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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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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일곱살 소녀로


BY 주 일 향 2004-01-31

 

공원 입구에서 내린 경옥은 팔각정 앞에 서있는 그를 보았다.

정장차림의 그는 품위있고, 멋있는 중년 남자가 되어 있었다.

경옥을 보자 환하게 웃으며 마주 걸어왔다.

“ 경옥씨, 하나도 안 변했어요.,”

“ 많이 늙었죠 뭐,”

“ 아녜요, 열 일곱 살 때 모습 그대론걸. 내겐 그렇게 보여요.”

“ 오빠도 그대론데요, 뭘.”

“ 정말? 기분 좋은데.” 그는 시원하게 웃었다.

그의 미소는 아직 소년처럼 싱싱했고, 명랑한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 우리 수련 보러갈까?”

“ 수련요?”

그가 이끄는대로 경옥은 걸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었지만 제법 큰 연못이었다.

수련인지 연꽃인지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 와, 정말 아름답네요.”

“ 경옥이 생각날때마다 난 이곳에 와서 연꽃을 보고 가곤 했는데.....”라고 말하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마주 대할 때의 명랑한 얼굴과 달리 쓸쓸해 보이는 옆모습을 경옥은 바라보았다.

“ 경옥씨.지금은 수련과 연꽃 구별해요?”

대답대신 고개를 젓는 경옥을 바라보며 그는 다시 한 번 설명을 했고 ‘연꽃 역시 수련과니까 같다고 볼 수 있지요.‘라고 옛날처럼 똑같이 말했다.

‘ 이렇게 가까운 곳에 수련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못했어요.“

경옥의 얼굴을 흐뭇한 듯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 딸 낳았다고 들었는데, 경옥씨 닮았음 아주 이쁘겠네.”

그는 옛날로 돌아간 듯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 절 닮아 이쁜게 아니고 제 딸이라서 이쁜걸요,.”

두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었다.

“ 세월이 참 빠르죠?”

“ 그래요, 열 일곱 청순하고 가녀린 소녀가 아기 엄마가 되었는데, 빠르고말고,”

“ 오빤 아들이라고 들었는데, 오빨 닮아 잘 생겼나요?”

“ 날 닮아 잘 생긴건 아니고, 내 아들이라 잘생겨 보여, 나도.하하하”

그는 정말 유쾌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주위사람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오랜시간 헤어져 지냈던 공백을 메꾸려는 듯 쉴새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 경옥씨 변하게 한가지 있는데, 알아?”

“ 제가요?” 순간 긴장하는 표정을 짓자 그는 가볍게 볼을 건드리며 말했다.

“ 다 그대론데,.....” 약간 뜸을 들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예전에 경옥씬 참 말이 없었는데, 지금보니 아주 말을 잘하네,”

“ 변한게 바로 그거였어요?”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묻자 대답대신 그는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경옥을 응시했다.




초인종 소리에 형님의 이야기는 잠시 중단되었다.

요란스럽게 발소리를 내며 아이들이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