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디 151과 그레나딘, 아마레또, 미도리, 블루 큐라소,
트리플 섹, 슬로우 진.
이렇게 7가지 술이 만드는 레인보우…
그래, 칵테일 이름이다.
빨주노초파남보 이 모든 맛을 한꺼번에 느끼기 위해 이 칵테일은
마시는 방법이 두 가지란다.
한번에 다 들이키거나, 불을 붙여 빨대로 마시는 것.
나..나라면, 글쎄~ 어떤 것을 선택할까?
일주일동안 그는 사무실에서 볼 수 없었다.
아픈걸까? 아님, 다른 작업을 하고 있는걸까?
아니, 난 그것보다 그가 박선배랑 만나고 있는지 그게 더 궁금했다.
아이참~~-.-
이때, 화영선배가 날 부른다.
-홍작가한테 연락 없니?
<선배, 나도 궁금해서 미칠 거 같아~^^:>
-마감이 얼마남지 않았지?
박 선배네 촬영이 있던 날부터 지금까지 그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오늘, 정팀장이 물어보던데…그 꼭지 좀 보고 싶다고…
<암튼, 싫은 사람은 꼭 얄미운 짓만 한다니깐~>
-일단, 사진만 넣으면 되니까 내일까지만 어떻게 해주세요~네?
선배는 내 심정을 이해하는지 아무말 없이 끄덕인다.
축 처진 어깨를 추스리고 내 자리로 돌아서는 순간, 선배가 다시 부른다.
-집에 한번 찾아가봐라~ 혹시 모르니깐…
-집엘?….
개망초를 샀던 꽃집이 보인다.
<꽃이라도 사 갈까? 꽃 사는 것도 어색해~>
이런저런 생각을 했더니 벌써 그의 빌라 앞에 와 있다.
<몇 호라고 했더라….>
기억 나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내 발걸음이 가는대로 따라가면 되니까…
가끔은 지금처럼 이성보다 본성이 더 유용할 때가 많다.
-박 선배네 위층 이라고 했었지…^^
빌라 입구에 다다랐는데 어디선가 파란 종이비행기 한 개가 떨어진다.
-아…이뿌다~ 간만에 보는걸~~
위를 쳐다보았지만 어디에서 날라왔는지 알 수가 없다.
종이비행기를 들고 한계단 한계단 오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사람…아플지도 모르는데 가슴은 왜, 두근거리는 거야?
야, 박선경 너 지금 데이트하러 가는 거 아니야!!! -.-;>
드디어 위층 현관 앞에 왔다.
현관이 두 개다…-.-
<어…, 이쪽이야, 아님, 저쪽이야….바보…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본성이 좋다는 건 순간 뿐이다. -.-
이때, 왼쪽 문이 열린다.
-선경씨, 들어와요~
그의 음성이다.
-어머! 어떻게?
-그 종이비행기... 내가 날린 거에요~
라며 그는 현관 안으로 사라진다.
아파보이진 않았지만 좀 핼쑥해진 모습이다.
-어디, 아팠어요?
그는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그러곤 자기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커피 드실래요?
나도 웃었다. 그리곤 테이블 위에 그가 마셨을 것으로 짐작되는
머그잔을 가리켰다.
-그건, 술인데…^^
-어머, 이게 술이에요? 어머머 술을 머그잔에 마셔요?
주방으로 가면서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신기한 그의 취향에 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왜, 머그잔에 마셔요?
-글세…난 술이 특별하지 않아요…일상이랄까?
그냥, 생각나면 이렇게 아무 잔에나 마셔요…
오늘은 머그잔이 걸린 거고…내일은 모…이거 어때요?^----^
라며, 그가 내게 보여준 것은 아주 큰 대접이었다. -.-
-아참, 어떻게 저 인줄 알았어요? 고급빌라니,
무슨 시스템이라도 있는 건가? 경비아저씨가 인터폰으로 말해줬나….
-그래요, 인터폰으로 아주 예쁜 여자가 올라가니
얼른 나와서 에스코트 해주라고…ㅋㅋ
-정말요?
그가 또 웃는다.
-전 가끔 창문에 앉아 유치한 장난을 하는데 ㅋㅋ 아까,
종이비행기 날리는 것처럼…근데, 선경씨가 보이더라구요…
선경씬, 종종종 걸으니까 그 박자에 맞춰 상상했죠~
한 계단 올랐겠다. 잠시 딴 생각을 했겠다. 모..이런 식으로
그리고 이때쯤 되었겠다 싶어서 문, 열었는데~ 나 똑똑하죠?
<아~ 이 남자…넘 멋있다~ 나 어떻게 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아참, 정팀장이 우리 꼭지 보고싶다고 한대요…
제가 글이랑 레이아웃은 대충 잡아놨는데, 사진이 어떻게…
잘 나왔나요?
-지금 보실래요?
그를 따라 다다른 오른쪽 모퉁이의 방문 앞에 섰다.
방문 앞에는
어디선가 본 낯익은 글이 서있다.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다.”
그 방은 그의 작업실이었다.
-여기가 제 작업실이에요~ 지저분하죠?
-^^;
작업실 한쪽에 아주 큰 통유리 책상이 있었다.
그 위에 나무집게로 몇 개의 고추장 스파게티 사진을 집어 놓았다.
그리고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한 사진….박 선배 사진…
그는 내가 본 박 선배 사진을 의식하지도 않는지, 그저
고추장 스파게티 사진을 집게에서 풀러 나에게 준다.
-아…
난 그의 사진을 보고 어떠한 찬사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어느 때와 똑같이 또 잘못 찍었구나…란 자책이 시작될
뿐이었다.
그가 내게 보여주었던 지금까지의 호의는 어느 여자에게나 보여줄
수 있는 그런 호의였던 것이다. 박 선배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는 여자들에게 너무 친절해”
-선경씨는 어때 보여요?
내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그의 사진에 대해 궁금했던지 먼저 묻는다.
-아…네…좋으네요…
-근데, 별로 안 좋아하는 느낌이네요? ㅋㅋ
전 사진 보고 선경씨가 개망초를 선택한게 탁월했구나 라고 감탄 했었는데…^^
-아..네…고마워요…
내일 사무실로 나오겠다는 그의 약속을 화영 선배에게 전화로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의 집을 나서려고 신을 신었다.
-왜, 벌써 가시게요?
-네…그럼 내일 뵙죠…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데 잘 열리지 않았다.
그가 열어주려고 내게 다가왔다.
그의 스킨 향이 내게 전달되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두근 심하게 뛴다.
문득, 이 남자에게 안기고 싶다란 생각이 들었다.
<바보..바보…>
나의 기대는 또한 언제나 깨지기 마련이다.
내가 열려던 문이 그로인해 열렸다.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나는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어
무작정 밖으로 나가는데,
-선경씨, 우리 오늘 술 한잔 할래요?
-네?
생각지도 못한 그의 제의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함께 간 곳은 집 앞의 ‘바이올렛’ 이라는 바였다.
-여긴, 제가 혼자 자주 오는 곳이에요~
지하의 중간 정도 되는 크기의 바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좀 이른 시간에 왔나봐요?
바텐더에게 물었다.
그느 그냥, 웃기만 할 따름이다.
사람들은 내가 무얼 물어보면 다들 웃기만 한다.
인표씨도, 저 바텐더도…
-우리, 시간도 이른데 칵테일로 할까요?
그가 묻는다.
-그래요, 그럼…전 피나콜라다 주세요…
-전, 다이쿼리….
Keith Jarrett의 My song이 흐른다.
-이 곡 정말 좋아했는데…
그가 말한다.
-과거형인거 보니까, 이젠 안 좋아하나 봐요?
그가 또 웃는다.
-한 여자를 사랑했고 그 사랑과 이별했을 때, 이 음악을 자주 들었어요…이 곳에서…
박 선배를 말하는 거 같았다.
난 또 아무 말을 못했다.
다행히 바텐더가 내 앞에 아주 예쁜 피나콜라다를 밀어준다.
-피나콜라다, 맛있죠?
-네…
-여름엔 그 거처럼 맛있는게 없다고들 하던데…
-네…
나의 짧은 대답에 그는 좀 무안한가 보다.
바텐더가 내민 그의 칵테일을 보자 너무나 반가워한다.
-혹시, 이거 맛 보셨어요?
-아뇨…?
-그럼 한번 맛 보실래요?
레몬 맛이 느껴지는 시원한 맛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남미에서 가장 사랑받는 칵테일이라고 한다.
-아….허밍웨이 아시죠? 그가 즐겨마셨던 칵테일로도 유명하데요…
-아…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칵테일은 벌써 바닥이 났다.
-칵테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ㅋㅋ
-그런게 아니라…-.-;
난 무언가 답답하거나 혼란스러우면 먹는 것에 열중하게 된다.
이럴 때에는 교양이고, 지적이고 등등의 세련미를 나에게선 찾아볼 수가 없다.
그가 한 잔 더 시켜준다.
-아뇨, 이제 피나콜라다 안 마실래요, 대신 레인보우 주세요~
-그거 좋아하셨어요?
-아뇨, 오늘 아침에 문득 생각났어요…그래서….
바텐더가 스트롱과 함께 레인보우를 건네준다.
난 아무 말없이 단숨에 그걸 마셔버렸다.
귀와 입술이 짜릿해지고 갑자기 뱃속에 온기가 가득해졌다.
그가 걱정 되듯이 묻는다.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아뇨, 그냥 술이 마시고 싶었어요. 소주나 양주는 잘 못 마시는데,
이런 칵테일은 잘 마셔요…
-그래도 조심하세요…칵테일이 은근히 더 취하니깐~
-제가 조심할게 모 있겠어요~
-푸하하하~
그가 화통하게 웃는다.
그 모습이 밉다……너무너무 밉다.
-아참, 이제 생각났다!
그가 놀라서 내 쪽을 쳐다본다.
-아까, 작업실 문에 걸려놓은 글귀….그거 영화 메멘토에 나오던
대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