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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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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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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entsera 2004-07-01

뛰어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사극장은 생각보다 멀리 있었다.

<택시를 탈까?…아냐, 잡는데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

헉헉…

<나…이런 땀 흘리고 지친 모습, 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내 맘은 나의 지친 발걸음과는 상관없이 그에게 잘 보일 궁리만 한다.




토요일 오후, 극장 앞에는 영화를 보기위한 커플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내가 찾아야 하는 그 커플(?)은 없었다.

핸드폰을 보았다.

2시 30분

정확히 2시 30분 이었다.

그가 내게 준 영화 티켓을 꺼내 보았다.

2시 30이라고 찍혀있었다.

<벌써, 들어갔을까?… 설마~ 그래도…모르잖아…들어가 볼까?

아니~ 들어가봤자, 컴컴한 곳에서 어떻게 찾아~

그럼? 여기서 계속 기다려야 하는 걸까?>

머리 속에 갖가지 방법들이 떠올랐지만

내가 다, 할 수 없는 것들이란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편의점을 찾기 위해서 걸었다.

얼마안가서  조그마한 편의점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아주 귀여운 소녀가 계산대 앞에서

어서오세요~ 라고 인사를 한다.

온장고에서 커피를 하나 꺼냈다.

값을 치르고 나오는데 그 소녀가 또 인사를 한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순간, 나도 저렇게 발랄하던 시절이 있었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울컥~ 했다.

갑자기 내가 너무 많이 늙어버린 것 같았다.

이런 감상에 젖어있어서 그런지 박선배에게 똑바로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인연이 있다면 내가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거 아닐까?

그와 나란히 있는 박선배에게

나 저 남자 좋아해요…라고 어떻게 말을 하지…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손가락으로 이빨을 툭툭치고 있다. 난…




가방 속에서 책을 꺼냈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연금술사를 읽고 작가가 너무 좋아서 산 소설책이다.




‘묻지 않아도 돼, 사랑에는 많은 질문이 필요하지 않아,

생각하기 시작하면, 겁을 먹게 될 테니까, 그건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기 때문에 말로 설명해봤자 소용이 없어.

모욕을 당하면 어쩌나, 거절하면 어쩌나, 사랑의 마법이 풀려버리면

어쩌지 하는 것들 말야.

아주 우스꽝스러워 보이겠지만, 사랑이란 그런 거야.

그러니까 사랑은 묻는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야.

말을 하면할수록 더 자주 위험과 맞닥뜨리게 돼.”




사랑에 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나는 조금의 용기를 얻었다.

<그래, 용기내어 보자~>




또 핸드폰을 보았다.

4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또 다른 영화가 4시 반에 시작한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리면 그들이 나올 것이다.

초조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빗방울이 쏟아진다.

<나 우산이 없는데…>




-선경씨?

누군가 낮익은 목소리가 뒤에서 날 부른다.

-아, 정팀장님~

정팀장이 자신의 우산을 내쪽으로 기울인다.

-누구 기다려요?

난 정팀장의 질문에는 대답도 하지 않은채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 속으로 나의 시선을 멈추었다.

-선경씨, 누구 기다려요?

그가 재차 나에게 묻는다.

하지만 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박선배와 그가 다정히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맥이 풀렸다.

<그 사람의 옆자리는 분명 나였을텐데,

어떻게 둘이 같이 나올수가 있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빗방울은 내 가슴을 도려낼 정도로 세차졌으며,

정팀장은 우산으로 빗물에서 나를 보호해 주었다.

하지만 정팀장은 그를 쳐다보는 내 시선을 가로막고 있는 방해자 일뿐이었다.

다시 한번 그를 쳐다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나의 시선을 피하고 박선배의 커다란 가방안에서 꺼내어진

노란 우산을 함께 쓰고 내 앞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선경씨, 왜 그래요?

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내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팀장님, 나 오늘 술 사주실래요?




그가 데려온 곳은 조개구이 집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개 먹는데 집중해봐요.

난 너무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비가 부슬부슬 오는날…누군가에게 기댄다는 것 조차가

잘못된 생각이지마는, 조개구이집은 너무도 내 분위기가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다.

-저, 이거 처음 먹어보는 건데요…

-조개구이는 맛도 맛이지만 먹는 과정이 더 중요해요.

그는 나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문한다.

잠시후 다양한 조개들과 더불어 소라와 몇 개의 먹거리들이 나왔다.

그 중에 나는 당근을 하나 집어 들었다.

-당근, 좋아하시나 봐요?

정팀장이 관심있다는 듯이 묻는다.

-글쎄요~ 그냥, 습관처럼~




소주가 나왔다.

-저 소주 잘 못하는데~

-아, 그래요? 그럼, 다른거 시켜드릴까요?

-아니요..오늘은 한번 마셔볼께요~

그가 따라 준 소주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자꾸 쳐다보는 그의 시선을 느끼며, 불 위의 다양한 조개들이

익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엔 아무 소리도 없다가 나중에는 퍽퍽~ 하는 소리들이 들린다.

-녀석들 산 녀석들 일까요?

내가 물었다.

-이 집이 유명한 곳이니, 아마도~

평수가 적은 이곳은 테이블이 다섯개 밖에 없다.

바닥엔 재떨이를 찾지 못한 꽁초들이 여럿 있었고,

"웬만하면 날 조심하지~" 라는 식의 가스 선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그렇게 유명한 곳에 테이블이 고작 다섯개에요?

-하하하~ 솔직하게, 이곳은 저한테만 유명한 곳입니다~

기가막혔지만, 그의 웃는 목소리가 너무 화통해서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이거, 먹어보세요~ 요놈이 아주 잘 익었을거에요~

그가 내게 권해준 조개는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개껍데기 조개였다.

-잘 익었을까요?

내가 영~ 신통치 않은 모습으로 물어보자,

그가 그 조개를 얼렁 먹어본다.

<헉~>

나의 당혹한 모습에 그가 또 웃는다.

-하하하하~

-너무 신중하면 아까운 것들을 놓칠 수가 있답니다.

왠지 그의 말은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이 사람, 무언가 알고 있는 걸까?>




-아… 또 한가지~ 세상엔 자기가 끼워 맞추려고 하면

안 되는게 없답니다. 그야말로 끼워맞추는 거니까~

-정팀장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그는 그냥 웃으며 비어있는 내 소주잔에 소주를 가득 따른다.

<정팀장은 새벽에 인표씨를 우리 동네에서 본 사람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와 박선배의 관계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쩜, 지금 인표씨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그의 말처럼 나의 지레짐작에 말을 끼워 맞추고 있는 걸까?>




조개를 먹기위해 한 손에 장갑을 꼈다.

장갑은 뜨거워진 조개를 잡기 위해서란다.

우리가 무엇인가 먹기 위해 도구를 쓰지만, 이 조개구이집의

장갑처럼 원시적인 것도 없다란 생각이 들었다.

조개가 익기 시작하자 조개 특유의 익는 소리가 시끄럽다.

하지만 그 소리는 듣기 싫은 소리가 아니다.

아마도 나에게 먹을 무언가를 주었기 때문인가…

나라는 사람이 이토록 간사했던가라는 생각이 들자,

먹으려고 집었던 조개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소주를 또 한잔 마셨다.

-오늘 목적이 술 마시는거라 했나요?

정팀장이 길쭉한 조개를 하나 먹으면서 말을 건넨다.

-그건 무슨 조개인가요?

-맛살 조개라고들 하던데…

-팀장님도 조개 이름은 잘 모르시나봐요?

그가 웃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의 내가 실연을 당한건지,

아님 나 혼자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건지…

그리고, 내 앞의 이 사람에게 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비는 그친 것 같지만, 내 마음의 이 심란한 상태는 더욱더 더해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