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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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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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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2)


BY bebestar 2004-09-16

꼭 그 자리를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이 있었던건 아니다. 하지만 이미 태환은 민주가 듣고 싶은 얘기를 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녀도 더 이상 그 자리에 있고 싶지가 않았다.

계속 그 싸움을 끈다면 답도 없는 그 싸움에 분명 둘의 마음만 다칠테고.. 그러고도 태환이 원한다는 이유로 그와의 잠자리도 피할 수 없을꺼라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잠시라도 좋으니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녀는 아무 망설임 없이 가겠노라고 대답을 해버린 거였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알 수 없는 민주의 반응으로 오늘도 한바탕 몸씨름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태환은 그렇게 나갔다 오겠다는 그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건 꼭 그자리에서 결론을 보지 못하면 못배겨하는 성격의 태환.

무슨 말이건 삼켜버리고마는 민주.

둘의 성격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었지만 그런 성격의 극단성이 그들이 사귀기 시작하면서 8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큰 싸움 한 번 없이 지금껏 둘의 사이를 유지 시켜주고 있다는 걸.. 그날 이 전에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한 시간만 있다가 올께요. 혹시 수아가 깨서 울면 옆집에 있으니까 전화해요."

그리고 민주는 밖으로 나왔다.

대문만 하나 벗어났을 뿐인데 가슴은 훨씬 덜 답답했다.

 

옆집에는 벌써 동네 친구들이 모여 맥주를 한잔 씩 하고 잇었다.

동네 친구들..

그러고 보니 그 동네에 이사를 온지도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낯을 많이 가리던 성격이라 남들에게 쉽게 말을 걸지 못하는 민주에게, 옆집에 살던 보미 엄마는 그 동네의 작은 일에서부터 공과금을 내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 동네에 자신과 잘 지내는 같은 연배의 애기엄마들과도 소개를 시켜주며 친구로 지낼 수 있게 다리를 놓아 주기도 했다.

여러가지 면에서 민주와는 성격도 많이 달랐지만 그녀에게는 그만큼 고마운 사람도 없었다.  

동갑내기에다가 애기들도 나이가 같았던 탓에 공통되는 대화의 주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둘은 빠르게 친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역시 모가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던 탓에, 그리고 같은 여자라는 동성이 주는 편안함때문인지 서로가 편한 사이가 되기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참 묘하게도 같은 여자이고 같은 나이였지만 알게된지 8년이 넘도록 속에 있는 말이라곤 단 한마디도 나눠 본 적이 없는 그녀의 시누이와는 너무도 비교되는 관계의 발전이었다.

옆집의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는 민주를 보며 다들 반갑게 맞아 준다.

"너무 야심한 시간에 전화해서 밤일 방해 한거 아닌가 몰라."

슬기 엄마가 장난스레 한 마디 던진말에

"아직 안 자고 있었는데?"

민주가 대답했다. 그리고 빈 의자에 앉아 잔에 술을 한 잔 받아서는 식탁에 놓았다.

"오늘도 한 잔 가지고 제사 지내다 가면 다음부터는 안 끼워 준다. 한번씩 술도 한잔씩 하고 자야지 숙면도 취하고, 아저씨도 다르게 보이고 그러는 거야."

시덥잖은 농담을 하고는 여자들이 깔깔거리며 넘어간다. 그리고 재밌다는 듯 그녀의 옆에 앉았던 동민 엄마가 민주의 어깨를 별 생각 없이 툭 쳤다. 그리고 한마디..

"수민이 엄마는 왜 사람이 건들기만 하면 그렇게 깜짝 깜짝 놀랜데?"

그 말은 언젠가 다른 친구들에게도 들은적이 있는 말이다.

"제가 정말 그런가요?  아닌데.. 난 가만히 있었는데.."

"가만히 있기는 금방도 봐. 내가 한대 툭 치니까 깜짝놀래서 좀 떨어진 옆으로 가서 앉잖아.."

그러고 보니 조금 전 보다 자리가 더 옆으로 비켜나 있다.

"우리가 우스겟 소리로 수민엄마 별명 지었는데.. 궁금하지.."

"별명? 뭔데요.. 혹시 뭐 이쁜이 이런건가?"

"이 아줌마가 술도 안마시고 취했나? 화 안낸다면 가르쳐 주지.."

민주는 눈만 깜빡이고 앉았다.

"환자야 환자. 그것도 접촉기피증 환자.."

"접촉 기피증 환자? 그게 무슨 병이지? 정말 그런 병이 있는거예요?"

다시 웃음소리가 요란하다. 그런 병이 어딨냐며 그냥 갖다 붙인 별명이란다. 사람이 옆에 오는 걸 싫어 하는 것 같아보였다나 어쨌다나 하면서..

그날 저녁의 술자리도 사람 살아가는 얘기로 무수한 말들이, 의견들이 오고 갔지만 민주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 그리고 술 잔만 기울였다. 평소에는 딱 한잔 만 다 마시라고 주위에서 아무리 권해도 결국은 한 잔도 안마시고 반 이상을 남겨놓던 그녀가 권하지도 않은 술을 혼자 홀짝 거리면서 마시는 걸 보고는 '오늘 5년 만에 처음으로 수민엄마 망가지는 모습을 보겠네.. '하며 술잔이 비기가 무섭게 술을 따라줬다.

얼마나 마신걸까..

민주는 앉아있는데도  자리가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럴즈음에 대화의 주제는 조금전 TV에서 나왔던 성추행범으로 넘어가 있었고, 한 마디도 않고 있던 민주가 입을 열기 전까지 그 남자는 아줌마들의 입에서 몇번의 사형 집행의식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 저런 인간은 이 세상에 살게 내버려두면 안돼. 그래 사형이 좋겠네.."

"우와 술을 마시더니 사람이 대담해 지네.. 괜찮은 거야?"

걱정스런 눈으로 보미엄마가 민주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요. 괜찮고 말고요. 이정도 쯤이야.. 왜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지 알겠네..

내가 접촉.. 뭐? 아니 접촉기피증 환자라구요?  야.. 그거 너무 재밌는 별명이다. 넘 재밌어..

이건 비밀인데.. 우리 엄마 한테도 비밀로 한 건데.. 내가 왜 사람들이랑 닿는 걸 싫어 하는지 말해 줄까요?"

취기가 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술냄새 섞인 불쾌한 남자의 호흡이 다시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살아나고 있었다.

 

엄마가 없는 집..

여덟 살에 민주가 느끼는 집은 따뚯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감옥이다.

그날도 민주는 가방을 벗어 놓고는 밖으로 나갔다. 딱히 집에있어도 그녀를 챙겨 줄 사람이 없다. 점심도 굶었지만 할머니께 밥을 차려달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동생이라도 있었다면 그 틈에 끼어 밥을 먹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동생 역시 밖에서 놀고 있었다. 그날도 해가 늬엿늬엿 넘어 가는 시간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틈엔지 동생과 언니는 벌써 집에 들어와있었고 벌써 옷까지 다 갈아 입고는 할머니 앞에 기대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현관으로 들어서려는데 마루 끝에 엄마의 가방이 보였다.

'어 !  엄마가 벌써 왔네. '

엄마의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께 엄마가 어디갔는지 물어보고 싶엇지만  그냥 찾아 보기로 했다. 살금 살금 대문을 빠져나와 시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분명 엄마가 잘 가는 수예점에 있을꺼라는 생각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 내려갔다. 그런데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가게를 둘러 시장을 다 돌아봤는데도 엄마는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찾고 다니는 것을 본 시장 상인 아주머니가 민주를 알아보고는 말을 걸었다.

"얘야 , 너 엄마 찾는거야? 네 엄마 좀 전에 뜨게실 사가지고 집에 올라간다고 갔어.

어두워 졌는데 집에 빨리 가봐라. 엄마도 너 찾겠다. "

"네 고맙습니다."

민주는 아주머니가 고마웠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뛰어올라 갔다. 어느샌가 날은 이미 저물어 있었다. 어둑해지는 동네 어귀에 들어서니 여태 몰랐었는데 날이 많이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닥 다닥 붙어 있는 집들의 창에선 모두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고 저녁을 준비하는 냄새에 민주는 점심도 먹지 못했다는 생각에 배가 더 고프게 느껴졌다.

걸음을 재촉하던 민주는 두 집 건너에 있는 엄마의 친구집에 눈길이 머물렀다. 얼핏 그 집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동네에서 가장 친한 엄마의 친구였다.

민주는 열려 있는 대문을 빼꼼히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불이 켜져 있는 마루가 보였다. 현관을 열고 엄마를 불렀지만 왠일인지 안에선 인기척이 없었다. '잘못들었나?'하며 민주는 돌아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현관에 엄마의 신발이 나란히 놓여 있는 거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가 편하다며 자기가 신던 것과 똑같은 신발을 엄마 친구의 생일날 선물 햇었던 거였다.

민주는 왠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엄마.. 집에 가자.."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다.

마루를 지나 큰방에 미닫이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방문이 확 열렸다.

그바람에 깜짝놀란 민주는 마루쪽으로  나가 떨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봤더니 엄마 친구의 남동생이 어두운 방 쪽에 서서 민주를 쳐다 보고 있었다.

엄마를 따라 다니며 알게된 엄마 친구의 동생이라 민주는 그를 삼촌이라 부르며 잘따랐다. .

민주는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 엄마는 아니었지만 그 삼촌도 민주에게 친절히 대해주는 따뜻한 사람중에 한명이었던 탓이다.

"어.. 삼촌 , 혹시 우리 엄마 여기 안 왔어요?  저기 보니까 신발이 있어서 엄마가 있는 줄 알고 들어왔는데 .."

....

민주를 보는 그의 눈에 촛점이 없다는 걸 조금더 일찍 알았어야 했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아직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있던 민주에게로 그가 다가왔다.

그리고... 그리고..

목을 조르듯 가슴쪽을 팔꿈치로 눌러 숨이 답답했다.

그는 몸을 가누지 못 할 정도로 취해 있었지만 '괜찮다. 가만있어..가만있어'라는 말을 연신 내뱉였다. 그가 숨을 내 쉴때마다 입김과 함께 술냄새가 민주의 얼굴로 쏟아졌고 그 냄새에 숨을 참느라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술...

모든 이성을 마비 시킬만큼 먹었던 술이 그의 몸도 마비 시켜놓기까지 지루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의 늘어진 몸에 깔려 꼼짝도 할 수 가 없었지만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밀쳐냈다. 그럴수록 일그러진 얼굴로 그도 더욱 밀리지 않겠다는 듯 민주를 꼼짝 못하게 제지시킨다. 울고 싶은데 울 수도 없다. 숨을 쉴 수도 없다. 넘어지며 바닥에 부딪힌 머리가 "깨질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바닥이 돌고  천장이 돌고 민주 위에서 웃음을 흘리는 그 인간의 얼굴이 돌아간다....

그러다가 그가 움찔 했다. 구토를 하려는 거였다.

지금이다... 머릿속에서 도망치라는 울림이  온 신경을 자극했다.

다시 그를 힘껏 밀쳤다. 그가 옆으로 나뒹굴었다.

어떻게 그 집을 빠져 나왔는지 기억이 없다.

민주의 뒷통수에 대고 그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어른한테 이르면 가만두지 않겠다.' 하지만 그 말보다도 이젠 살았다는 생각만..

집으로 뛰어 들어와 대문을 세게 닫았다.

엄마는 아직 집에 없었다.

그 소리에 놀라 TV에 정신이 팔려있던 할머니와 언니, 동생의 얼굴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는게 보였다.

흩어진 옷 매무세며, 그 인간의 구토물이 머리에 뭍어 민주의 모습이 엉망이다.

그 날..

할머니는 나가서 날이 다 저물어서야 집에 들어 온 것과 계집애가 조신하게 놀지 않고 옷이며 머리를  더럽히며 놀았다고 두가지 이유를 들어 민주를 벌 세웠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어떤 소리도 더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할 수 가 없었다. 엄마를 찾으러 갔었다는 말은 더더욱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으로 벽에 기대 손을 들고 10여분을 버티던 민주는 그대로 자리에 꼬꾸라져 정신을 잃었다.

그날 이후로 민주는 학교에 다녀 온 후 절대 집을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할머니와 같이 있어야 하는 집도 싫었지만, 그보다 더 싫은 것이 사람들을 보는 것이었다.

사주에 '역마살'이 두 개나 있기때문에 밖으로만 돌꺼라는 엄마의 장담도 잠재울 만큼 그날일은 민주에게 충격적인 일이었다.

부당하더라도 아무말 하지 않고,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적어도 집 밖으로 내어 쫒지는 않을꺼라는 기대로 민주는 더욱 말 수를 줄였다.

동네에서 엄마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

엄마가 가장 아끼는 친구..

자신의 일로 해서 엄마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를 잃는다는게 싫었다. 그래서 그 일을 혼자만의 비밀로 가슴에 묻었다.

자기만 입을 열지 않으면 세상에 그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밖으로 쏟아내지 못했던 그 말들이 속에서 곪아  민주의 그런 버릇이 생기기까지 혼자 울어야 했었던 시간은 또 얼마 였는지..

 

민주는 아직 바닥이 빙글빙글 돌았다. 술에 취해 도대체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벌써 20년이나 지났지만  어느것 하나도 흐려지지 않은 그날의 기억으로 다시 몸서리가 처졌지만, 엄마를 위해 그때 삼켰던 말을.. 오늘은 누구라도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뱉어고 있었다.

그리고 침묵..

항상 '너랑 같이 사는 아저씨는 정말 피곤하겠다.'며 농담을 하던 친구들도 아무 말이 없다.

"그래서 그렇게 싫다고만 했던 거야?"

가만히 민주의 손을 잡아주는 보미 엄마의 손이 너무 따뜻했다.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싫지 않을 수도 있다는걸...

하지만 그런 친구들의 마음을 느끼면서도, 몸을 가눌수 없이 마신 술로 인해 그냥 앉아 있기만 하는것도 힘든 그 상황에도 더 말하지 못한게 있었다.

언젠가 친구들의 아저씨들까지 같이 한 잔을 하던 그날..

태환이 민주를 치켜세워 주고자 했던 말들로 인해, 그 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 말에 동조했다는 그 이유로... 오늘같은 날 조차도 정말 털고 싶었던 맘에 있는 그 말을 그녀의 알량한 자존심이  막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