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8.x일.royal형의 죽음
친정엄마가 사는 근처에 (공장 아파트)가 눈에 띄어서 가 보았다. 공장 아파트는 이름 그대로 1층 부터 7층까지 공장들 이었다. 게시판을 보았더니 마침 5층 봉제공장에서 시다가 필요 하다는 구인광고가 있기에 무작정 올라갔다.마침 사장이 자리에 있었다. 집이 어디냐고 묻고 아현동에서 월계동까지 출근할 수 있냐고 했다. 내가 사장이 내 준 이력서를 쓰고 있는데 사장이 말했다.
-글씨 쓰는 것을 보니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했나 보네요.
아차! 지난번 삐삐 공장에서 순진하게 대학졸업을 써서 망신(?)을 당한 기억이 있기에 국졸 이라고 썼다.
-국졸은 아닐텐데.하도 많은 사람을 면접해서 그런지 이제는 얼굴만 봐도 학력 수준을 알 수있거든요.
-네, 사실은 중학교 중퇴니까 국졸이나 마찬가지죠.
그럴 때는 얼렁뚱땅 얼버무리는게 상책임을 공순이가 된 후에 알게 된 내 처세술이다. 안양 공순이가 서울 공순이가 된 것이다.섬유 봉제 계통은 재단,미싱,시다,완성,검사,오바로꾸,나나인치등으로 파트를 나누는데 아직도 일본말을 많이 쓰는 이유는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봉제공장을 많이 지어서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 이라고 한다.
나는 단체복은 일반 옷보다 주머니가 많으므로 펜꽂이 주머니,견장,칼라,카우스,허리띠등을 아이롱으로 꺽어주는 시다가 되었다.
기다리던 여름휴가가 다가 오고 있었다.20년 최장수 유니폼 업체인 이 공장도 금년들어 제 날짜에 월급을 준 적이 없었고 바캉스 보나스도 없다고 했다.
닷새간의 여름휴가를 끝내고 공장에 들어 서는데 미싱 아줌마가 대한 항공 비행기가 새벽 괌에서 추락 했는데 아마 확실하지는 않지만 240여명 전원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려줬다. 순간 뇌리에 royal형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다음날 조간신문에서 나는 로이알형의 사진과 함께 탄 승무원들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기사를 보았다.로이알형의 빈소는 88체육관 합동 분양소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별도로 강서구 염창동 구 대한 항공 정비 훈련원에 마련 되어 있었다.kal직원들은 피해자 이면서 가해자로 이중고통을 안고 따가운 눈총과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거의 닿지 않는 조금 쓸쓸한 모습이었다.조문 온 사람 하나가 형의 영정 앞에서 말했다.
-살 수 있었는데 참 안됐어. 손님들을 피신 시켜 주고 스튜디어스를 살릴려고 불속에 또 다시 뛰어 들어 갔다는 게야. 병원에 입원 중인 그 스튜디어스가 흐느끼며 증언했다더군.노 승무원장이 불나비 처럼 불속에 계속 뛰어 들어가 손님들을 살려 냈다고.... ....
형은 죽음을 통해 우울에서 해방된 것일까?모두가 자유롭게 살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유토비아 사회를 지향했던 형. 설날 면회와서 나에게 죽지 않으면 만날 수 있다고 하더니, 병원 쇠창살에 매달려 지켜 봤던 형의 뒷모습,형은 그 길로 천국을 향해 걸어간 것이었다.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유토비아는 삶과 죽음사이의 찰라적인 그 순간뿐이라는 것을 형의 영정앞에서 나는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