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헉헉- 헐레벌떡 달려나온 나는 택시 승강장을 두리번 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석은 땀을 뻘뻘 흘리며 택시를 잡고 있었다.
[ 야! 니 애인 핸드빽 놓고 갔어 ]
[ 아! 고마워요 유선배. 애인은 무슨……친군데...]
[ 오! 신이시여.]
[ 네?. 방금 뭐라 그랬어요?. ]
[ 아? 정순이 신발 떨어졌나해서 ]
[ 누난 괜챦아요?. 아까 보니까 너무 많이 마시던데.]
헉! 아까 보니까?. 기특한 녀석 나를 눈여겨 봤다는 말이군!
아아아 신이시여 땡큐 소오마치
[ 난 괜챦아 , 나 술 쎄쟎아. ]
나는 꼬부라지려는 혀를 엄청난 노력으로 바로 펴며 또박 또박 끊어 말했다.
그 녀석 앞에서는 흐트러진 모습을 결코 보이고 싶지 않앗던 것이다
[ 누나 들어가 봐야 되지 않아요?. ]
[ 응. 택시 잡기 힘들거야. 기다려봐 ]
나는 석윤이가 힘들까봐 벤치에 앉혀 둔채 도로 가로 나와 열심히 팔을 흔들었다.
이윽고 택시가 와서 서고 석윤은 정순을 뒷자석에 밀어 넣었다.
[ 앞에 앉지. ]
[ 네? ]
[ 아니. 앞자리 비어서도 합승하지 말라구 요새 밤길 위험하쟎아 ]
[ 네에. 그럼 누나 내일 학교서 봐요 ]
[ 그래. 석윤아 내 꿈꿔]
[ 네?. ]
[ 요새 유행하는 거 맞지 헤어질 때 다들 하는 말 ]
나는 너무 멀쭘해하며 그렇게 얼버무렸다.
[한물갔죠 뭐 ]
[ 아.]
[ 누나 내 꿈꿔요 ]
석윤이 싱긋 웃엇다. 헉! 살인적인 저 미소.
이윽고 문이 닫히고 택시는 출발했다
[ 뭐?. 재 방금 뭐라 그랬어?. 내 꿈꿔요?. ]
그말은 신호였다.
징조였다
아,,아,,,,아,,,,그 녀석이 내게 관심이 있다는 신의 계시 같은 거 였다
우화하하하하하. 갑자기 즐거워지는 건 왜 일까?.
그녀석이 사라지고 나자 여기껏 꾹꾹 눌러놓았던 취기가 한꺼번에 머리 위로
솟구쳤다.
눈이 뱅글 뱅글 돌고 다리가 휘청이는 것이 딴 세상에 온 듯.
나는 내 다리가 갈짓자로 휙휙 내저어지는 것도 모른 채 히죽 거리며 다시 술집을 향해 걸어갔다. 하늘을 날을 듯 좋아진 기분으로.
짝짝짝~~~~~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한꺼번에 몰아쳤다
힝?. 모야?. 이소린?. 내가 라이브 공연하는델 잘못 왔나?.
나는 술에 취하지 않은 연기를 제법 해내며 두눈을 똑 바로 뜨고 두리번거렸다.
바로 내 앞.
그러니까 . 내가 만든 술자리임이 분명한데.......
헉! 날 보고 박수 치는건가?.
나는 배시시 웃으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눈앞으로 빈자리가 보였다.
나는 그 빈자리에만 눈을 고정시킨채 아주 조신하게 걸음을 걸어 그곳 까지 가서 털썩 주저 앉았다.
이런 사람들이 왜 모두 나를 보는 거지?. 뭐 묻었나?.
[ 야. 유나희! ]
바로 그 순간 나를 부른 것은 선배중의 하나였다.
그 역시 게슴츠레 취한 눈으로 나를 보앗다.
[ 넷! 선배님 ]
[ 그자리 니 자리 아냐 ]
[ 네? ]
[ 올려다 봐 ]
[ 네…]
나는 불길한 예감으로 내 곁을 올려 다 보았다.
힉! 또 다시 미남.
아! 요새는 왜 이렇게 미남이 많은 거야?. 이리가도 미남 저리가도 미남.
발에 채이는것이 미남이니...
[ 내일 복학할 이 창원.이야.]
덩치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귀가 웅웅 울리고 있었다.
[덩치만 큰게 아니구만….]
혼자 중얼거리는 소릴 들은 또 다른 선배 하나가 장난스럽게 내게 되물었다
[ 덩치 말구 또 큰게 있어?. ]
[ 아. 척 보면 몰라요?. 그것도 되게 크겠다 ]
내말이 떨어지자 말자 주위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마치 무중력 상태의 외계에 온듯. 그때였다
난 내가 방금 전에 던진 말의 의미를 나 자신도 파악하지 못한채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한거야?. 하고 있는데..
크크크크 어디선가 자그마한 킥킥대는 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에라이!
선배 후배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젓가락과 오이 안주, 땅콩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내가 맞을 짓을 하긴 한 것 같군.
에구…모르겠다. 이제는 정신까지 오락가락해서…나는 그대로 술 테이블에 이마를 박고 코를 골기 시작했다.
[누나,, 일어나 봐 ]
살며시 속삭이듯 감미로운 목소리..석윤인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린 내 앞에는 아니나다를까 석윤이 앉아 있었다.
[아 ! 석윤아! 집에 안갔어?].
[ 정순이 데려다 주고, 술 자리 생각나서 다시 왔지 ]
사람들의 모습이 흐릿하고 무겁게 보이기는 했지만 왁자지껄 떠들어 대고
웃어대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술자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싶었다.
[ 나 …되게 취한거 같애…너도 두개로 보인다…. 나 얼굴 되게 빨갛지?.]
[ 아니 빨갛다 못해 하얗다 ]
[ 그래 ? 하애? 그럼 나 이뻐 보이겠네…흐흐흐….근데 너 이자식 왜 선배한테 반
말이야 반말이 끅! ]
[ 야 너네들 둘이 연애하냐? 끅! ]
옆자리의 계현이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오지만 그 놈 역시 취하기는
십시일반이다.
[ 연애하나 보네. 뭐 연하면 어떠냐?. 둘이 잘 어울린다, 특히나 둘이서 이마 맞대고 있으니까 더 보기 좋네 ]
뭐 ? 서로 이마를 맞대고 있어?.
헉! 그랬다 계현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이마를 서로 맞댄채 코가 마주 닿일
거리에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였다.
[ 야! 석윤아 너도 취했니?.]
[ 아니]
[ 안취한 놈이 아녀자 이마에 이마는 왜 갖다 부비고 그래?. ]
[ 내가 그랬나?. ]
[ 얼른 원위치 안하면 확 뽀뽀해버린다. ]
[ 하지 뭐?.]
아! 무엇이였을까?. 난 석윤의 그 말에 온몸에 전기가 좌르르 흐르는 듯
찡해졌다. 어쩌면 무지 취해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은 말짱했던 걸까?.
바로 그 순간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으니.
[ 야! 모두들 일어섯! ]
대선배. 왕고참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 우리는 밤 바다로 간다! ]
[ 아자! ]
[ 아자! ]
[ 마지막 술 한방울도 남기지 마라 , 완전히 핥아 먹고 나간다! 실시 !]
[ 아자! 마시고 죽자! ]
저마다 소리 높혀 잔을 들고는 짤짤 흔들어 마시고 일어섰다.
.
쌩썡 달리는 종점 버스에 왁자지껄 오른 우리 젋은 혈기들은 술 냄새 오바이트
냄새를 확확 풍기며 해운데로 달려갔다.
철퍼덕 철퍼덕 ~ 그 검은 바다는 축축한 습기와 함께 바다 냄새를
토해내고 있었다.
아….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앗다.
[ 석윤아 바다다….]
[어..어..유선배 다친닷! ]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두 팔을 새처럼 벌리고 스르르 눈을 감으며
모래 위로 쓰러지고 있었던 것이였다.
비틀거리며 달려온 석윤이 나를 뒤에서 받힌다는 것이 안아 드는 꼴이
되고 만 것이였다. 취중이라도 석윤 역시 알수 없는 미묘한 감정에 몸을 떨었으
리라...석윤은 잠시 그렇게 있더니 이윽고 얼굴을 내 머리카락 속으로 파묻었다.
석윤의 팔힘과 석윤의 얼굴로 부터 베어져 나오는 따듯한 숨결이 느껴지는 그 순
간 나는 그 짜릿한 순간을 애써 숨기며 웃기 시작했다
[ 하하하하하하 ]
웃어대던 그 순간 갑자기. 정말이지 상황과는 전혀 달리. 내눈에서 눈물이 났다.
술취하면 웃어대고 재잘대고 엄청 용기 있는 척 하는 것이 난데…..왠 눈물….
너 날 사랑하는거야?.
봐 ! 날 걱정하고 있쟎아.
말 안해도 표현안해도 안다니까..
뭐?. 헛다리 짚지 말라고?.
웃기지?. 사랑이라…..미안하다 그 사랑이라는 지극히 어렵고도 위험한
단어를 함부로 너한테 써먹어서.
난 , 혼자서 오만가지 대화를 주고 받으며 눈을 감은 채 석윤에게
몸을 내맞기고 있었다.
취하길 잘했다
취하길 잘했어….네 품에 안겨 볼수도 있고…..
나 이대로 깨지 않을래…..
그렇게 나의 밤은 취한 석윤과 함께 흘러갔다
내 인생에 북마크를 한다면, 딱 그 순간. 그 시간. 그 냄새. 그 느낌.
그리고 석윤이였다.
술자리에서의 감흥은 술자리에 남겨 놓고 나오라는 어느 선배의 악담이 맞는걸
까?. 새벽이 밝아 오고 바다와 하늘의 경계선이 점점 밝아 올 때
거의 술에서 깨어난 우리는 이제 또 다시 살아야 할 하루와
일주일과 한달 그리고 일년을 제각기 마음속에 떠올리며
한치 앞날을 알지 못해 불안해 했으며 감성은 죽고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는
이성의 지배하에 어젯밤의 기억을 가슴 한켠에 묻어 두고자 했다.
석윤도 나도 어느 누구도…우스꽝스러운 말들은 주고 받았지만
사랑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내밷지 못했다.
우리가 서로를 의식한 것이 얼마나 되었다고 …….
그렇게 우리의 이성이 말했는지도 모른다.
왜일까….우리 모두는 전날 밤과 같지를 않앗다
거짓말 처럼 전날밤의 광적이고 열정적이던 감성의 유희는 사라지고 계산과 혼자
라는 고독만이 사무쳐왔다.
그래서 나는 밝음이 싫고. 맨정신이 싫은지도 모른다.
나의 테리우스 석윤은 그렇게 또 다시 학교 무대에 서서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처럼 노래를 불러댈것이고. 그를 향해 열광하는 수많은 여대생들의 무리속에 파
묻혀 나를 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래서 …나는 영원히 술에 취해 살고 싶은지도 모른다.
3.
날이 밝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속에서 어제 저녁 취한 정신속으로
다가왔던 사랑의 몸짓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순간을 왜 유리 병속에 담아둘수 없는 것일까?…..
순간을…
내 눈은 버스 차창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지만
한장면씩 어젯밤 석윤과 보낸 시간들을 되새기고 있었다
나는 딱 그동안만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