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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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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BY 마야 2004-03-12

[다음 차가 정차할 역은 봉화, 봉화역입니다. 내리실 손님 미리미리 짐을 준비하시어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방송이 흘러 나왔다.

경월 소주 탓이었을까, 아니면... 차칸에 승객들이 곤히 잠든 새벽잠을 깨우기 싫어서

키득거리던 마지막 한 사람, 섭이도 잠깐 잠이 들었었다.

"형!. 일어나셔요. 봉화래. 일어나 야, 진이야. 봉숙씨!."

건이는 베낭을 내리면서 어깨에 어깨를 기대고 잠든 모두를 깨우느라 정신이 없다.

"얌얌얌...봉화? 일어나!."

섭이가 잠결에 일어서고, 원이가 일어서다가 서로 머리를 부딪쳤다.

"억!. 웬수놈의 돌."

원이가 외마디 짧은 비명같은 것을 흘리며, 입가의 침을 닦는다.

건이가 내려주는 가방을 하나씩 받아들고 아직 잠이 깨지앉아 흔들거리는 건지,

아니면, 차가 흔들려서 흔들리는 건지, 모두는 술에 취한듯 비틀거리면서 문을 열고 나간다.

"억!.춥다."

진이가 내 뱉은 첫마디에, 이구동성으로 춥다고 외치면서, 차가 서자 내렸다.

"야아!. 잠이 확 깬다야."

"술이 깨는 거겠지...히히히히."

"되게 춥다 그치 진이야."

섭이가 진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푸욱 쑤셔 넣으면서 말을한다.

"형!. 겨드랑이에 손을 넣는다고 좀 나아지냐?"

"거어~ 남녀가 유별한대 우리 그러지 맙시다."

라고 원이가 말을 잇는다.

"어? 너 여자였어?"

섭이가 징글맞게 웃음을 흘리면서 말을 한다.

작은 봉화역엔 그때까지도 잠을 자지않고 야간 근무를 하는지, 젊은 역무원 남자가

표를 수거하기위해서, 기다리고 서 있다.

"아이고, 추운데...대합실에 난로 피워져 있거든요, 불좀 쬐다가 가시쇼.

 어디로 가시는지는 몰라도예."

아주 따뜻한 목소리의 젊은 사내가 일행을 보지도 않고, 표를 보면서 하는 말이다.

"야야!. 난로가 있단다. 난로가, 우리 대합실에서 동이 트면 떠나자."

원이가 하픔을 길게 하면서 말을 한다.

"형!. 지금 막 동트것다. 쉬긴 뭘 쉬어...새벽 별도 좋겄다. 이왕 내린것 우리 도보답게

 걷자구."

진이가 하늘을 보면서 말을 길게 하자, 모두는 일제히 하늘을 본다.

"와아...별좀 봐."

"별이 많지예? 강원도에는 별이 많아예. 성남에서는 별 보기가 어렵던데..."

라고 봉숙이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면서 말을한다.

대합실 문을 열자, 따뜻한 온기가 얼굴로 확 밀려든다.

손을 비벼대며, 다리를 벌써부터 떨고있던, 섭이와 혁이는 둥근 망태모양의 쇠난로 옆에 서서

베시시 웃으면서, 일행을 본다. 마치, 좀더 머물다가 떠나자는 마지막 부탁이라도 하려는듯이.

"거기서서 그렇게 있으면, 진짜 추워서 아침에도 못떠나...지금 가는게 나을껄?"

"어디로?"

"어디로? 아이구!. 내 팔자야. 기차가 가는 방향으로 가야, 태백을 가지..."

"맞아!. 우리는 지금부터, 태백까지 도보로 가는거지?"

라고 원이가 말을 하면서 씨익 웃는다.

"형 일단 그 머리나 좀 어떻게 수선좀 해 볼래? 정신 사납다."

"진이야, 근데 너 머리털이 하나도 없어서 추울껀데...?"

"혁이형!. 약을 올려라, 약을 올려. 스님들이 겨울에 춥다고 머리 기르던?"

"얌마!. 털모자 쓰잖어..."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그때까지 말이없던, 건이가 말을 한다.

"자아!. 출발."

"야아~, 대장, 우리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엉?"

"대장님, 대장님 하시면서 반말 하지 마세요. 형. 듣는 대장님 몹시 슬퍼집...헉!.

 진짜 춥다."

반대편 문을 열던, 건이가 문을 다시 닫으면서 외마디 비명처럼 지른다.

봉숙이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또박또박 걸어나간다.

진이가 손을 흔들면서, 봉숙의 뒤를 따라 나간다.

모두는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다가, 따뜻한 온기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철길가 신작로를 따라, 걷기시작하자 추위는 차츰차츰 앞서 걷는다.

볼을 스치는 차가운 칼바람.

쏟아질듯이 무리를 지어 하늘을 수 놓은 별들.

얼마나 걷자, 밤눈이 밝아져 온다.

멀리로 새벽 여명이 지평선을 가르려 뭉글거린다.

건이가 메들리로 만화영화 주제곡들을 부르자, 모두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울어...웃으면서 달려보자

  파란들을, 달려라 코난, 은하철도 구구구구~...]끝이 나지 않는 메들리를 부르며 걷고 있던

여섯 사람의 머리위로 혜성같은 긴 꼬리를 단 별똥이 스친다.

"와아~ 혜성이다."

"어디어디...음...정말이네...와아!."

순간, 진이는 오른쪽 아랫배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주저앉듯이 허리를 구부린다.

"억!.형. 나...배가 끊어질듯이 아프다."

혁이가 먼저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온다.

나머지는 아직도 그 혜성의 꼬리가 사라진 하늘을 넋을 놓고 쳐다보느라고,

혁이가 외치는 소리도 못듣는다.

"야~.방위!. 진이가 아프다야."

그제서야, 하나둘 대수롭지 않은듯이, 엉거주춤 배를 움켜쥔채 몸을 구부리고 있는 진이의

곁으로 온다.

"진이야, 너 똥 쌌냐, 오늘?"
"어디가 아픈데? 맹장이야?"

"...몰...라. 배가 끊어질것 같다."

"너무 찬바람을 갑자기 쐬여서 그럴꺼예요. 저어...언니 이 마구라로 배를 감싸면..."

"섭,건,원, 띠머."
"뭐? 어째라고 라고?"

"건이하고, 원이가 앞에서 진이 어깨를 받혀들고, 내가 엉덩이, 섭이가 다리를 받혀라."

"아아~ 진이를 다비식 하러 가는것 처럼, 매고 가자는 거지? 좋다. 재밌겠다."

"하나,둘,셋."
진이는 넷의 어깨위에 누운듯이 하늘을 보고 누웠다.

배는 끊어질듯이 아파오고, 넷은 진이가 배가 아프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계속 이야기 중이다.

"원이야, 거 달마동에서 그런 장면 나오지...혜곡스님의 관을 등에 지고 가는..."

"섭이형, 진이 똥때렸데? 똥때려야 될때 안때리면...배가 아프거든..."
공중에 누워있는듯이 누워있던, 진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을한다.

"야아~, 배가 진짜로 많이 아프거든, 계속 나를 웃기면, 웃을때 더 아프거든?"

"지집얘, 누가 청바지를 겨울에 입냐? 그러니까 배가 아프지...이거 덮어라, 자아."

섭이와 혁이가 웃옷을 벗어서, 진이에게 던져준다.

옷을 받아쥐고 배를 덮고, 하늘을 보던 진이가 다시 한마디한다.

"별이 참말 많다. 아까...그 혜성이 나의 초상을 알리는 징조 아니였을까?"

"퍼덕!. 잘됐네...그러면...이 기회에 우리 진짜 다비식 치르겠네?"

"히히히히...혁아, 우리 진이 다비식 하자, 점점 추워지는데...몸도 녹일겸."

원이가 말을 한다.

"거어 좋은 방법이다.그치..."
배앓이를 하는 진이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말에 꼬리를 물고, 농담이 흘러나오더니,

이내, 진담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논두렁을 넘어 짚단이 쌓여있는 길옆 논으로 들어간다.

진이를 내려놓고, 진이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데, 네 명은 짚단을 요리저리 틀어 뺀다음, 단을 쌓기 시작한다.

"이렇게 한다음, 이 위에다 진이를 올려놓고, 다비식을 하는거야."

진지하게 일이 진행되자, 봉숙은 그들의 놀이에 아직 낯설어 하얗게 얼굴이 변하면서

놀란 토끼눈을 떠서, 네 명의 팔에 매달리듯이 달려들어, 행동을 말려보려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끝난!. 하하하하..."

순진한 봉숙의 행동에 네명 모두 허공으로 큰 웃음을 날린다.

"봉숙씨, 괜찮아요. 장난이예요."

짚단 몇개를 내려 모닥불처럼 불을 피웠다.

그리고, 진이를 짚단 위에 누이고, 배를 섭이가 문지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