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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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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없는 사랑


BY 주 일 향 2004-07-03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민호는 제일 먼저 지희를 만났다.

그새 어린티를 벗어버린 듯 의젓한 표정으로 아빠를 맞아주는 딸아이를 대하는 민호의 마음은 무거웠다.

하지만 지희는 엄마와의 생활에 만족하는 듯 표정이 밝아 보였고 안정돼 보였다.

미애는 잠시 쉬면서 새로운 일을 구상할 거라 말했고 가을에 재혼을 하게 될 거라고 담담히 말했다.

이혼한 뒤라서 그랬을까. 그말을 듣는 민호의 마음은 그다지 동요되지 않았다.

지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민호의 마음에 문득 쓸쓸함이 밀려왔다.

돌이킬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겪었던 지난날들을 뭉텅 지워버릴 수는 없겠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는 악몽같은 시간은 지나간 셈이다.

두 사람의 불화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그들의 이혼은 연예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큰 충격을 주었다.

미애의 귀가시간이 늦어지고 잦은 말다툼이 이어지면서 민호는 단순히 미애가 슬럼프에 빠져 신경이 날카로와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렇듯 사소한 불씨에서 시작된 불화가 결국 파경에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민호는 말할 수 없이 허탈해졌다.

그러나 사랑의 시작도 특별할 것 전혀 없는 지극히 사소한 감정을 통해 민호의 마음에 싹을 틔웠고, 그 사랑의 감정은 겉잡을 수 없게 번졌던 것 같다. 사랑과 기침은 감출 수 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결국 민호의 감정을 가장 먼저 눈치 챘던 사람이 바로 아내 미애였고 자신의 사랑을 가장 많이 비웃었던 사람도 아내 미애였다.

‘어떻게 그런 여자를 사랑할 수 있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모욕감을 느낀다고 말하며 더 심한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민호는 서연을 무시하는 아내의 말투에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었다.

이혼한 뒤에야 미애는 서연을 향한 감정들이 민호의 일방적인 감정이었음을 비로소 이해하는 것 같았다.


제법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소리를 내며 자동차 유리창을 두드리고는 미끄러져내렸다.

윈도브러쉬가 빠르게 움직이며 흐려진 시야를 열심히 닦아내고 있었다.

민호는 라디오를 켰고 볼륨을 높였다.

사이버 가수로 더 많이 알려진 진수민의 “시작도 끝도 없는 사랑”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마치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담아낸 듯한 가사를 따라 부르는 민호의 가슴에 미소를 머금은 서연의 맑은 얼굴이 떠올랐고 민호의 얼굴에도 행복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희망도 없는 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특별한 느낌이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마지막 여름비는 구슬픈 듯 애틋하게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 The end ********************

 

 

____ 태풍 "민들레" 영향으로 오후부터 비가 많이 내릴거라네요.

       비 피해 입지 않도록 조심하시구여.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