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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같이 살집에 대한 이자부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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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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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19


BY 제인 2003-11-08

고수는 미연의 지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그래서 그 남자때문에 남편하고도 이혼한거야?"

"그런 건 아냐. 이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걸. 이혼은...남편이 나를 싫어해서 그랬어."

"이상한 사람이네? 누나같이 예쁜 여자를 왜 싫어했지?"

"듣고도 몰라? 나, 나쁜 사람이야."

"나쁘기는 뭐. 다른 사람이 좋아지게 된 걸 어떻게 해? 그게 뭐 맘대로 되나? 아이, 누난, 그 남자랑 결혼하지 그랬어?"

"글쎄말야. 지금 생각하니까 정말 바보였어. 그땐 왜 그렇게 용기가 없었을까? 지금같으면 다 말해버리고 그 사람을 선택했을거 같아."

"누나, 다음엔 또 그러지 마."

고수는 장난스럽게 한마디 하였다.

"뭐? 또 그럴 일이 있니? 치..."

미연은 이젠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 다시는 그렇게 가슴 아픈 사랑에 얽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누나. U대학교 경영학과 나왔다고? 굉장하네?"

미연은 빙긋 웃었다.

"나도 전에 경영학과 갈까 생각했었어."

"그래?"

"응...워낙 디자인을 좋아해서 우리 과에 간 거지만, 우리 과에 들어간 다음에도 경영학과에 가서 수업 몇개 들었어."

"그랬어?"

"나는 나중에 디자이너하다가 광고나 홍보쪽으로 사업을 해보고 싶어. 디자인도 재미있지만, 그쪽 공부해보니까 적성에 잘 맞는 거 같아. 마켓팅도 그렇고 경영도 그렇고."

"그럼 나중에 그런 회사 하나 차리면 되겠네?"

"그래야지. 그땐 누나도 나랑 같이 일해, 응?"

"내가?"

"그래. 누나 이런데서 일하긴 너무 아깝잖아. 나중에 꼭 우리 회사에서 나랑 같이 일하자, 알았지?"

"호호...말로만도 고맙다."

그때 고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채석이 아냐? 야, 너 언제왔냐? ..."

친구로부터 오랫만에 걸려온 전화인 것 같았다.

 

아까 영준이 우연히 들러 선물을 하나 사들고 나간 이후로 손님이 없었다.

미연은 지난 날의 아팠던 추억을 고수에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일처럼 이야기해 버린 것이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영준과 자신,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여지껏 어느 누구에게도 말 한 적이 없었는데, 아무 관계도 아닌, 그저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 학생일 뿐인 저런 남동생같은 어린 고수에게 어떻게 다 얘기해 버렸을까?

아무 관계도 아니기때문에, 그리고 어쩌면 고수가 한참 어리기 때문에, 오히려 편한 말상대가 되었나보다 하고 미연은 생각한다.

고수는 전화를 끊고는 기분좋은 얼굴이었다.

"뭐 좋은 일 있어?"

"고등학교 동창인데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야. 지금 한국에 놀러 왔는데, 내일 미팅한다고 나오래. 흐흐..."

"그래서 그렇게 기분이 좋은거야?"

"그럼. 얼마만의 미팅인데. 군대 가기 전에 해보고 이게 몇년만이야?"

고수는 손가락을 꼽아본다.

"너, 여자들한테 인기 좋다며, 여자친구 없어?"

"없어. 그냥 좀 사귀다 헤어진 애들은 많은데."

"너 바람둥이구나?"

"아니."

고수는 '아니'라는 말에서 정색을 하였다.

"별로 맘에 드는 여자를 못만났거든."

"눈이 높은가보네?"

"그게 아니고...여자들이 좀 싸가지가 없어."

"....싸가지가 없다구?"

"뭐, 맨날 남자보고만 돈내라 하지, 사달라는 것도 많지...게다가 어디 갈 건지, 뭐 먹을 건지, 그런 모든 결정은 다 남자들한테만 떠맡기고...그런 애들 한 두번 만나면 짜증나서 더 만나기 싫어."

미연은 처음엔 고수가 속된 말도 거침없이 하고 모든 걸 너무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듣기가 거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솔직함이 그의 순수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알게되었다.

어떨 때 보면 고수는 나이에 비해 너무 어린애같은 면이 있었다.

조각같은 외모로 인해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처럼 보이지만 일단 얘기를 나눠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더욱 미연에게는 편안한 상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누나같은 여자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엉?"

"누나 보면 참 좋더라. 씩씩하게 일도 잘하고."

"고맙다, 잘 봐줘서."

"나, 누나랑 사귀면 안될까?"

"아휴, 또 장난은...호호...나같이 일 잘하는 여자 데려다 노예처럼 부려먹으려고?"

"아이, 누난!"

고수와의 이런 장난어린 대화들은 미연을 즐겁게 해주었다.

한창 웃고 있는데 고수가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미연에게 정색을 하고 물었다.

"누나, 아까 그 사람 아직도 사랑해?"

미연은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영준이 그렇게 물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사람...사랑해요?..... 그 사람...정말 사랑하세요?'

미연은 입을 꼭 다물고 고수를 올려다보았다.

고수는 갑자기 표정을 다시 싹 바꾸고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에이, 안 사랑하는구나, 이젠? 그러니까 대답을 못하지."

'그런가...? 그를 이젠....?'

미연은 그와 헤어진 후 그를 잊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였다.

그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려고 하면 억지로 딴 생각을 하며 지워버리곤 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한번도 떠올려본 적 없는 질문...그를 사랑하는지...혹은 사랑하지 않는지...

미연은 그런 의문속으로 빠져들려다 고수의 부탁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참, 누나, 나 내일 약속 있어서 일찍 가야 하니까 누나가 좀 더 일찍 나와줘."

"미팅때문에?"

"응."

"알았어, 걱정마."

미연은 다음날 있을 고수의 미팅을 위해 시간을 조절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