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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 후 일지 9


BY 47521 2005-09-11

2002.4.xx일. 노동부 공공근로

우체국 보험에서 주는 무의탁 대상  간병비는 올 1월4일 날 이후로는 끊겼다. 보험 순 이익금이 바닥이 났기 때문 이었다. 더 이상 하고 싶지도 않았다. 마지막 환자는  디스크로 의정부 병원에 입원한 무의탁 환자였는데 24시간을 봐 달라는 것 이었다. 처음에 나는 낮12시간만 돌보면 될 줄 알고 갔는데 환자는 부득부득 자신은 자식들은 있지만 하나는 알콜 중독자고 하나는 정신지체 장애자라며 24시간 봐 주기를 원했다.그러나 내가 하루밤 자고 그 환자 곁을 떠난 것은 24시간 간병 때문이 아니라 그 할머니의 지독함이 징그러워서였다.같은 병실에 입원한 교통환자 아줌마말을 빌리면 그 할머니가 입원한 날 풍경은 가히 가관 이었다는 것이다. 그 할머니는 중계동 육교 위에서 목발을 짚고 나와서 잡곡 곡식을 파는 행상이었고 혼자 걸을 수 도 없는 중증 디스크 환자로 입원한 날 택시를 타고 혼자 입원실에 들어 섰는데 보따리가 거짓말 안 하고  양손으로 전부 들기에 무거울 정도로 한 짐이었다고 했다. 내가  병원 냉장고 문을 열어 보았는데 약 한 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잔뜩 들어 있었다. 심지어 감주 한달 치도 해 와서 딴 환자들의 음식은 들어갈 자리도 없을 지경이었다.그 할머니 곁에서 하루 밤  간병하고 나서 나는 집에 옷가지 좀 가져 오겠노라고 환자에게 말하곤서 줄행랑을 쳤다.

그 할머니의 악착 같은 생활력이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 나는 의정부역 부근에서  아침 나절인데도 불구하고 막걸리를 들이키면서  결심했다. 다시는 간병인 노릇을 안하겠다고.

나는 그 다음 날 서대문 고용 안전 센터에 가서 구직을 부탁했다. 한 군데는 양노원 이었고 또 한 군데는 개인시설로 치매 중풍 노인을 돌보는 곳이었다.   양노원 에서는 50살 이하만 간병인으로 받는다며 퇴짜를 놓았고 또 한 군데는 연락해 주겠다고 하더니    함흥차사였다.

그 동안 몸으로 때우는 막일을 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 둔 경우가 많았는데 그만  둘 때 마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가슴이 왜 그렇게 후련하던지.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한다는게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나는 그 후 부터는 삼남매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직업을 가지라고, 그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누누히 강조했다.

 집에서 약 한 달 쉬면서 간간히 오는 전화를 받고서는 막일 아르바이트를 했다.그러나 IMF이후로는 직업소개소 전화도 뜸한 편이었다. 옛 어른 말씀대로 사람은 몸은 편해도 입이 편하면 안된다는 말씀이 옳는 것은 입이 편하다는 것은 그 만큼 일거리가 없다는 뜻임을 뒤늦게 알았다. 그래도 사람이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다. 2월 중순경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여기는 서대문 고용 안전 쎈타인데요. 어자영씨 본인 이세요?

- 아, 담당자님 이세요. 그 날 소개해 주신 곳 두 군데 가 보았는데 전부 안되었어요. 제가 연락을 드려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노동부 공공근로가 있는데 내일 이 곳으로 나와 주실 수 있나요?

-무슨 일인데요?

-내일 나오시면 구체적으로 말씀 드릴께요.

노동부 공공근로는 본인의 구직활동을 하면서 조그만 음식점이라도  노동부에서 하는 고용보험의 취지를 알리고 구인을 원하는 업체가 있으면 구인장도 받아서 제출하는 일이었고 본인이 구직 활종을 하면서 면접을 했을 경우는 면접 결과도 적어내야 했다. 동사무소 공공근로 처럼 막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하루 적당히 떼우면서 일당 25,000 원을 받아 먹는것 이니 그야말로 누워서 헤엄치기도 이 보다 편할 순 없었다.3개월 안에 취직을 하라고 노동부에서 IMF일환으로 실직자들을 위한 프로젝트였지만  공공근로자들은 빨리 3개월 안에 취직하고 나가라는 고용 안정 쎈타의 말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버렸다.

나는 운좋게 2월,3월로 1기가 끝났는데 2기 4,5,6월도 공공근로에 뽑혔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까지 마음대로 개인 활동을 할 수 있어서 나는 막일 아르바이트가 있으면 그 곳에 가서 일하고 오후 6시에 싸인하러 고용  안 전 센터에 들어가면 되었다.이런 시절이 언제까지라도 오면  우울증도 안걸리고 좋겠구나, 생각이 들 정도 였다.나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퇴원하고 나면 약을 복용하지 않아 재입원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들어서인지 퇴원 하고 나서는 약을 내마음대로 줄여서 먹고 있었다. 나는 환자인 동시에 의사였다.물론 우울증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