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쏟아지는 시어머니의 화장실 타령에다가 여우의 속없는 부추김에 할수 없이 대책을 세워야 했다. 일단은 견적이 얼마나 나올지, 또 오래된 흙집에 붙혀서 지을 수 있을지....
"에~~ 집이 너무 낡아서.........." 시댁을 휘 둘러보던 공사쟁이가 고개를 모로 꼬면서 난색을 표할때 난 속으로 희색이 만연했다. '제발 안된다고 해라.............제발.........' 난 꼴까닥 소리가 나도록 침을 삼키며 마치 공사쟁이의 입에 운명이 걸린것 처럼 조마조마 했다. "그럼 밴소칸 짓기엔 택도 없단 소링교?" 공사쟁이의 입만 쳐다보던 시어머니의 낙심한 소리가 포기하는 소리로 들렸지만 나를 힐끗 쳐다보던 공사쟁이는 소리가 나도록 입맛을 쩌억 다시더니 뒷머리를 긁는다. 우리집 사정을 훤하게 꿰고 있는 공사쟁이는 아마 말하기가 무척 곤란한 듯 구겨서 들고 있던 종이에다가 의미없는 낙서를 죽죽 그어댔다. "안 된다는 소리가 아이고....되긴 되는데 돈이 더 마이 든다는 소리쥬...." 먼 발치서 지붕위로 시선을 던지고 있는 남편의 눈치를 보던 공사쟁이가 슬슬 핵심을 쏟아 놓는다. "얼마가 더 드능교?" 그래도 할수 있다는 소리에 바짝 반기는 시어머니 역시 나하고 남편의 눈치를 본다. "집이 안 낡았으면 200정도 드는 데유...흙 집에 달아 지을려면 넉넉 잡아서 400정도는 들어야 될것 같슈.." 방수가 어쩌고 저쩌고.....지반이 어쩌고 저쩌고......... 공사쟁이의 그럴듯한 추가 금액에 대한 설명이 그리 중요하지도 않았다. 중요한건 돈이 더 들어야 된다는데 머릿속은 온통 깡통 긁는 소리밖엔 들리지 않았다. 안 되는 줄 알았는데 200만원 더 들여서도 될수 있다는 말에 시어머니의 입은 쩍 벌어졌다. "그러면 200만원만 더 주면 꼭 될수 있능교?....참말이쟈?" 공사쟁이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자 다잡아 확답을 받은 시어머니는 본격적으로 남편에게 빚(?) 독촉을 했다. "니도 들었제??.....난 또 한 500만원 든 다 카는 줄 알고 시껍 했구만......" 가슴을 쓸어 내리는 시늉을 하시면서 점입가경으로 나오는데 난 할 말이 없었다. 400만원이 뉘집 애 이름도 아니고. 1000만원 쯤 든다고 했으면 차라리 포기할 명분이 두렷한데 이건 애매하게 사람 잡을 액수다. 돈 400만원이 없어서 늙은 어미 한밤중에 뒷간 보내는 불효막심한 아들이 되는 건 신중치 못한 시어머니의 입으로 인해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건 시간문제다.
평소에도 머리맡에 요강단지 두고 볼일 잘두 보두만 수세식 얘기가 나오고 부터는 요강보기를 개 머루 보듯 소 닭보듯 했다. 내가 시집올 때 가져온 반들거리는 스텐요강을 은근히 탐을 내기에 아파트로 이사 들어 가면서 준 것이다. 유난히도 아끼고 무슨 보물 만지듯 아침저녁으로 퐁퐁 풀어서 씻더니 완전히 찬밥이 되어 버렸다. 냄새도 많이 나고 아침마다 씻기도 귀찮고.........그게 이유다. 더 큰 이유는 똥 푸는 넘이 너무 바가지를 씌워서 - 반통인데도 온통 값 다 받는다고 - 도저히 상종 못할 똥만 푸다가 뒈질 넘이라고 악담도 곁들여 쏟아 낸 뒤편의 진짜 이유 즉, 동철이네 때문은 아닌듯이 슬쩍 말을 돌리는거다. 시어머니가 거처하는 방에서 불과 몇미터 되지 않은곳에 화장실이 있고 도로 옆에는 가로등이 있어서 별로 불편할것 같지 않은 우리 생각이 잘못되었는지는 몰라도 시급한 과제는 아닌듯 했다. 그러나 시어머니에게는 볼일 보는 일 보다 더 시급한 문제다. 매일 마주치는 동철이네가 은근 슬쩍 흘리는 화장실 얘기에 시어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스뚜레뚜(스트레스)' 받아서 제명에 못 산다고 했다. "물이 쫘악 하고 내려오면 울매나 시원하고 깨끗한데.........옛날 밴소칸 쓰는 사람 더럽고 냄새나서 어떻게 쓰는지 몰러..."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못하고 은근히 아들 동철이의 재력을 이렇게 내 비추면 시어머니의 화살은 애꿎게 우리 부부에게 곧바로 날라온다. "야야....밴소칸에 앉아 있으면 발이 저려서 생병이 날라칸다" "여름 되 봐라, 냄새나고 모기가 궁디를 물어서 벌집같은디...똥이 제대루 나오것냐?"?" "아, 나이에 똥 푸는 젊은놈하고 더러븐 소리 해야 되것나?"
별다른 불편 느끼지 못하고 70년 넘게 사용하던 재래식 화장실이 어느날 갑자기 더럽고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자 하루가 급한 모양이다. 그 생각을 앞 지른 동철어미와의 보이지 않는 시기와 질투가 시어머니 가슴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텃밭에 거름으로도 쓰고 호박 구덩이에 퍼 넣으면 호박이 실하게 여물어서 똥은 꼭 있어야 된다고 한 게 올 봄에 텃밭 고루면서 똥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시어머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뒤집어 지면서 몹쓸 넘의 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비료도 좋은 게 많고 호박은 시장에서 천원어치 사면 혼자서 며칠을 먹을수있다고..... 수세식으로 고쳐도 별 지장이 없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낱낱이 꿰는건 그나마 우리 부부에게 미안한 맘이 들어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세무서에 다니는걸 정승 벼슬 하는듯이 동철네에게 은근히 과시하는 힘으로 지금까지 버티었는데 더 못 배운 동철이가 돈으로 앞가림을 하니까 견딜수 없이 자존심 상한 게 틀림없다 왠일인지 시어머니는 동철이네하고는 결사적으로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거였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칭찬듣고, 더 많이 다녀가면 두눈뜨고 못 보는 고약한 심사는 번번이 우리 부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망할놈의 할망구....내가 돈만 더 있었어봐라 우리아들 서울대핵교는 눈감고 들어 갔을낀데..." "울 아들이 머리는엄청 좋은데 돈 없는 죄루다가....." "울 아들이 한마디만 하면 마카 머리숙이는데...." "까짖거 수세식 밴소 개나 돼지나 다 하는거......." 이렇게 무시하는 말투로 동철네를 깔고 뭉개는 걸로도 성에 차지 않는지 기어이 눈에 드러나야 직성이 풀렸나 보다 아들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는 때때로 그 기준치에 과속 패달 밟는데 인색하지 않은 시어머니다. 그러다가 어느때는 사정없이 바닥으로 패대기치는 , 널 뛰듯 하는 시어머니의 변덕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동철네가 시어머니 머리위로는 결코 올라가지 못하게 기어이 끄집어 내리는 심보를 이해 할수가 없다. 그 피해자는 결국은 우리 부부일수 밖에...... 화장실이 해결되면 또 무엇을 가지고 키재기를 할 지 해결의 끝은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