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시작이 어려웠다.
뭐든 열심히 하려고 맘먹었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시작은 나에게는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다.
갑작스런 그의 출현으로 온 정신의 많은 부분이 산산이 분산된 경험을 뒤로 한 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벽의 찬 공기를 맡아본 것이 언제쯤이었을까.
머리 속이 살살 가려워 질만큼 그 길은 자극적이었다.
안개가 많이 드리우면 꼭 그를 만날 것 같았던 그 시간만큼 드디어 오늘이 그 날이 되다니.
누가 볼 사람도 없는 이 시간에도 나는 웃음을 옷 속으로 품어 버렸다.
5시 45분. 너무도 이른 시간.
그에게도 이런 특별한 감정이 있었나 싶었다.
일상에 젖은 전형적인 그가 제안해온 이 시간에 나는 왜 한 번의 거부도 없이 앉아있는 것인지...
곧 그가 오리라.
그리고 그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변함이 없는 그의 걸음걸이, 경직된 얼굴.
아직도 내 앞에 서는 것이 그에겐 똑같은 떨림일까?
구두끝을 내려다 보았다.
또 첫인사를 내가 해야 하나 어쩌나 싶은 맘의 갈등이 일초에도 수만 번 오가는 중에 정말 뜻밖에도 그의 낮은 목소리가 날 깨웠다.
"안추워? 옷을 또 얇게 입고 나왔네?"
"왠일이야? 먼저 입을 다 열고."
피식 거리던 그가 이내 입을 꼭 다문다. 일자이다 못해 양 구각이 조금 더 미우리만큼 처진 그의 입매를 보면서 이 자리에 나온 내가 미친년이지 라는 생각에 혼자서 사래질을 해댔다.
"가자."
"어딜?"
"가보면 알잖아."
송도 백주년 기념탑 앞에서 6시도 안된 시간에 만난 어정쩡한 나이의 우리를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어디 갈건 데?"
"커피 한 잔 마시자고.. 차에 타."
"치, 그럼 내 차는?"
그는 잠시 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에게도 같이 살던 집을 처분한 돈으로 새로 뽑은 차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 그렇지? 당신차 주차어디다 했어?"
"됐어, 요 앞 길다방 갈려고 하는거지? 그냥 걸어가."
또 대답없이 그는 내 뒤를 따라왔다.
아줌마는 낮에도 밤에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커피를 팔았다. 때론 한국식 샌드위치를 팔고, 꿀차도 팔고, 음료수도 팔고.
그 작은 구루마에 어떻게 그런 완벽한 수납을 할 수 있는지 작은 공간에 최대한으로 완벽한 수납을 하는 그 노하우를 배워야겠다는 맘이 들었다.
우리는 한 손에는 종이컵을 들고, 다른 한 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다시 주차장 쪽으로 발을 옮겼다.
조금씩 안개가 걷혀가고 있었다.
산등성이를 바라보고 있던 나의 시야 안에 다시금 그의 얼굴이 들어왔다.
"왜 쳐다봐?"
"이뻐서."
"그말하자고 이 새벽에 만나자고 한거야? 싱겁긴."
그는, 아니 이제는 전남편으로 불리이는 그사람은 쑥스러운 듯한 미소를 머금고 그 뜨거운 커피를 한 번에 들이켜 버렸다.
이혼을 한지 정확히 365일만의 만남.
사실 기념일을 기억하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날을 기억해야 할지 모른 척해야 할지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그가 날 찾아낸 일주일 전부터 어쩌면 막연히 이혼 일주년된 날에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은 그로 인해 차갑고 날카로운 마음의 방어막을 미리부터 준비하고 있었을지 모를 일 이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전남편도 이 날을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누구에게도 이혼이라는 과정은 불행한 기억을 남기는 모양이었다. 그렇게도 무심하고 눈치없는 그역시도 오늘을 기억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만 있자, 아주 느리게 다시 시헌이 입을 열었다.
"너... 좋아하잖아, 기념일 챙기는거... 오늘 같은 날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축하받기도 그런 날이고 ... 우리끼리 그냥 밥이나 먹고, 기념이나 하자고..."
" 기념은 무슨... 근데 왜 새벽부터야?"
"그냥..."
지긋지긋하게 들어왔던 '그냥' 이라는 말이 오늘은 그리 거슬리지만은 않았다.
사실 이혼을 한 뒤로 나역시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때가 있을 때마다 그렇게 말해왔기 때문이었다. 결혼생활 동안은 그렇게 질리게 느껴졌던 그의 말한마디가 누군가로부터 왜 이혼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주 유용하게 쓰여졌었기 때문이었다.
한참동안 누구의 차를 타고 이동할까 얘기하다가 결국 내차를 선택했다. 나중에 차를 가지러 오는 나의 수고를 어떻게도 줄여보려는 전남편의 배려였다. 우습게도....
내가 운전하는 것이 영 그랬던지 그는 자신이 운전을 하겠다고 했고 나 역시 그가 하는 것이 더 맘이 편안했다.
'익숙함'
새롭거나 흥분되지는 않아도 편안함을 주는 한마디. 그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그런 것이었다. 늘 써오던 그의 애프터쉐이브의 향기. 눈가의 잔주름. 전처를 만나러온다고 아침에 깍았을 그의 턱언저리, 그의 스타일대로 다려진 면남방과 안에 받쳐 입은 하얀 티셔츠, 내가 좋아하는 검정색벨트와 내가 2년전에 사준 스웨이드 캐주얼 구두...
그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은 나와 헤어지던 그 순간과 별반 달라진게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이 사람에게는 나와 함께이던, 그 혼자이던 언제나 그 스스로 만들어 놓은 자기 안의 그 무엇이 변화라는 걸 쉽게 감지 못하는 고장난 시계처럼 그를 지배하고 있는 듯했다.
이혼을 한 뒤로 나는 망설임 없이 길었던 머리를 잘랐다.
30대가 되면서 긴생머리가 유치하게 느껴져서 머리를 자르려고 할 때 마다 남편의 반대로 웨이브파마 한 번 못하고 어깨 길이를 넘게 생머리였던 나는 그 날. 일년전 우리가 법적 모든 서류에서 이혼을 한 것으로 종지부 지어졌던 그 날로 바로 미용실부터 달려갔다.
상큼한 숏커트로 앞머리를 살짝 어려 보이는 뱅스타일로 치고 뒷머리는 모근의 끝선에 맞추어 다듬어서 부드러워 보이는 브라운 컬러와 블론드의 몇가닥으로 블리치한 나의 헤어스타일이 정말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이 해방감이 들게 해주었던 그 날.
동사무소에 입고 갔던 스프링코트 안에 목선이 깊게 파진 빨간색의 타이트한 니트와 거의 완벽 그 자체로 어울렸었다. 그 모습을 남편이 봤었더라면 하고 얼마나 웃었던지...
그리고 일년이 지난 나의 머리는 이제 긴 단발머리로 웨이브파마를 하지 않으면 손질하기 어려운 어정쩡한 길이로 자라있었다. 한 번의 커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머리를 짧게 자르지 않았다. 커트머리는 날 삼빡 하게 보이게는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내 맘 한구석을 불편하게 했다. 답답하게 느껴져서 머리를 묶으려고 해도 길이가 짧았던 그 모습이 언제부터인가 맘에 안들어서 기르기 시작했던 머리가 이제는 꽤 길어져서 마치 무슨 꼬랑지처럼 하나로 묵으면 한 뼘정도 손에 잡히는 길이로 변해있었다.
"나 거기 사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냥, 알게 됐어."
"어떻게 그냥? 응?"
"사람찾기 사이트 많잖아. 전화번호 검색사이트도 많고... 당신이 전화번호 바꾸는 바람에 내가 고생 좀 했지. 놀랐구나?"
인터넷의 확산이 가져온 찜찜한 점 중에 하나는 개인 신용 정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공동의 신용 까발림 이란 표현이 오히려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혼 후 얼마간 둘이 살았던 아파트에서 혼자사는 동안 그는 자주 집주변을 서성거렸다.
알면서도 그에게 조금의 빌미도 주고싶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의 서성거림 역시 목에 걸린 가시처럼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아파트 사람들이 서서히 남편의 부재를 알게 되면서부터 그 집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살고 있는 작은 스투디오형 건물로 이사를 온 뒤로 어쩌면 그와 나의 공동의 공간과 시간은 사실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었지만 결국 이렇게 나는 그의 범위 안에 또 들어와있다.
얼마나 사람의 마음은 호기심덩어리인지 잉꼬부부까지는 아니었어도 아이가 오랫동안 없는 우리 부부를 사람들은 701호 신혼부부라고 불렀다.
결혼한지 5년이 넘은 우리가 신혼부부인지는 스스로도 가끔은 헷갈렸지만 이혼을 뒤로 시댁으로 들어간 남편이 보이지 않자 온갖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따라다녔다.
-아이가 없어서 이혼당했대.
-아니야, 그 새댁이 성격이 만만찮잖아. 남편을 아마 들들 볶았을 거야. 어떤 남자가 남아 나겠어.
-그 남편이 아마 밖에서 아이를 봤다지?
-내가 알기로는 그 여편네가 바람이 났다던대?
-사실 그 부부가 겉으로는 잘 어울렸어도 속으로는 심각한 모양이여. 시댁하고도 그렇게 안좋았다면서?
-그게아니라 처가집에 그렇게 잘했다나봐. 그러다 본가 부모님이 역정이 나서 이혼 시켰다지 아마?
-그 남편이 순한거 같아도 은근히 성질이 못됐데, 아내를 때렸다지?
-그게 아니라 남편이 너무 무능력 했다나 모라나, 남편이 마마 보이라는 소리도 있던데?....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나는 그 이야기를 즐겼다. 누가 가장 우리의 이혼 사유와 유사한 이유를 들춰내는지 궁금 하기도 했거니와 나와 남편의 존재가 그들의 별반 새로울 것 없는 일상에 실컷 씹을 거리를 제공했다는 일종의 만족감까지 들정도였다.
이런 가학적인 나의 만족감과는 달리 전남편은 시계같이 정확하고 집과 회사를 오가던 땡돌이 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혼한지를 몰랐던 회사동료들은 자주 나에게 전화를 해서 그의 이상한 행동들이 왜 그런 것인지 물어왔다.
그때마다 나는 아주 천연덕스럽고 약간은 우울한 목소리로,
"모르셨어요? 사실은 집에 안좋은 일이 좀 있어서... 자세한 건 그이에게 물어보세요."
난 아직도 그가 회사에 어떻게 말했는지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아마 그는 이혼한 사실을 말했을 수도 있고 알리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드러내놓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내인 나에게만 화를 낼 수 있는 사람...
전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차는 햇살이 퍼지는 속도와 비슷하게 꽤 많은 시간을 달려왔다.
바닷가. 충청도 대부도.
결혼 전 야외촬영을 하느라고 왔던 그 서해의 작은 바닷가에 우리는 서있었다. 그럴 것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스스로에게도 놀라고 짜증스러운 것은 나는 그의 생각을 어느 정도 알 수가 있다는 거다.
무슨 염력이나 투시력 통찰력이 있는게 아니었지만 내가 그의 생각을 잘 맞추는 것에 그는 놀라곤 했었다. 그건 주의깊고, 관심있게 그의 행동이나,말들을 잘 이해하고 기억하는 일종의 한 사람에 대한 '알고자함'의 연습의 결과였다. 아마도 나 역시 누군가로부터 그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다는 여린 속삭임 일지도 모르지만 남편은 그런 나와는 정 반대의 사람이었다.
내가 절규를 해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 울며 불며 얘기를 해도 무슨 얘기였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 세상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하다지만 그래도 내 남편만은...이라는 강박관념에 빠져있던 나를 숨막히게 했던 그런 사람.
시원한 바닷가에 서있어도 마음의 욱죄임이 한 숨을 쉬게했다.
"좋지?"
"..."
오렌지빛 태양은 이미 머리 꼭대기에서 나를 보고 있었지만 나는 이곳이 좋은 기분을 선사할거라고 믿고 있는 그의 통찰력의 부재를 느끼는 또다른 기회일 뿐이었다. 과거의 나같으면 벌써 이곳이 어떻게 좋을 수 있느냐고, 이혼한 남편과 결혼사진을 찍었던 곳이 좋게 느껴질 거냐고 따져 묻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난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런 일로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남남이기 때문이다.
"난 여기가 좋아. 당신은 결혼 사진 찍었던 곳이라 싫을 수 있겠지만 우리 여기 자주 왔었잖아? 난 그 때 우리가 새벽에 여기 서서 아무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다 간 날. 그 날 때문에 여기가 좋아. 결혼 후에 얼마 안 되서 많이 싸우고 며칠 동안 말도 안하다가 그냥 바닷가로 달려왔었지. 아무 말을 하지 않았어도 그때는 그냥 그렇게 화해가 되었던거 같아."
그 날을 기억할 수 가 없었다. 이 바닷가는 우리의 단골 데이트코스였고 사진을 찍던 날 말고는 그저 심심할 때마다 와서 조개구이다, 조개칼국수같은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다가 돌아갔던 그런 장소였기에 그가 기억하는 그만의 '특별한' 기억에 동참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배고프지?"
"조금 그렇네, 밥먹으러 가자. 뭐먹지? 아침부터 칼국수 먹기는 그렇고..."
"좀 특이한거 먹어볼래?"
그를 따라 들어간 곳은 아주 넓직하고, 테이블이 모두 카푸치노의 색깔로 칠해진 식당이었다.
이곳에 이런 곳이 생기다니 상업적인 요즘 세상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기도 했지만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회사에 취직된지 얼마 안 된 나에게는 꽤 눈요기를 시켜주는 곳이었다.
"이 집은 다른 건 안하고 철판볶음밥이랑 죽만 하는 집이야. 여기 해산물 죽 맛있어. 먹어볼래?"
"여기 와 봤어? "
"응, 저번에... 혼자서 여기 왔었는데... 지나가다가...맛이 괞찮더라."
거짓말.
그는 나에게만은 거짓말을 못했다.
아마 그는 저번에 그 여자랑 이 곳에 왔을 것이다. 그 여자는 불행하게도 내가 아는 여자였다. 하필이면 그 여자를...
미선이는 내 친구 동생의 친구이다. 어릴 적부터 우리를 잘 따르던 친구 동생을 통해서 자주 함께 어울렸던 아주 여자다운 아이. 내가 잘 쓰는 표현으로는 내숭덩어리인 미선이가 지금 나와 한 이불을 덮고 자던 시헌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이런걸 죽마고우와의 우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솔희는 사사건건 그와 미선이의 만남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뉴스앵커라도 된 양 중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정도 미모면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고도 남을 것을, 미선이는 30이 된 올해도 아직 시헌과 결혼하지도 다른 남자를 만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바보같은 기지배.
"미선이는 이런데 잘도 알아내네, 걔랑 먹은 것만 말고 한번시켜봐."
"아니... 그게... 여기요,해산물죽.. 아니 전복죽 둘 주십시오. 미안하다. 난 당신이 여기 보면 좋아할 것 같아서...삐졌어?"
"장난하니? 삐져? 당신은 나이가 몇인데 그렇게 밖에 생각못해? 안삐졌어. 솔직히 나도 오늘 기분이 좀 그랬어. 이혼 일주년이 자랑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집에 찌그러져서 궁상 떨기는 더 싫었는데 이런 날 만날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당사자 중에 한사람인 당신과 만나는게 어쩌면 제일 자연스러울거라고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나온 거고... 솔직히 원수도 아닌데 오랜만에 만나니까 반갑기도 하고 머쓱하기도 했는데 하필이면 오는 데가 전남편이 애인하고 온 장소인거 아니까 갑자기 속이 뒤집어지고 열받는 거지, 삐진 거 아니야. 됬어?"
"나도 다 당신이 흥쾌히 만나자고해서 놀라기 했지만 애인이라니? 그런거 아냐."
"그럼 뭐니? 당신은 그런게 나빠. 같이 밥먹고 ,영화보고 , 전화하고. 가끔 섹스하고 ,..그럼 애인 아닌가?
얼굴이 시뻘게진 그는 날 뚫어져라 쳐다보며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영화처럼은 안되는구나... 이혼해도 친구같이 지내는 사람이 많던데. 우린 그렇게는 안되는거니?"
친구라...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난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이혼하고도 서로 얼굴보고 자연스럽게 지내는 사람들을 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아이들이 있고 헤어진 경우나 정말로 아주 마음이 열린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같이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해서 이혼한 나로서는 친구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이혼한 전 배우자들끼리 주고받는 것을 가식으로 느껴왔던 터였다.
"미선이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거 아니야. 이혼하고 집에 있기도 그렇고 방하나 얻어 나왔는데 걔 아파트 근처인거 나도 몰랐어.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고 그 이후에 몇 번 놀러 왔던 거고... 딱 한 번... 그건 실수였어."
"지금 뭐하는거야? 관심없어. 그리고 남자가 그렇게 치사하게 굴지마. 걔랑 잘 맞을 꺼야. 미선이는 여자다운 애니까, 자꾸 집에서 시집가라고 난리인 모양인데 올해 넘기지 말고 결혼해. 생각하니까 열받네. 그럼 왜 걔랑 잤어? 그냥 여자가 필요하면 한국처럼 바람피기 좋은 나라에 살면서 꼭 나랑 연결된 얘랑 해야돼? 어차피 알 만한 사람은 다 당신이랑 미선이 사이 아니까 더 망신당하지 말고 행복하게 잘살아."
"여보. 자꾸 왜그래? "
실로 오랫만에 들어보는 여보라는 소리에 그도 나도 순간 놀랐다. 우리나라 말중에 참 자연스럽고 예쁜 말 '여보' 부부만이 쓸 수 있는 특권의 단어. 그 여보라는 소리는 지난 5년간 우리의 입에서 참으로 많이 불리운 탓인지 현실을 망각한 채 느닷없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 여보라는 한 마디에 우리는 만난지 여러 시간이 지나서 웃을 수 있었다.
종업원이 들고 나온 전복죽은 단순한 죽이 아닌 예술작품같았다. 카푸치노 색의 테이블 위에 마치 치자꽃으로 물들인 듯한 노란색의 테이블 매트가 펼쳐지고 오렌지색 납작한 플레이트가 놓여진 후에 빨간 도자기에 화려한 나비가 그려진 사발이 포개어져서 정성 스레 조각된 나무스푼과 젓가락이 한지냎킨과 함께 서브되어 나왔다.
"먹기전에 너무 기 죽인다."
"너무 기죽지 말아라. 먹어보면 그대로 둘이 먹다가 한사람간다,가."
참 이상하게도 결혼생활 동안은 식탁 앞에서 수천 번도 더 싸웠는데 이 늦은 아침 죽 식사 앞에는 우리는 정말 오랜 친구처럼 웃으며 식사를 한다. 부부가 아닌 전남편과 전부인으로.
배가 불러야 사람은 적당히 여유가 생기는 모양이었었다.
든든하게 예술을 먹고 나니 새로운 의욕이 생겼다. 적당히 소화시킬 겸 걷자는 제안에 시헌은 순순히 동의했다. 쌀쌀하지만 기분좋은 바람 속으로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시헌씨, 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
"응. 두 개도 괜찮아."
"치... 나 왜 찾았어? 갑자기 집 앞에 나타나서 솔직히 놀랐었어. "
"알고싶어?"
"약간은."
"나도 잘 모르겠어... 이혼하고 처음엔 어디사는 줄도 알고 전화도 되고 해서 그냥 시간이 흘러갔는데 두 달 전에 우리가 살던 집으로 갔더니 네가 없더라. 놀라서 전화해보니 번호도 바뀌고... 그렇게 정말 널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갑자기 불안해 졌던 거같아."
"정말 말 안되네. 다시는 안보려고 서로 이혼해놓고, 정말 못 볼거 같아서 다시 찾고. 너무 우습다. 이렇게 따라 나선 나도 웃기는 인간이지만."
바람을 마주대하면 걷던 그가 나를 바라본다. 왠지모를 어색함..
"그렇게 모자쓰고 있으면 안 답답하니?"
"오래쓰고 있으면... 왜 답답해보여?"
"응. 벗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나중에..."
"좋은 생각이 있다. 따라와."
애프터 쉐이브의 향이 거의 끝자락에 도달한 그의 목덜미에서는 약간의 비릿한 바다바람냄새와 옛날 기억을 되씹게 하는 냄새가 섞여있었다.
굴러 떨어진 모자사이로 헝클어진 내 머리카락을 일일이 손빗질하면서 하나씩 옷자락을 헤집는 그이 손놀림을 보며 머리와는 전혀 다르게 반응하고 있는 나의 몸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일 년... 지금생각해 보면 어떻게 이런 느낌을 일 년이나 잊고 있었을까? 의자가 젖혀지고 그의 묵직한 허벅지가 나의 몸에 무게감을 더했다.
어디로 가는걸까?
내차가 의외로 실내가 크다는걸 그 때 나는 처음 알았다. 그의 큰 몸집이 차를 좁아 보이게도 할텐데 의외로 차안의 의자는 이런 상황까지도 배려했다는 듯 아무 잡음없이 의자가 완전히 뒷자리까지 젖혀졌다. 호흡으로 인해 자동차안의 유리는 뿌였게 김이 서려져서 수풀사이에 주차해 놓은 나의 차는 눈에 잘띄지 않을 것만 같았다. 잊혀졌던 그사람과의 몸의 일체감을 느끼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왜 하필 나는 미선이의 얼굴이 떠올랐을까?
"그만해!!"
"왜?"
욕망으로 뒤범벅된 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러워. 그만해!"
순간 그의 표정이 굳어지며 그는 몸을 일으켰다.
"미안하다... 그렇지만 더러운 건 없었어."
"암튼. 이게 뭐니? 내가 잘 못 생각한거 같아. 다시 만날 필요가 없었는데. 그만 가야겠어."
그의 차가 있는 기념탑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말이 없었다. 할 말도 없었거니와 어색해진 상황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더 이상은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운전석에서 내린 그의 자리에 바꿔 타면서 나는 가슴깊이 저려오는 후회에 눈물이 쏟아져 내릴까봐 이를 앙 다물었다.
상기된 시헌의 얼굴은 기억 속에 또 하나의 상처가 될까 두려웠다.
이렇게 헤어지면 만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그게 더 잘된 일일 테지만 종지부라는 것을 이혼하는 그 순간에 느낀 이후로 오늘이 영원히 기억에서 지워지기만을 바라고 있어야 할 처지인거같아 착잡함에 몸서리가 쳐지는걸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가는거니?"
"그럼 어떻게 가?"
"연우야!! 그러지마. 너무 힘들잖아. 내가 다 잘못했다. 우리 이러지 말자. 오늘 이렇게 헤어지면 난 이제 또 어떻게하니? 응?"
"뭘 어떻게 해? 그냥 잘 살면 되지. 미안해. 그동안 서로에게 상처 준걸로 우리의 인연은 끝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싱겁게 다시 시작될거면 헤어지지도 않았을 거야. 당신도 나도. 우린 너무 잘 알고 있어. 새롭게 시작한다하더라도 또 같은 상황이 될거라는 걸. 그리고 먼저 룰을 깬건 당신이야. 더 이상은 후회할 일 하지 말자. 조심해서 가. 건강하고. 갈께."
항상 먼저 떠나지 못하는 그를 위해 나는 먼저 시동을 걸고 차를 돌렸다. 룸밀러를 통해 차마 발걸음을 떼질 못하는 그 사람을 보면서 같이 살았을 때 보다 간절히 그를 원하는 나 자신을 봤다. 시간이 그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라리 빨리 할머니가 되었으면. 삼십대가 되어서도 아직 청춘같은 이런 열정이 끝나 버리길 얼마나 바라는지. 노년이 되면 어른들 말씀처럼 모든 것에 초연해질까?
내나이 20살엔 나의 삽십대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
아직도 젊은 그와 내가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