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11.x일.창밖의 단풍사태,낙엽사태에 눈부신 날
추석 무렵 나는 심하게 앓고 나서 담당의사의 항우울제 처방이 내 몸에 맞았는지 나는 약 보름간의 안절부절 상태에서 벗어났다. 그 때는 만사가 귀찮고 한겨울에 먹이를 찾아 헤메는 이리처럼 끝없이 ㄱ자 복도를 방황하고 서성거리면서 걸었다.나는 악마에 쫒겨 다닌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던 그런 불행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때때로 나는 정체불명한 것에 사로 잡혔다.
그것은 불안일까? 욕망일까?
병동은 밤9시만 되면 복도만 빼놓고 방안의 불은 완전 소등이 되는데 나는 정각9시에 침대에 누워서 신에게 기원 했다. 제발 내 몸에서 우울이 빠져 나가게 해달라고. 그 시간만큼은 찰라적으로 마음이 편했지만 아침에 눈뜨면 다시 우울에 휩싸여서 나는 하루 종일 어쩔줄몰라 조바심을 치곤 했다.
닥터k는 인터뷰실에서 나를 따로 불러 면담을 하곤 했다.
-어자영씨,어린 시절로 돌아가 볼까요? 그 시절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 였어요?
-선생님, 그런 옛시절은 나에게 도움이 안돼요. 내가 이렇게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보고만 계실거예요. 안정제 주사를 놔 주세요. 딴 환자들은 안정제 놔 주는데 왜 저는 주사요법을 안쓰는거죠.
-주사는 일시적이고 중독의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회생활을 하기가 힘들어요.
-선생님이 나처럼 우울의 감정을 겪어나 본 적이 있었나요? 지금의 제 감정을 아시기나 해요?
나는 숨을 혁혁 내몰아쉬며 사냥꾼의 덫에 걸린 사슴처럼 끝없이 의사 앞에서 발버둥쳤다.
-제가 그 감정을 안다면 벌써 명의가 됐게요. 제가 보기에 자영씨는 꿈과 정열도 있는데 그것을 이루어내지 못하니까 우울에 걸린것 같습니다. 그 꿈이 무언지 저에게 말해 주실수 없나요?
-꿈이요? 이 중년의 나이에 못다한 꿈예기라뇨,글을 쓰고 싶었어요. 대학시절에 단편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 소설이 반응이 아주 좋아서 아직도 그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잠깐 그 꿈을 접어 주었다가 어느 정도 회복 되시면 다시 펼쳐 보면 어떨까요.
레지던트 4년차인 30대 의사는 눈에 안타까움을 담은 채 일어났다.
문잡이를 돌리고 있었던 그의 믿음직한 뒷덜미를 쳐다 보면서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노벨문학상을 조국에 안길 수 있다면 이 우울도 벗어날 수가 있을것 같내요.
순간 닥터k 가 뒤돌아 보면서 물었다.
-지금 무어라고 말씀 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