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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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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일지


BY 47521 2005-08-19

1996.11.xx일.낙엽 떨어지는 소리.

병동 입원한 지 2달 되는 날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알코올 중독자B와 조울증C는 동갑내기 아니란듯이 쌈박질이다.

-야! 조울증아,오늘은 기분이 어느쪽이냐?네가 담배 두 가치 가져갔지?

-뭐,알콜성 정신분열증아,내것이 있는데 내가 왜 네 것을 가져가냐?

병동은 담배만 없어지는것이 아니라 사물함에 있는 내복,겉옷,칫솔,치약,샴퓨,비누,수건등 환자들의 도둑질 해가는것이 다반사다.

-지난 면회날,우리 영감이 와서 내가 너 자장면 시켜 줬는데 네가 나 한테 이럴 수가 있어. 이 미친 x야?

c도 결코 지지 않는다.

-너 같은 x이니까 65살 먹은 늙은 영감이랑 붙어 살지.그것도 신랑이라고 남자 구실도 못한다면서.자장면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날 먹은 자짱면 다 토해 줄까?

옴팍눈에다 곱슬머리인 B는 악질이다. 그녀는 담당의사인 K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환자와 의사의 낭만적 로맨스는 없는데 말이다.

그런 악질녀도 언젠인가는 눈물을 보여서 나는 깜짝 놀란적이 있다.

-영감이 말야,내가 술을 마시는걸 들키는 날엔 장작대기로 날 사정없이 후려쳐. 도망 다니면서 끝없이 얻어 맞지. 차라리 병원에 있는게 나아.

-안마시면 되잖아.

자고 일어 나면 전 남편에게 양육권을 넘겨 준 토끼 같은 내 아들 이 눈에 어른거려.견딜 수가 없어. 술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자영씨도 내 입장이 돼 봐. 술을 마시면 마음이 편안해져.

두 여자의 싸움은 알코올 중독자를 독방에 가두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병동 밖 교회의 십자가는 노을 탓에 시뻘겋게 불타 오르는데 독방에 감금된 알콜중독자는 고래고래 울부짖고 있었다.

-담당의사 오라고 해. 왜 날 이유도 없이 독방에 가두는 거냐고. 이 미친x야.

우리방 환자들은 알고 있다. 그녀는 빨라야 이틀이 지나야만이  그 독방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그 독방안에서도 B는 C에 대한 신상발언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너 같은 X은 남편한테 버림받기에 똑 알맞아.기상이변 처럼 기분이 좋았다가 파르르했다가 변덕스러우니까 어느 남자가 좋아하겠어. 쌍둥이 아들을 남편에게 빼앗긴것도 네 업보야. 평생 미싱이나 밟으면서 살아가라지.

미친듯이 독방에서 울부짖어도 간호사들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이 정신병동에서 악명이 높은 환자다.

오히려 조울증 C는 인정도 많고 싹싹해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그녀를 좋아하는 편이다.

언젠가 C가 나에게 독백처럼 중얼거린 적이 있다.

-언니야, 그래도 조울증이 우울증보다 났다고 해. 우울증은 항상 자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들었어. 언니도 가끔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어. 씨도득과 팔자도둑은 못한다는데 여기 있는 환자들은 모두 팔자인것 같애.

눈물을 글썽거리며 C가 말하자 D가 가만히 C의 손을 잡으며 울먹였다.

-아줌마는 결혼이라도 해서 자식도 낳아 보았지만 나는 집에서 한발자욱도 나가지 못해요.제가 집안 식구들에게 챙피하대요. 심심하니까 피아노를 치면 아빠가 시끄럽다고 해요.아빠는 퇴행성 관절염으로 하루종일 누워만 계시고 엄마가 식당일로 살아가거든요.

의부증 환자A,알코올 중독자B,조울증C는 한창 꽃다운 나이에 병동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 C를 결코 이해 하지 못했다.

다만 나는 알고 있었다. 닥터 K가 어느 날 넌지시 나에게 귀뜸해 주었다.

-D는 간질이예요. 언제 발작이 일어날 지 예측할 수도 없어요. 의사인 우리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영씨가 발작 증세가 나타나면 간호사실에 빨리 연락해 주세요.

나와 D는 묵시처럼 서로 알고 있었다. 죽을 때 까지 간질은 발작을 일으킬 수 밖에. 완치될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