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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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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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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일지15


BY 47521 2005-08-30

1997.2월10일.월요일.퇴원

드디어 오늘이 그 날이다. 기독교 영화중 최고의 걸작은 벤허이다. 전무후무일 것이다. 그 영화에 명장면인  검은말, 흰말 경주 대회 시작 전 주인공 벤허가 친구 멧살라에게 하는 대사 가 Today is this day다. 바로 오늘이 그 날이다. 5개월 동안의 입원 기간의 모든 일들이 주마등 처럼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종이를 먹는 환자,똥을 먹는 환자,선데이 먼데이 투즈 데이.... ....,이찌 니 산 시.... .... 하며 복도를 거니는 환자,물건을 훔치는 환자,자위 행위를 하는 환자,독방에 갇혀서 울부짖던 환자,조울증으로 방방 뜨던 환자,종교에 미친 여자, 의붓증 환자,툭 하면 싸움을 거는 환자, 알콜중독자,정신분열자,남편을 피해 들어 온 환자등 수없이 많은 환자들에게 나는 연민의 정을 가졌드랬다.내가  이런 저런 생각으로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어느 환자가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대고 나를 노려 보고 있지 않은가. 나는 깜짝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래도 얼굴 안색 하나 안 변하고 여전히 쳐다 보는 눈초리에 소름이 쭉 끼쳤다.그러고 보니 방안 이 온통 소란이었다. 바로 그 환자가  우리방 사물함을 뒤져 내복가지도 꺼내서 자신이 버젓이 입고 있지 않은가. 손버릇 나쁜 환자가 무척 많아서 하다 못해 속내복 까지에도 매직펜으로 이름을 써 놔야했다. 도둑질도 정신병의 일종이다.우리가 간호사를 부르니까 그녀는 태연히 -그럼 벗어줄께 -하면서 내복을 원래 자리에 돌려 놓았다. 오늘 새로 들어온 환잔데 이 병동에 몇번씩 들락날락 했다고 간호사가 말했다.  그녀가 들어 왔으니 내가 퇴원한 뒤, 병동에 앞으로 닥칠 소동이 불보듯 훤했다.

딸은 아르바이트일로 오후 2시에 퇴원수속을 밟으러 온다고 했다.내가 딸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드디어 D가 입에 거품을 물고 간질 발작을 일으키며 침대에서 떨어졌다. 간질 발작을 일으키기 며칠 전 부터 D는 눈에 띄게 우울한 모습이었다. 실상 간질환자는 페쇄병동에 입원할  필요가 없었다.D의 어머니는 D가 집에서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행여 누가 볼까봐  또한 가정의 제일 큰 수치로 여기고 있기에 무조건  정신 병동에 입원 시키는 것이다.꽃다운 나이의 D는 이 병실에서 서서히 환자들의 못된 기운을 받으며 서서히 병자가  되어갈 것이다. 간질은 결코 수치의 병이 아니고 유전병일 따름이다. 남에게 결코 피해도 주지 않는 병이다.D를 정신병자로 몰고 가는 것은 그녀의 어머니이다.병동을 뒤돌아보고 나오면서 나는 가만히 속삭였다. 안녕이라고.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96년 9월18일 새벽에 강릉 잠수함 사건이 있었고, 김구 살해범 안두희가 살해 당했고,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해서 승리했다.

 

닥터K, 당신은 나의 입원일지를 보고 돌려 주면서 말했죠. 언제쯤 퇴원일지를 볼 수 있겠느냐고. 내가 어떻해 당신이 근무하는 종합병원에서 9년만에 우연히 당신을 만나게 되었는지. 아무래도 우연인것 같습니다. 나는 친정에 들렀다가 친정 근처에 새로 생긴 종합병원에 들렀던것 뿐입니다. 당신이 그 곳 신경정신과에 온 것을 안 것은, 진료실 문의 의사 이름을 써 부친것을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모릅니다. 마침 의료보험 카드를 갖고 있지 않아서 동생의 보험 카드로 진료를 신청해서 당신도 나를 처음에는 못알아보더군요. 진료를 기다리면서 내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당신은 결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과 9년 전 진료를 위해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44살의 중년의 여인이 33살의 주치의를 마음 속으로 짝사랑 하는것이 죄라고 나는 생각지 않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모든것을 털어 놓게 마련인데 인터뷰를 하면서 정이 들었다고 보는 것이 옳겠죠. 

-안녕하세요? 선생님,저 기억하시겠어요?

-아, 안녕하세요? 그럼요.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함이 틀리네요.

-친정에 왔다가  동생 보험카드로 왔어요.

-그런데 약은 꾸준히 복용하고 계시나요?뵙기에는 표정은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만요.

-사실은 약을 끊어 보려고 새 종합병원에 온 거예요. 

-갑자기 끊으면  금단현상으로 잠이 오지 않을 수가 있는데요. 친정에 자주 오신다면 이 병원에 올 수있겠죠. 저와 상담하면서 약을 서서히 끊는 치료를 해 보도록 하죠.

-기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2.3주는 걸립니다. 참을 수 없는 금단 증상이 시작되면 일시적으로 복용량을 늘릴 수도 있으니까요.저도 요즈음  항우울제 끊는 방법을 임상을 통해서 박사 논문을 쓰는 중입니다.

닥터k! 나는 이제 임상실험이라는 미명 아래 당신을 마음껏 만날  수가  있네요. 내 가슴은 기쁨으로 넘쳐납니다. 9년이 흘러 53살이 되고 당신은 불혹의 나이를 지나 42살이 되었는데도 사랑의 감정은 식을지를 모르는가 봅니다.

당신은 나에게 퇴원일지를 썼느냐고 물었고 다음 진료날짜에 가져 올 수 있는냐고 예의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