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로드먼의 얼굴이 얼룩지듯, 겨울비가 내린다.
씨애틀의 겨울은 늘 비를 안고 산다.
타불러 교수가 서른 늦깍이로 경찰직을 물리고, 씨애틀 주립대학의
범죄심리학과의 문을 두드릴 때까지 늘 그녀의 잠 자리에 따라다녔던,
바로 그 악몽처럼,씨애틀의 겨울은 비를 안고산다.
다른 주 에는 대설 주의보가 내렸어도, 씨애틀에는 비만
내린다. 모로 여러번 뒤척이던 타불러 교수가 막 선잠이 들었을까...
차가운 공기가 칠흑같은 터널 속으로 핥퀴듯 휘몰아져 들어오는가 싶더니,
목덜미와 어깨를 쏴아하게 스치고 지났다. 저 멀리, 아주 멀리로 세로 선 작은
희미한 빛줄기가 보인다. 어린 케서린은 그 빛줄기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실오라기처럼 가는 빛줄기가 손끝에 닿을락말락할 때 즈음이면, 그 얇은 빛줄기는
또 처음의 거리만큼 멀어져있다. 갑자기, 어린 케서린이 아닌, 이제는 성인이된,
마흔살의 타불러가 터널에서 떨고 있다. 얼마나 달렸을까...
빛줄기는 다시 멀어진다. 또 뛰어본다. 어둠은 차가운 공기를 한 차례 더 몰고온다.
타불러는 그만 주저앉아, 고개를 무릎에 묻고 흐느껴 울기시작한다.
한 동안 타불러를 괴롭혔던 그 꿈이 멎었는가 싶었는데...
타불러 교수는 식은 땀을 흘리면서 잠에서 깨어나, 온몸을 떨고 웅크리고 앉아
아직도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커튼이 들이워진 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창가로 가, 커튼을 젖혀 밖 공원을 들여다보았다. 아침 일곱시 인데도, 밀려오는
여명을 쟂빛 빗줄기가 뭉게고 눌러, 재색하늘이 밤같다.
타불러 교수는 식은땀이 식고있는 목덜미가 싸늘해짐을 느끼면서, 두 손을
목 뒤로 넘겨 주무르며 커피라도 마셔야 되겠다는 생각에 천천히 방을 나서,
일층으로 내려갔다.
밤새 켜진채 슬로우 모션으로 있었던, 로드먼의 얼굴이 대형 화면 가득히 서서
타불러를 보고있는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 타불러는 자신도 몰래 깜짝 놀라며,
계단에 주저앉았다.
푸른눈, 눈가에 는 잔주름, 깊고깊은 그의 눈동자가 타불러를 애타게 바라보는듯한
그런 얼굴이었다.
타불러는 심연의 불덩이같은 무거운 물체가 울컥 목을 타고 올라오는것을 느꼈다.
잠시후, 그 뜨꺼운 물체는 물방울이 되어 볼을 타고 목덜미를 적시며 뚝뚝 떨어졌다.
긴 한숨을 몰아쉬면서, 두 손바닥으로 젖은 눈을 지긋이 눌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흐르던 눈물이 목을 타고 꿀꺽 다시 되돌아 제자리로 가는것을 느꼈다.
힘없는 발을 천천히 내려 디디며 부엌으로 들어가 커피를 내렸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타불러 교수는 느리게 걸어, 거실 책상위의 전화 수화기의 화면을 보았다.
헤크먼 학장의 자택 번호가 찍혀있었다.
리모콘을 먼저들어 밤새 켜져있었던 비디오를 끌까말까를 잠시 망설이다가,
코를 한 번 훌쩍인다음, 티비를 등지고 선채 전화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타불럽니다. 좋은 아침이군요."
"좋은 아침!. 자네 밤새 잠을 못잤군. 이거 어쩌나..."
"괜찮습니다. 그런데..."
"자네...미안하네. 케서린, 우편물을 크리스군이 직접 가져다 놓았을텐데 받았나?"
"녜."
"케서린, 줄리와 나는 알다시피, 자네를 친 딸처럼 사랑했네.
자네의 오년간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알아.
하지만...너무 길다. 그리고, 자네는 나의 친딸같은
존재이기 앞서서 유능한 교수이자, 탐정이야...
난 내년엔 정년퇴직이야. 자네같은 훌륭한 인재를 알게되서 늘 기쁘고...
자네가 친부모를 찿아 몇년을 고생한 끝에 친부모의 행방을 알고 나서
자네의 상심이 어떠할 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케서린, 이 사건은 그리 간단한 사건이 아니야.
자료를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죽은 헬레나양은 그녀 자신도
거물이지만, 유수한 몰건 정유회사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 딸이야.
게다가, 콜로라도 전역을 휩쓸듯이 맹세를 날리는 카지노의 대부
호세가 이번 선거에 출마 하네, 이 사건은 아주 복잡하게 느껴져.
살인사건이라고 일단, 콜로라도 강력계가 밝혔지만, 사인이 아주
교묘한데다가...자살과 타살이 밀접하게 연관된듯 하단말야.
자네도 내 강의에서 들었던 기억이 날 껄세.
한 남성을 증오했던 한 여성이 그 남성이 늘 보는 광고를 조작했고,
그 광고는 그 남성의 식욕을 불러 일으키는데 성공하지? "
"녜.그럼요.잘 기억해요.그 강의는 제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남성은 절대로 취하면 안돼는 일정량의 콜레스테롤을
일정한 간격으로 햄버거를 먹게됨으로서 증가시켜서 심작발작으로
죽게했던 그 사건 말이죠?"
"그래...케서린, 자네가 이 일로 로드먼을 다시 보아야 되는
괴로움도 다 생각해 보았네. 하지만, 둘다 공적으로 일을 처리
할 수 있는 지각이 있는 사람들이쟎은가?"
"하지만, 제가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죄송해요."
"알아!. 케서린, 이 사건은 자네가 아니면, 내가 내려 갸야 할 판이야.
현재 콜로라도 주지사는 진퇴양란이라구...오죽했으면, 주 강력계가
이 사건을 쥐고 있겠나. 이건 명령이야.
케서린 우리부부는 자넬 몹시 사랑하네.
이 사건은 자네의 그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답을 줄것같은
예감이 이 늙은이에겐 있어. 가게나.
열한시에 크리스군이 직접 집으로 갈꺼야.
타코마 공항에서 비행기는 한 시 이십분에 출발하고.
자네의 권총과 기타 기물은 소지하고 갈 수 있도록
항공사엔 조취가 되어 있네. 이번 자네의 출장은 일체
언론에는 비공개 수사가 될 수 있도록 조치는 취해져 있고,
로드먼 국장이 덴버 공항에 직접 마중을 나올 걸 세.
자아~. 갈텐가 안갈텐가?"
"...."
그 때, 헤크먼 교수의 아내이자, 케서린 타불러에겐 늘 깊은
인내심을 심어주었던 어머니같은 줄리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렸다.
"좋은 아침. 케서린. 다녀와 이건 나의 바램이기도 해.
너의 침묵이 너무길어.
가슴이 아파. 다녀오렴.
그리고 새해 만찬은 나중에 먹기로 하자. 사랑해."
뭐라 말을 하려는 케서린의 목소리를 듣기도 전에, 줄리의 목소리는 전화선을
타고 사라졌고 대신, 헤크먼 학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케서린..."
"녜. 갈께요. 다녀 올 께요."
"오오오~ 케서린, 고맙네. 고마워!.
가끔씩 노인의 주책이 통할 때가 있다는걸
자네도 알 날이 올걸세...하하하하.
크리스에겐 지금 내가 전화를 하겠고...에에
로드먼은?"
"제가 할 께요."
"그럼, 자잘한 집기는 이미 크리스군이 챙겼을 테고...
첨단 조사는 크리스군이 항시 대기하고 있을테니,
연구실로 자료만 보내면 돼네."
"도와주실꺼죠?"
"자네 혼자힘으로도 넉넉히 해결할 수 있어.
이 늙은이는 이제 감각이 없다구.
자아~ 그럼 잘 다녀오게나.
아참, 로드먼에게도 안부좀 전해주고..."
헝크러진 머리를 두 손으로 모아 뒤로 젖히면서,
부엌으로 돌아가 커피포트에서
커피를 따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