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화장도 다 지우고......옷도 갈아입고....머리도 물에 젖어 있었다. 갑자기 왜 찾아 온건지.....맘이 분주했다. 청바지에 티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현관앞에 나가 봤지만 상준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에 와 있다는 건지......집앞의 편의점이나.....가게들 앞에도 보이지 않았다. 몇번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야.....이여경....."
내 뒤쪽에 있던 차 문이 열리며 들리는 소리였다. 세상에 ......술을 마시고 여기까지 차를 몰고 온거야.......?아까 보니까 택시 타고 가는것 같았는데........한유미랑 같이 간거 아닌가.....?쭈볏거리는 맘으로 차 앞으로 다가갔다. 상준이 차에서 내려 내쪽으로 오고 있었다.
어렴픗이 보니 운전석에 사람이 있었다. 상준인 조수석이 아닌 뒷자석에서 내렸고......아마도 누군가 운전을 대신해 주었나 보다. 그럼 그렇지......다행이다 싶었다.
늦은밤 들어갈데가 마땅치 않았다. 편의점에서 커필 사서 근처에 있는 놀이터로 갔다. 밤늦은 시간이여서 인지 놀이터는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없어 웬지 맘이 놓였다.
놀이터 의자에 상준이 무릎을 벌린 자세로 먼저 앉았다. 어색하게 초조해 하면서 난 상준이 눈짓에 의자 끝머리에 살짝 걸터 앉았다. 왜이리 긴장이 되는 건지........맘이 오그라 들어 숨쉴 공간이 좁혀져 버린것 같았다.
캔 뚜껑 따는 소리가 어찌 이리 크게 들리는지.......상준이 캔 커필 한모금 마시더니 입가를 닦았다.아까 클럽에서 봤을때 보다 술이 더 취한것 같았다. 타이를 푸르고 자켓을 걸친 모습....피곤해 보였다.안쓰런 맘이 순간 들었다.
"너 말야.......많이 힘드냐....?"
갑자기 물어오는 말이였다.
"요사이 많이 힘들었겠지.........얼굴이 반쪽이 됐는데 보면 알지......."
"......다같이 힘들었잖아요.......나만 힘든것 아닌데요 뭐...."
"흣......."
내말에 상준이 기막히다는 소릴 냈다.
"힘들었잖아요....?요.......라.....?"
존대어를 쓰는 날 향해 상준이의 쨍한 시선이 다가왔다.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가 꼿힌 기분이였다. 비웃듯이 날 보는 상준이의 시선 마주대하기가 겁이 났다.
"안하던 짓까지 하고.......왜 갑자기 생판 모르는 사람마냥 말을 올리는 건데......?너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이젠 거의 달인의 수준까지 올랐구나.......?꼭 이렇게 까지 하고 싶은 거야...?"
갑자기 언성을 높이는 상준이.......정말 미칠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나간 존대어에 ......이런 상황이 될줄은 나도 몰랐다. 매일 회사에서 부딪치면 당연히 상사니까 나오게 된 존대어 였다. 더구나.....상준이의 달라진 행동 탓에 .....내가 쉽게 함부로 말을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사람 미치게 하는게 누군데......나도 모르게 원망하는 얼굴이 되었다.
"뭐냐 ? 그시선.......날 흘겨봐서 어쩌려구......술은 안마시고 물만 홀짝 이더니......넌 좋겠다 맨정신 이라서.......금방 전투태세 갖추는 것도 빠르고......"
"뭐야......?왜 온건데.....?술 취했으면 들어가서 쉴일이지 .......뭐하러 찾아 와서 사람 염장 지르는 건데.....!!!"
계속 빈정 거리는 말투에 더는 참을 수 없어 맞받아 쳤다.
"네가 오게 만들었잖아.....!!!찾아 오게끔 .......네가 날 불러들인거야......몰라? 정말 모르냐구!!!"
"......내가......내가 뭘....어쨌다..."
"......혼자 버려 두지 말라며......날 많이 원망하는 네맘.......그뜻 아냐....?"
가슴이 철렁했다.얼굴이 순식간에 불에 덴듯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랬구나.......아까의 내 노래가 ......그렇게 들렸겠구나......가슴으로 불덩이가 들어온듯 하더니......이내 내 안에서 식어버려 얼음덩어리로 변해가고 있었다. 서늘한 감각.....명치끝까지 얼어버렸다.뭐라고 말을 해야 하겠는데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덜덜 떨리는 마음을 진정 시킬수가 없었다.
"넌 늘 이런식이지........일 벌려 놓고 뒷 수습은 다른 사람에게 던져주고......자긴 꽁꽁 숨어버리고......얼마나 비겁한건지 모르지 이여경......아마 평생 모를거다 너라는 이기적인 사람은....."
갑자기 상준이 일어서더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얼이 나가 있는 날 잡아 일으켜 세웠다. 감히 고개들어 시선 마주치길 피하는 내 얼굴을 한손으로 잡아 자길 보게했다. 상준이 눈에 파란 불꽃이 보인건.......내 눈의 착각일까.....?얼만큼 화가 나 있는지 알수 있는 눈빛이였다. 내겐 생소한 모습의 상준이였다. 가슴의 떨림이 더 심해졌다.
"이런식의 도발 하지마.......책임지지 못할거면.......할 맘이 없을거면......시작도 하지 말라구.....더는 이런식으로 날 자극하지마......알아 들어......이건 경고야....."
"............."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면서......내게만 바라는 그런 몰염치한 짓 하지 말라구.......예전의 철부지 소년이 아니니까......네가 움직이지 않는이상...... 내가 먼저 움직이는 일은 없을거니까.......그러니.....이런식의 행동 하지마.......다신....."
"알았어.....미안해......"
".....뭐....?미안해......미안하다구.....?"
"힘들게 했다면 .....정말 미안해.....날 보는게 이렇게 힘든다면......사라져 줄께......내 눈에 보이지 않게 ......없어져 줄...."
"야 !이여경....!!!너 정말......!!!....나 죽는꼴 볼래....?엉! 어디까지 날 끄집어 내릴래.....?대체 너........."
갑자기 상준이 날 잡고 흔들었다. 까맣게 타들어가 재 뿐이 남지 않은 .......울어도 쉽게 눈물이 되어 나오지 못하는 물을 얼굴에 가득 담고 있는 날 상준이 휘청거릴 만큼 몰아세웠다.왜 이리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지.......내안의 감정은.....하나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왜 이렇게 상준이 화를 내는지.......알수가 없었다.
날 보는 상준이 눈에 광기가 어린것 같았다. 물기가 어린건지.....아님.......눈을 마주볼수가 없어 고갤 돌렸다.
순간이였다. 돌려지는 내 얼굴에 상준이 손이 다가왔고.......거칠게 내 입술에 내려앉은 상준이 입술.......거칠다는 느낌.....억지로 입술를 가르고 들어온 혀가 여기저기 세게.....내안의 모든 감각을 아프게 치고 다녔다. 이빨이 딱딱 부딪칠 만큼.......입안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격한 감정이 치밀었다. 아니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지금 상준이 얼마나 화가 많이 나있는지......그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 왔다. 그래서 마음이 산산히 쪼개어 지고 있었다.내가 많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그래서 상준이 아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술을 물고......입안 깊숙이 들어와 내 안에 생채기를 내는 상준일 내가 안았다. 두팔을 상준이 등뒤로 돌렸다. 내게 아픔을 주고자 하는 상준이의 화를 식혔다. 놀라서 피하려고만.....달아나려고만 잡히지 않으려고 했던 혀를 돌려 상준이에게 부드럽게 다가갔다. 잠깐 멈칫거리던 상준일 ......이번엔 내가 강하게 잡았다. 부드럽게......약하게....또는 강하게 그렇게 내게 잡힌 상준이 혀를 내가 감싸안았다. 부드럽게 터치하며......혀를 깊게 강하게 넣었다.
예전......막 스물이 되었을때.....기습적인 뽀뽀을 한 이후......첨 하는 키스였다. 제대도 된 입맞춤은.......첨이 였다. 내겐 첫 키스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