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구와 현숙은 점점 가까워지는 것같았다. 가끔씩 쳐다보고 검연쩍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남녀가 만나면 정든다는 말이 실감 난다.
"현숙이, 요즘 얼굴 이뻐진다."
"왜? 내가 이뻐져?"
"그래...너 첨 우리하고 만났을때 보다는 사람이 영 달라졌어...."
소정자가 소회를 말하고 현숙은 그저 웃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태구도 이제 좀 여유가 있어져 갔다. 모자를 눌러 쓴 화가의 모습이 좀더 살아난다고 할까....
"야, 네가 닦아줘!"
"뭘?"
"이화백 바지에 맥주 거품 떨어졌잖아....."
"내가 왜?"
"야, 그럼 여기 너말고 태구씨 돌봐줄 사람 누가 있냐^^^"
현숙은 착하게도 그걸 진실로 받아 들여 손수건을 꺼내 태구의 바지를 닦아주고 세선과 소정자는 기뻐한다.
"야, 세선이 너 요즘 신경쓰는일 있나봐 얼굴봐 반쪽이네....말해라 우리가 도와줄께..."
"아냐, 나 원래 가을타잖아......"
세선은 그렇게 말했지만 몸에 변화가 있음을 부인하지는 못하는 터다. 저녁을 먹는데 세선의 입에서 갑자기 고구마 냄새가 그리워진다. 그리고 된장 냄새도.....
"야, 정자야 이 주변 어디 고구마 파는데 없니?"
"고구마?"
"응, 고구마가 먹고 싶네....."
"얘...아직은 군고구마 나올때 안됐지....."
"그렇지 참......그럼 토소 한식집 있어?"
"글쎄.....알아볼께.....근데 너 늦둥이 보니 먹고 싶은게 갑자기 생기게...?"
"얘는 이 나이에 무슨 애...."
그렇게 말했지만 세선의 가슴이 뜨금하다. 지나온 이야기 추억속에 젖은 네 사람은 시간을 물같이 쓰고는 헤어졌다. 태구와 현숙은 같은 방향이라며 택시를 타고 떠나가고 소정자와 세선은 손을 흔들었다.
"쟤들 저러다 같이 살겠네 그지?"
"그러게...."
세선의 가슴에 아쉬움 같은 바람이 스쳐간다.
태구! 괜찮은 남자였는데...
"얘, 잘가!"
"그래.....요즘은 움추리고 가만 엎드리는게 상책이다...."
세선은 이제 혼자가 되었다. 진입로의 은행잎들이 불빛을 받은부분이 아직 파랗다. 밤에도 잠을 자지 못해 게절을 모르는 나무로구나...
"어디다 마음을 두지...."
갑자기 자신이 초라해졌다. 하늘을 쳐다 보았다. 별이 보인다. 오랜만에 쳐다본 하늘이다. 눈 건너로 다가오는 별아래 십자가 불빛...그리고 먼 산으로 반짝이는 불빛은 개심사의 표지판 같은데.....
"이 인간은 어디 있지..."
남편의 전화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원망처럼 번져가는데 아직도 받을 수 없다는 맨트만 들리고...
"야근인가뵈.."
갑자기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단칸방에 연탄을 갈다가 깨져버려 그걸 파내주며 싱긋이 웃던 믿음직스런 모습. 옷한벌을 사줄때마다 기뻐서 엉덩이를 만지며 기뻐하던 남편의 순진한 모습이 세선의 머릿속으로 저며 왔다.
"야, 인구씨 말야....지금도 그건 잘하지"
"그게 뭔데...?'
"밤일?"
"아직은......"
소정자가 세선의 남편이 정력이 셀것이라고 말한적이 있는데 사실이었다. 그러나 워낙 세선이 점근하지 못하게 하다보니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긴하지만....
"정말 이 인간이 다른여자에게....."
갑자기 머리가 거꾸로 섰다.
"그걸 가지고 남의 여편네 구멍에 들락거려 이런 미친놈!!!"
세선의 신경이 곤두섰다. 오기만 해봐라 당장....그러나 남편은 내일이나 올거 아닌가...슈퍼에 들른다. 갑자기 불오징어가 생각 나서다.
"그래, 술한잔 마시고 자면 잘 수 있겠지...."
슈퍼의 아저씨가 세선을 반갑게 맞는다.
"늦으셨네요......뭐 찾아드릴까요....?"
"아...네 불오징어"
"저쪽에......"
세선이 가리키는 쪽으로 발을 옮기는데 아니 이게 누군가.....
"이제 오세유 사모님....."
"아니...아줌마가....."
"예에~ 지가 얼마전에 저 건너로 이사 왔시유....."
청소 아줌마 그 여자였다. 갑자기 세선의 가슴으로 찬바람이 급하게 불어 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