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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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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은 푸근함


BY 이마주 2003-11-21

포장마차에는 2차 3차를 거쳐 술이 술을 먹는 사람 두엇과 정체를 알듯말듯한 야한 옷차림의 여자들이 우동을 먹고 있었고 주인 아주머니의 바로 앞자리에 그가 혼자 앉아있었다.

혼자인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테이블이 아닌 음식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아줌마, 소주 한병이랑 오뎅국물좀 주십시오."

"에구, 총각 제대한 모양이네, 고생했수."

눈밑에 기미가 잔뜩 낀 주인 아줌마는 내가 제대한 후 처음으로 축하인사를 건네준 사람이었다.
별의미없는 그말에 괜시리 코끝이 찡해져서 나는 마른 기침을 몇번 했다.

 

"그라면 아제는 아직도 병원에 있습니꺼?"

"에에, 아직도 그러고 있어요, 곧 좋은 소식이 와야되는데 휴."

"힘내이소,보험처리하믄 병원비는 다 받지 않겠습니꺼."

"고마워요, 그래도 안부물어보는건 지사장밖에 없다니까."

 

그는 쑥스럽게 머리를 긁적이더니 소주를 천천히 들이켰다.

그날의 그의 모습을 내가 뚜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그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마치 중저음 우퍼스피커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것만을 틀어놓은 것처럼 그의 목소리는 텅빈 내마음을 쿵쿵거리며 내려앉았다.

목소리의 여운에 마음이 가라앉아 소주잔을 만지작 거리던 내게 그는 불쑥 술을 따라주었다.

"축하합니더. 전역했다고예? 한 잔 받으이소."

"아, 감사합니다."

술을 받아마시고 나도 그의 잔을 채워주었다. 별말없이 우리는 그렇게 4병의 소주를 비웠다.

포장마차도 문을 닫아야할 시간 그와 나는 그날의 마지막 손님이 되었고 난 그때에도 갈곳이 정해지지 않아 선뜻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일어나지요?  갑시데이. 아주머니, 잘 먹고갑니더.아제 병문안 못가고. 이거 보양식이나 사다 주이소. 가꼐예."

주머니에서 족히 술값의 열배는 넘어보이는 십만원권 수표 몇장을 그는 두 손으로 놓고 일어서며 나의 어깨를 툭쳤다.

"안 갑니까? 이 아지매도 집에 가야 안합니꺼?"

 

해가 뜨기전 여명이 어슴프레 시작되었다.
그의 뒤를 따라가는 것에 별 거부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가 어느 건물 현관에서 키를 열었고 곧이어 보안 장치를 해제시켰다.

 

그 건물은 4층짜리 였는데 지하주차장과 일층엔 한국식당 2층엔 카페 3층엔 Bar가,  마지막 꼭대기층은 개인주택으로 되어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데도 그는계단을 올라 위층으로 향했고 버튼식 열쇠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나는 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는데 온통 하나의 통으로 짜여진 유리창문으로 시내 전경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예가 내 사는뎁니더. 내 말고 다른 사람이 온건 오늘이 처음입니데이. 앉으이소 마"

무언가 말하지 않으면 안될거 같아 돌아서는 그를 불러세웠다.

"저기, 초면에 실례가 많습니다. 사실 갈데가 없었는데... 감사합니다."

"뻔한거 아입니까? 제대한 사람이 혼자 포장마차 찾을때는 다 사연이 있기마련입니데이. 서로 돕고 사는게 세상인기라예."

"전 임병근이라고 합니다."

"그라고 보니 통성명도 안했습니다. 우째 이런일이, 지웅줍니데이."

말을 시작한건 나였지만 손을 먼저 내민건 그였다. 그의 손은 보기와 달리 꽤나 부드러웠다.

 

집안은 마치 작은 도서관같았다. 뻥 뚫린 창가 옆으로 빽빽이 꽂혀있는 책이 적어도 5000권은 되보였다.
책꽂이는 거실 벽면에서 시작되어 화장실문앞에서 끝나있었고 사이사이에 3개의의자가 놓여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그는 나에게 편한 츄리닝과 슬리핑백, 베개를 가져다 주었다.
엄마같이 세심한 배려였다. 난 낯선 사람일뿐인데도.

"화장실은 저기 보이지예 ? 혼자 살다보니 변변히 모가 없어서 말입니데이. 소파에서 이거 덮고 주무이소."

낯선 사람, 낯선 집 그리고 화장실에서 문을 닫고 오래도록 소변을 봤다.

세면대위에는 새칫솔이 포장을 뜯지도 않고 올려져있었다.

새칫솔을 뜯어 양치질을 했다. 새것의 낯설음과 올라오는 술냄새로 잠시 어지러움을 느끼는 찰라 하얀 치약거품위로 떨어진 핏방울은 선명해보였다.

 

이런 기분은 뭘까? 낯설음과 새로움이 주는 푸근함. 이건 모순이었지만 난 그것으로 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