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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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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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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배운죄로


BY 그린미 2004-09-18

온 가족이 남편에게 못 마땅한 가장 큰 이유는 주변머리 없는 '무능한 가장'이라는 거다.
 흔히들 세무서에 근무하면 떨어지는 콩고물만 줏어 모아도 빌딩을 짓는다는 낭설을 가족들은 마치 굿자놓은 회투판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게 문제였다.
 그 좋은 자리에 앉아서 내 앞에 떨어지는 콩고물도 챙기지 못하고, 남들은 콩고물로 집사고 땅도 산다는데 넌 뭘하느라고 그렇게 밑에서 빌빌 대느냐고....

 그리고 손바닥 잘 비비면 승진도 빠르다는데 도대체가 이 동네 면서기 김주사 보다도 빽을 못 쓰고, 재산세 낮춰 달라고 사과박스 들이 밀며 애원하는 동네머리 과수원집 영감에게 뒤퉁맞다는 소리를 안 듣나....

 모든게 온통 불평불만 덩어리로 똘똘 뭉쳐진 시집 식구들의 거침없는 핀잔에도 남편은 그냥 한번 씩 웃을 뿐이었다.
 하긴 나도 처음 남편을 만났을때 그가 세무서에 근무 한다는데 높은 점수를 주긴 주었다.
 분명히 떼돈을 모을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계산하에 막내여우가 붙혀 주는대로 못 이기는척 끌려 온게 발등 찍도록 후회스러웠다.


 막내여우는 우리부부의 중신애비이기도 하다.
 내가 세무사 사무실에 근무할때 동료 여직원친구였다.
 친구에게 놀러 왔다가 내가 타준 커피가 맛있었다고 너스레를 떨더니 어느날 갑자기 올케 하자고 샐샐 웃으며 다가왔을때 별로 싫지않은 눈치를 보인게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지 오래비하고 결혼만 하면 후회 안할거라는 거창한 피켓을 들이댈 때만 해도 난 정말 후회없는 결혼생활 할 줄 알았는데.....
 그러나 결혼하고 지금까지 15년이 넘도록 눈먼돈 한번 구경 한적도 없고 공짜 저녁 먹고 들어 온다는 희소식 한번 안겨주지 못한 융통성 없는 남편에게 서서히 질리고 있었다.
 천성이 여리고, 음침하고 부정한곳에 눈돌리지 않고, 그냥 주어지고 놓여진 대로 거부의 몸짓 한 번 놀리지 않은 대한민국 충신이지만 때때로 숨통을 막는 답답함으로 이혼도 생각했어야 하는 내 남편이기도 했다.

 많이 배운 죄로 남편은 항상 가족에게 죄인이었다.
 남편이 고등학교만 가지 않았어도 밑에 동생들은 적어도 '하빨이 학력'은 면했을거라고 온 가족이 입을 모을때면 남편은 단두대에 목을 내민 기분이었을거다.
 "그 잘난 시골 농업고등학교 시켜준게 그렇게 대단하냐고...."
 어느날 시어머니가  내속을 한번 훑고 간 뒤에 난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서 막 퇴근하고 현관문 밀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정신없이 퍼 부었다.
 영문도 모른채 고스란히 내가 뱉은 파편 그대로 뒤집어 쓴 남편이 한편으로는 불쌍했다.
 "왜그래?........"
 그러나 남편은 알고 있었을거다.

 시어머니가 내 속을 뒤집고 갔다는걸.
 번번이 우리부부에게 빚쟁이 노릇하는 가족들의 그 횡포를 왜 모를까..
 "대학까지 공부 시켰더라면 당신 명줄이라도 딸것 같이 덤빌 당신 가족들에게 당신의 존재는 과연 뭐냐....."
 그럴때마다 나를 쳐다보는 남편의 눈은 내가 보아온 내 남편의 눈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아무런 표정하나 담지 않은 덤덤한 시선을 난 항상 색깔없는 회색인이라고 핀잔을 주었는데 내가 가족얘기에 불을 붙힐때면 그의 눈은 '탁탁' 마른장작 타는 소리를 내며 덩달아 불빛을 쏘아내곤 했다.  

 그 활활 타는 눈빛을 제발 살아가는데 조금이라도 지폈더라면 요모양 요꼴로 살지 않을 거라고 한번쯤은 짚어주고 싶었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만고의 진리에 혀만 내 두를 뿐이었다.

 남편은 시집 얘기엔 알레르기를 일으킬만큼 민감하고 광적이었다.

 입에 올릴만한 좋은 얘깃거리라도 있었다면 내가 왜 거품을 물겠냐고 다잡아 묻고 싶은 적이 어디 한두번인가.

 맘에 없는 아부성 칭찬이라도 해 주는 아량을 보이기엔 시집에 대한 애정이 한올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만 얘기 할수 밖에 없었다.


 한 가정을 꾸려 나가야하는 가장이 방향키를 잡지 못하고 시집 식구들이 휘두르는 그 회오리에 휘감겨서 더듬이 잘린 벌레처럼 갈팡질팡 앞으로 달리지를 못하고 있었다.
 남편의 목은 항상 반밖에 나와 있지 않았고 시어머니의 입김이라도 몰아 칠려면 그나마 나와 있던 목마저도 자꾸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거였다
 시집 식구들에게 목청한번 높힌적 없었고 모든게 다 자기 잘못이라고 무조건 '피의자'로 자처하고 고개 들이밀고 있을때면 난 거품물고 자빠지고 싶었다
 도대체 무엇이 당신의 그 드세지도 않은 氣를 죽여 놓느냐..
 당신이 가족에게 잘못한게 뭐 있다고 쏟아지는 소나기 고스란히 맞고 있냐....
 그럼 나도 공범이냐...
 끓는물 물 뒤집어 쓴 배추같이 어느 한구석 각진 모습 보여주지 않는 남편의 시든모습을 보고 있자면 시집 식구들에게 대한 나의 반감은 갈수록 불어날수 밖에 없었다.
 막내여우가 우리 부부와 커다란 틈이 생기기 시작한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사건만 아니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