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하고 난 후 재인의 일상은 평화로웠다.
인준을 보고 있으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준형을 받아 들이고 난 재인은 이상스레 담담해 졌다.
천성적으로 남에게 모질지 못한 재인이었다.
그날 이후 준형은
자신의 인생을 인준과 재인에게 걸기로 하였다
자신을 부담스러워하는 처가의 눈치를 보면서도
매일 재인의 집으로 갔다.
인은 그런 준형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하였으나 장모는 달랐다.
아무런 내색않고 준형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려 하였고
마음이 상할까봐 배려 했다.
그런 장모의 존재는 또 다르게 준형의 목을 메게 하였다.
따뜻한 저녁을 재인의 집에서 먹는 날이면 준형은 목이 메였다.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는 준형을 보면서
장모는 안스러워 옆에서 자꾸만 다른 음식들을 권하곤 하였다.
'그러길래 이눔아 내 새끼에게 조금만 잘하지'
딱하고 가련했다.
사위는 어려서 부터 남달리 총명했다고 했다.
처음 재인이 집에 결혼한다고 준형을 데려왔을때
모두들 반대했지만
재기 넘치는 눈빛에 호감이 간 어머니는 반대를 하지 않았었다.
나중에
준형의 집안 얘기를 듣고서는 조금 께름칙 했지만
본인의 인성을 믿고 있었다.
하지만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고 하였던가?
죽은 바깥 사돈이 대단히
성격이 갈갈하고 유독 자기 아내에게 모질었다 한다.
주위 사람들의 말로는 준형의 어머니가
너무 여자답지 못하고 바깥으로만 나돌아 남편이
아무리 잘해 보려고 해도 잘되지 않은 이유가 있다고 하여서 그려러니 했다.
결혼 전 상견례시
안사돈 자리가 정말 맘에 들지 않았으나
재인에게 같이 살지는 말고 할 도리를 다 하라는 충고만 하고 허락하였다.
다행히 준형이 어머니와 같이 살지는 않는다고 단호하게 못 박아
그 점이 마음에 들었던 터였다.
손주를 보자
재인의 어머니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도 아이에게 아비는 있어야겠기에......
하지만 아들 인이의 생각은 달랐다.
"안돼요, 어머니, 절대
누나에게 저 자식은 절대 도움 안돼요"
"무슨 소리, 말조심해라"
"어머니, 한번 그런 놈이 두번 안한다는 보장없어요
싹수가 노란 집안이예요, 누나 얼마나 더 고생하게요"
동생과 어머니가 매일 이런 상황을 연출해도
재인은 도무지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답답한 인이 재인에게 닥달한다
"누나 절대 저인간과 다시 엮이면 안돼요? 알지?"
"........"
조용한 재인의 모습을 보며 인은 한 걸음 물러선다.
이런 누나의 모습은 뭔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을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인의 생각에 누나인 재인의 처사는 늘 현명했고
그 판단이 자신이나 가족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불리하지 않았기에
한걸음 물러서 누나를 바라 보기로 한다
어렸을때 부터 자신의 보호자 였던 누나이기에
인의 가슴은 더 아프다.
누나의 삶에 자신이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한동안 얼마나 괴로웠던가?
누나의 아들인 인준을 보며
착찹했다.
어쩌면 저 아이가 누나에게 '라훌라'가 아닐까?
인준이라는 이름도 마음에 걸렸고
준형을 빼담은 이목구비도 싫었다.
라훌라는 부처님 아들의 이름이었다.
출가로 마음을 굳힌 부처님이 자신의 아내가 출산하였다는 소식에
"라훌라, 라훌라(장애가 생겼구나, 장애가..)" 가슴 아픈 탄식을 하였는데
그것도 모르는 시종이 그대로 전하여 이름이 라훌라라 하였던가?
'누나에게 부디 조카가 장애가 아닌
축복이기를'
인의 답답한 마음을 알고 있는 재인이었기에
아무런 답을 할 수 가 없었다.
하지만 재인의 마음은 정하여 졌다.
굳이 준형과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보다는
물이 흐르는데로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부부의 인연은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게 아니라는것을 익히 알았기에
재인은 가만히 흘러가는데로 두고 보기로 하였다.
재인의 눈매는 1년전보다 훨씬 깊어져 있었다.
어떤 결단을 내린다 해도 자신이 원하는대로 가는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태를 빌어 태어난 아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 할 생각이 있는 재인이었다.
모자의 인연은 깊고도 깊은것이고
자신이 감당할 만큼의 몫을 아들이 요구 할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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