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소꼬리 태우다
영은이 숨을 헉헉 거리며 이층 양옥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대문이 열여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벌써 온건가. 그러면 안돼는데.......’
-너 이제 엄마한테 죽었어
마당에서서 말하는 진경의 암시는 영은을 불안하게 했지만, 급히 뒤뜰로 뛰쳐 갔다.
뒤뜰에 들어 섰을 때 구리한 탄내가 진동을 했다.
뒤뜰 수돗가앞에서 주인여자는 이미 다 타고 재만 검게 남은 짐통을 씻다 말고, 세게 집어 던져 버렸다.
영은은 그것을 보는 순간, 눈물보다 정신이 아찔해 졌다.
-아...주머니........
-어휴, 내가 못살아. 너 정말?!........어딜 쏘다니다가 인제 들어오는 거냐? 소꼬리가 얼마인지 알기나 해. 그렇게 내가 누누이 당부를 했건만. 이집까지 다 탔으면 어쩔 뻔 했어.
고개를 돌리며 영은을 본 주인여자의 싸늘한말
-죄송해요.
-죄송하면 다야. 소꼬리 어떡 할꺼야! 어떡 할꺼냐고! 눈 있으면 한번 와서 봐. 이 짐통 꼴이 어떤가.......
-아무도 없으니까, 니 세상이다 싶어 뛰쳐 나갔냐?
남의 집 일 하면서 누가 니 멋대로 행동 하랬냐? 그것도 집 비우고......
그리구 부엌엔 무당 불러서 굿했냐? 먹을꺼 다 꺼내어 먹었으면 치우기나 치우지?
..........어휴 정말?! 거기서 뭐해! 얼른 와서 이 찜통 씻지 않구.
그일로 이층집안은 악이라도 떨어진 듯 얼어 붙고 말았다.
2. 고마운 사람
이미 어둠이 짙어 지고 있었다.
영은은 캄캄한 뒤뜰 연못의 돌의자에 앉아 있었다.
연못의 고인 물위로 영은의 눈가에 맺혀 있던 이슬 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이슬 방울은 영은의 그리움이었다.
그리고 서러움이었다.
영은은 자꾸만 떨어지는 눈물을 내버려 둘수 없어 한손으로 두눈을 닦아 내었다
-너 울보구나.
언제 왔는지 진우가 그곳으로 다가 서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본거 뿐이야. 사실 여긴 내 아지트였다구. 너가 온후로 내 스스로 양보했지만 말이야.
넌......... 돈 버는게 그렇게 쉬운줄 알았어.
-거기가 무슨 상관이에요.
-또, 거기라네. 거기는 때와 장소를 나타 내는 말이야. 너 초등학교 나왔다며.....거기가 아니라, 진우라고....
-..........
-하긴 내 보다 두 살 아래이니까, 그냥 진우 오빠라 불러.
진우가 영은에게 손수건을 내밀며 약간의 거리를 두고 옆으로 앉았다.
-이걸루 닦아.
영은은 힘없이 손수건을 받아 들었다.
자신을 위로하려고 애써는 듯 들려오는 목소리에 다정함과 편안함이 전해왔다.
-오빠........
영은은 나지막하게 허공을 향해 불러 보았다.
-친오빠도 안닌데........
-그래도 그렇게 부는는 거야. 벌써 울면 버틸수 있겠어. 설마 내일 당장 보따리 사는 건 아니지.
-근데, 그 소꼬리가 그렇게 비싼 거에요.?
-왜 너가 태운 소꼬리 사 줄려구? 얼마인지는 나도 잘 모르는데.......꽤 비쌀걸.
-아니요. 그냥 고향 집에 있는 소가 생각 나서요.
그러다가 영은은 자신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너 왜 웃냐?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돼는지 알어?
-사실, 고향집 소의 꼬리를 잘라오면 되지 않을까?
그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요.
-꼬리 잘라오다가 소발에 차이면 여기 오지도 못할건데........
-그런가
-너 고향이 어디니?
-여기서 멀지 않아요. 소똥골이라고.......
-소똥골......하하 무슨 동네 이름이 그래
소가 똥을 많이 사는 가 보지. 옆동네는 개똥골인가.....하하하하
진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혼자 웃기 시작했다. 영은도 그렇게 웃는 진우가 싫지 않았다.
-어때서요. 난 계속 들어서 아무렇지도 않은데.........소똥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부르는 거에요. 정확히 말하면 소동리지만........
푸른산이며, 냇가에 물이 맑아 그곳에 가재를 잡으며, 멱도 감으면 얼마나 시원하고 재미 있는데요.가끔씩 동생들과 물장난도 치고....
그러다 배고프면 남의 집 자두랑 수박 몰래 따 먹고.......그러다가 들켜 혼나기도 하지만.......
-그렇게 멋진 곳이니?
-네. 거기 있을땐 몰랐는데, 여기와서야 그곳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느끼게 됐어요. 더구나 오늘같은 날은 더욱 생각이 나요.
-우리 어머니 이해해라. 너가 태운 그 소꼬리 말야.
그거 오늘 우리가 만난 아저씨한테 줄려고...일부러 신경써서 한거야. 그래서 더 화가 났을 꺼야.
-아저씨......
남의집 살이 하는 자신이 못 마땅하던 영은은 그제서야
진우에게 아버지가 없다걸 새삼 깨닫게 되자 닫혀진 자신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그럼, 아주머니 이제 재혼하시는 거에요?
-재혼? 글쎄......그건 아무도 몰라. 지금껏 식모가 여러번 바뀌었듯 남자도 수시로 바뀌었으니까, 이번엔 좀 특별한거 같던데..........모르겠어.
왜, 궁금하냐?
-아니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전 여기 필요 없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건 염려 안해도 될껄.
-어머닌 절대 혼자 살림하실분이 아니니까.......아니 혼자 못 하시거든.
-전 그만 들어가서 자야 겠어요.
영은은 천천히 일어 섰다.
-이 손수건은 빨아서 줄께요.
-그냥 줘도 돼는데.......
-아니에요. 어차피 내일 빨래 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고마웠어요.
-그래, 들어가서 쉬어.
방으로 들어온 영은 문에 그대로 기대어 있었다.
아픈 가슴이 조금이나마 씻겨지 듯 했다.
살며시 방문을 열어 뒤뜰 연못에 앉은 옆모습의 진우를 몰래 바라보고 있었다.
김 진 우.........
오빠!
영은은 조용히 그 이름을 되새기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