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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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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마지막 날


BY 안젤리나 쫄티 2003-07-21

 

드디어 축제의 날이 밝았다.

억압과 속박에서 벗어나 맘껏 즐길 수 있는 허락받은 3일간의 자유.


그러나 너무 풀어주면 안된다는 학교장의 방침 하에 우린 그 갑갑한 교복을

끝끝내 입어줘야 했다.


그러나........

미리 정보를 입수한 우리 반은 가장무도회 컨셉으로 각자 개성이 넘치는

복장과 분장을 하고 질투 섞인 다른 반 아이들의 시선들을 즐기며 운동장을

활보했다.


프로그램에 맞춰 연극, 독창, 합창, 무용, 장기자랑 등등이 끝없이 이어지고

운동장가에선 장터가 열려 그야말로 축제다운 축제로 학교 전체가 들썩였다.


으휴...... 이 꼴이 뭐야.


굳이 싫다는 내게 아이들이 강제로 입혀놓은 복장은...

 

“쾌걸 조로~  Z”


길다란 검은 망토를 두르고 레이스 달린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장화,

얼굴에 가면과 콧수염까지 달아 놨다.

거기다 금박을 입힌 장난감 칼까지 옆구리에 찔러준다.


“우와, 재영이 캡 멋지다.   진짜 조로 같아.  딱 이야. 딱.”

“정말 잘 어울려.  얼굴이 예쁘니 뭘 입혀놔도 뽀대난다 뽀대나.”


아이들은 탄성을 질러대며 야단법석이었다.


쳇, 행여 벗어던질까봐 안절부절 들이군.

그래, 심심한데 함 입어주지.  이거 아니면 교복이니 원,  쩝....


그 복장을 하고 운동장을 어슬렁거리며 그렇게 축제의 날은 저물어갔다.


그날 밤에 얼음공주에게 눈물을 보인 후로 난 계속 얼음공주를 피해왔다.

내 모습이 너무나 바보 같고 한심하고 추해서.......


클레오파트라 복장을 한 얼음공주는 눈이 부셨다.

모두들 얼음공주가 지나가면 숨죽이고 힐끔거렸다.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답고도 도도한 분위기가 클레오파트와 어쩌면 저렇게

잘 어울리는지.


얼음공주의 숨 막히는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지만

자꾸만 빠져들 것 같은 내 맘이 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미웠다.


겨우 붙들어 놨는데....겨우 겨우 다독여 놨는데.....


운동장을 걷다가 저 멀리 얼음공주의 반짝이는 금빛 치마만 보이면

꼭꼭 숨기 바빴다.


어느덧 축제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잔뜩 취기가 오른 체육샘이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캠프파이어 진행을 맡았다.


드디어 학교 옥상에서부터 점화된 두개의 불꽃이 빠른 속도를 타고 내려와

운동장 가운데 놓여진 커다란 장작더미에 점화되었다.

“와~~~~”


그 멋진 장관에 우리들은 함성을 질러대며 마지막 남은 축제의 밤의

열기에 휩싸였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흥겨운 음악에 맞춰 정신없이 춤을 춰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드디어 캠프파이어의 불꽃이 사그라질 무렵,


체육샘의 지시대로 각 반들끼리 서로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모여 섰다.

그리고 저마다 손에 초 하나씩.


캠프파이어에서 옮겨진 불꽃이 모두의 손에 들린 초에 옮겨지기 시작했다.

손에서 손으로.......


그렇게 우린 조그맣게 불타오르는 초불을 바라보며 축제로 들떴던 마음들을

차분히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자, 모두들 촛불을 바라보며 각자 소원 한가지 씩 비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체육샘의 외침에 우리 모두 숙연해진 마음으로 각자 소원을 가슴에 담았다.


한동안 그렇게 소원을 빌며 조용해질 무렵, 갑자기 옆에 섰던 미정이가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내 소원을 말해도 돼?”


미정의 외침에 원을 그리며 모여 섰던 반 아이들은 고갤 들고 미정이를

뜨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래, 말해 봐.”

아이들이 대답하자,


“내 소원은....... 재영이와 키스해 보는 거.”


미정이의 황당한 말에 깜짝 놀란 난 미정이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이들도 미정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내 얼굴과 번갈아 쳐다보고.....


농담???

돌아본 미정이의 눈은 꽤 진지했다.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체......


미정이의 제안에 코웃음을 치며 무시하려던 난 갑자기 얼음공주에 대한

반발심이 심하게 일었다.


“좋아.”


난 미정이를 품안으로 확 끌어 당겨 안고 뒤로 절반쯤 눕힌 자세로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우우우~~ ”

“와~~~~”

반 아이들 모두 환호성과 야유를 질러대며 난리가 났다.


고개를 든 난 입술을 쓰윽 닦으며 건너편의 얼음공주를 쏘아보았다.

얼음공주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옆으로 고갤 돌려버렸다.


내 가슴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