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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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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30


BY 제인 2003-11-13

새벽 5시.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고수의 핸드폰에서 벨이 울렸다.

어젯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늦게야 잠자리에 들어 늦잠을 자야할 터였는데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려 고수는 눈도 뜨지 못한채 억지로 팔을 뻗어 전화를 집어든다.

- " 형! 일어났어?"

"...누구야...?"

- "나야, 정수. 형, 얼른 내려와, 할머니가 위독하셔. 지금 병원에 실려가셨어."

"뭐? 얼른 내려갈께."

고수는 고향의 동생으로부터 급작스러운 전화를 받고 서둘러 가방을 싼다.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가 제일 빠른 기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나중에 일어난 형선과 병문은 출근하기 전에 고수를 깨우려고 방문을 연다.

"어? 이 친구 어디갔어? 벌써 학교갔나?"

"혹시 자다말고 그 누나한테 간 거 아닐까?"

"전화해봐."

"응."

형선은 고수에게 전화를 한다.

"어디야 지금? 이렇게 일찍 어디갔어?"

- "우리 할머니가 위독하셔서..."

전화가 감이 좋질 않았다.

"많이 편찮으셔? ....응.....그래..."

전화가 중간에 끊어졌다.

"뭐래?"

"할머니가 위독해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네. 지금 고향에 내려가고 있나봐."

"언제 돌아온대?"

"그야 모르지. 할머니가 돌아가실지도 모르는데...나보고 과사무실에 전화해서 그것때문에 수업빠지는 거 알려달라던데? 아르바이트하는데에도."

병문은 "음....잘됐다. 고수없는 사이에 우리 그 아줌마 만나서 얘기하자"며 어젯밤 형선과 의논한 일을 실행에 옮기려한다.

"오늘?"

"그래 오늘. 저녁때 같이 만나자구."

 

오후 2시.

고수가 일하러 올 시간이 한시간이나 지났는데 나타나지를 않는다.

미연은 고수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연결이 안되었다.

'어제 일로 상심해서 그런가? 아니면 무슨 일이 생겼나? 이렇게 연락도 없이 안오다니...'

미연은 걱정도 되고 화도 났다.

조금 있으니 전화가 왔다.

- " 안녕하세요? 저 어제 뵌 고수 친구 형선인데요."

"어머, 안녕하세요?"

- "오늘 거기 고수 안갔죠?"

"예. 무슨 일이 있나요?"

- "고수가 없어졌어요."

"없어지다뇨?"

- "잠시 머리 식히러 간다고 어디론가 가버렸어요. 저...고수때문에 그러는데요, 누나한테 드릴 말씀이 있거든요."

"나한테요?"

- "예. 오늘 저녁에 만날 수 있을까요? 참, 제가 아르바이트 학생한테 전화해서 오늘 고수대신 일하러 오라고 얘기했어요. 걔는 오후에 수업있다고 5시쯤에나 갈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요? 고마와요."

- "그럼 저녁때 학교앞 소라카페에서 만나요. 7시, 괜찮으신가요?"

"그, 그러죠. 예, 이따가 그리 갈께요."

미연은 이해가 안되었다.

고수가 자기때문에 그렇게까지 방황을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돌아오면 따끔하게 야단을 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날 저녁 약속장소로 갔다.

형선과 병문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 여기요."

"무슨 일이예요? 고수가 어딜 갔어요?"

병문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누나. 고수가 누나 좋아한다고 그랬죠?"

"....글쎄...그러네요."

"걔가 애정이 결핍되어서 그래요. 자랄 때 사랑을 못받아서요."

"왜요?"

"고수랑 저랑은 원래 같은 고아원출신이예요."

미연은 그 소리에 깜짝 놀란다.

"고수 걔가 여자관계가 복잡하고 바람끼가 있는게 다 그래서 그래요."

"불쌍한 애죠."하고 옆에서 형선이 거든다.

병문은 계속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엄마가 그리워서 자꾸 누나한테 기대려고 그러는 거 같아요. 걔가 나이 많은 여자들만 보면 그러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거든요. 누나, 걔가 그러는 거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잘 타일러주세요."

".........."

어벙한 데가 있는 미연은 두 친구가 거짓말을 한다고는 상상도 못하고 고지곧대로 믿었다.

그러나 좀 이상한 점이 있어 묻는다.

"학비하고 생활비는...누가 대줘요?"

"아, 그건...그건....걔가 공부를 워낙 잘하고....그림도 잘 그리고 해서....4년 전액 장학금받고 입학했었거든요. 그리고 생활비는....아르바이트 해서 벌잖아요. 집은 그냥 우리집에서 공짜로 지내는 거구요...."형선은 말을 더듬거리며 이리저리 둘러댔다.

"그랬구나...."

"그러니까 고수를 용서해주세요."

"용서는 뭘...그런데, 고수한테는 연락이 안돼요? 걱정되네요."

"전화를 꺼놨나봐요. 걔 원래 좀 그래요. 무슨 일 있으면 가출도 잘하고, 연락도 없이 나갔다 오고 그래요. 걱정하실 건 없어요. 그러다가 돌아오니까요."

친구들은 이제 이만하면 미연이 고수에 대해 정이 떨어졌으리라 믿었다.

병문과 형선은 고아출신의 바람둥이를 좋아할 여자는 없으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연은 정반대였다.

고수가 불쌍해서 가슴이 아파왔다.

미연은 고수의 친구들과 헤어져서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생각을 하였다.

'그럴 줄 알았으면 더 잘해줄 걸....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돌아오면 잘 보살펴줘야지...'라고.

약속장소였던 카페에서 버스정류장쪽으로 가는 도중에 미래클럽을 거치게 되었다.

미연은 그 앞을 지나려다 문득 자기가 일하던 주방의 식구들이 궁금하여 잠시 들렀다.

"안녕하셨어요?"

"미연씨? 오랫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어요?"

주방장과 웨이터들이 미연을 반갑게 맞았다.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나서 미연은 인사를 하고 주방에서 나왔다.

클럽 문을 나서려는데 그때 미래가 박영준과 함께 클럽으로 들어왔다.

"어머, 미연이 왔구나? 그냥 가려구?"하고 미래가 묻는데, 영준을 발견한 미연은 당황하여 "담에 또 올께"하고 한마디만 남기고 얼른 클럽을 나가버렸다.

영준은 미래와 테이블에 앉아 미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두 분이 아는 사인가요?"

"미연이랑요? 그럼요. 고등학교 동창이고 아주 친한 사이예요. 맞아. 미연이랑 아는 사이시죠? 같은 학교 나왔다고 하던데..."

"미연씨가 제 얘기 하던가요?"

"저번에 여기 처음 오셨을때 그러더라구요. 아는 사람이라고..."

"저번에...? 그때 미연씨가 여기 있었나요?"

"네. 미연이 여기서 한 1년 일했었어요."

"여기서요?"

"아휴, 내가 걔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한지 몰라요. 이혼하고 혼자서 쩔쩔매면서 사는 거 보기가..."

"이혼....했다고요?"

미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준은 미연이 이혼을 했다는 소리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미래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미래는 미연의 친한 친구였지만 미연이 영준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없어서 그저 안면이 있는 사이라고만 생각하였다.

게다가 영준이 자기가 소개시켜준 선아하고 사귀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오히려 선아와의 문제가 더 궁금했다.

"그런데, 참, 선아는 왜 그렇게 되었어요? 제가 소개했는데 일이 이상하게 되어서 마음이 좀 그렇네요..."

"아, 예..."

"걔가 왜 그러지?"

"그럴 일이 좀 있었습니다. 마음쓰실 거 없습니다."

"하지만, 걔가 계약취소해서 회사에 영향이 있다고 들었어요. 상태가 안좋은가요?"

"선아 앨범이 히트해서 주가가 한창 오르고 있었는데 그 일로 오늘 갑자기 많이 떨어졌어요. 지금....투자가들이 이렇게 계속 떨어져나간다면.... 확실한 기획을 내놓지 않으면 불안한 상태죠."

"새로 기획 세워놓으신 건 있으신가요?"

"신인쪽으로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그래서 말씀인데...사실은 장미래씨의 도움을 청하려고 오늘 이렇게 급히 만나자고 한 겁니다."

"제 도움이요?"

"네. 이번에 저를 좀 도와주십시요."

"어떻게요?"

"저랑 합작 앨범을 내는 겁니다."

"듀엣을 하자는 건가요?"

"예, 그것도 좋구요."

"어머, 박영준씨랑 같이 노래를 하다니...호호호....생각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네요?"

"지금 저로써는 확실한 것이 필요합니다. 장미래씨라면 확실하다고 보이거든요."

"저희 사장님하고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네요."

"승낙하시는 건가요?"

"예, 좋아요. 저도 뭔가 보답을 해드리고 싶었는데, 잘 되었네요."

"고맙습니다."

장미래로서는 이런 부탁은 사실 난감한 것이었다.

장미래는 일년 스케줄이 빡빡하게 짜여져있는 최고인기가수였다.

갑자기 없던 기획을 스케줄에 넣는다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자기가 소개해준 유선아때문에 곤란을 겪게 된 영준을 꼭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승락을 한 것이다.

영준은 아까 회사에서 나오는 길에 문득 장미래를 떠올렸다.

무리라도 일단은 장미래에게 먼저 부탁을 해봐야할 것 같았다.

오늘 기사가 나가고 졸지에 떨어져 나간 투자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투자자들을 다시 끌어모으기 위해선 뭔가 확실한 것을 내놔야했다.

지금껏 키워온 가수들은 아직 어리고 기량이 부족했다.

게다가 한동안 유선아에 집중적으로 정성을 쏟느라 이렇다 할 후속가수를 아직 준비하지 못했었던 것이다.

 

영준은 미래와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미연에 대한 생각을 한다.

'이혼을 했다고...? ....왜? 그렇게 나를 떠났으면 잘 살지 못하고 왜 이혼을 했단 말야? 그리고 왜 그런 클럽에서, 그리고 그런 선물가게 같은데서 일을 하고 지낸단 말인가?'

영준은 명민에게 전화를 하여 만나자고 한다.

미연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두 사람은 명민의 집근처 스텐드바에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