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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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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을 빚으며


BY 주 일 향 2004-01-29

 

아이들에게 줄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여전히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나자 아이들은 인라인스케이트와 자전거를 끌고 모두 밖으로 나갔다.

다시 집안에 남겨진 미연과 경옥은 냉장고에 넣어둔 쌀가루를 꺼내 끓인 물로 반죽을 한 뒤 식탁에 마주 앉았다.

깨와 설탕을 적당히 섞어 만든 고명으로 배가 불룩한 반달모양의 하얀송편이 쟁반에 가지런히 놓여졌다.

“ 요즘 행복해?”라고 묻는 형님의 물음에 미연의 억눌렸던 감정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 형님, 저 너무 속상해요.”

“ 무슨 일 있었어?”

“ 그런건 아닌데요, 저 요즘 무지 외로워요.”

“ 외롭다니 무슨 소리야?”

“ 수연이 아빠 때문이죠 뭐, 사실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지만...요즘은 정말 견디기 힘들어요.

원래 여자는 남자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솔직히 저,,그동안은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었잖아요.그런데 아이들이 크고나니, 남편의 사랑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나봐요. 예전엔 몰랐는데, 요즘 너무 외롭다는 생각 때문에 우울하고 힘들어요.“

“ 혹시 서방님도 바람같은거 피워?”

“ 모르죠 뭐.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집에 있는 제가 알 길이 없죠.”

“ 잠자리는 여전하지?”

“ 후훗. 일주일이면 사오일은 일에, 회식에, 상가집에, 게다가 아무 이유없이 늦게 들어오는데, 무슨 역사를 만들 수 있겠어요?”

“ 원래 바쁘긴 했지만, 그정도야? ”

“ 집보다 밖에 재밌는 일이 많은 사람이잖아요.”

“ 일때문이라면야 할말이 없지만, 이유없이 늦는건 문제지.”

“ 솔직히 따지다가도 회식도 일의 연장이라고 말하면 말문이 막히는 걸요.이제껏 체념하고 살아왔는데... 요즘들어 더 힘드네요.”

“ 서방님과 대화는 해봤어?”

“ 대화요? 대화할 시간도 없지만, 별로 내키지도 않아요.형님.”

“ 그래도 불만을 얘기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 바가지라도 긁으면 그때 뿐인걸요.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 그럼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와. 그러다 병나겠네,”

“ 안그래도 얼마전에 초등학교 동창에게서 연락이 왔었는데, 고향에 내려가서 동창회를 한다며 꼭 참석하라구요. 그렇지만 거절했어요. 맘도 심란하고 별로 땡기지 않아서요.”

“ 동서, 동창회에 가보지 그랬어. 동창들을 만나면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데,

나도 여고 동창회에 갔다가 열 일곱의 나이로 돌아가는 걸 체험했거든.“

“ 정말요?”

“ 고비고비 힘들었을 때 안식처가 돼 주었어, 난.........”


경옥은 잠시 뜸을 들이며,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송편에 참기름을 푼 물을 묻혀가며 소쿠리에 담아냈다.

한 입 배어물자 송편 속의 달콤함과 고소함이 입안에 배어나면서 떡의 쫀득한 감촉이 혀 끝에 느껴졌다.

“ 송편이 참 맛있어요. 형님.”

“ 그래. 많이 먹어, 동서.”

“ 아까 본 수련 말예요. 난 연꽃과 구분이 잘 안가던데요.”

“ 그럴거야.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은 아니니까...”

“ 난 연꽃을 보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어. 동서.”

“ 추억요?”

경옥은 창밖너머로 시선을 던지며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는 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 무슨 추억인데요, 듣고 싶어요.”

미연은 대답을 재촉하듯 다그쳤다.

“ 들려줄까?” 시선을 먼 곳에 던진채 경옥은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