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초코케익 안에 아몬드 몇 조각…그 위에 얇은 초콜릿
그 위에 초콜릿크림이 얹혀진 초코밀푀유를 한 입 베어먹으려는 순간,
-아가씨!
누군가가 날 부른다.
한입 베어 물면 아삭한 감촉과 풍부한 초코향~은 어디로 사라지고
낯익은 남자가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수건을 건네 주고 있다.
-어…제가…
창피하게도 난 택시 안에서 꿈을 꾸며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 창피창피~ )
(그런데 왠 손수건? )
잠결에 본 초코밀푀유 때문인지 내 입가엔 침이 조금.. 아주 조금… ^^;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택시 밖의 풍경은 내가 알고 있던 신사동이 아니었다.
당황한 나는
-아저씨, 전 분명히 신사동이라고 했는데요?
-아가씨, 여기 신사동 맞아요, 저길 봐요, 동만빌딩이잖아요…
(어…여기가 어째서 신사동이야? 사거리에 있던 스타벅스는
어디갔고, 맞은편 KFC는 어디있고 마를린몬로는 어디로 간거야? )
-아가씨, 난 분명 아가씨가 신사동 동만빌딩이라고 해서 왔으니까 난 몰라요…
(그럼, 나더러 어쩌란 소리야…오 마이 갓!!! )
-제가 언제 동만빌딩이라고 했어요! 전 신사동이라고만 했어요!
기사아저씨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만
-그래요, 이쪽이 동만빌딩이라고 했지만, 둘이 같은 방향 , 아니었어요?
-나 이 사람 몰라요! 오늘 처음 본 사람이에요!
난 정말 미치고 싶었다. 모야… 도대체… 그 사람은 이런 상황에 아무 거리낌없이
아저씨에게 요금을 주고 택시에서 내린다.
-아니, 저 사람 때문인데 그냥 보내면 어떡해요?
-그럼…아가씨, 그럼 지금이라도 강남구 신사동으로 갈까요?
-그게 지금 질문이라고 하시는 거에요?
(어머어머… 저 남자, 치사하게 그냥 가버리는 거야?
와~ 완전히 저 남자 때문에 오늘 이렇게 된 거 아니야?)
내가 정말 못살아~무슨 놈의 품의를 지킨다고 아침부터 선심을…
이렇게 투덜대는 동안에 기사아저씨는 묵묵히 강남구 신사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정말 좋아하던 빛나는 아침 한강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한강의 은빛이 내 눈에 거슬리기만 하였다.
(왜, 아침이 이렇게 눈부신거야…짜증나게….!!! )
잠시후 난 강남구 신사동에 도착했고 빌딩을 찾으러 화영선배의 명함을 찾았다.
서울시 은평구 신사동 동만빌딩 7층 쿡앤라이프
(모….은평구 신사동!!! 오 마이 갓!!! )
내 징크스에 하루에 그것도 아침에 한 번 이상 오 마이 갓을 찾아본 적이 없건만…
이게 무슨 징조란 말인가…ㅡㅡ
-아저씨, 동만빌딩요……
-여기도 동만빌딩이 있어요? 어디쯤에 있지?
아저씨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른체 신기하다는 듯, 나에게 묻는다.
-동만이라는 이름이 유명한가 봐요…각 신사동에 하나씩 있고…
아무래도 동만이라는 사람이 만든거 같죠? 동만빌딩…김동만일까, 이동만일까…?
이 상황에 저런 이야길 하는 아저씨에게 화가 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일, 난 나지막이 아저씨께 말했다.
-아저씨, 은평구 신사동 동만빌딩으로 가주세요”
아저씨는 놀란듯 날 쳐다보았지만 사색이 되어버린 나의 표정을 보더니
묵묵히 운전에만 열중하셨다.
물론 가끔 나의 눈과 마주치기도 했다.--
동만빌딩 앞에 다다른 택시…기사아저씨는 인도 옆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아직도 내 눈치를 힐끔 쳐다보며…
-동만빌딩입니다~
-저도 알아요…!!! 얼마죠?
미터기에 보이는 숫자를 확인하고, 돈을 건네는데 그 남자가 준 손수건이 보였다.
-아가씨 손수건 떨어뜨렸네~
난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냥 손수건을 받아 손에 쥐었다.
첫날부터 지각했다는 사실이 조금 걱정이 되지만 지나간 것에 미련은 없다.
(모… 이럴수도 있는거 아니겠어ㅡㅡ!!! )
빌딩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여보세요?
-선경아 너 지금 어디야?
화영선배였다.
-선배, 나 지금에서야 빌딩 안에 들어왔어요…
-아니, 왜?
난 선배에게 아침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7층 사무실 입구까지 올라왔다.
[쿡앤라이프]
들어가기 전에 나의 옷차림을 점검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날
빤히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어머…신 봤 다~~~~
베컴 스타일의 잘생긴 남자가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부끄러워라~^^; )
짧게 친 베컴 헤어스타일에 검정색 알마니 면티, 그리고 구제
청바지를 입은 저 남자는 그야말로 딱, 내 스타일이었다.
난 너무 감탄한 나머지 현기증이 밀려왔다. 자연 소생인건지 멋진
남자만 보면 뭔가 엮어보려는 나의 본능인지 나도 알 수가 없다.
-어…
내가 넘어지려는 찰나, 그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어머어머…난 그 남자에게 날 맡기고 싶었으나, 어디선가
친근한 목소리가 방해한다. )
-선경아~
화영선배가 깜짝 놀라서는 나를 붙잡는다.
-어머, 왜 그래?…어디 아프니?
-아니…그게 아니라…
-그럼, 다행이고 정팀장부터 만나자. 이리와.
(아이…정말… )
나는 그냥 그 남자에게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묵묵히 화영선배 뒤를
쫓아갔다. 이토록 선배의 뒷모습이 미웠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정신 없어 보이는 잡지사의 사무실안은 각자의 일을 하느라
나의 출현에 별 반응이 없었다.
(이 사람들은 미인에 대해서 별 반응이 없구만…. )
선배의 빠른 발걸음에도 불구하고 난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로버트 메이플도프의 사진, JOE를 발견했다.
에이즈로 사망한 이 사진작가는 동성연애자였고 포르노그라피를
즐겨하는 (모..다른 사람들은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고 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한 사람이다.
-어머..저런 사진이 뭐가 좋다고 저렇게 걸어놨지…것도 비싼 액자에..
사람들 취향이 정말 가지가지라니까…중얼중얼…
난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보면 가만히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직 20분간은 더 악평을 해댈 수 있었는데 어디선가 중저음의 목소리~ 가
나의 말을 막았다.
-로버트 메이플도프 싫어하세요?
(어머나…그 남자다…좀 전의 내 이상형~ )
-아니…싫다기보다는…
(안돼, 저 사람은 로버트 메이플도프 좋아하면 어떻게 해? )
-왜요? 저 사람 좋아하세요?”
-아뇨,
(아..다행이다. )
-존경합니다.
(헉~…. -.-;;)
-아뇨…저도 상당히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선경아, 얼른 이리와봐~”
화영선배가 날 부른다. 다행이다.^^;
난 그에게 어쩔 수 없다는 눈인사를 하고 얼른 선배곁으로 갔다.
-선경아, 신경 끊어라…홍작가 여자들한테 둘러 쌓여있다.
-선배는 내가 몰~
나의 약간 앙칼진 목소리에 화영선배는 변명이라도 하듯
-아니, 여자들이 홍작가만 보면 다들 반하더라구…나원참…
(모…인연이 있으면 다르겠지…. ^^)
-근데 저 사람 이름이 뭐야?
-지지배, 관심있구만….
-아니라니까~
-홍인표야…올해 서른살 되었어.
(모야, 나보다 1살 어리잖아. 모…1살쯤이야…누구는 4살 연하랑도
잘 만 살더만…잘 살았던가….? 암튼…. )
이윽고 우린 팀장 방 유리문 앞에 섰다.
똑똑~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오늘은 무슨 차죠?
화영선배가 차 이름을 물으면서 눈인사를 한다.
그 순간,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명의 인물이 생각났다.
-어..저 사람~
-제가 어제 전화로 말씀드린 푸드스타일리스트 이선경씨에요.
웬일이야, 아침에 동승했던 남자가 자리에 떡~하니 앉아있었다.
나의 미간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남자 그냥,
-푸하하하
하고 박장대소를 하고 있다.
(어머…재수없어! )
-뭐야? 둘이 아는 사이야?
화영선배가 물어본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선배, 아까 같이 택시 타고 온 남자가 바로 저 사람이야.
-푸하하하
이번에 선배가 웃는다.
-이 분이 손팀장이 추천한 푸드스타일리스트?
(뭐야, 그렇다면 저 사람이 정팀장? )
저 사람만 아니었어도 지각은 면할 수 있었는데…아…
저 남자가 내게 악수를 청한다.
-전 손팀장을 신임하는 사람이니 별다른 건 묻지 않겠습니다.
그냥,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난 그저 ‘네’ 란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