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우리 집 대문 앞이였다.
“ 악! “ – 와장창 !
대문 너머로 들려 오는 소리
그것은 분명 엄마의 비명 소리와 유리창 깨지는 소리였다.
아직도 테리우스
3.
오늘은 아침 부터 시작이군. 늘 싸워대는 집구석. 오늘도 역시나 하루라도 거를새라 그들은 싸워 대고 있었다.
불안하다.
휴,,,,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집에 들어가기 싫다. 안 들어가면 아버지 한테 맞아 죽을지도 몰라.
하지만. 계속해서 들려오는 그 전쟁터 같은 소리를 듣고서는 내가 지금 안에
있다면 모를까 바깥에 있는 이상 내게는 조금의 자유가 있다.
들어 갈수도 있고 그반대일수도 있다
만약 내가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의 첫번째 가출이 될것이다.
생각이 진행 되고 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나는 울고 있었다.
10대와 20대를 온전히 그들 – 부모들의 싸워대는 소리에 길들여져 있었던
그 억눌림이 터져 나오는 울음이였다
왜 이렇게 살아야 되?
왜?.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나는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때였다 대문 안으로부터 아버지의 가래침 내뱃는 소리가 나고 .
곧이어 아버지가 대문으로 나오는 발자국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온몸으로 공포스러운 전율이 흘렀다.
나는 발딱 일어나 골목 어딘가로 쏜살같이 도망을 가 몸을 숨겼다.
설수도 없고 단지 앉거나 눕는 것 만이 허락되는 공간. 다락방.
아침 먹었느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짧게 대답하고 나는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내게 지금 필요한 건, 음식이 아니라 따듯한 집. 내 정신을 쉬게 할 수 있는 공
간이였다
먹지않고 입지 않아도 내 정신이 행복하면 나는 무엇이든지 견딜 수 있었다
어쩌면 석윤일 내 맘속에 넣어두고 사는 것도 석윤의 영혼을 노래하는 그 목소리
때문인지도 모른다
석윤이의 노래 소리를 듣고 있으면 모든 것이 잊어 지니까.
그것은 내게 마법의 주문과도 같았다
아무리 아프고 아무리 슬퍼도 석윤의 노래 소리 하나면 나는 벌써 , 아주 많이
행복해 질수 있었으므로
“ 저년이! 사람년이 아니야! 개자식?! 애비를 보고 개 자식이라고!! “
얼마나 잤던 것일까?.
이제야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싶은 순간. 나는 천둥벼락 같은 아버지의 목소리에
버벅거리며 눈을 떴다.
도대체 지금 몇신데?…나는 황급히 시계를 봤다.
어느새 밤이 되어 있었다. 일요일 하루를 다락방에 누워 꼬박 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거야?…
퍼뜩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불길한 그 무엇!
나는 다락방 장판밑에 숨겨둔 내 일기장을 생각해 내고는 미친듯 장판을
까 뒤집어 보았다
역시나! 일기장이 사라지고 없었다.
비겁한 새끼. 더러운 놈! 내 일기장을 훔쳐 내다니.
그랬다
나는 일기장에다 365일 가정이라는 곳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아버지를
개자식이라 썼다.
가족이라는 혈연관계를 악연으로 몰아 넣는 아버지를 나는 개자식이라 썼다.
아버지 때문에 어디에도 내 정신을 쉬게 할 수 있는 곳이 없던 나는 그 화풀이로
아버지를 정신병자라 썼다.
그 일기장이 지금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였다.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 다락방을 내려가면 나는 죽은 목숨이다.
“ 그만하슈! 그만 좀 하라구! “
엄마가 아버지에게 매달리는 소리가 나고 이어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와 할머니의
아버지를 말리는 소리가 났다.
“ 모두들 다 죽여버리 겠어 집구석 확 불싸질러 버리고 다죽자! “
악담. 아버지의 일상의 언어가 되어 버린 그 악담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내 뇌 속으로 천개의 발을 가진 지네가 스멀 거리며 기어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비명이 새어 나왔으나 그 비명은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애 궂은 내 뇌 속만을
짓누르고 있었다.
다..담배. 담배가 있어야 했다
내 버벅 거리는 신경을 잠재워줄 담배.
나는 허둥거리며 담배를 찾아댔다
빈 담뱃값이 내 손에 들려 나왔다.
심장이 북을 치듯 둥둥거리고 있었고 입술이 바짝 바짝 타올랐다.
내 혈관을 흐르는 피가 속속히 막혀 들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나는 다락방의 작은 창문 밖으로 내 몸을 밀어 내고 있었다
늘 다락방에 누워 머리 위로 보이는 검은 사각의 밤 하늘을 바라보며 수도 없이
세웠던 탈출.!
오늘이 바로 그 탈출의 날이 될줄이야….
아무것도 없이 집을 나온 나는 철사줄에 어깨가 찢어져 피가 흐르는 것도 모른채
겁먹은 몰골로 버스 정류소에 서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갈곳은 학교 . 학교의 작업실 뿐이였다.
주머니 속에서는 동전 몇 개가 내 신세 처럼 처량하게 버티고 있었다
버스를 탈까?. 걸어서 갈까?.
이리저리 푼돈 몇 개로 머리를 굴러대던 나는 바로 곁의 공중전화를 쳐다보았다
[ 돈을 좀 빌려줘. 얼마라도 좋아. ]
공중 전화 박스 속에서 내가 돌린 전화 번호는 내가 일방적으로 이별을 선언한
수학과의 성수였다.
다행히도 성수는 전화를 받았고. 뜻밖의 전화 목소리에 분명 놀랐으리라
아니. 목소리에 놀란 것이 아니라 전화 내용 때문에 적쟎아 놀랐을 것이다.
이별을 선언하고 다시는 보지 않을 것 처럼 뒤돌아 섯던 나였지 않앗던가?.
[ 얼마나 필요한거야? ]
조금의 애정이라도 남아 있을까?. 나에게?.그는 감정을 가늠할수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 얼마나 빌려 줄수 잇어? ]
[ 글쎄. 니가 하기 나름이지 ]
내가 하기 나름이라………….
[ 무슨 뜻이야 ?. ]
[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거 알지. ]
[ 그새 악랄해졌네 . 그게 니 본성이였어 ? ]
[ 니가 날 악랄해지게 만들엇어 ]
[ 뭐든 좋아 돈을 빌려줘 ]
[ 그래. 뭐든. 넌 해야 할거야 돈을 빌리려면 ]
나는 실소가 나왔다.
악랄해지고 있다니….그건 오히려 내가 아닌가?.
내 필요에 의해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의 존재 가치가 사라지자 이별을 선
언한 일방적인 사랑. 그래….악랄해질만도 하다… 받아들이지…
돈을 빌려준다는 확답을 받은 나는 전화를 끊고 곧 바로 학교 작업실로 향했다.
담배를 피워대기에 좋은 비밀 장소에 숨어든 나는 빈속에 연거푸 담배를
작살내고 있었다.
속이 메스꺼워 자꾸 헛구역질이 났지만 나는 나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생각에
쾌재를 부르며 담배 피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림자가 햇살을 막는다 싶은 그 순간 , 내 앞에 선 누군가..!
그것은 정순이였다.
늘 보아왔던 연약하고 순진하며 예의 바른 정순의 표정이 아니였다.
정순은 마치 미친년 처럼
피폐해진 채 부서진 벽 조각에 몸을 기대어 있는 나를
불쌍하다는 듯 혹은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참을 내려 다 보았다
[ 뭐야? ]
[ 할말이 있어요 ]
[ 얼른 하고 좀 가줄래. 사람이라면 지긋 지긋하니까 ]
[ 석윤이도 지긋 지긋해요?. ]
[ 뭐?.!!! ……………………]
당황스러웠다.
정순의 그 다음말을 이미 예견할수 있었기에
나는 미리부터 겁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