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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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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두근두근


BY 영원 2003-09-02

"저기요. 잠깐만요!" 마지막 외치며 내 팔을 붙잡아 세워 깜짝 놀랐다. 어떤 남학생이 헉헉거리며 말을 거는 게 아닌가. 아~ 순정만화의 시작과 비슷한 한 장면.

"저희과 맞죠? 전자공학과."

"네"

"그런데 왜 그렇게 빨리 가세여? 혼자서만..."

"음. 약속이 있어서 이만"

아지트의 규칙이 떠올라 빨리 빠져나가야 된다는 생각이 스쳐 대충 대답했다.

 

"오늘 모두 처음 만나서 앞으로 4년 동안 같이 공부해야 되는데 인사라도 나누고 가세여"하며 내 팔을 또다시 붙잡아 끌었다.

"안돼요!"당황한 나는 크게 소리쳤다. 그 남학생 엄청 놀랬는지 눈 커지며 뒤로 한 발 주춤 물러섰다.

"제가 이상한가여? 왜 그렇게 경계하세여?"

"네. 이상해요"하고는 뒤도 안보고 후다닥 내려와 버렸다. 또 따라올까 마음 졸이며 곧장 아지트로 가는 회사 버스에 올라탔다.

아지트의 다른 친구들은 오늘 재미있었는지 자기네들끼리 수다를 떨었다.

'우앙 이젠 정말 나 혼자 4년을 헤쳐 나가야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나며 다시 한 번 바짝 긴장이 되었다. 아지트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아까 그 상황이 떠올랐다. 그 남학생은 내가 쩔쩔매는 모습이 또 내 대답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쓴 웃음만 비실비실 흘러나왔다. 담엔 좀 더 여유있게 행동해야지. 아~ 그래도 앞으로 대학생활 정말 기대된다.

 

 

모든 만물이 새로이 시작하는 봄이다. 나또한 새로이 시작하는 1996년 봄. 설레는 가슴을 또각또각 어설픈 나의 구두소리로 달래며 첫 수업 강의실로 향했다. 1학년은 교양이어서 타 학과와 같은 건물을 쓰는데도 여학생이 별로 없었다.

'어린 것들이 복도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배나 빨다니. 쯧쯧' 나의 이 애늙은이 같은 생각은 어쩔 수 없었다.  아지트에선 담배도 피울 수 없게 되어있어서 담배연기로 가득찬 복도에 쉽사리 적응이 안됐다. 나오려는 기침을 억지로 누르며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터질 듯 방망이질하는 것이 아닌가.

고개도 못 든채 강의실을 쭈욱 훑어보니 나만 성이 달랐다. 여성! 입학식 때 봤던 여학생들은 아직 안 왔는지 보이지 않았고 나를 향한 수많은 늑대들의 눈만 이글이글 타오르는 게 보일 뿐이었다. 어디로 발길을 향해야할지 몰라 문턱에서 주춤거리고 있는데 어떤 남학생이 여기 앉으라며 과잉 친철을 베풀었다. 얼굴만 빨개져 남학생 얼굴 확인도 못 하며 자리에 앉는데

"저 기억하시죠?"하고는 한 번 씽긋 웃었다.

"글쎄~요"

"입학식날..."

"아~아.예..." 또다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게 아닌데...윽 얼굴 표시나면 안 되는데...' 그러나 이미 귀까지 빨개져 몸에서 불이 나는거 같았다. 무안해서 책상만 뚫어지게 보며 수업시간만 기다리는데 뒤에서 수군수군거렸다.

"너 알어? 누구야?"하며 그 남학생과 나에게 몰리는 시선들.

아~ 정말 오늘은 하루 종일 열나는 날이었다. 수업은 교수님과 교재 소개만 하고 끝났는데 개강파티한다며 선배들이 들어와 끌고 갔다. 냉정해 보이는 분위기 때문인지 나에겐 예의상 어렵게 한 번 물어보고는 거절하자 그냥 내버려두었다. 또 후다닥 아지트로 돌아왔다.

왠지 이 상태로 나가다보면 앞으론 정말 드라마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 같다. 아니 드라마 한 편을 내가 만들어 나갈 수도 있을거 같다. 아지트의 안테나에 걸리지 않아야 될텐데...아지트의 모범생이던 나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겨버렸다. 아지트와 학교의 이중생활. 어쩌면 정말 스릴있는 대학생활이 될지도 모른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학교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