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을 들여다 본 나는 벌린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지난 봄 아버지 제삿날 왔을 때 보이지 않던 수백만원을 홋가하는 돌침대와 번쩍 거리는 장식장이 떡하니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천정에 매달린 샹들리에는 아무리 봐도 돈값이 꽤 될것 같았다. 사방팔방으로 요란한 꽃무늬에 번들거리는 조명등은 말로만 듣던 럭셔리 상들리엔가 뭔가 하는게 위협적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저놈의 게 떨어지면 아마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 머리는 피떡이 될 게 뻔 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고 있었다. '제발 머릿맡에 떨어져서 불효막심한 오빠내외 혼구녕을 좀 냈으면.....' 꼬소할것 같은 잔인한 상상을 하고는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침대 샀네.....꽤 비쌀텐데......" 무언지 모를 비릿한 꿈틀거림이 자꾸만 위로 기올라오는 것 같았고 그냥 지나치면 두고두고 호된 입몸살을 앓을것 같은 예감에 큰 방 반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돌침대를 보고 기어이 한마디 뱉았다. 우리식구 네명이 다 자고도 남아돌 것 같은 돌침대 머리맡엔 제법 책도 가져다 놓고 조그마한 오디오도 얹어 놓아서 제법 구색을 갖추어 놓았다. 그 돌머리에 책이라니 얼토당토 안한 겉치레에 심기는 자꾸만 어긋나고 있었다. "으응....괜찮지?....내 친구 남편이 침대 장사 하는데 하도 졸라서...싸게 샀어" 싸게 샀다는 말에 힘을 주는데 아마 나에게 뭔가 찔리는게 있나 보다. "암만 싸도 몇백만원 할텐데.." "생각보다 그렇게 안 비싸.............170 만원 밖에 안줬어. 원래는 300만원 하는건데....." 머??.......170만원밖에?........ 그게 싸다고 자랑삼아 떠벌리는 올케의 살림 수준이 나하고는 도저히 돈단위가 안맞는것 같았다. 사그라 질려고 하는 성깔이 또다시 고개를 빳빳이 쳐 들었다. 10만원짜리 좌변기도 비싸서 시어머님께 사 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170만원이 별거 아니라고 한다.
내눈은 희안하게 새로 바뀐 가구들만 귀신같이 잡아내고 있었다. 이럴때 여우의 시력은 먼지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고도의 기술이 있다는걸 알았다. 고가의 냉온수 정수기, 김치냉장고, 화장실 좌변기의 비데, 에어컨,........ 식구들 옷도 모두 다 유명 메이커였고 하다못해 양말짝도 이름있는 업체의 것이다. 갑자기 로또복권이라도 당첨되었는지 번들거리는 집안을 둘러보는 내 심사는 편치 않았다. 시샘인지 부러움인지 아니면 울화인지 모르겠지만 자꾸만 속이 비비 꼬인다 엄마를 위해서 들어가는 돈에는 무섭도록 인색한 오빠내외에게 서서히 분노가 치민다.
생신 상이라고 차린게 도무지 돈 들어간 구석은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다 그 흔한 잡채 한 접시도 상에 올리지 않고..... 가까이 사시는 친정 고모를 초대할 정도면 그래도 어느 정도 상다리가 휠줄 알았는데 별로 크지도 않은 직사각형 상은 빈자리가 더 넓었다. 그러나 아들 내외 덕 하나 못보고 혼자 사는 친정 고모는 입이 쩍 벌어졌다. "형님은 그래도 자식복은 있어서 이렇게 생일 대접도 받고..복 노인이여.." 부러움인지 시누이 특유의 시기심인지 부지런히 음식 입에 넣으면서 질부의 칭찬을 빠드리지 않았다. "만고에 효부여......요즘 누가 시에미 생일상 이렇게 퍼지도록 차려주나?" 칭찬에 입이 귀에 걸린 올케는 이것 저것 고모 앞으로 당겨 놓으면서 착한 질부 노릇 하는데 난 옆에서 도저히 입맛이 당기지 않았다. "워낙 물가가 비싸서 많이 준비도 못했어요..고모님...그래도 많이 드세요.." 암만 비싸도 돌 침대만 하냐고 쥐어박고 싶었다. 반찬그릇 당기는 올케의 손가락엔 언제 부터 끼고 있던 반지인지 주먹만한 보석이 눈에 거슬렸다. 보석에 대해서 까막눈인 나지만 얼핏봐도 가짜는 아닌것 같았다 뭐냐고 물을려고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것저것 트집 잡는 뉘앙스 풍기면 커피속에 쥐약을 탈지도 모르기에...... 이가 시원찮은 엄마가 먹기엔 택도없는 갈비찜은 그림의 떡이다. 그 갈비찜 마저도 올케는 고모 앞으로 슬며시 당겨 놓는다. 올케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내 레이더망에 걸려서 속으로 수없이 칼을 갈고 있는 나 자신에게 난 변명하고 있었다. '이건 시누이라서가 아니다..올케는 엄마를 지금 무시하고 있다...그래서 내가 그런다...' 합리화, 정당화가 되리라고는 생각않지만 난 나를 구차하지만 변호하고 싶었기 때문에 맘속에 흑백이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이래저래 뒤틀린 심사가 입맛을 떨어지게 했고, 주인공인 엄마가 이방인 같이 상모서리에 앉아서 성치않은 이빨로나마 부지런히 아침밥을 먹고 있는게 왠지 서글프기만 했다. 엄마를 위한 그 어떤 배려도 없었다. 그냥 아침한끼 얻어 먹으로 온 노인네에 불과했다......내가 보기엔....
아침상을 물리고 여러 사람 보는 앞에서 난 좌변기를 엄마에게 내 밀었다. "아이고..야야..이거 비쌀낀데....먼 돈이 있다고..." 엄마는 훌쩍 거리며 사위의 눈치를 살피는것 같았다. 남편은 아예 딴곳을 쳐다 봤다. 마치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내가 뭘 압니까라는 몸짓으로 나에게 무언의 시위를 벌이는것 같았다. 좁쌀에 구덩이 팔 위인이라는걸 처가에 오면 꼭 드러내는 고약한 심뽀는 늘 엄마를 불편하게 했다. 엄마는 사위의 무관심과 몰인정이 결혼을 반대했던 댓가라고 생각하고 조금도 서운한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나를 쳐다보는 눈빛은 항상 걱정으로 흔들렸다. 변기를 본 오빠내외는 그제서야 나에게 엎어지는 시늉을 했다. 돈 12만원의 위력이 이렇게 두 내외에게 백기를 들릴 줄 몰랐다. "우리가 사 들리려고 했는데..............." 뒷북치는 그 비겁함은 세월이 가도 퇴색되지 않고 시기적절하게 튀어 나온다. 그렇지만 짐을 덜어줘서 고맙다는 제스쳐에 난 사가지고 간 좌변기 도로 뺏아오고 싶었다. 이렇게 염치없고 뻔뻔 스러운 사람들이 내 가족이라니.... 놀다가라고 붙드는 시늉을 하는 오빠내외에게 빠뜨리지 않고 한마디 쥐어 박았다. "앞으로 자식에게 효도 받고 싶거든 엄마에게 효도해..그리고,...오늘은 엄마 집에까지 모셔다 드려!" 명령조로 더 강도높게 하고 싶은말 있었지만 목구멍 속으로 억지루 쑤셔 넣었다. 그리곤 외면하는 올케를 고개가 틀리도록 똑바루 쏘아 보았다. " 새언니,......난 새언니에게 여우소리 안 듣고 싶걸랑........." 그러니까 알아서 기라는 뼈박힌 말 여운으로 남겼는데 약삭빠른 올케가 모를리 없었다.
돌아오는 찻속에서 난 속으로 외쳤다. '나도 어쩔수 없는 여우다........여우........'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님......내일부터 화장실 공사 하세요......"
나를 쳐다보는 남편의 두 눈이 점점 크게 늘어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