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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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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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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BY 마야 2003-12-25

산에 간다 지리산 간다.

 

산에 간다.

지리산 간다.

병신 둘 이서 지리산 간다.

나는 눈 두 알 만 달랑 달고,

새 들이 노래하는 소리 보러 간다.

너는 한 다리 절며, 그래도 몸뚱이 꽂꽂이 천황봉에 세우고,

네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알려고 간다.

 

산에는 별만큼 많은, 이름 모를 풀 꽃들이 있고,

산에는 아주 예쁜 아가씨 하나가 대금도 불어 준다.

산에는 아주 마음씨 좋은 털보 아저씨가 고함도 쳐 주고,

산에는 내 어린 시절, 그림자도 따라 온다.

 

산에 간다.

지리산 간다.

아버지 불호령 지우려 지리산 간다.

"어허~병신이 어딜!"

 

산에 간다.

지리산 간다.

 

 

두 번째 치르는 사진전 입니다.

저는 인사동 선 겔러리로 가기 위해

아버지 기사 분이 운전해 주시는 차 안에 앉아

여러해 전의 여름을 회상하고 있었던 같은데...

장마도 아닌데 빗방울이 제법 거세게 차창을 두드립니다.

광주에서 막 빠져나온 자동차가 판교 인터 체인지를 거쳐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서자 빗 줄기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거세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저런 생각으로 주르륵 주르륵 흘러

유리벽을 핥고있는 빗방울 보고 있습니다.

"아가씨! 늦으시면 어쩌죠?"

기사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물어 오시는 소리를 듣기 전까진 말 입니다.

"아니요! 걱정 하지 마세요. 막혀도 천천히 가세요. "

나는 짤막한 말을 한 다음 백밀러를 통해

함박 웃음을 아저씨에게 주었습니다.

 

우산을 받혀주겠다는 아저씨의 간곡한 부탁도 저바리고

비옷 자락을 흗날리며 외한은행 골목을 지나 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거리이니 별 번잡을 부릴일도 없고 해서...

겔러리 문 앞에 서서 우산을 접고 비옷을 벗어 탈탈 털고 서 있는데

진행자 여러 사람이 나와서 저를 반겨 줍니다.

빗 속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빼꼭히 들어찬 겔러리 안으로 눈을 돌리자,

갑자기 나는 털컹 가슴이 내려 앉기라도 하듯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아이고...이 부끄러운 개인전에 이다지도 많은 사람들이 오다니.."

황송하기도하고 뭐라 형언 할 수 없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그때 여자 진행자 한 분이 쪽지를 건네 줍니다.

시가 적혀진 메모입니다.

끝에는 전화 번호와 은혜학교라는 짧은 말이 추신으로 남겨져 있더군요.

저는 금새 그것이 누구인지를 알았습니다.

"이분이 언제 다녀 가셨지요?"

"그건...잘 모르겠는데...쪽지가 저기 저 사진 아래에 꼿혀 있어서..."

그녀가 가리키는 사진은 물장구치는 두 젊은 남자의 반나체 사진으로

흑백 사진 입니다.

제목은 노을아! 노을아!

나는 사진 앞으로 걸어갔지요.

그리고 사람들이 벌써 나를 짐작으로 알아 보고 자리를 비켜주더군요.

해서...저는 그 사진 앞에 서서 내가 찍은 그 사진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칠년전 찍은 사진 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아주 길어지는데 어쩌죠?

그래도 당신에게 들려 드리렵니다.

아~아! 물론 그 사진을 전시 하기 전에

짧은 서신으로 두 분의 남자 분에게서

각각의 허락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니까...

칠년전.

 

저는 선천성 심장 판막증을 앓고 있었고,

몸이 허약해서 수술시기를 맞추지 못한체

지금까지 수술은 거부하고 약을 이용해

통증을 이기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중 입니다.

이 장애는 어른으로 성장 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대부분은 목숨을 잃는데 반해,

저의 경우는 특이하게도 키도 자라고...

물론 다른 기관의 성장이나 발육은 멈춘듯이

아주 뼈만 남은듯 말라 있는 체형으로

알몸을 보인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파기 일쑤여서...살아있는 나 자신이 부모에게

주는 고통의 무게가 제가 겪는 가슴의 통증보다 더 심해서...

사진을 찍기 위한 핑게를 삼아 어머니의 친 남동생이 주지

스님으로 계시는 지리산 불일암에 무작정 묵을 때의 일 이었습니다.

 

며칠은 하루도 꼬박 걸어야 닿는 연화천 산장에서 일몰을 기다리기도 했고.

며칠은 새벽부터 잠을 설치며 고사목에 앉아 일출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저의 몸의 장애 정도는 나의 정신력에 달려 있다고 강하게 믿었고

그래서 어려서 부터 호흡조절겸 저의 정서를 안정시키기 위한,

아니 차라리 불심이 강한 어머니의 강한 의지가

혹시라도 나의 쉼호흡을 더 발달 시켜, 저의 폐 기관을

더 강하게 만들 것 이라는 강한 믿음으로

대금을 배우도록 허락하셨고 또 엄히 지도 해 주셨던

탓에 대금을 연주하는 실력도 꽤 수준급 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금을 벗 삼아 산에서 산 사람 처럼

그 해 한 해를 거의 지리산을 이곳저곳 누비고 돌아 다녔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한 여름인데도 일교차가 심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저의 몸은 보통사람들과 달라서 조금만 추워져도

피의 흐름에 큰 변화가 오면서

심장에 꽤나 큰 통증이 잇닿게 되곤 했습니다.

통증이요?

그 통증은...코끼리 한 마리가 당신의 가슴을 짇밟고 지나는 그 정도쯤 될껍니다.

사실 그럴때면 저는 매일 정시에 먹어야 되는 그 작은 알약을 내동이치고 그냥

그대로 죽고 싶은 심정이 간절 하곤 했었지요.

그럴때면... 어머니의 얼굴과 아버지의 얼굴이 늘 저를 괴롭혔습니다.

실제로 그런적도 있었구요.

알약을 먹을 시간을 일부러 지나쳐 산 속에 혼자 뒹굴면

상길이나 연화천 산장지기 아저씨, 또는 장터목 산장지기

털보아저씨가 저를 발견해서 들쳐엎고 불일암으로 뛰었던 적도

여러번.

하지만, 저는 어느 순간부터

모든 나의 행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서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조금씩 지우고 있었지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그나마 어려움없이 자랐으니

그나마 저는 아주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현명한 어머니는 처음에는 무작정 산사에 머무르겠다는

나의 고집 앞에서 눈시울을 약간 붉히시다가.

"음...그러렴. 하지만, 약속해 다오.

약은 제때 먹어야 되느니? 너의 목숨은

이미 이땅에 내려 올때, 너의 목숨

이전의 다른 인연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는

는 것을 명심하고 힘들겠지만, 부질없는 생각은 말기로 하자...

약을 가져다 주는 일은 내가 해도 되겠지?"

라고 아주 엄하게 타 이르시듯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철쭉꽃이 반발하던 초 봄에 지리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몇달이 지나자 저는 점점 기후에 몸이 익숙해 지는 것을

느꼈지요. 아아! 지금 이렇게 옛날을 회상하다 보니...진성스님도

상길이도 보고싶고, 산장지기 아저씨들의 얼굴이 훤하게 저의 눈

앞을 지나는 군요.

 

연화천 산장은 옛날 선비와 선녀에 대한 아름다운 전설이 있어서

산장 아래로 졸졸 흐르는 작은 셈물은 선녀탕 이었는데...탕 처럼 물이

많이 고이지 않아 자연스럽게 선녀셈이라 불리우고, 두어시간 걸어가면 있는

또 다른 셈물은 선녀를 그리워 했던 선비의 눈물이 고인 선비셈이 있지요.

또 이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이 뒤로 있어서...남원에서 오르는 등산객,

피아골에서 오르는 등산객, 상주에서 오르는 등산객 이렇게

삼도가 만나는 삼각지점이 천왕봉 이다 보니,

누구나 대개는 연화천 마당이나, 산장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 여정을

떠나기 때문에 매일매일 사계절 내내 등산객들로 붐볐습니다.

 

그 해 그러니까...1987년.

그해 여름은 지독한 장마전선이 지리산을 덮쳐 아주 위험한 사태를

많이 만들었던 바로 그 해 였습니다.

지리산에 한번 발을 들이면, 어느 방향에서 오르건 완전히 종주를 하듯이

산을 하나하나 넘어야만, 삼도중 한 곳으로 내려 갈 수 있고, 또...지리산의

특성중 하나가 산자락은 그리 높진 않지만, 굽이굽이 늘어진 산자락은 끝이

없을 정도로 펼쳐져 있어서, 일단은 등산객들이 아무리 빠른 잰걸음으로 재촉을

해도, 결국에는 오일이 꼬박 걸리는 등산이 되는 그런 산 이지요.

 

저는 그 장마가 오늘 내일 하는 그런 어느날

이른 저녘을 먹고 고사목에 올라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늘 앉아 사람들이 뜸해지면, 대금을 불곤하던

그 바위에 앉아서 말이지요.

쟂빛 구름들이 물감 묻은 붓을 물에 저으면

번지듯이 서서히 하늘을 덮기 시작하더니

금새 오후내 내리쬐던 태양을 밀어 내듯이 덮고 있었습니다.

"아~아! 오늘도 멋진 일몰은 안되겠다."

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소리내면서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의 랜즈 뚜껑을 덮었습니다.

 

물먹은 솜 이불같은 먹구름이

금새 빗방울이라도 떨굴것 처럼, 태양을 겹겹이

에워 쌓자, 태양은 제 색을 잃고 희뿌연 주홍빛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빛이 구름을 이기고 있어서,

고사목 몸뚱이 하나하나가 훤히 보였지요.

저는 그 고사목에 앉아 있는것을 즐겼습니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삼세가 늘 한데 있었거든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늘 고사목처럼 그렇게 한대 있어서 좋았습니다.

천왕봉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텐트를 치기 직전에 늘 들르는 그곳 고사목에

그날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말 없이 앉아 사람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야호! 야호!]라고 천왕봉에 오르면

지르는 인사를 고사목에서도 사람들이

가끔씩 합니다.

대부분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눌려

함구무언하고 평야같은 고사목을 눈물을

글썽이면서 둘러 보는 사람,

벌렁 드러누워 하늘을 우러러 보며 대지에 안기듯이 질퍽하게

눕는사람, 이렇게 저마다의 방법으로

자연의 법과 아름다움에 찬미를 보내더군요.

고사목을 가장 많이 카메라에 담았던 이유도...

육개월을 넘게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 고사목

들이 천 년 뒤에는 살아나서 천 년 전의 전설을

들려 줄 것만 같기도 하다는 그런 착각까지 하게

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천년전의 전설을 그 고사목들이 언젠가는 제게 들려줄 것 이라고....

그리고 천 년 뒤에 다시 살아나

지금의 이야기를 들려 줄 것 이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뜸해지고, 고사목 평지에 하얀 빛줄기가

붉은 빛줄기를 덮고, 벌겋던 구름바다가

허여멀건하게 달빛처럼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일몰을 늘 기다렸지만, 저는 그 색을 아주 좋아했지요.

그 하늘과 진회색의 고사목은 제가 추구하는

흑백 사진에 너무나 잘 어루리는 색 이었거든요.

사진을 몇컷 찍었습니다.

그리고 말없이 앉아 명상하듯이 바위에

웅크리고 앉아 바위가 되어가고 있을즈음...

인적이 뜸한 고사목으로

두 남자가 걸어 올라 오는 것 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다리를 절룩이고,

다른 남자는 빨간 손수건을 이마에 질겅 동여멘체

팔뚝이 훤히 들어나 근육이 보이는 당당한 걸음으로 말입니다.

약 이 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던 두 사람들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의 빛이 고사목에 남아 있어서...

저는 그 두 남자의 얼굴은 뚜렷하게는 볼 수는 없었답니다.

다만 다리를 심하게 절며 걸어오는 남자와 또다른 남자의

형체만 들어 날 정도로 고사목이 밤으로 물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다행이 그 두 남자는 저를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두 남자를 훔쳐 보듯이 훤히 보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처음 다리를 절룩이며 올라온 남자가 입구에 서서 먼 하늘만 보더군요.

그리곤...그 근육질의 남자는 허둥대듯이, 아니 마치 마차가 덜컹거리면서

걷는것 처럼 뚜벅뚜벅 걸어서 곧장 앞으로 가더군요.

저는 웅크렸던 몸을 반사적으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조심성 없는 듯한 걸음걸이가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또...이미 붉은 빛은 다 토해내고

하얀 빛 줄기 몇자락만 남아 있어서 점점 어두워 지고 있는데다...

고사목은  평지처럼 보이지만, 연화천 산장의 지붕처럼 아주 넓은 암벽으로

되어 있어서, 그 남자가 걸어가는 끝지점은 낭떨어지 였거든요.

다행히 그 남자는 낭떨어지 바로 윗 지점에 우뚝 멈춰 서 더군요.

절룩이던 남자는 저의 왼편에 그대로 서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마치 그 남자도 고사목 한그루처럼 우뚝 서서 먼 하늘만 보고 있었답니다.

고사목에 두 남자와 저 그렇게 세 사람만 있는듯.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갑자기 깊은 정적을 깨고...

마지막 태양빛이 구름바다에서

마지막 항해를 끝내고 하늘이 하얀 물빛으로

물들기 시작할때, 짐승의 울부짖음

아니, 깊은 심연의 고통을 토해내듯이

한이 섞인 울음소리같은 신음 소리가 울리기시작했습니다.

저는 두 남자를 번갈아 가며 보았습니다.

그리고...땅에 절을 하듯이 업들여 꿇어앉은 그 벼랑끝에

선 남자가 내는 소리임을 금새 알수 있었습니다.

 

"꺼억! 억!흑흑흑흑~윽 꺼억! 흑흑흑흑흑!"

덩치가 큰 곰한마리가 자식을 잃고 토해내는 그런 소리.

호랑이가 표효하듯 크르렁대는 소리 같은 굵은 소리가

제 심장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남자는 목에 걸고 있던 수건을 목에서 내려

훠이훠이 저으며 서 있더군요.

저는 순간 마치 두 스님들이 앉아서

서로의 화두를 확인 하고 있는것은 아닌가?

또는 선 문답 중인가? 하는 의구심 마져 들더군요.

분명 두 사람은 범상치 않은 어떤 힘이 있기도 했지만...

아마도 다른 한 사람이 다리를 절고 있다는 사실이

저를 더 감정적으로 만들었었다고 뒤 늦께야 깨달았었습니다.

그렇게 웅크리고 울음을 토해내던 남자의 울음소리가

점점 선명해지면 해 질 수록 고사목 평온은 잠시 어둠으로 깔렸다가

여린 달빛이 구름을 뚫고 세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움직임이 없더군요.

저는 저도 모르게 가슴에 안고있던 대금을 내어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그 둘을 위해서가 아니라...저를 위해서.

제가 연주를 끝내자, 그 포효 소리도 멈추더군요.

그리고 그 남자가 서서히 일어서는 모습이 가늘게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왼쪽에 서 있던 남자가 몇 발작 제가 있는 곳으로 다가서다가 멈춰 서 더군요.

저도 서서히 일어서서 산을 내려갈 준비를 하느라

그 절룩이던 사람이 있는곳으로 걸어 갔지요.

여린 달빛에 그의 옆 얼굴이 선명히 보이더군요.

아주 강인한 모습의 윤곽이 뚜렷한 그 남자는 제가 걸어오는 것을 알면서도

앞만 보고 서 있더군요. 저는 저도 모르게 합장을 했습니다.

"성불하십시요!"라고 작게 읇조리듯 말하면서...

그러자 그 남자가 말을 했습니다.

"연주 잘 들었습니다."

젖은 목소리가 굵고 조용히 들려 왔습니다.

"방해가 안됐다니 다행이군요... 좋은 산행 되십시요."

하고 그를 스쳐 지나 산장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제 등 뒤에 서 있던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더군요.

그렇게 저는 내려와 방금전 보았던 그 광경이 눈에 밟혀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마루에 걸터 앉아 부산한

앞 마당을 내려 다보고 있었습니다.

"어딜 갔다가 이제오누...일몰 기다렸구나...

 어쩐담? 내일쯤 비가 쏟아질 모야인데

 우리 강산이 일몰은 또 물거품이 되는구려...하하하."

산장지기 아저씨는 제가 머무는 날이면

마실도 안가시고 저를 감시하듯이 늘 제걱정 하시느라

그림자처럼 제 곁을 지키는 사람중의 한 사람 이었습니다.

"비가 온데요? 내일부터?."

저는 넔을 잃은 사람처럼 힘없이 댓구를 하고

왁자지껄 떠들면서 이미 저녘을 지은 사람들이

저녘을 먹느라 또, 이미 저녘을  끝낸 사람들이 텐트에 들어앉아

그림자를 흔들거리면서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산장 앞 마당을 내려다 보고 있었지요.

 

산장 마루에는 마당으로 밝은 빛을 쏘아주듯 큰 전구 세개가 있어서,

사람들이 잠 자리에 들기 전까지 앞 마당은 늘 훤했습니다.

즐거워 하는 사람들의 출렁임 속에

마당 저 끝으로 고사목에서 보았던 두 남자가

텐트를 치고 있었습니다.

다리를 저는 남자는 계속 뭐라 말을 하느것 같았고,

흐느껴 울었던 그 남자는 계속 텐트 자락을 놓혀

텐트 하나를 치는데 엎치락 뒤치락

쉽게 끝날것 같지 않아 보이더군요.

한 남자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계속 그 다리를 절룩였던 그 남자 혼자서 뭐라

외쳐대는 듯 했습니다.

저는 목을 빼고 한참을 내려다 보다가 내려가 도울까 말까 하는데

옆 텐트에서 남자 하나가 나와 둘을 돕더군요.

고개를 굽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두 남자를 보면서

저는 점점 더 둘에 대한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서야 텐트를 치면...언제 저녘을 지어 먹는다지?

라는 생각과 우려를 하면서 앉아있는데 ,방 안에서 상길이가

나와 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것 이었습니다.

 

"강산 아가씨! 아니 누나! 김치 빈대떡이랑, 부추 빈대떡 만들었는데

 빨리 들어와서 먹어 보세요."

잔심부름을 하면서 지내는 상길이는 고아원에서

산장지기 아저씨가 아들삼아 데려와

산 사람처럼 그곳에서 사는 열네살 먹은 소년인데...

늘 벙글벙글 웃는 모습이 천진해서

저와 가끔씩 산행을 같이 하곤 했었습니다.

"상길아! 빈대떡 많이 했니?"

"많이?...그건 잘 모르겠는데요...많아요..

 아가씨 먹고도 훨씬 많이 남을걸요?"

"그러면...아줌마 한테...두개 골고루 담아서

 푸짐하게 한접시 부탁한다고 전해주렴?

 두 사람과 나워 멀을 수 있을 만큼 말야..알았지?"

라고 말을 하면서 살짝 윙크를 해 주었습니다.

저는  틀림없이 하루종일 음식다운 음식을 전혀 먹지 못했을

두 사람이 걱정이 되었지요.

해서 밥을 짓는 동안 빈대떡 으로라도

시장끼를 달래도록 가져다 줄 생각 이었답니다.

얼마 안 있어 상길이가 큰 접시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빈대떡을 담아 들고 마루로 나왔습니다.

"아참! 고맙다. 상길아 누나 쉐타좀 갔다주렴?"

"예? 아~예..."

저는 몸이 추워지기 시작해서 쉐타를 기다리는 동안

접시의 온기를 느끼면서 양손으로 받혀들고 디딤돌 위에 서서

상길이를 기다리면서 계속 그 두 사람의 텐트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절룩이면서 남자가 코펠을 들고 셈쪽으로 가더군요.

텐트 안에 있던 남자는 무엇을 하는지 잘 보이지 안았구요.

"여기 있어요. "

"음...고마워! 나 금새 저기좀 다녀 올께...

 밥을 아직까지 못 먹은 사람들이

 있는듯 해서 말이야..."

내려가는 내 등 뒤에서 상길이는 저의 말을 듣고

큰소리로 외치듯이 말했습니다.

"밥이 많이 남았는데...와서 먹으라고 하시지 그러세요?"

저는 상길이의 고운 마음씨를 또 한번 느끼면서..

"아니야. 등산을 하는 재미중에 하나가

 찬 없는 밥이 맛있어서 하는 사람도 있잖아."

라고 짧게 댓구를 하고 텐트 사이를 이리저리 지나

그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제가 텐트 앞에 도착하자, 언제 왔는지

그 절룩이는 남자는 코펠에 씻은 쌀을 담아 막 버너 위에 올려 놓고,

저녘 찌게를 끓이려던 참 이었습니다.

제가 헛기침을 한번 하자,

열려 있던 텐트 문에 동시에 두사람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그 절룩이던 사람은 저를 금새 알아보는듯 했고,

그 근육질의 남자는 갑자기 놀란 토끼 눈을 하더니

부산스럽게 베낭을 뒤져 팔이 있는 셔츠를 입더군요.

"저어~이걸로 라도 시장끼를 달래고 저녘을 지으시라고...."

꽤나 나이들이 들어보이는 두 남자는 친구인듯 했고, 둘다 안경을 쓰고 있었서

두 사람의 눈을 찬찬히 볼 수는 없었지만, 곱슬머리의 남자는  그 다리를 절던

바로 그 사람이었고, 그 남자는 역시나 윤곽이 뚜렷한 강한 얼굴에

약간 경직된 듯한 엷은 미소를 머금은 그런 얼굴이었습니다.

반면에 그 꺼억거리며 신음했던 그 남자의

미소는 마치 아이처럼 해맑아 마치 상길이가

웃는것 처럼 하얀 이를 들어내고 저를 반겼습니다.

"아~아 ! 감사합니다." 곱슬머리의 그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접시를 두손으로 받더군요.

그러자 그 해맑은 미소를 한 남자도 일어서다가

키가 약간 더 큰 탓에 이마가 텐트 천정에

닿자, 고개를 약간 숙이면서 괴상한 말투였는데...

음의 고저가 없고, 더듬거리듯이 말을

하는 것 인지 시를 읊는것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

그런 말투로 어설프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아주 작은 소리여서 귀를 쫑긋 세우고 주의깊게 들었습니다.

"누구신지요? 선녀탕에서 내려온 선녀님처럼 아름다운 이 아가씨는...."

제가 약간 놀라 주저했던 모양인지...

그 곱슬머리의 남자가 얼른 끼어 들었습니다.

"아~아. 이 친구는 듣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저는 보시다 시피..."

그러면서 그는 그의 다리를 만지작 거리더군요.

저는 그제셔야 아까 그 광경이 한꺼번에 이해가 되었고, 

텐트를 치는데 왜그리 더디고 문제가 많았던지를 알게 되었답니다.

"들어 오시죠? 괜찮으시다면...아까...대금을 불었던 그분 맞지요?"

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신발을 벗고 텐트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저는 강산 이라고 해요."

"아~ 예~에. 저는 박진석이구요. 여기는 정현수입니다."

우리는 가볍게 악수를 했습니다.

"저는 농아자 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서

 아주 특별하게도 저는 이렇게 조금은 이상할 테지만...

 말을 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늘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또박또박 말을 하는 현수라는 남자분과, 얼굴과는 달리

아주 익살스러운 진석씨.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을 만나게 되었지요.

물론 저는 그날 밤 그 둘의 텐트에 열시가 넘을 때까지 있었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성이란...

금새 믿고 친해지고 서로를 배려합니다.

또는 금새 마음을 훤히 들춰내고 가슴을 들이밀고 이야기 하는 법이지요.

하지만, 저는 그때까지도 저도 장애인 입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한번도 그렇게 그 두 사람처럼 떳떳하게 말을 해 본적이 없어서...

입 안에서만 맴맴 돌뿐 끝내 말을 못했습니다.

잘자라는 인사를 하면서 산장으로 돌아오는 저의 발걸음이 아주 느렸습니다.

농아인 학교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29살의 나이에 수능시험을 준비중인

현수씨,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공체입사 준비를 하는 진석씨.

세상에 태어나 한번도 멀리 여행을 못해 본 친구 현수씨를 위해서

진석씨가 특별히 마련했다는 이 등산....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제 가슴 가득히

쌓이면서 저도 장애자 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돌아선 까닭에 발걸음이 무거웠던

것 같습니다.

 

마루에 메달린 세개의 전구가 꺼지고...

산장 마당에는 렌텀빛이 노란 꽃송이 처럼

여기 저기 밝혀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꽃송이 위로 달빛이

제법 밝게 쏟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