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니 개운했다.
피부도 제 색깔을 찾은듯.....맑고 투명해 보이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흥흥 거리는 날 보며 서경이 기막혀 했다.
자아도취에 빠진거냐는 얼굴.......
그래도 웃음이 나왔다.
귤을 까서 입에 넣었다.
상큼....새콤....입안에 쫙 퍼지는 느낌......시원했다.
내 표정에 너무 오버 한다는 서경이 얼굴.....재미 있었다.
귤을 3개나 까먹고 서경이 손에 이끌려 자수정 방으로 들어갔다.
분홍색의 모레시계을 챙겨온 서경이......5분 짜리 였다.
너무 뜨겁지 않은 온도......체감 온도로 조금은 견디기가 쉬운 온도의 방.
바닥에 드러눕는 날 보며 서경이 또 쯧쯧거렸다.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건.....모두 중장년의 아줌마나 아저씨들 뿐......조금 젊었다는 사람들은 모두 서경이 처럼 앉아 있었다.
요며칠 카피 안 탓에 잠을 못자서 인지 피곤히 확 몰렸다.
씻고 나서는 몸의 긴장이 풀렸는지......지금은 나아졌지만.....
아.
이렇게 누워 있으니........정말 기분 최고다.
모든 내 몸안의 않좋은 물질이 맑게 정화되어 지는 느낌.
찜찔방 와서 이렇게 기분이 업 되기는 오늘이 첨인것 같다.
서경이 들고온 책을 읽고 있었다.
내 몫으로도 한권 가지고 왔는데......당분간 활자는 안본다.
지겹다......검은색의 활자 생각만 으로도 피곤이 다시 겹치는 것 같다.
"야 ....벌써 20분 지났어....이제 나가자...."
설핏 잠이 들었나......?
서경이 날 일으켜 세웠다.
"여기 자러 왔어.....?아직 10시 30분도 안되었는데.....벌써 자냐...?"
"좀 피곤해서.......정말 그냥 자고 싶다."
"웃겨......그럼 난 뭐하고......?혼자 궁상맞게 온것 처럼......앉아 있으라고?"
눈을 흘기는 서경일 보며 난 알았다 했다.
얼음을 가득 넣은 찜찔방 특제 냉 녹차.......입안에 시원함을 주었다.
잠이 조금은 깬듯.........
다시 귤을 까서 입에 집어 넣는데........
누군가 자꾸 우릴 보고 있다는 시선이 느껴졌다.
누구지....?
여긴 집 동네가 아니라.......우릴 아는 사람이 없을텐데......
서경이 약국도 여기선 한참 떨어져 있는데......
티 안나게 고갤 살짝 뒤로 돌렸다.
남자 둘........낮이 익지 않은 얼굴들......
돌아보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둘중 하나가 고갤 살짝 끄덕인다.
세상에.....누구지....?
얼른 고갤 돌렸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얼굴이다.
둘중.....하나만 날 아는 것 같았다.
나머지 하난 모르는 듯한 얼굴이다.
책 속에 얼굴을 박고 있는 서경일 발끝으로 툭 쳤다.
"왜...?"
"저기 저쪽.....우리 바로 뒤......."
"뭐가...?"
"......혹시 너 아는 사람이니....?자꾸 우릴 보고 있어......."
"누가........?"
"저기......한서경 씨...?"
순간 우리 앞으로 다가온 남자 하나......
서경이가 아는 사람이구나.......
서경이의 놀라는 얼굴......많이도 놀란 얼굴이다.
서경이와 무슨 썸씽이 있었나....?
내게 얘기 안한것 보면.......그리 오래 됐다는 얘긴 아닌데.....
조금은 안심이 되는 느낌.....
"신지원 씨도.....안녕하신지요....?"
헉.......
나도 알아.....?
난 전혀 기억이 없는데.......
서경이 에게 눈을 줬다.
서경이 똥 씹은 듯한 얼굴을 했다.
어떡게 된거지....?
난 전혀 안면이 없는 얼굴인데.....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합석 할까요....?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것 같은데...."
"별론데요......우린 여기 쉬러 왔거든요......놀러 온게 아니라..."
딱 잘라 말하는 서경이 말에......그 남잔 여전히 싱긋 웃는 얼굴로 말했다.
"쉬는 거나 노는 거나......똑 같은 말 아닙니까...?"
"가방끈이 짧은가 봐요...?어떻게 두 단어가 같다는 거죠......?쉬는 건 말그대로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거구......노는건 노는거지....뭐라도 하게 되잖아요...?"
"허 참......한 서경씨.....북극에서 왔어요....?찬 바람이 아니라 얼음 바람이 불어요..."
"그만 가주실래요.....?책 보던 중이었거든요...."
눈을 아래로 내리 깔고 무시하듯 말하는 서경일 잠시 내려다 보던 남자가 할수없다는 얼굴로 일어섰다.
생긴거 보니까......이렇게 저 자세로 나오지 않아도.....될것 같은 얼굴인데.....
가방 끈 짧아 보이진 않고.....오히려 공불 아주 잘 할것 같은 얼굴인데......
객관적으로 보면 괜찮은 타입인데......
더구나 한서경이 좋아 할 타입인데.....
무슨 않좋은 일이 라도 있었나...
사람 좋기로 유명한 한 서경이 이렇게 찬 바람 일듯.......차게 대하다니.....
더구나.....내 이름 까지 알고.......
"너....아는 사람이야....?"
책으로 시선을 주고 있는 서경이 에게 내가 물었다.
"좀....야 일어서자.....다른데로 가자구...."
갑자기 서경이 가방을 챙겼다.
나 먹으라고 내 놓은 귤과 딸기......비스켓 .....책.....녹차 통.....
모두 챙겨 일어섰다.
다른 방으로 찾아 가려고 일어섰다.
몇걸음 걸었을까...?
산소방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곳으로 향하는데......
난......돌덩이라도 삼킨듯......차마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할.....
너무나 놀랐다.
지금 우리 앞에 서있는 키큰 남자.......
그 남자도 .....나 만큼은 아니지만........좀 놀란 얼굴이였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고......오히려 반갑다는 얼굴인지.......우릴 향해 미솔 짓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일이......
그럼 아까.....그 남자도....?
그래서 내 기억에 없었던 걸까....?
서경이가 아는 남자가 아니고.......나도 아는 사람....들....?
마주본 서경이 눈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 동네 사나보지...?우연이네...?"
한 걸음 더 다가서며 그가 말했다.
아니.....그가 아니라.....한진우가 그렇게 말했다.
온몸에.....쫘르르......소름이 돋았다.
방금 샤워 끝낸 얼굴........물기가 서려 있는 머리칼......
맨정신으로 보니까......조금 가슴이 설레였다.
하지만......안되지......절대......
흔들리는 맘을 바로 부여 잡았다.
그냥 비켜서려는 날 한진우가 잡았다.
잡힌 팔 목에.....불길이 그어졌다.
한번 세게 째리고 손을 뿌리 쳤다.
"사람이 말을 시켰으면 뭐라고 대꾸가 있어야지.....안면 몰수 하겠다는 태돈 뭐야...?"
좀 기분이 나쁘다는 얼굴.......
아까의 남자가 다시 다가왔다.
서경이 얼굴이 낭패라는 얼굴빛이다.
"여기서 이렇게 통행 방해 할게 아니라 .......저쪽으로 들어가죠..."
휴게실을 가리키는 .......정말.....기막혔다.
서로 안좋은 기억 이였을 텐데......
뭐하러 좋다고 아는척을 하는걸까....?
한번 쉽게 보여졌다고......두번도 그럴거라는 건가...?
순간 화가 치밀었다.
"화가 난건가....?얼굴색이 붉은것 같은데......모르는 사이가 아닌데 그냥 지나치긴 좀 그렇잖아...?"
끝까지 반말......
"별로 아는척 하고 싶지 않으니까......좋은 인연으로 만났던게 아니잖아요....?그냥 가세요"
서경이 눈을 깔며 말했다.
"별로 ....좋은 인연이 아니라......?무슨 나쁜 악감정 이라도 있다는 건가...?난 저쪽과 좋은 인연 맺었는데......그날 ....우리 둘다 확실히 즐겼잖아....?"
얼굴에 불길이 확 일었다.
확실히 즐겼잖아.....?
뭐 저런 자식이 다 있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쉽게 떨어져 나갈 것 같지가 않다.
또 한번 그때처럼 맥없이 당할줄 알고.......?
"자자....여기서 이러지 말고 ......사람들 시선도 있는데..."
"분명히 말하지 .....난 한번 씹다가 버린 껌은 두번은 씹지 않거든......별볼일 없다는 뜻이지..."
내말에 두 남자의 얼굴이 금방 굳어졌다.
서경이도 좀 놀란듯한 얼굴.
조금 통쾌했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 이였다.
한진우의 얼굴이 다시 제 표정을 찾으며.....비웃기라도 하듯이 입술끝을 올리더니 한마디 응수했다.
"그래....?성격이 참 급하기도 하시지....하긴.....전적이 있으니..."
확......다시 불 세례을 맞은 듯한 느낌.
"난 ..입에 맞지 않은 하찮은 껌이라도.....단물이 다 빠지기 전까진.....절대 안버리는 주의 거든......좀 버리긴 아깝지 않나...?한번은 더 씹어도 후회는 안할 거 같은데...."
아....저 느물거림.....
역시 보통이 아니야.....
서경이 날 봤다.
옆의 또 다른 남자는 이제 아예 재미 있겠다는 얼굴이였다.
진퇴양난에 빠진 기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