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주형은 칵테일의 달인이다.
그가 하는 bar에는 언제나 단골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신기하게 형은 손님이 전에 한 번 먹었던 칵테일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칵테일쇼는 없었지만 운치있는 분위기의 바에는 주 고객층이라고 부를 특정 연령이 없을 정도로 그 폭이 넓었다.
내가 하는 일은 고객관리, 즉 한 번 손님이 오면 고객카드를 만들어 주고 그 사람이 주문한 메뉴들을 관리하는 일이었지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은 나와 형을 제외하고 일곱명이 더 있었다. 그들은 처음 이 bar가 오픈했을 때부터 주욱 함께 일해온 가족같은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 역시 꼭 7년이 된 셈이다.
이 가게에는 나같은 20대 초반의 어린애(?)는 없었다. 적어도 20대 후반의 웨이터형들과 바텐더 누나, 주방장아주머니들이었다.
내가 처음 형과 가게에 나타났을때 그들은 나를 살펴보기 보다는 웅주형의 태도를 먼저 살펴보았다.
그간 알아온 사장답지않은 행동이라는 눈치들이었다.
차차 알게된 일이지만 그 이전엔 누구도 나처럼 만난지 하루만에 가까와진 적이 없었다.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 경우였지만 오랜시간을 함께 일해온 그들에게 조차 웅주형은 아직도 어려운 사람이었다.
함께 사는 나외에 가게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형을 대하는 사람은 sunny누나였다.
처음엔 형과 누나가 연인 관계인줄 오해할 만큼 그들은 스스럼 없이 지냈다.
sunny누나는 말이 별로 없다.
그녀의 빼어난 칵테일 맛과 우아한 미모로 인해 단골 남자손님들이 많이 왔지만 벽에 걸린 사진을 보는 것처럼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누나는 손님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었다.
술에 취해 주정하는 소리던 그녀에게 유혹의 눈길을 던지던 말이던 예의라고는 찾기어려운 막말이던, 정말 간도 쓸개도
한 번은 꽤나 오랫동안 그녀를 찾는 단골손님이 술을 잔뜩마시고, 그 술을 그녀의 얼굴에 부어버리며,
"야! 니가 그렇게 잘났어? 되게 비싸게 구네, 술이나 만드는 주제에...'
다른 손님들과 가게 식구들은 몹시 당황하고 어의없어 했고 웅주형이 재빨리 손님을 저지하려고 다가서자 sunny누나가 형을 막아섰다.
누나는 수건을 들어 얼굴을 닦고는 손님의 술잔에 다시 술을 따라주었다.
"손님, 나 별로 잘난거 없어요. 그러니까 술이나 팔고있죠. 오늘 술은 제가 사는 거니까 맘껏 드세요."
누나는 말끝에 살짝 그 예쁜 미소를 지어보였다.
되려 무안해진 손님은 자신이 술에 너무 많이 취한 모양이라며 미안하단 말을 연발하며 서둘러 일어났다. 그 후론 물론
다시는 그 손님을 볼 수 없었다.
누나는 그런 여자였다.
모두 누나의정확한 나이와 사정을 몰랐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아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핸드폰이나 지갑속,사물함, 바의 구석자리 모두에 누나를 쏙 빼닮은 귀여운 여자아이 사진이 걸려있었으니까...
말없는 sunny누나와 사람좋은 웅주형의 바텐에는 항상 자리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때때로 난 손님들에게 땅콩을 더 가져다 주거나빈잔을 치우고 바텐에 그들과 함께 있으며 컵을 닦기도 했는데 그들은 둘만의 비밀암호로 말하지도 않고 의사교환을 했다.
이를테면 손가락하나는 - 이손님 왕재수, 손바닥을 다펴서 흔드는 것은 - 안주좀 권해라, 테이블 위로 피아노를 치듯 손가락을 살짝 튕기는 것은 - 이 손님 좋아하는 칵테일 모지? 등등
가끔은 단골 손님들이 자신의 친구나 동료를 데리고 와서는. '늘 마시던 걸로!'하고 주문을 할 때가 있는데 정말 칵테일에 일가견이 있고 정말 좋아하는 단골 메뉴가 있을땐 다행이지만 그런 손님은 열에 한 둘 이었다.
대개는 올때마다 다른 술을 마시거나 바텐더가 추천하는 것을 마시기 때문에 "늘마시던 것"을 찾기가 쉽지않다.
하지만 웅주형은 결코 틀리는 법이없었다.
늘 마시던 것을 주문하면 형은 '뚝딱'하고 멋진 칵테일을 만들어 내거나 향이 좋은 꼬냑이나 위스키를 서브해냈다.
어떻게 그렇게 실수하는 법이 없냐는 내 질문에 관한 대답을 듣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지난후였다.
" 니 T.P.O.알재? 그기 TIME, PLACE, OCCASION 아니가? 예의를 차리거나 옷을 입을 때 그런말하자나? 아, 자슥, 뭘그리 심각하게 듣노? 내 비결은 거기에 있는기라. 술에도 T.P.O.가 있거든. 가령 어떤 40대 후반 남자가 새파랗게 젊은 여자를 후릴려고 데리고 와서는 늘 마시던 걸로 라고 주접을 떤다 치자. 그럼 속으론 쳐쥑일 놈 생각하지만 이것도 장사고 무엇보다 손님의 사생활엔 관여하지않는게 철칙인 직업아니가? 그럼 난 쿠바리브레 한 잔 을 뜩 만들어 가가 내놓는다 아이가?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손님이 즐겨드시는 이 술은 '자유 쿠바 만세' 라는 뜻을 가지는 긴데, 1902년 스페인 독립전쟁당시에 독립을 지원하던 미국의 젊은 군인이 럼에 콜라를 떨어뜨려 마신거에서 유래했읍니다. 그런 청년정신이 있는 이 술을 이 손님이 그렇게 좋아안합니까? 즐거운 시간 되십시요. 이렇게 하면 그 날밤은 마 말할게 없는기라.
이거이 바로 나의 노하우인기라."
정말 술장사에 관한 형의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내가 온 후부터는 모든것을 전산처리해서 더더욱 손님의 기호와 취향을
파악하기 쉬어졌고 가끔 형이 아리까리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면 난 얼른 그 손님의 데이타에서 그 손님이 좋아하는 칵테일을 찾아서 보여줬다.
내가 있어 장사가 더 잘된다는 형의 말에 내 마음도 작은 우쭐함에 젖을 수 있었다.
- 쿠바 리브레(Cuba Libre)
화이트 럼‥‥‥‥‥45㎖
라임(또는 레몬)‥‥‥1/4개
콜라‥‥‥‥‥‥‥‥‥‥적량
텀블러, 마들러.
잔 위에 라임을 짜서 잔안으로 떨어뜨린다.
얼음을 넣고 럼을 따른 후 그 2~3배 분량의 콜라를 채운다.
마들러를 꽂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