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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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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그 끈을 놓다 1-1


BY 푸른배경 2003-10-06

  시립병원 503호.
  오후의 햇살이 커텐 사이로 투명한 유리를 뚫고 소영의 얼굴에 부딪히고 있다.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한 표정으로 채원의 얼굴을 소영은 물끄러미 바라보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을 듯 채원은 몇 번이고 입술을 깨물다 창가쪽으로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정말 이럴려고 그런 것은 아닌 데....."
  말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창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고 만다. 지금 소영의 몸이 많이 아프다는 것을 깜빡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잠시동안 스며든 바람에는 가을 낙엽의 내음이 묻혀들어 왔다.
  "춥지. 미안. 찬바람이 몸에 않좋다는 것을 잠시 잊었어."
  "밑도 끝도 없이 미안하다니? 채원씨 혹시 나 몰래 바람 폈어?"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가뜩이나 큰 눈망울이 답을 알수 없는 말에 더욱 커져 숲속의 사슴을 연상케 할정도로 커졌지만 맑은 눈은 보기 좋다. 다만 조금은 눈물이 고인 듯한 모습이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과 조화를 이뤄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정도 였다.
  "바람은 무슨? 내가 그럴 여유나 있냐!"
  "그럼 뭔데? 사람 궁금하게 해놓고서는...."
  "아니. 그냥 너에게 미안한 것들이 많은 것 같아서."
  "미안하기는 내가 미안하지. 아픈 몸으로 채원씨를 잡아두는 것 같아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하지만 난 죽지 않고 건강해질거야."
  소영은 고개를 숙이며 링거가 꽂혀있는 자신의 팔을 보며 고여있던 눈물을 스르르 흘린다.
  "그런 말 하지마. 나보고 강해지라며. 왜 그런 말들로 나를 다시 약해지게 하는 데, 난 채원씨가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행복하고..."
  "바보. 고맙기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 그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거야? 아까 너 말처럼 건강해져서 나한테 잘하면 되잖아."
  자신이 꺼내려고 했던 말은 아닌 데, 이게 아닌 데, 하지만 쉽게 말을 열 수가 없다. 또한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미안해서 소영과 눈을 마주칠 수도 없다. 그래서 연신 창 밖을 보며 서있다.
  "정말 하려고 했던 말이 뭐야? 왜 나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창 밖만 바라보고 말이야."
  "으응. 그냥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했는 데, 오늘따라 그 말이 쑥쓰럽게 생각되네. 그리고 너도 봐봐. 저 노을 얼마나 이쁘냐! 나도 저렇게 끝이 아름다웠으면 좋겠어."
  "오늘따라 정말 이상하다. 웃지도 않고, 말꼬리를 돌린다는 생각이 들어."
  "자식. 내가 말꼬리 돌릴 정도로 머리가 빠르냐? 그냥 오늘은.... 에이 모르겠다. 그냥 너를 너만을 사랑한다고. 됐어. 됐냐고."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이지. 그 말을 꺼내려고 서두가 길었단 말이야. 나도 사랑해. 아니 채원씨만 사랑할 거야. 다음에 또 태어나더라도."
  "그.. 그래! 암 그래야 하고 말고."
  병실 문이 열리며 저녁식사가 들어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간호사가 주사와 약을 들고 들어왔다.
  "저.... 환자분 주사 맞으셔야 하니깐 잠시 나가주시겠어요."
  "네...."
  "그리고 보호자분 되시죠? 있다가 의사 선생님이 오실 거거든요. 아마 보호자분과 상담하실 것이 있으신 가 봐요."
  "네....?"
  병실 문을 열고 나가려다 다시 돌아서서 간호사에게 말을 걸었다.
  "뭐 특별한 것인가요? 제가 가족은 아니라서."
  주사기를 허공에 들고 속의 공기를 빼기 위해 탁탁치며 간호사가 댓구를 했다.
  "아니. 뭐 특별한 것은 아니구요. 일반 회진같은 것이겠죠."
  채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간다.
  간호사가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의사가 들어왔다.
  "너 채원이 아니냐?"
  고개를 들어 의사선생과 눈을 마주치며 자신도 반갑게 인사를 하며, 얼굴에 미소를 지은다.
  "아니 아저씨가 여기는 왠일이세요?"
  "어. 아버지가 말 안하든? 교환교수로 미국에 3년간 있다가 그저께 다시 돌아왔거든."
  "아 그러셨구나! 아무튼 반가워요."
  채원과 소영에게 골고루 시선을 나눠주던 의사는 채원에게 눈을 주시한다.
  "너 이 아가씨 애인이니?"
  "네."
  "참으로 이쁜 애인을 두웠구나! 하지만 이렇게 병실에서 데이트를 즐겨야하니....쯪쯪쯪...."
  "괜찮아요. 이제 우리에게는 이 병실도 괜찮은 데이트 장소거든요. 시끄럽지도 않고."
  "참 내 정신 좀 봐라. 환자를 앞에 두고서 이게....."
  따라 들어온 간호사에게서 차트를 받은 의사는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며 청진기로 진찰을 마치고 나가려고 한다. 그 뒷 모습에 채원이 말을 건넨다.
  "아까 간호사 말로는 보호자와 상담이 있으시다고 하던데."
  "그래. 상담할 것이 있기는 했지만 너가 가족은 아니잖니. 그럼 다음에 보자. 아버지에게 내 안부도 좀 전해주고."
  채원은 의사의 뒤를 따라 병실 밖으로 나가 인사를 한 후 다시 들어온다.
  "소영아. 나 오늘은 이만 가봐야 겠다."
  "그래. 오늘 고마워. 이제 엄마 올 시간도 다 되었네. 채원씨 덕에 울 엄마도 집에 갔다오시고...."
  "무슨. 어머니에게 못 뵙고 가서 미안하다고 전해주고..."
  "응"
  "그럼 갈게. 몸조리 잘하고 있고."
  채원은 가방을 들면서 미소를 한번 보여주었고, 소영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잘가라고 말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