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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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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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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날개 위에


BY 데미안 2004-09-10

 

얼음공주 - 모두 안녕.

나르시스 - 안녕요.

애로숙녀 - 언냐 안뇽. 오늘 머해써..

하늘바람 - 어, 누님. 안 자고 이 시간에 왠일?

얼음공주 - 잠이 안 와서. ㅎㅎㅎㅎㅎ...근데 모두 열심이네.

애로숙녀 - 미챠!!!! 오늘 머 했냐니깐.

 

공재희는 웃었다.

애로숙녀는 올해 열 일곱의 고등학생이다. 그래서 밤에만 들어 오는데 학생이라서 그런지 발랄하기가 이럴때없고 붙임성도 좋아 오즈의 모든 사람이 그녀의 친구다. 대화를 할때도 애로숙녀는 문법이나 단어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처음에는 알아 듣지 못한 말도 많았다.

그리고 나르시스란 아이디의 남자는 애로숙녀의 두번째 애인이다. 나이는 비밀이랜다.

나르시스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애로숙녀와 나르시스는 오즈상에서 공개적인 연인이다.

지금도 그렇다. 나르시스는 보란듯이 애로숙녀를 뒤에서 끌어 안은 자세로 낚시를 하고 있다. 그들은 가끔 남들이 볼 수 없게 귀속말로 대화를 한다.

 

얼음공주 - 미성년자가 궁금한 것도 많네. 그냥 돌아 다녔어.

애로숙녀 - 또 혼자?

얼음공주 - ㅎㅎㅎㅎㅎ

애로숙녀 - 에궁... 앤(애인) 하나 맹글어. 요즘 중딩도 앤 다 있는데 언냐는 머 하노? 울 샘 하고 엮어 주까?

얼음공주 - 됐네요, 이 아가씨야.

애로숙녀는 레벨이  37로 중간계의 백작 신분을 갖고 있고 나르시스는 레벨이 무려 51로 신성계의 시민이다. 하늘바람은 애로숙녀와 같은 신분이고 얼음공주는 이제 겨우 21의 인간ㄱ계 자작이다.

얼음공주 - 카제짱님 왔었어?

애로숙녀 - 아닝... 언냐가 없는 거 어케 그리도 잘 아는지.  하여튼 카제짱 미워잉....

얼음공주는 애로숙녀가 카제짱을 맘에 두고 있음을 안다. 스스로 밝힌 사실이다. 오즈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넘어 오지 않은 남자라고...이제는 포기했다고. 그러면서 얼음공주에게 넘기겠다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애로숙녀 - 언냐. 비결이 머야?

얼음숙녀 - 뭐?

애로숙녀 - 그 많은 여자들한테는 '노'를 부르짖던 카제짱 옵(오빠)이 언냐를 연인으로 점 찍었잔우. 비결이 머우?

얼음공주 - ㅎㅎㅎ 카제짱한테 물어봐.

애로숙녀 - ㅊㅊㅊㅊㅊㅊ(치)...에궁 배 아퍼. ㅋㅋㅋㅋㅋㅋ... 근데 두 사람 진짜 앤해도 참 잘 어울릴 것 같어

애인...애인이라......

 

공 재희 나이 열 아홉 때 이 건우를 만났다.

그는 유쾌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어디 한 군데 모난 구석이 없는 사람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호감을 불러 일으키는 성격의  사람이었다. 함께 있음 언제나 즐거운 그런 인물이었다.

아르바이트로 학교 앞 호프집에서 노래를 부르는 남자.

그의 입을 통해 처음 들었던 Bob Dylan의 knockin' on heaven's door....

어머니 이 계급장을 떼 주세요.

더 이상 나는 이 계급장을 사용할 수 없어요.

날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 지고 있어요.

나는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아요......

두드려요 두드려요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

그 노래가 왜 그렇게 눈물 난 만큼 감미롭게 들려 오는지....

그의 목소리 탓일까.

내내 자신을 보는 따스함이 담긴 그의 눈빛 탓일까.

재희에게 사랑은 그렇게 찾아 왔다. 열 아홉. 입시를 코앞에 둔 고 3에게 사랑은 치명적일 수도 있으나 재희에게는 행운이었다.

건우가 찍어 주는 문제들은 선생이 열 시간을 가르쳐 주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이었다. 덕분에 재희는 어렵잖게 대학에 합격을 했다.

건우는 재희의 합격을 근사하게 축하 해주었다.

<무랑 루즈>라는 레스토랑에서....

 

<무랑 루즈>....

참으로 오랜 세월 잊고 지낸 곳이다.

[맞어. 고교때 참 많이도 가던 곳인데...]

미혜도 기억하고 있었다.  여고때를 떠올리는 미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김치라이스가 기가 막혔지. 한달에 한 두세번은 갔었나?]

[아마도... 아직 있을까?]

[야, 말 나온 김에 오늘 함 가볼까?]

미혜의 갑작스런 제안에 재희는 뜨끔했으나...

재희는 결국 미혜와 함께 그 곳을 찾았다.

[어머나 세상에! 아직도 있네. 도대체 얼마만이니...]

그랬다.

<무랑 루즈>는 그곳에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감개가 새로웠다. 주위가 조금은 현대적으로 변했으나 <무랑 루즈>는 그 곳에 있었다.

[안에도 변했을까?]

미혜는 재희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 섰다.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보다 두 배는 넓어 보였고 이제는 레스토랑이 아니라 재즈 까페가 되어 있었다.

재희와 미혜는 구석진 자리의 작은 테이블에 자리하고 앉았다.

[분위기 죽인다.]

미혜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딱 지금 우리 나이의 분위기네. 실내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게 딱이다 야.]

웨이터가 조용하고 부드럽게 다가왔다. 칵테일을 시켰다.

[손님들도 봐라. 세련되고 매너 있어 뵈고 돈도 있어 보이잖냐? 재희야, 난 여기가 진짜 맘에 든다. 옛날에도 맘에 들었지만 지금은 더 좋아. 어쩌면 좋냐]

재희는 하여튼 못말릴 위인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무대 위에서 한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긴 파머 머리를 늘어 뜨리고 긴 드레스를 입고 불빛을 받으며 여자가 부르는 노래는  Roberta Flack 의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이었다.

흑인 특유의 흐느끼는 듯한 창법을, 그 여자는 용케도 소화해내고 있었다.

그 남자...이 건우도 팝을 잘 불렀다.

그가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는 마치 날개라도 달린 듯 재희에게로 사뿐히 날아와 앉곤 했다.

명치 끝이 아파왔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픔은 늘 새로운 아픔이 되어 재희를 괴롭혔다.

추억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다.

 

재희는 앞에 놓이는 칵테일을 그대로 들이켰다. 독한 향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가슴속까지 태웠다.  재희는 미혜의 잔마져 뺏어 마셨다. 아찔한 순간도 잠시 추억은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웨이터를 불렀다.

[야가, 야가! 니 지금 뭐하는지 알고나 있냐? 칵테일도 술인데 그렇게 냉수 마시듯 마시면 어떡하냐?]

다소 걱정스런 말투로 미혜가 재희를 빤히 응시했다.

[우리 오랜만에 한번 취해볼래? <무랑 루즈>를 다시 찾은 기념으로. 참, 진희도 부를래? 니가 전화 함 해봐라. 그 기집애 본 지도 좀 된 것 같은데...]

[야, 유부녀가 이 시간에 여길 오겠냐? 다 니 같은 줄 알어? 하여튼....]

하면서도 휴대폰을 꺼내는 미혜의 손길이 급했다.

무대로 향하는 재희의 눈에 슬쩍 이슬이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