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쨔샤! 다른 사람 같으면 네 시간이면 끝날 수 있는데 여태껏 칠하고
있으면 아웃사이드 스프레이는 내일도 해야 되잖아.
아직 롤링도 다 못했으니.... 미안하지만 네 인건비는 계산해 줄 수가
없다.”고 경칠 이가 말했다.
새벽 7시에 나를 일터에 내려준 뒤 하루 종일 어디로 사라졌다가
오후 늦게 와서 내게 하는 소리였다.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은 맨 처음에 공항에 내렸을 때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 마중하러 나왔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하는 일이
정해진다고 한다. 나도 경칠이의 페인트 칠하는 일을 오던 다음날부터
따라다니기 시작하였다.
일 한지 삼일쯤부터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볕에 그을린 피부는
벌겋게 달아올라 한 꺼풀씩 때처럼 밀리기 시작하였다.
마치 누에고치가 허물을 벗고 새로운 세계로 나가 살아가는 것처럼
내 살갗은 세 번씩이나 두 팔뚝과 등, 얼굴의 피부가 공중목욕탕에서
퉁퉁 불은 때를 빡빡 밀어내는 것처럼 벗겨져 나갔다.
“진국아, 이곳은 기술 없으면 살수가 없는 나라야.
너는 나한테 ‘뺑 끼’ 칠 배우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야 돼.”
경칠 녀석은 툭 하면 기술타령 이었다.
나는 후회하기 시작하였다.
언제쯤이나 선희 와 함께 예쁜 집에서 함께 밥 먹고 같이 잠자면서
지낼 수가 있는 건지 처음 와 보는 깜깜한 밤길을 무턱대고 한발씩
내딛는 기분이었다. 그 후로도 경칠 은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여섯 달 동안이나 일한 것을 단 한 푼 도 주지 않았다.
선희 와 함께 모아서 가져온 돈도 다 떨어져 도저히 지낼 수가 없게 되자
나는 페인트 가게에서 알게 된 김씨라는 사람과 함께 룸메이트를
하기로 하고 경칠 의 집 을 나왔다.
“진국씨도 이런 카드 받으려고 저와 결혼한거에요. 영주권 이라고도
하고 그린카드라고 부르기도 해요.”
한국의 주민등록증 크기의 플라스틱에는 옆얼굴 의 명순 이
오른쪽 귀만 보이며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위에는 ‘퍼 머 넨 트 레지던트 카드’라고 씌어 있었다.
이 영주권이 없이 불법체류자로 미국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부모 잃은 고아신세나 다름없다고 한다.
한국의 명문학교 출신들도 취직을 할 수가 없어 청소나 잔디 깎는 일,
수영장청소, 또는 나처럼 페인트일 같은 막노동밖에는 할 일이 없다.
또한 그들의 자녀들은 아무리 똑똑해도 대학에서 받아주질 않아
변변한 직업의 길은 항상 멀리만 있었다.
그리고 한국과 미국에서 이산가족이 되어 생이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몇 십만 명이라는 통계는 신문지상에서 항상
떠들고 있는 숫자였다.
언제 추방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싸여 친한 사람에게조차도
말 못하는 벙어리로 살아야만 되는 것이 바로 이 조그만 영주권의
위대함인 것이다.
나도 이민 알선업체에다 그동안 일년 치 월급을 둘이 모은 것과
선희 가 언니한테 빌려온 돈을 합쳐 삼만 불 을 주고 ‘조 명순’ 이란
여자와 위장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시민권을 가진 사람과의 결혼이 가족초청 이민 순위 중
가장 빠르게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명순 은 영주권자 였지만 이미 시민권신청 을 해서 시험까지 합격해놓은
상태로 두어 달 뒤에 선서식을 앞두고 있어 이민 브로커 하는
그녀의 오빠가 한번 목돈이나 만져보자고 설득하는 바람에
나와의 인연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었다.
우리 의 위장결혼 으로 내가 영주권을 받게 되면, 6개월쯤 지난 뒤에
이혼하고 다시 선희와 결혼하여 가족초청 이민으로 미국에 데리고 오려는
것이 나의작전이었다.
또 선희 가 가장 좋아하는 베이컨과 스테이크를 맘껏 먹일 수 있는
천사의 도시 엘에이가 너무 행복하게 보였고, 빨리 가서 둘이 같이
살고 싶은 급한 마음이 명순 을 만나게 된 계기가 된 것 이었다.
명순이 시민권 증서를 받은 지 한달이 지나면 둘이는 결혼식을 하기로
하였다. 우리의 위장 결혼식은 하루 만에 모든 증명을 받을 수 있는
라스베가스에 가서 하기로 하였다.
“그곳에서 결혼식 끝나면 하루 자고 오는 거지?”
경칠 이가 부러워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거기서 마지막 비행기로 밤 열시에 오려고 하는데....”
나는 어설프게 응답하였다.
그는 너무 어이없어 한심하다는 뜻의 눈으로 한참을 쳐다보더니
충고해 주듯이 이런 말 을 하는 것 이었다.
“진국아! 미국은 여자 만나기가 쉽지 않은 나라야.
그래서 왕년엔 여자들한테 인기있던 남자들도 사십 넘도록 장가못가는
노총각들이 너무 많고 또 홀 애비들도 엄청 넘치는 곳이야.
기회는 항상 있는 게 아니라구.. 공짜나 마찬가진데 잘해봐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글쎄....”
사실 가짜결혼임이 탄로 날 경우 둘 다 무거운 죄인으로 분류되어
다시 한국으로 추방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금액의 벌금과 함께 다시는 미국에 들어 올수가 없는 것이라 하니
은근히 겁도 나고, 다시는 선희 를 만나지도 못하고 먼 이국에서
철창에라도 가게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의 갈등으로 며칠을방황하기도
하였다.
그런 사연의 조 명순 이 와 내가 결혼하기로 되어 있는 날은
시월의 마지막 토요일 이었다.
아침 일찍 그녀의 집에 도착하여 빼놓은 서류가 없는지 확인한 후
함께 출발하였다.
이따금씩 옆에 있는 이 여자가 선희 라면 얼마나 좋을까?
참 오늘 같은 날은 결혼식 하기에 알맞은 날씨로군 하고 생각했다.
인디안 썸머 의 따가운 가을 햇볕은 이마에 송글송글 땀을 맺히게 하였다.
스물 세 살의 명순 은 복숭아 빛 뺨과 도톰한 입술에 칠한 엷은
살색 립스틱이 정말 신부같이 우아해 보였다.
긴 생머리는 한 갈래로 묶어 밝은 적갈색의 헝겊을 리본으로 만들어
감아올리고 손톱엔 진홍빛 메니 큐어 를 바르고 있었다.
끈 없는 높은 분홍 슬리퍼를 신고 하얀 줄무늬가 있는 바다색깔의 원피스
를 입고 네바다 주에 있는 휘황찬란한 라스베가스로 박하사탕 같은
냄새를 풍기면서 우리는 같이 떠났다.
그곳의 알선책인 ‘에 릭’ 이라는 한국남자가 데리고 간 우중충한 건물의
웨딩채플에서 선희 가 아닌 명순 과의 결혼식은 미국인 목사의 싸인 으로
10분 만에 끝 이 났다.
평소 입던 옷 그대로의 결혼사진도 몇 장 찍어 두었다.
나중에 이민국 인터뷰 할 때 제출용 이라고 하였다.
“이곳 네바다 주는 카지노 수입 다음으로 웨딩 채플과 결혼라이선스
발행 수수료로 유지된답니다.” 하고 그가 설명해주었다.
결혼식 후 같이 간곳은 시청이었는데 세계 곳곳에서 각종 증명을
신청하러 온 사람들이 요즈음 들어 너무 많아져 오늘 접수시키면
일주일 쯤 뒤에야 서류가 나온다고 하였다.
나도 아까의 그 미국인 목사가 싸인 하고‘ 에 릭’ 이 우리 결혼식의
증인이 되어주었던 “결혼증명서” 와 함께 “결혼라이센스” 를 신청하였다.
라스베가스에서의 결혼서류를 도와주는 맡은 일이 끝난 ‘에 릭’이란
사람이 가 버리고 나자 비행기시간이 다섯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그래도 결혼 한 날인데 근사한 저녁이라도 해야 되겠지요?”
내가 어색한 분위기를 염려해 던진 말이었다.
“ 그냥 우리도 슬롯머신 한번 하고 가요.”그녀가 대답하였다.
그녀는 휘청거리는 그곳의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사방에서 ‘딩-딩 딩딩’하고 동전 떨어지는 소리, 옆 자리에 있던
백인할아버지의 잭팟 터지는 환호성 ,핫 미니스커트 아가씨의 음료 써비스,
화려한 오색네온 조명들...라스베가스의 밤은 우리도 일순간에 큰돈을
가질 수 있다는 황홀한 유혹의 흥분으로 저녁도 굶은 채 도박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그러나 알맹이 없는 껍데기뿐인 결혼식을 치른 뒤 불과 서너 시간 만에
나는 한 달 동안 페인트 일해서 번 일당을 몽땅 기계에 쳐 박아놓고
씁쓸히 공항으로 되돌아 와야만 했다.
그녀 의 지갑에도 99센트짜리 맥도널드햄버거 하나 사먹을 여유조차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