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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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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소녀 3-4


BY 푸른배경 2003-11-20

  

    그리고는 아무말 없이 테이프를 뒤적거리다 조용한 경음악을 틀었다. 경음악은 오래된

    팝송을 연주하는 섹소폰의 소리가 애잔하게 차안을 가득 채웠다.


    "또 뭐야?"


    "야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 데, 둘만의 시간도 가져야 할 것 아니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환은 의자를 젖혔고, 소영을 바라보며 의자를 눕히기를 권했다.

    소영은 괜찮다면 만류하다가 결국에는 정환과 같은 높이로 의자의 등받이를 조절하였다.


    "이렇게 누워있으면 하늘이 보기 참 좋다. 강화도라고 해도 시골은 시골인지 서울보다는

    별도 많고."


    "강화도? 아까 강화대교를 건넜는 데! 아직도 강화도야?"


    "참 그렇구나. 미안하네. 운전은 내가 하면서……"


    "그렇지만 너의 말처럼 그런 것 같아. 난 아까부터 별을 보고 있었거든."


    "난 어릴적부터 궁금한 것이 딱 한가지가 있었어."


    "뭔데?"


    "정말 우주가 끝이 없는 걸까? 그 우주속에 얼마나 많은 별들이 있을까? 뭐 그런것들."


    "심각한 고민도 아니데. 도서관에가서 천문학에 관한 책을 보면 답이 나올 것 아냐."


    "아무리 학문이라고 해도 눈으로 확인된 것이 아닌 추측도 많잖아. 정말 우주 끝까지 가본

     사람도 없고, 블랙홀에 빠져본 사람도 없잖아. 단지 그럴 것이다 라는 확인되지 않은 것들

    을 모아서 하나의 설로 만들어진 것 아닐까?"


    "너 말이 틀린것도 아니지만 천국과 지옥이 있는 지 알고싶어서 한번쯤 죽어보는 것하고

     다를바 없잖아. 그럴 여력이 있으시면 전공에나 신경을 쓰시지."


    "기집애. 공부이야기는 고만좀 해라. 그 정도는 다 알아서 하니깐 너무 신경쓰지 말고 음악

    이나 들어! 나도 우주에 관한 것은 혼자만 생각을 할테니깐."


    "삐졌어?"


    소영은 등받이에서 몸을 일으켜 정환쪽으로 기울였다. 소영의 몸이 정환에게 기울수록

    정환은 반대방향으로 몸을 틀며 답을 했다.


    "그래 삐졌다."


    "남자가 모 그래? 속 좁게. 그런 것으로 삐지면 세상남자 모두 삐져있겠다."


    소영은 몸을 더 기울여 정환을 흔들며 말과는 다르게 화를 푸라고 애교를 부렸고, 순간

    정환은 급하게 몸을 돌려 소영을 버럭 껴안았다.


    "왜그래. 누가 보면 어떡하려고."


    "보이기는 뭐가 보여. 자동차안은 더욱 어둡게 보이기 때문에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아.

    잠시만 잠시만 이렇게 안고 있을게."


    소영은 몸을 빼려고 하였고, 정환의 팔은 더욱 강하게 소영을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얼굴

    을 소영쪽으로 향해 결국 둘의 입술은 포개지고 서로의 타액이 섞이기 시작했다.


    얼마가 흘렀을까 소영이 정환의 몸을 밀쳤다.


    "그만해. 나 이렇게 기습으로 당하는 것은 싫어."


    "너 왜그러는 데, 우린 사랑하는 사이고 성인인데 어느정도의 스킨쉽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너 무슨 문제있어?"


    "문제는 무슨 문제? 좀더 시간을 두고 차차 가까워지기를 바랄 뿐이지."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사귄지 얼마나 되었는 데."


    "시간으로 사랑을 따질 수는 없는 것이잖아. 그리고 감정으로도 내가 사랑한다는 거

    알고 있잖아."


    "알고는 있어. 하지만 확인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 남자의 본능이라고. 왜 그런 것은 몰라

    주냐?"


    "미안해."


    소영은 흐트러졌더 자신의 머리를 가다듬으며 의자의 등받이를 세웠다.


    그후 자동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안에는 아까부터 흐르던 경음악이 두 사람의 침묵

    을 대신하고 있었다.


    "정말 어렵더라 어려워."


    "뭐가?"


    다음날 정환은 강의실 구석에서 상규에게 어제의 일을 시시콜콜하게 말하고 있었다.


    "짜식. 더 밀어 부쳤어야지. 옛말에도 있잖아. 사랑은 쟁취이고 용기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고."


    "말은 쉽지. 나도 고민이되. 소영이 만큼은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과 아니 그래도 내 여자

    로 명확히 하기위해 도장을 찍어두어야 겠다는 것하고."


    "난 후자를 선택하겠다. 여자의 마음이 갈대라고 하잖아. 언제 어디서 자신이 그리던 왕자

    가 나타나 변심할지 모를 일이잖아. 그렇지만 도장을 찍어두면 사랑의 좋은 담보가 되는

    법이거든."


    "그럴까?"


    정환은 상규의 말에 솔깃하여 어제 더 밀어부치지 못한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고등학교때 학원여자아이들과 스터디 핑계를 대고는

    많이 잠자리를 같이 했었거든."


    "정말? 정말이야? 그 이야기 재미있겠다. 몇 명하고 그랬는 데."


    "몇 명까지는 좀 그렇고 한 다섯명쯤."


    정환은 어깨를 들썩이며 개선장군이라도 된 모양 자랑스럽게 잠자리의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은 여자아이에게 이끌려 어른들이 집을 비운 친구의 집에서 그렇게 거사를

     치뤘고, 그 다음부터는 자신도 모르게 한 명, 두 명 자연스럽고 더 쉽게 연결되어 열정적으

    로 이루어졌다는 투였다. 그리고는 그런 말만 없었으면 아마 공부에 더 열중할 수 있었고

     아마 여기보다는 더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을 거라고 장담을 하기도 했다.


    "참. 너 어제 차가지고 왔다며?"


    "응. 그게 왜?"


    "임마. 차를 가져왔으면 이 엉아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갔어야지!"


    "그래 미안하다 미안해."


    정환은 어의없는 표정으로 답을 했다. 그렇지만 상규는 차종과 색깔 그리고 연비까지

    꼼꼼히도 질문을 던졌고, 정환은 답을 해주면서도 지금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니 잠시

     후에 말하자며 다시 여자들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정환은 말이 길어질수록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또한 상규는 그 이야기 속으로

    점점 빠져들었다. 그리고 소영을 만나면서 그런 관계를 끊었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