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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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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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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에서..


BY 안젤리나 쫄티 2003-07-22

 

모든 게 예전처럼 돌아왔다.

하지만 얼음공주를 향한 내 마음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수업시간엔 뒷자리에서 얼음공주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시치미를 뗀 체 힐끔거리기 바빴다.


대시를 해왔던 아이들을 전부 거절하고 예전의 지루한 내 모습을

되찾자 반 아이들이 젤 기뻐하는 거 같았다.


나는 또 예전 지각 짱의 임무도 충실해서 담임의 스트레스 해소용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미정이도 여전히 찰싹대며 들러붙어 다니고.......


가슴속의 답답함이 목까지 차오르면 문득문득 미정이에게 털어놓을까?

잠깐 고민도 해봤지만 왠지 내키지 않아 관뒀다.


일부러 얼음공주 땜에 방과 후에 늑장도 부려봤지만

나와 부딪쳤던 이후로 일찍 가는 거 같았다.


난 여전히 허둥거리다 실망하다 긴장하다 포기하기를 수십 번 되풀이 하고......

이 괴롭고 괴로운 학창시기를 하루빨리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담탱이 민지를 일부러 괴롭히는 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로 앞으로 부른 뒤 면박을 주고 매를 드는 것이다.


그런 일이 전무후무 했던 터라 아이들도 의아해하고........

단지 담탱이가 슬슬 실증이 났나보다 추측해볼 뿐.


그러던 어느 날,

하교준비를 하다 음악실에 두고 온 필통이 생각났다.


에이, 귀찮아.   낼 가지러 갈까?  휘유......갔다 오자.


아이들이 거의 빠져나간 복도를 털털거리며 음악실로 향했다.

필통을 찾아 교실로 향하는 데 복도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두리번거리며 소리 나는 쪽을 찾아보니 기역자로 꺾여진 복도 끝 상담실에서

들려오는 거 같았다.

가만가만 상담실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상담실 문이 확 열리더니 누가 뛰쳐나오는 것이다.

또 얼음공주였다.


난 숨을 꿀꺽 삼키고 얼른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얼음공주를 훔쳐본 난 깜짝 놀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얼음공주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체 울면서 뛰쳐나온 것이다.

교복 앞가슴이 풀어헤쳐지고 단추 하나가 덜렁거린 체....... 

치맛자락도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내가 멍하게 서 있는 사이 얼음공주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려 잡을 새가 없었다.

가슴을 진정시키고 살금살금 상담실로 향했다.


가만히 출입문의 하얀 시트지가 조금 벗겨진 곳으로 훔쳐보니......


씨팔, 담탱이 새끼가 씩씩거리며 앉아있는 것이다.

넥타이를 풀어헤친 체 미친놈처럼......


윽.......

생각지도 못한 광경.

저 변태 새끼.......


그곳을 빠져나와 얼음공주를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교실에 가보니 얼음공주의 가방도 보이지 않고 운동장이나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


집으로 갔나보다.

그 꼴을 하고.......


걱정으로 가슴이 타들어 갔다.

어쩌지 못한 내 행동과 초라함에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날 밤 잠 한숨 자지 못하고 담날 학교엘 갔다.


얼음공주는 결석했다.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학교가 끝나고 얼음공주의 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하지만 벨을 누르지 못했다.


그 어떤 말도 섣불리 건넬 수가 없었을 뿐더러 그 애 눈빛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그 애의 고통스런 눈빛을 감당해 낼 자신이....


가로등 밑에서 담배만 줄 창 피워대고 있었다.

올려다 본 이층 창은 아직도 불이 켜지지 않고 어둠 속에 잠겨있다.


이대로 돌아가 봤자 잠자긴 다 틀린 거 같아 용기를 내어 대문 앞에 섰다.


띵동 띵동~~


“누구세요?”

얼른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발로 비벼 끄고,


“네, 민지 친군데요, 민지 있어요?”

“그래?  잠깐만 기다려라,    민지야~”


민지를 찾는 민지의 엄마목소리가 들리더니 한참 후 대문 안쪽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난 혀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이윽고 대문이 열리고 민지가 나왔다.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는 거다.

나도 깜짝 놀랐다.

민지의 얼굴이 너무 까칠하고 퉁퉁 부어있어서.


나를 본 민지는 고갤 한쪽으로 돌려버린다.


칫,  내가 그렇게 싫나.....

가슴이 싸~아 하니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장 재영,  웬일이니?”

“으...응.....그냥.... 야, 너 왜 학교 안나왔냐?”

난 고개를 돌린 체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민지가 넘 야속하고 미웠다.


“몸이 안 좋아서.....”

“그, 그래?  그럼, 낼은 나올 거지?”

“응. 그럴 거야.”


“........”

“........”


우린 그렇게 대문을 사이에 두고 한참을 말없이 서 있기만 했다.


“나 간다.  낼 학교에서 보자.”

난 입술을 깨물며 뒤돌아섰다.


그리고 막 뛰어가는 내게 민지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재영아, 와줘서 고마워.  잘 가.”


기뻤다.

너무너무 기뻤다.

와줘서 고맙다고?  고맙다고?


가슴이 홀가분하고 새로운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나보고 고맙다고 했다.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