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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런 여자[14]


BY 플레이 걸....ㅋㅋ 2009-12-04

점심시간에 잠깐 유미가 사무실로 찾아 왔다. 수진에게 사무실을 맡기고 휴게실로 향했다. 퇴근후 가기로한 여행에 대해서 무슨말이 있어서 온것 같아 맘이 조금 무거웠다. 약속 어기는것 정말 싫어하는 유미인데, 유미의 안색이 별로 안좋아 보여 맘이 더 심란했다.커피을 뽑아 테이블로 가며 유미가 갑자기 한숨을 작게 내 쉬었다. 뭔가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걸까?얼굴이 많이 심각해 보였다.

 

"저녁에 여행가기로 한것 미안한데 다음으로 미루면 안될까?"

 

좀 놀라웠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길 유미가 먼저 미안해 하며, 조심스럽게 말하는 거에 대해서, 난 좀 놀랍다는 얼굴을 했다.

 

"미안 나한테 좀 곤란한 일이 생겨버렸어. 너 요즘 기분 않좋은것 같아, 기분 풀어 주려고 했는데, 대신 담에 갈땐 모든 비용 내가 전부 댈께 응?"

 

"아냐, 괜찮아 .사실 나도 좀 사정이 생겨 못갈것 같다는 얘길 하려고 했어.그렇게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

 

유미가 너무 미안해 하는것 같아 괜히 양심에 찔려 그렇게 말했다. 유민 그런 날 잠시 보더니 혼자 무슨생각을 하는지 고갤 끄떡 였다.마치 무언가를 아는 듯한 눈빛, 갑자기 가슴이 쿵쾅 거리며 뛰기 시작했다.우리가 그러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몇명의 여자들이 들어왔다. 회사에서 거의 마주치기 힘든 혜리가 날 보더니 고갤 까닥이며 웃어 보였다. 유미에겐 잠시 시선을 주다가 곧 새침해지는 얼굴빛을 보이며 고갤 돌려 일행에게로 갔다.

 

좀 이상했다. 나보다도  오히려 유미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인데, 모임에서도 둘이 쿵짝이 잘맞는 사람들 이였는데, 둘다 시큰둥한 얼굴로 서로 못본척 외면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지 아무런 관심없는척 무표정을 가장하고 있는 유미나 이쪽으로 신경을 바짝 세우고 있으면서 같이온 일행의 얘기에 건성으로 고갤 끄떡여 보이는 혜리. 둘 사이의 미묘함이 내 예민한 신경줄에 걸렸다.

 

 "불편하면 나갈까? 옥상의 단풍이 예쁘게 색을 진하게 내뿜고 있던데.너 바쁘지 않음 그리로 가서 잠깐 얘기좀 하자."
 

내 제안에 유민 별다른 말 없이 고갤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신영선배 가게요?"

 

내게 얼굴을 돌리며 묻는 혜리 였다. 난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우리부 수진이와 같은 학교 선.후배 사이라고 했다. 가끔 둘이 어울려 다니는걸 본적이 있다. 붙임성 좋은 사람이라서 안면 트기 까다로운 나하고도 금방 친한관계가 되었다.

 

옥상위 휴게실은 점심시간이 끝난 지금은 아무도 없이 한가했다.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시내풍경은 보기가 좋았다. 높은 빌딩 숲 사이로 이런 작은 공원이 있다니, 비록 콘크리트 위에 만든 인공 공원이긴 하지만 그래도 푸른색의 나무들을 보니 기분이 한결 밝아졌다.

 

"너 윤동진씨와 무슨일 있지?둘 사이가 평범해 보이진 않던데?"

 

맘속으로 짐작만 하고 있던 얘길 꺼내 들었다.내 얘기에 유민 잠시 날 보더니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기며, 또 작게 한숨을 쉬었다.유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여 갑자기 긴장이 되면서 가슴이 조여왔다.정말 무슨일이 있는 걸까?근데 그게 내 생각과는 달리 안좋은 방향으로 진행되어지는 걸까?유미의 침묵에 난 점점 조급함에 참을성을 잃어 가려 하고 있었다.

 

"덫에 걸려 버린것 같아. 한번 발을 디딛으면 한없이 빠져 버리는 덫. 발을 빼기가 너무도 힘들어.나 어쩌면 좋으니...."

 

'쿵' 무언가가 내 속에서 쿵 하고 떨어져 내린 느낌이 들었다. 언제 담고 있었는지 말끝냄과 동시에 볼위로 떨어지는 커다란 눈물 방울들. 작게 쉬어지는 숨소리 조차 한호흡, 한호흡 ,떨려 나오는 유미의 흐느낌은 날 공황상태로 휘몰고 갔다.여자 장군 처럼.철의 여왕 대처 처럼,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힐러리 여사 처럼,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냉철한 사고력의 한유미가 왜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이며 허물어 짐을 보이는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준비해온 손수건이나 휴지조차 없어 그냥 흘러 내리는 눈물을 보고만 있는 시간이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갑작스런 상황전개에 당황스러웠다.점심시간이 한참 지난지라 어떤 말도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흐느끼는 유밀 안아만 주고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사무실에 들어와서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무언가 짠 음식을 잔뜩 먹은 사람처럼 하루종일 갈증이 나 탕비실을 오가며 차와 음료 또는 생수만 먹어 대고 있었다. 그에 비례해서 화장실도 몇번을 들락거리고, 그러다 결국 수진이에게 한마디 들었다.

 

"대체 왜그래?점심 먹은게 뭐 잘못 됐어....?왜 이리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건데...?"

 

권실장은 점심약속이 있다며 사장과 나간후 아직 들어오지 않고 있어 사무실엔 다행이 나와 수진이 뿐이였다. 난 수진일 보며 좀 망설이다가 물었다.

 

"너 마켓팅부 이혜리 하고 친하지?"

 

"혜리 선배?"

 

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며 ....?"

 

"그건 맞지만 ,친한건 아냐.그냥 몇번 같이 어울린 적은 있지만, 노는 물이 달라서....."

 

"노는 물이 다르다니?그게 무슨 소리야....?"

 

 "언니도 잘알잖아?동기 모임. 이름이 뭐더라...?암튼 같은 동아리 팀 이라며 나보다 언니가 더 친하지 않아?"

 

"난 그모임에 잘 안나가잖아.이젠 거의 제명 수준인걸? 노는물이 다르다는 말이 무슨말야..?"

 

"글쎄,괜히 말 옮기는것 같아 좀 꺼림칙 한데, 언니가 워낙 입이 무겁고, 회사내에서 짧은 교우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말이 새나갈 염려가 없으니까 ,그래도 이건 좀 아닌것 같은데.."

 

"할말 다 해놓고 너무 뜸들인다 .너 이미 노는물이 틀리다고 말했잖아.넌 이미 내게 다 말한거야....."

 

내말에 쿡쿡 거리며 수진은 웃음을 지었다.

 

"그 선배 굉장히 계산 적이거든. 아,물론 나도 그렇긴 하지만, 난 그래도 조건 보단 맘이 먼저 다가서는데, 그 선밴 물욕이 굉장히 강해서 우리 학교 다닐때도 장난 아니게 콧대가 높았거든? 별볼일 없는 남자는 친구로도 안만나는 사람이였어.자기에게 이롭지 않은 사람은 철저히 배척하는 그런 사람. 좀 인간미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지...."

 

"그게 무슨소리야......?알아 듣기 쉽게 말해봐."

 

"그 동기 모임 혜리 선배 다 목적이 있어서 나간거 였어"

 

"우리 모임? 그건 입사 동기들 끼리 만든 모임이야......"

 

" 그렇지?사실 근데 혜리언닌 몇달 늦게 입사 했는데 자청해서 들어간거잖아.....몰랐어...?"

 

생각해 보니 그런것 같았다. 우리 연수 받을때 혜리는 없었다. 근데 어떻게 동기 모임에 들어 오게 된건지 지금 생각해 보니 좀 이상했다.

 

"언닌 몰랐겠지만, 혜리 언닌 사장님에 대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데.차기 후계자라는 거 알고 그 모임에 들어갔고 지금까지 헛물만 켜오다가 다른 타켓을 찍었는데, 그 상대가 워낙 고단수의 선수 인지라 좀 고전을 하고 있다던데....."

 

차현석에게 기대하다가 헛물만 켰다니?더구나 첨부터 차현석이 차기 후계자라는 걸 알고 있었단 말야? 나와 유미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차기 후계자란 소리에 얼마나 크게 뒤통수를 맞았는데.이혜리는 그걸 모두 알고 있었단 말야? 정말 놀라왔다. 그리고 또 다른 타켓이라니?그건 누굴 말하는 걸까?궁굼해 하는 내 얼굴을 재미있다는 듯이 보고 있더니 수진이 말했다.

 

"기획실의 윤동진 차장.우리회사 여직원들의 선망의 대상이잖아......"

 

"이혜리가 맘에 두고 있다는 얘긴 나도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소문이 아니라 사실 이였던 거야.....?"

 

"응.....더구나 윤차장이 그냥 혼자 잘나서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서 초 고속 승진을 하는 것도 있지만 또따른 루트가 있다는 소리가 있어. 알고 있는 사람이 지극히 적은 비밀아닌 비밀이지"

 

"또 다른 루트....?그게 뭐야......?"

 

"사장님과 이종 사촌이라는 정보가 있어.아니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지....."

 

정말 놀라왔다. 차현석과 윤동진이 이종 사촌 이라니? 놀라는 내 얼굴을 보면서 수진인 으스대는 표정을 지으며 장난을 쳤다.그럼 이혜리는 이 모든걸 다 알고  윤동진에게 접근을 했다는 말인가? 신데렐라의 꿈을 안고 계획적으로 입사을 하고 접근을 했다는 말인가? 웬지 이혜리에 대해서 느꼈던 인상이 변색이 되어 지려고 했다.좀 여우같은 면이 없지 않게 있지만 이정도 일줄은 몰랐는데 입안이 썼다.

 

"윤동진씨도 그럼 이혜리 맘에 들어 하는 거야 ?"

 

"그게 좀 아닌가봐.한동안 둘이 잘 지내길래, 금방 이라도 사귈것 처럼 보였는데, 윤동진이 보기와는 달리 굉장한 고단수의 플레이 인가봐.엔조이에만 치중을 한다는 거지. 암튼 요즘 윤동진에게 새로운 놀이상대가 생겨 혜리선배가 심란한 가봐...."

 

왜 갑자기 가슴이 쿵쾅 거리는 건지 모르겠다.새로운 놀이상대가 생겼다는 말에 왜 이리 가슴에서 금방이라도 태풍이 칠 것 처럼 시끄러운것인지.흐느껴 울던 유미의 얼굴이 자꾸 아른 거리는게 멀미라도 하는 사람 마냥 속이 울렁거리고 기분이 붕붕 거리는게 내게 큰 혼란이 찾아 오고 있었다.

 

퇴근 시간 몇분을 남겨두고 유미에게 잘가는 재즈카페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넣었다. 유민 정말 힘이 드는지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왜 자꾸 내가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건지 알수 없는 기분에 나조차도 착 가라앉는 기분이였다.

 

먼저 옷을 갈아입고 나온 수진이 가방에서 책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얼마전에 내가 빌려준 일본작가인 야마모토 후미오의 '연애중독' 이라는 책이였다. 아침부터 준다고 하더니 잊고 있다가 지금 생각 났다고 하면서 내밀었다. 노는것과 유행에만 민감해 보이는데 수진인 의외로 책도 많이 읽었다. 회사의 도서관이나 동네의 도서관 또는 책 대여점에서 곧잘 책을 빌려다 보는 것 같았다. 책 읽는 속도가 늦어 빌린다는 생각을 전혀 못해 사서 보는 나와 달리 수진인 나보다도 더 많은 다독 주의 였다.

 

가끔 수진이 빌려다 오는 로맨스 소설을 나도 함께 읽어 보는데 생각보다 많이 재미있었다. tv 드라마는 너무 내용이 빤해 안본다는 수진은 로설의 광팬이기도 하는데 너무 많은 책이 쏟아져 나와 제대로 재미있는 책을 고르기가 쉽지가 않다면서, 요즘엔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의 글을 쓰는 작가들의 책만 골라서 본다고 했는데, 정말 재미있는 책만 골라 빌려다 보는것 같았다.덩달아 옆에서 나도 함께 보는데 내가 보는 속도가 너무 늦어 연체료로 책 한권을 그냥 사겠다며 핀잔을 주어도 자기가 봐서 정말 재미있는 책은 날 위해 다시 한번 빌려다 주는 수진이였다. 가끔 여우짓을 해서 그렇지 인간적인 면으로 보면 나무랄데 없는 수진인 내가 아끼는 동생같은 아이였다.

 

"나랑 영화 보기로한 약속은 어떡할꺼야?벌써 한달이 다 되어가는데,내가 얼마나 잘나가는 여자라는 걸 설마 잊은건 아니지...?"

 

눈을 세모꼴로 만들면서 째리는 수진이에게 난 다음주에 꼭 보여 주겠다는 말과 함께 저녁도 쏘겠다고 했다.그러자 금방 헤헤 거리는 수진이였다.

 

우리가 그러고 있는데 외출했던 사장과 권실장이 들어섰다. 벌써 옷을 갈아 입고 있는 수진을 보며 사장은 그냥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 버렸는데, 사장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려던 권실장이 잠깐 수진을 보며 벽시계을 힐끔 봤다. 다행히 시간은 퇴근 시간이 지난후 였다. 권실장의 익숙치 않은 행동에 괜히 가슴이 쿵쾅 거렸다.

 

 "공무원도 아니고,매사에 칼 퇴근이라....상관의 지시가 없는데도 비서라는 사람이 ...참..."

 

평소 같지 않은 권실장의 태도에 나와 수진인 경직이 [?] 되었다. 평소엔 별다른 말없이 우리가 행하는 데로 아무말 없이 따라 주던 사람이였는데 오늘은 왜 이러는건지 당황스러웠다.

 

금방 얼굴이 굳어지면서 붉어지는 수진이가 안되 보였다. 그말을 내 뱉듯이 하고 사장실로 들어가 버리는 권실장. 대체 우리보고 어쩌라고 ?퇴근시간은 이미 지났는데,약속이 있어 나가봐야 하는 나와 이미 퇴근 준비를 마친 수진인 어정쩡한 기분이였다.

 

이미 갈아 입은 옷을 다시 갈아 입기가 쉽지 않은 수진인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로 와 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말없이 얼마간 흘렀다.몇분의 의미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 사장실 문이 열리며 두사람이 나왔다. 갑자기 나오는 바람에 나와 수진인 당혹스러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곧은 자세로 섰다.

 

"퇴근하지 왜 그러고 있습니까?이미 시간이 훌쩍 지난것 같은데?"

 

사장의 말에 우린 둘다 얼굴을 굳히고 있는 권실장을 봤다. 사장의 시선도 권실장에게 향했다.

 

"권실장, 뭐 달리 두분에게 시키실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비서실은 다른 부서와 달리 사무실의보안을 유지 해야 하고 ,상관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곳인데, 우리부서는 아무런 지시가 없는데도 시간만 되면 모두들,모두는 아니라고 해도 공무원도 아닌 사람들이 칼퇴근을 하는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수진이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것 같은 붉은 토마토가 되었다. 모두는 아니고,칼퇴근을 한다는 말.나도 놀랍고 사장인 차현석도 놀란것 같았다.권실장의 말에 굳은 얼굴로 수진이 당돌하다는 느낌이 들만큼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평소 한번 외근을 나가시면, 좀 처럼 들어오시는 일이 없이 바로 퇴근을 하시는 지라, 따로 연락을 받거나 지시 사항을 못듣기에, 잔업도 없고 해서 퇴근시간만 되면 자연히 퇴근하는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시정 하겠습니다."

 

분명 잘못했다고 말하는데도 웬지 편치만 않은 기분이 드는건 왜인지.기막혀 하는 권실장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갈 무렵 두사람을  살피던 사장이 입가에 알듯 모를 듯한 미소을 걸었다.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갈피을 잡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그동안 바빴다는 핑계로 업무지시을 제대로 하지 않은점 사과드립니다. 사칙이 엄연히 있는데 상관이 제대로 규범을 못보여 이런 혼란이 왔군요. 저도 시정하겠습니다. 퇴근하세요.전 먼저 나가겠습니다."

 

사장의 사과에 이번엔 수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더욱더 기막혀 하는 권실장.내게 보일듯 말듯 웃음을 지어보이며 사장은 먼저 나섰다.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실내의 공기가 너무 답답해 슬그머니 의자를 뒤로 빼고 옷을 갈아 입으려고 탕비실로 향했다.

 

유미와 만나기로한 약속 시간이 벌써 30분이나 지나 있었다.좀 늦을 것 같다는 말은 이미 해 놨지만 지금은 유미의 상황이 좋지않아 계속 신경이 쓰였었다. 옷을 갈아 입고 나오니 수진이만 있고 권실장은 안 보였다. 수진이 얼굴이 굉장히 안좋아 보였다. 같이 나가 기분을 풀어주어야 할 상황이지만 유미일이 있어 괜히 미안한 맘 뿐이였다.

 

"나가자.기분 풀고...."

 

축 가라앉아 있는 수진일 일으켜 세우고 문을 잠그고 사무실을 나섰다. 메세지가 왔다는 소리에 핸폰을 보니 현석과 유미에게서 한건씩 왔다.

 

"기분 풀어.권실장이 밖에서 무슨 않좋은 일이 있었나 보지 뭐..원래 저렇게 대놓고 말하는 사람 아니잖아 ?성격 좋은 우리가 이해 해야지 안그래?"

 

"언니가 모르는게 있어서 그래.아까 그건 내게만 해당되는 얘기 였어.나 겨냥하고 한 말이라구...."

 

"뭐...?"

 

"...나중에 얘기할께.유미언니에게 좀전에 전화 왔었어.많이 늦어 질거냐구.옷갈아 입으러 갔다구 얘기 했어.가봐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입구 로비에서 헤어져 왔다. 좀 이상했다. 내가 모르는 일이 있다니?무슨일이 있다는 건지.오늘은  하루종일  정말 이상했다. 분명 같은 곳, 같은 시간에, 함께 있는데, 난 전혀 모르는 일을 나보다 늦게 입사한 수진인 모두 알고 있다는게 이해가 안갔다.내가 너무 무신경한건지 알수 없는 기분이 였다.

 

오늘 보인  권실장의 행동은 정말 뜻밖이였다. 지금껏 아무런 제재 한번 없던 사람이 오늘은 갑자기 벼루고 있었던 것처럼 불만을 말했다는게 선듯 이해가 가지 않았다.수진인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얼굴이던데. 나 모르는 일이 둘 사이에 있었던 걸까?분명 권실장의 지적이 없더라도 나와 수진인 비서실 사칙에 많이 어긋나 있었다.직속 상관을 모시고 있는 우리 비서실은 일반 직원들과 달리 정시 퇴근은 할 수 없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진 않는 이상 상관의 퇴근 지시가 있어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회사의 기밀 문서도 함께 다루고 있기에 퇴근할 때 에도 보안팀에 알리고 가야 했다.

 

아무런 제제가 없어 너무 자유롭게 생활하다가 보니 그게 몸에 자연스럽게 베었나 보다. 분명 권실장의 말이 맞는데도.억울하다는 듯이 대든 수진의 행동이 당찼다. 어찌 감히 상관도 한참 레벨이 높은 실장에게 아무렇지 않게 대드는 수진의 용기[?]에 순간 머리가 핑 돌 만큼 놀랐다.

 

현석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처럼 쉽게 넘어 가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말 둘 사이에 무언가 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평소에 장난기는 있었도 권실장과는 사담이 없는 수진이 권실장을 상대로 그런 행동을 할 수는 없을텐데.혹시 나 모르게 권실장의 약점이라고 잡은 걸까?정말 그런건가?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권실장의 행동도 이해가 안되었다.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오다가 왜 오늘 갑자기 그런 소릴 한건지. 그동안 말은 못하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못마땅한 부분이 많았다는 건가? 일처리에 대해선 별로 실수 한게 없는것 같은데.더이상 깊게 생각하면 머리가 터질것 같아 생각을 그만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