트레스가 말끔히 가시는 기분이 들곤 했다. 탁구 레슨 후 곧 이어서 요가 강습도 받았다. 요가는 인도에서 시작한 체조로 몸을 덥게 하고 나서 치면 효과가 더 좋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나는 생활 계획표를 짜서 오전에는 어느주부나 하는  살림살이를 하고 나서 책을 읽었고, 오후1시 30분 부터 오후 5시경 까지는 운동을, 장을 보고 들어 와서 저녁 식사를 마치면 컴퓨터 한글 2002로 들어가 글을 썼다. 나는 이혼녀지만 내 생활에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캐나다에 있는 전 남편과는 e-mail로 소식을 주고 받았다.나는 이제 항우울제약을 끊고 싶다. 추석 연휴 지나고 친정에 들러서 그 근처에 새로 생긴 종합병원을 들러 볼 참이다.

                                

닥터k!  그 병원에서  당신을 다시 만난 것이 기적과 같습니다.마치 당신이 그 곳에서 나를 기다린 것만 같습니다.

-친정이 이 근처 어디 입니까?

-바로 건너편 H아파트에요.선생님이  이 곳에 계실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요. 너무 반갑네요. 

-전에 병원에 친정 어머니께서 면회를 자주 오셨는데 건강하십니까?

나는 무엇보다 당신에게 결혼 했는지를 묻고 싶었습니다.-나가면서 간호원에게 살짝 물어 보리라.-생각 하고 있는데 당신이 심각하게 물었습니다.

-약은 꾸준히 복용하고 있습니까?어떤 사람들은 약 없이도 인생에서 힘든 상황을 잘 대처해 나가면서 우울증을 극복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영씨 처럼 처방 받는 사람들 중 다수는 그런 약을 영원히 복용할 필요도 없습니다. 약을 끊으실려고 오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네. 이제는 제 환경에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상태라 우울증의 덫에서 벗어 나고 싶어요.

-함께 노력해 봅시다.그 약들에 의해 덫에 걸렸다고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급작스럽게 끊지 말고 조절해 봅시다. 우울증을 없애려면 증상을 줄이는 상태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정상 활동으로 돌아가야  완치됐다고 봅니다. 예전에 입원일지를 쓰셨는데 퇴원 후 일지도 쓰셨겠죠? 내일 퇴원 후 일지를 저에게 보여 주시면 치료에 도움이 되겠는데요.그리고 대학교 때 소설을 쓰셨다고 했던가요? 그 소설도 함께 가지고 오세요.

나는 이제 치료를 핑계로 그를 유혹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물거려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오면서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그는 아직 노총각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